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뚝배기 깨러 왔습니다-112화 (112/139)
  • 뚝배기 깨러 왔습니다 112화

    감사결과를 종합한 강백현과 다른 감사관들이 관련 사항을 가지고 이사장실로 들어갔다.

    학교생활기록부 정정 시 학업성적관리위 심의 누락, 학업성적관리위 심의 자료와 봉사활동 시간 불일치, 생활기록부 정정대장 작성 미실시, 잦은 휴직 남용, 규정에 맞지 않는 복직 업무 처리 등이다.

    근거 제출 서류 없이 간병휴직을 연장하거나, 규정에 맞지 않는 진단서를 제출한 것도 있었다.

    학교장 또한 병원치료로 자리를 비운 상태였는데, 해당 진단서가 제출되지 않은 상태여서 강백현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기간제 교원 선발 절차에서도 1차 서류전형, 2차 면접, 3차 수업시연, 거기까지 통과하면 교원인사 자문위원회 심의 후 내부결재를 통해 전형결과를 면밀히 도출하고 채용을 결정해야 하는데, 해당 중 고등학교는 세류전형과 면접을 분리하지 않고 동시에 실시하는 등 공고와 다르게 진행한 부분도 엿보였다.

    또한 해당 교원 선발 과정에서 모든 교원들은 범죄경력 및 신원조회 기록을 해야 하는데 그런 조치가 일부 누락된 것도 학생들 입장에서는 굉장한 불안요소였다.

    “감사관님, 이렇게나 지적사항이 많이 나왔습니까? 아니 운영비로 노래방을 가요? 선생님들, 이거 안 되겠네. 너무 막나가잖아.”

    이사장은 뇌물이 먹히지 않는 강백현을 앞에 두고 조심스럽게 해명했다.

    원리원칙대로 감사결과를 하나하나 열거하는 강백현 앞에서 그는 자신은 투명한 사람이라며 단지 서류가 미비했을 뿐이라고 주장하고 있었다.

    그러나 강백현은 조근조근 하나하나 분석하며 말했다.

    “이사장님, 학생들에게 나갈 문화상품권 360만원어치가 감쪽같이 사라진 것도 있더군요.”

    “네? 어떤 선생이 그 따위 짓을 했습니까? 이건 용서가 안 되네요.”

    “흥분하지 마시고 제 말 잘 들어보세요. 이사장님께서 투명하게 학교예산을 운영하셨다면 이렇게는 안 됐을 겁니다.”

    “뭐라고요?”

    “노래방이나 문화상품권이야 개인별 환수해서 조치하면 되는 부분이라서 제가 감안하고 넘어갈 수 있는 부분이고요. 여기부터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어서요.”

    “네? 또 있습니까?”

    강백현이 한숨 대신 문서의 다음 장을 넘기며 말했다.

    “학교 회계예산 이월처리를 이사장님 마음대로 넘기시는 경향이 있더군요. 수의계약 부분도 부적절한 부분이 많았고요. 이게 재단사업이긴 하지만, 국가 지원금 비율이 60%가 넘잖아요. 중, 고등학교 학생을 돈벌이로 보는 게 아닌가 우려가 되는 부분이거든요.”

    “돈벌이? 감사관님, 돈벌이라고 말했습니까?”

    눈을 부릅뜬 이사장이 강백현의 말꼬리를 잡고 늘어지자, 차우현이 문서를 가지고 앞으로 나오며 말했다.

    “팀장님? 여기, 이사장님 관련 건입니다.”

    강백현은 모든 비리의 선봉이 재단을 운영하는 이사장이라는 것을 진즉부터 알고 있었다.

    더러운 공생공존 관계.

    선생님들이 이와 같이 느슨해질 수 있었던 것은 이사장과 그의 가족들의 비리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들을 함부로 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는 것.

    “이사장님, 선생님들이 왜 이렇게 멋대로 행동하는지 아십니까? 다 이사장님 행동에 구린 게 있어서 그런 겁니다. 창호교체공사는 왜 10년째 같은 업체에 의뢰하십니까? 그것도 이사장님 친척 분으로요.”

    “감사관님, 뭔가 잘못 알고 계신 것 같은데, 여기 사립학원이에요. 공립이 아니라 누구한테 공사 맡기는지는 우리가 알아서 결정한다고요.”

    “이사장님, 아까 말씀드렸잖습니까, 국가 지원금 비율이 60%가 넘는다고요. 이 지원금을 안 받으면 저희가 나오지도 않죠. 그런데 현실적으로 그건 불가능하지 않습니까. 다만, 사립학교이다 보니 저희가 이미 느슨하게 하고 있는 겁니다. 그래도 이만큼 나오는 거고요.”

    “감사관님, 가장 높으신 분 같은데, 저랑 둘이 따로 말씀하시죠.”

    “그건 안 될 것 같습니다. 이미 교감 선생님께 주의를 드렸던 부분인 것 같은데요? 감사결과는 여기에서 마치겠습니다.”

    “아니, 이렇게 터트리고 가면 어떻게 수습하라고. 감사관님! 감사관님! 따로 이야기 좀 하자니까. 어? 젊은 사람이 왜 이렇게 융통성이 없어?”

    * * *

    돌아오는 길. 강백현은 학교를 둘러보며 차우현 주무관과 대화를 나누었다.

    “많이 힘드네요.”

    “원래 감사실이 제대로 하면 힘듭니다. 그래서 설렁설렁 하시는 분들도 많죠.”

    “이게 맞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감정이 많이 복잡하네요.”

    뒤에 있던 김태웅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원래 그런 겁니다. 이 일이 정상적으로 하면 재미가 없죠.”

    김태웅의 말에 차우현이 어조를 높였다.

    “김태웅 꼭 그렇게 말해야겠어?”

    “선배님, 그 뜻이 아니라요. 힘든 거라고요. 원래 이 일 제대로 하면 힘들죠.”

    강백현은 목을 뒤로 젖히며 자신의 감정을 표현했다.

    “오늘 일찍 퇴근해서 사우나 갔다가 집에서 잠 좀 자야겠습니다. 왜 충남교육청 측에서 저희한테 업무협조 부탁했는지 알겠네요. 자기네들도 이런 일 하기 싫었겠죠.”

    “오늘 고생하셨습니다.”

    “다들 고생 많으셨습니다.”

    충남도청 앞 주차장.

    강백현이 차에서 내리려는 그때, 전화가 울렸다.

    “감사팀장 강백현입니다.”

    - 아, 강백현 사무관님. 부주시 조 경사입니다. 아이고~ 기억하실는지 모르겠네요. 아침에 철창 열어줬었는데.

    “아. 넵. 오랜만입니다. 조 경사님. 무슨 일로 그러신가요?”

    - 김동성 씨 관련 참고인 진술 한 번 더 요청드릴까 하는데 언제 나오실 수 있으세요?

    “내일이 토요일인데 가능할까요?”

    - 네. 평일엔 바쁘시죠? 토요일 오전 중에 오실 수 있으면 그때 참고인 진술 참고해서 검찰에 넘기겠습니다. 그럼 토요일에 뵙겠습니다.

    사무관이라 그런가 예전과는 사뭇 다른 태도.

    8급이었던 자신과 5급인 현재, 자신을 태하는 사람들의 태도가 바뀌었다.

    ‘난 바뀐 게 없는데.’

    지난 1주일간 실시한 홍진중, 고등학교 감사를 통해 배운 게 있었다.

    그건 바로 높은 자리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것.

    학교장이 자리를 비운 곳은 질서가 없었고, 부패한 이사장 밑의 구성원들은 자기 이익을 쫒거나, 자리를 지키기 급급했다.

    이번 주만 해도 이사장과 교감, 2명에게 뇌물 제안이 들어왔다.

    공무원으로서 적은 금액이라고는 볼 수 없는 돈.

    당당하게 소리쳤지만 그 200~300만원이 없어서 고생했던 시절을 떠올리면, 누군가에겐 충분히 눈감고 받을 만한 유혹적인 금액이었다.

    ‘높은 자리, 아무나 하는 게 아니구나.’

    그런데 갑자기 스마트폰 문자메시지가 울린다.

    오후 4:47 [충남도청 공무원 비상소집발령 - 즉각 소집기관으로 응소 바람.]

    “뭐지? 주무관님. 주무관님도 문자 받았어요?”

    “네. 저도 받았네요. 비상기획실에서 문자 보낸 것 같은데요? 태웅아 오늘 안전재난한국훈련 있냐?”

    “아니요. 그건 4월이잖아요. 오늘 그런 거 없는데. 갑자기 비상소집은 무슨 일이래요? 얼른 사무실로 들어가죠.”

    그리고 잠시 후, 문자가 다시 도착했다.

    오후 4:51 충청남도 홍성군 계곡면 332번지 농가에서 구제역 최초 확진 판정되어 비상소집 자동 발령되었습니다. 조속한 응소처리 부탁드립니다.

    강백현은 구제역이란 문자에 차우현에게 의견을 물었다.

    “구제역? 구제역이면 소 이야기하는 거죠?”

    “네. 하아, 하필이면 구제역이 뭡니까. 그것도 최초 발생지라니, 골치 아프겠습니다.”

    “일단 들어가보죠.”

    충남도청 지하실에는 비상기획실이라는 자그마한 사무실이 있다. 그곳에서 민방위복을 입은 비상기획관이 강백현을 보며 손짓했다.

    “와서 서명하세요. 그런데 누구시죠? 처음 뵙습니다.”

    “아, 예. 이번에 도청으로 발령 온 강백현 감사팀장입니다.”

    “오오오! 행정고시 1등! 맞죠? 와! 그 유명한 분을 이렇게 뵐 줄이야. 비상기획관 백기태입니다. 일단 서명하시죠.”

    비상기획관은 반가운 얼굴로 공무원들 이름이 적혀 있는 [소집현황]이라는 프린트를 건네며 강백현에게 서명을 받았다.

    “들어보니까 농림축산식품부에서 지난 교육자료 확인해서 돌린다고 하더군요. 공문 확인해보시면 곧 확인하실 수 있을 겁니다.”

    경력 많은 차우현은 이런 일이 처음은 아닌지 본론을 물었다.

    “소집 해제는 언제 됩니까? 정시 퇴근 가능할지 모르겠습니다.”

    “그것까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워낙 선제조치 성격이 강한 탓에 아마 금방 해제되지 않을까요? 저희 도에서도 방역팀이 부랴부랴 움직여서 축사 인근 이동차단 조치 내리러 간다고 들었습니다. 금방 잘 끝나겠지요.”

    “그랬으면 좋겠네요.”

    결국 오후 6시를 기점으로 소집해제 명령이 내려졌다.

    어차피 금요일, 출근하는 날이었으므로 공무원들은 오후 6시가 되자마자 별일 아니라는 듯 바삐 퇴근했고, 강백현도 그 중 일부였다.

    “아~ 선배님 오늘 비상소집응소 뭡니까? 놀랬습니다.”

    “쇼지 뭐. 다 쇼야. 도지사님이 이번에 재선 성공하셨잖냐. 잘하는 모습 보여드려야지.”

    강백현은 070 인터넷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어 김성현과 연결을 시도했다.

    “실장님, 일 잘 돼가고 있어요?”

    - 아. 네. 백현 씨. 로체 씨랑 지금 대화중이에요. 감사는 잘 끝났어요? 맨날 밤 샜잖아요.

    “하하, 무사히 잘 끝났습니다. 오늘 갑자기 구제역 발생해서 감사결과를 실장님께 보고 드리는 거 다음주 월요일 아침 일찍 하기로 했네요. 그것만 하면 마무리 돼요.”

    - 아빠가 따로 전화한 것은 없었죠?

    “네. 회장님이 따로 연락하시진 않았네요. 무슨 일 있으신가요?”

    - 아니, 내가 아빠나 엄마한테 백현 씨한테 부담 가지 않게 전화하지 말라고 했어요. 백현 씨 내일 참고인 진술 한다면서요.

    “아. 네. 들으셨네요.”

    - 저한테도 연락 왔는데 지금 어쩔 수 없이 프랑스에 있어야 해서 다음에 한국 들어가면 진술하겠다고 했거든요. 이미 증거는 확실한 상황이라 뭘 더 진술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일단 그렇게 진행되고 있어요.

    “실장님, 미안하네요. 저 때문에… 도련님이.”

    - 그 망할 놈 도련님이라고 부르지도 마요. 나 걔, 이제 동생이라고 생각 안 하니까. 백현 씨만 마음 변하지 마요.

    “네.”

    김성현은 자신의 전 남자친구 최용규를 죽인 범인이 김동성일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을 경찰로부터 들은 터였다.

    강백현을 차로 치려 한 것도 도저히 이해가 불가능했는데. 전 남자친구의 죽음이 동생과 관련이 있다는 1차 조사결과는 더욱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그래서 더 이상 이 일은 가족 간에 언급하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냥 있었던 일 그대로 진술하고 나머지는 경찰에게 맡기자는 게 메리야트 그룹을 책임지는 김도한 회장 집안의 결정이었던 것이다.

    * * *

    강백현은 집에 와서 TV를 24시간 뉴스채널로 돌렸다. 때마침 오늘 발생한 구제역이 특보로 중계되고 있었다.

    [충청남도 홍성군 계곡면 332번지 농가에서 구제역 최초 확진 판정되어 방국당역이 긴급 방역에 나섰습니다. 구제역 감염항체가 발생한 농장은 한우농장 1곳으로 아직까지는 큰 피해가 나타나진 않았지만, 농식품부에서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긴급 백신 접종을 계획 중입니다. 접종 대상은 소 2만 6000마리, 염소 3000마리 등 총 2만 9000마리로서 우제류 가축이 되겠습니다. 현장에 계신 김건우 기자, 중대한 특보가 있다고요?]

    [네. 현장에 나온 김건우 기자입니다. 농장주인의 진술 결과 해당 농장에서 기르던 한우는 부주시에서 한 달 전에 인수한 소였다고 합니다. 구제역 발생원인지가 홍성이 아닌 부주시일 가능성이 있어 농식품부의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렇군요. 해당지역 농장주인의 의견은 들어보았습니까?]

    [네. 부주시 금성면에 위치한 해당 농장주는 8개월 전 신규축사사업을 시작했는데, 조사에 비협조적인 태도여서 공무원들이 조사에 애를 먹고 있습니다.]

    [비협조적인 태도라고요? 왜 그런 겁니까? 보상을 안 해주는 것도 아닐 텐데요. 혹시 불법축사 이런 게 아닐까요?]

    [해당 축사가 민가와의 거리도 가까워서 원래는 허가가 나지 않는 지역이라는 주변의 제보가 있는데요. 자세히 확인한 결과 불법축사는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민가와 가까운 곳에 지어진 터라 의심의 눈초리가 있는 상황이고요. 그에 대해 축사 허가 건을 담당한 김여린 주무관은 해당사항에 대해 다시 한 번 확인해보겠다며 인터뷰를 마무리했습니다.]

    강백현은 부주시 금성면이란 말과 자신과 함께 근무했던 김여린 주무관의 소식에 쓴웃음을 지었다.

    ‘김여린 씨! 내가 허가시키지 말라고 했잖아. 조례에 위반되는 사항인데 왜 허가해줘서 이런 상황을 만들어?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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