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뚝배기 깨러 왔습니다-113화 (113/139)
  • 뚝배기 깨러 왔습니다 113화

    다음 날, 강백현은 경찰서에 가서 참고인 진술을 시작했다.

    김동성과 무슨 일이 있었는가와 서로 알게 된 계기.

    “아이고, 고생 많으셨습니다. 결국 재산 욕심 때문이었네요. 하긴 재산이 4000억이 넘는데, 그게 날아간다고 생각하면 자신의 누나를 성한그룹과 결혼시키는 게 어느 정도 타당한 것 같기도 하네요.”

    “네. 제가 알고 있기로는 그렇습니다.”

    “좋습니다. 용산구청에서 조사한 참고인 진술과도 대부분 일치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군요.”

    용산구청이라고 하면 한남동에 사는 김성현네 가족의 진술이다.

    아마 김도한 회장의 진술과 백현의 진술을 대조하여 범죄자인 김동성의 범죄 경위를 유추하려고 했을 터.

    조 경사는 안심하라는 듯 백현의 등을 두드리며 말했다.

    “아이고~ 사무관님 고생 많으셨습니다. 저희 쪽에서도 최대한 조서 잘 작성해서 검사님께 넘기도록 할 테니, 너무 걱정 하지 마세요. 들어보니 그쪽 회장님도 사무관님 불편한 점 없었으면 한다고 용산구 측에 말해뒀다고 하더군요.”

    “그렇습니까?”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제가 명함 좀 드려도 되겠습니까?”

    “아… 넵.”

    부주시 조 경사가 자신의 명함을 건네며 쑥스러운 듯 중얼거렸다.

    “유명하신 분이 될지도 모르는데, 친해져야죠.”

    “아~ 아닙니다. 저도 제 명함 드리겠습니다. 공무원 부정부패나 공익제보는 언제나 저희 쪽으로 연락주십쇼.”

    “넵. 그렇게 하죠.”

    부주시 경찰서를 나오며 백현이 고민 섞인 표정을 지었다.

    ‘잘 해결된 거겠지?’

    앞으로 범죄사실 소명과 변론을 위한 구체적인 조사, 형량을 결정하는 재판과정이 진행될 것이다.

    아무튼 최용규의 죽음에 대한 의문은 이렇게 해결되었다.

    처음에는 시장의 비리를 제보한 자신 때문에 최용규가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시장의 친척이 범인일까, 아니면 누군가의 사주를 받은 부랑자의 짓일까 고민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정작 범인이 김성현 실장의 동생이라고 생각하니 말이 나오지 않는다.

    ‘전화라도 걸어볼까? 아니야. 하지 말자.’

    백현은 김성현에게 연락할지 어쩔지 고민하다 그만두고는 집으로 향했다.

    홀가분함을 느껴야 하는데 오히려 찜찜한 상황. 백현은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동네 목욕탕 사우나로 향했다.

    때마침 사우나에 자주 가시는 아버지가 목욕을 하고 있어 백현은 눈썹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아빠, 언제 왔어요?”

    “어제 밤샘 근무 하고 바로 왔지. 넌 어디 갔다 와?”

    “아무것도 아니에요. 등 밀어드릴까요?”

    “그래. 짜식! 오랜만에 아들한테 등이나 맡겨보자.”

    백현은 우연히 만난 아버지의 갈라진 등을 밀며 속상해했다.

    “어휴~ 아빠도 세월은 못 이기네.”

    “뭐 인마? 아직 쌩쌩해.”

    “그러셔야죠. 오래오래 사셔야죠. 경비일은 할 만 하세요?”

    “갑질하는 여편네가 한 명 있는데, 그 사람만 피하면 할만 해.”

    “무슨 갑질이요?”

    “택배를 차에 실어달라고 매번 부탁하는데, 내가 택배 받아주는 건 해도 차에 실어주는 건 좀 그렇잖아. 그런데 그런 부탁을 계속 한다니까.”

    아버지의 말에 백현이 화를 냈다.

    “그 사람 누구에요? 가서 혼내줘야겠네.”

    “아서라! 사람이 다 참아가면서 사는 거야. 그런 거 하나하나 불평불만 하면 세상에서 못 살아.”

    “미안해요. 아빠.”

    “뭐가 미안해?”

    “훌륭한 사람이 됐어야 하는데.”

    “괜찮아. 지금도 충분히 훌륭한데? 내 새끼가 5급 공무원이면 충분히 훌륭하지. 그리고 5급 아니어도 나는 항상 행복했어. 너 건강하면 그걸로 돼. 알았어?”

    백현은 아빠의 등을 밀어드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건강 챙길게요. 아빠도 건강 챙기세요.”

    오랜만에 때를 밀고 나와서 자판기에서 사이다를 한 캔씩 뽑아 마시는 부자. 서로를 바라보며 방긋 웃었다.

    “액자 찾으러 갈까?”

    “좋죠. 차는 아빠가 끌고 왔죠?”

    “그래. 너 주말에 차 안 쓰잖아.”

    저번에 같이 찍은 가족사진 액자를 찾기 위해 스튜디오에 들린 백현. 집에 돌아와 액자를 벽에 걸기 시작했다.

    사진사가 실력이 있는 분인지 엄마와 아빠의 얼굴에서 주름이 감쪽같이 사라져 있다.

    “인물이 훤하네요.”

    “인마. 누구 자식인데!”

    “아니 저 말고 아빠요.”

    “크크. 네 엄마가 그래서 여전히 날 못 잊잖아. 우리 아들도 빨리 장가가야 할 텐데.”

    “아이고……. 됐습니다. 밤샘 근무 하셨을 텐데 얼른 쉬세요.”

    백현이 아버지를 안방에 보내고 자신의 방으로 들어오자 성주단지가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평소하고는 조금 다른 성주단지.

    흔들흔들 거리는 게 무언가 이상해 성주단지의 뚜껑을 열었다.

    그러자 그 안에 보이는 작은 형상.

    “선배, 안에 들어가 있었어요? 실장님 곁에나 계시지.”

    [뚜껑 좀 닫아주라.]

    “왜요?”

    [닫아. 나 안 나갈래. 안 나가. 안 나갈래.]

    “뭔데요? 뭐가 문제인데요?”

    [저번에 말했던 원귀 있지? 그거 처리하려고 저승사자 세 분하고 같이 찾아갔었거든.]

    “네. 그런데요?”

    [다 흡수됐어.]

    “네?”

    [다 흡수됐다고. 그 놈이 얼마나 강한지, 저승사자들 손도 못 쓰고 다 흡수됐어. 무서우니까 제발 닫아주라. 응?]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데, 일단 알겠어요. 닫아주면 되죠?”

    [아, 잠깐만!]

    최용규는 성주단지 바깥으로 얼굴을 내밀더니 두리번두리번 거리며 물었다.

    [오늘 며칠이야?]

    “2016년 1월 16일 토요일이요.”

    [하아, 나 성주단지에 보름이나 있었던 거야?]

    “그렇게 오래됐는지는 몰랐네요. 그런데 선배, 저승사자 수련생으로 갔다면서요. 저승사자 사라지면 좋은 거 아니에요?”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걔네 없으면 나 천국 못 가! 백현아, 나 어떻게 해야 돼? 나 성현이랑 같이 천국 가야 되는데. 어?]

    “아니, 그걸 저한테 물으시면 어떻게 해요. 네?”

    [인마. 인마! 네가 대신 만나러 가줘라. 응?]

    최용규가 조심스러운 얼굴로 부탁하자, 강백현은 당혹스런 얼굴로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 선배 말고는 귀신이 보이지도 않는 제가 무슨 방법이 있겠어요. 심지어 저승사자들도 흡수당했다면서요.”

    [아니, 그 놈이 빙의한 상태여서 그랬어. 원래라면 산 자의 몸에 들어가는 게 오래할 짓이 아니거든? 근데 그 놈은 살아있는 사람 몸에 들어가서 그렇게 오래 버틴다니까. 원래 산 자의 몸은 저승사자나 우리 같은 귀신들은 못 건들이거든. 생체와 오래 접촉하면 우리는 이성을 잃어버리고 마니까.]

    “음……. 멀어요?”

    [그렇게 멀진 않아.]

    “위험해요?”

    [너한테 위험하진 않겠지.]

    “성주단지 안에 있으면 안전한 거 맞죠?”

    [응. 아마도? 이게 깨지지만 않으면 안전할 걸?]

    “알았어요. 가요. 한국이죠? 국내죠?”

    [그래. 고맙다. 아, 근데 만나서 해결이 될지 모르겠네.]

    “일단 가볼게요. 너무 큰 기대는 마세요.”

    강백현은 최용규로부터 원귀가 있다는 장소를 들었다.

    세종시 부극면.

    차 타고 20분 거리다.

    산속 깊은 곳까지 들어가는 탓에 강백현이 최용규에게 핀잔을 늘어놓았다.

    “와, 무슨 자연인이야? 누가 귀신 아니랄까봐 이런 산에 살아요?”

    [그 놈 미쳤다니까. 사람을 아예 만나지도 않고 움막 같은 집을 짓고 사는데, 야생동물 잡아먹고, 과일 따 먹고 그래. 나도 처음에는 믿기지가 않았어.]

    “목적이 뭘까요?”

    [모르지. 의사소통 자체가 되지 않았으니까. 혹시 또 알아? 산 자가 찾아가 사연을 들어볼지도. 한 번 잘 설득해 봐.]

    백현은 경찰에 신고해야 하나 잠시 고민했다.

    차량으론 더 이상 갈 수 없는 길.

    백현은 갓길에 주차를 하고 산을 오르며 지금이 낮이라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추운 겨울, 땅거미가 일찍 진다.

    현재 시각 오후 3시, 어두워질 때까지 약 3시간. 백현은 그 전까지 해결의 실마리가 잡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호기심 어린 눈으로 눈앞의 움막으로 향했다.

    “계세요?”

    “안에 계세요?”

    백현은 인사를 하며 움막 안에 사람이 있는지 물었지만 아무 반응이 없었다.

    “없는 것 같은데요.”

    [있어. 너 이 느낌 몰라? 원귀들의 그 싸늘한 느낌 말이야.]

    “저는 그런 거 못 느끼죠. 죽은 사람이 아니니까. 일단 만나볼게요.”

    [아, 나는 단지 안에 들어가 있을게. 무슨 일 있어도 나 부르지 마. 알았지?]

    “네. 그렇게 하세요.”

    백현은 그 말을 끝으로 용기를 내며 움막의 커튼을 걸쳤다.

    그러자 안에 사람이 가부좌를 튼 자세로 무언가를 혼자 중얼거리고 있었다.

    “죽지 마요. 죽으면 안 돼. 죽지 마요! 죽으면 안 된다고.”

    혼잣말을 하는 남자를 향해 강백현이 입을 열었다.

    “저기요. 선생님, 괜찮으세요?”

    “물러가세요.”

    “네?”

    “물러가시라고요. 죽지 마요. 죽을 수 없어. 난 안 죽어. 죽지 마요.”

    “저기요. 제 얼굴 보면서 말씀해주시면 안될까요? 전 강백현이라고 하고요.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는데, 선생님이 여기 혼자 살고 계신다고 해서 찾아와봤거든요.”

    그 말에 음침한 모습의 사내가 고개를 돌려 백현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

    “선생님?”

    “강…백현. 부주고등학교 77기? 죽지 마요.”

    백현은 놀란 얼굴로 그 사내를 바라보았다.

    아무리 봐도 자신과는 연관이 없어 보이는 사내.

    귀신에 씌였다기 보다 뚜렛 증후군인 듯 같은 말을 반복하는 60대 중반쯤의 사내. 백현이 사내의 복잡한 표정을 보며 물었다.

    “절 아십니까?”

    “나야. 백현아. 네 선배. 주진한.”

    주진한이란 말에 강백현의 얼굴 또한 굳어졌다.

    “진한 선배?”

    “죽지 마요. 죽을 생각 그만. 그만!”

    강백현은 놀란 표정으로 소리쳤다.

    “누가 죽어요? 선배 맞아요?”

    “저리 가! 저리 가란 말이야!”

    60대 중반 사내가 거친 음성으로 소리를 질렀다. 강백현은 일단 남자의 고함에 한 걸음 뒤로 물러나 상황을 지켜보았다.

    그러자 남자는 한참 씩씩대다가 겨우 안정을 되찾은 후 백현에게 입을 열었다.

    “백현아. 여기는 왜 왔어?”

    “그것보다 괜찮으세요? 진한 선배 맞죠?”

    “그래. 허가과 주진한, 부주고등학교 76기, 네 1년 선배 맞다 인마.”

    강백현은 조심스럽게 또 하나의 질문을 던졌다.

    “선배, 원귀인 거 알고 계세요? 지금 산 사람 몸에 들어가 있는 거 인지하고 계신 거죠?”

    “그래. 인마. 내가 이 사람 살리려고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 아냐?”

    “네?”

    “나처럼 자살할까봐 억지로 막고 있는 중이라고. 너는 못 믿겠지만, 저승사자 여럿 왔다갔었다. 그 놈들 막느라고 내가 얼마나 개고생했는데.”

    백현은 그제서야 주진한 선배가 왜 산 자의 몸에 빙의했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니까 선배님은 지금 그 몸의 주인인 어르신을 살리기 위해서 빙의를 한 상태라는 거죠?”

    “그래! 어떻게 된 게 누구하나 찾아오질 않아! 지금 3년 가까이 이 짓 하고 있다. 산짐승 먹어가면서 버티는 게 얼마나 힘든지 넌 아냐? 일단 먹을 것부터 가져와. 이 사람 진정 좀 시키고 무슨 일 있었는지 알려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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