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뚝배기 깨러 왔습니다-110화 (110/139)
  • 뚝배기 깨러 왔습니다 110화

    교감인 한종구는 12억이란 말에 기가 찬 표정이었다.

    감찰팀장 오복주는 말도 안 되는 금액을 부른 강백현의 기세에 혀를 내둘렀다.

    “강 팀장, 잠깐 따로 이야기해도 될까?”

    “무슨 이야기 하실 건데요?”

    “아니, 좋게좋게 가자. 무슨 억이야. 아이고~ 교감 선생님, 우리 동생이 금액 보고 서운한 것 같은데, 조금만 올려주시죠.”

    오복주는 실리를 추구했다.

    어차피 공무원은 벌이가 정해져 있다.

    어차피 월 250~300, 마누라, 자식들한테 쓰면 그게 끝.

    쥐꼬리만한 봉급 받는 월급쟁이한테 돈을 준다는데 그것을 왜 마다하겠는가?

    “아-, 그러시군요. 그럼 제가 한 분당 300까지는 어떻게 드릴 수 있을 것 같은데.”

    오복주는 300이란 말에 조금 더 높게 불렀다.

    “아니, 선생님, 저희가 300 가지고 입 닫기는 좀 그렇잖아요. 네?”

    오복주 팀장의 말에 한종구가 어쩔 줄을 몰라 하며 조심스럽게 되물었다.

    “그럼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우리 둘 한테 각자 500씩 찔러줘요. 대신 다른 사람들은 주지 말고 우리 둘만 몰래 줘요. 입 싹 닫을 테니까.”

    토탈 1000만원, 예상금액 2000보다 1000만원이 적은 금액에 한종구 교감이 씩 웃었다.

    “아, 두 분만 500씩 해서 천만원만 드리면 되겠습니까?”

    “두 번 말하게 하지 마시고요. 동생! 500이면 불만 없지?”

    오복주는 꽁돈 500만원에 웃음을 지었다. 그런데 강백현의 표정이 썩 좋지 않았다.

    “아니, 500 가지고도 불만이야. 아~ 이걸 어떻게 해. 교감선생님, 금액 좀만 더 올려줄 수 있어요?”

    “아…….”

    “한 사람당 200씩 생각했으니까 원래 1200까지는 생각하신 거죠? 우리 각각 600씩으로 하죠. 강 팀장, 600으로 하자. 응? 600이면 남는 장사잖아! 교감선생님 뭘 망설여요? 빨리 봉투에 넣어서 찔러줘요.”

    오복주는 이 정도 금액이라면 강백현 팀장도 충분히 넘어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인마! 돈 앞에 자존심이 어디 있어? 공돈 줄 때 받아야지. 인마! 뭘 머뭇 거리냐고!’

    마음은 다급해지는데 강백현의 입에선 아무 말도 떨어지질 않는다.

    잠시 후, 문제의 당사자가 말을 꺼냈다.

    “팀장님.”

    “응?”

    “뭔가 오해를 하신 모양인데요? 잠시 나가서 이야기 하시죠.”

    “뭔 오해? 금액이 마음에 안 들어? 야. 600씩 하자. 응?”

    “나가시죠.”

    강백현은 교감 앞에서 인상을 쓰며 오복주 팀장을 바깥으로 끌고 나갔다.

    학교 건물 뒤편.

    강백현이 싸늘한 시선으로 오복주에게 말했다.

    “아니, 당신 감사하러 왔어요? 아니면 뇌물 쳐 먹으러 왔어요?”

    강백현의 욕지거리에 오복주의 표정이 구겨졌다.

    “강 팀장, 너도 뇌물 먹으려고 했잖아. 나랑 같은 마음 아니야?”

    “제가 언제 그랬습니까?”

    “2억 불렀잖아 인마. 네 입으로 직접 불렀잖아.”

    “그거야 거절의 표시였고요. 아니, 상식적으로 감찰팀장을 맡고 계신 오 팀장님께서 돈을 요구하는 게 맞다고 생각하십니까? 충남도청 공직기강감사실 감찰팀장이 돈을 받는다는 게 말이 되냐고요.”

    강백현의 논리정연한 말에 오복주가 대답을 회피하며 인간적으로 접근하기 시작했다.

    “야. 2016년에 뇌물 안 받는 새끼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해. 우리 선배는 안 그랬을 것 같아? 너 신임인 척 하지 좀 마. 너도 공무원 생활 해봤으면 알잖아.”

    “뭘 압니까?”

    “넌 민원인들한테 밥 한 번, 커피 한 번 안 얻어먹은 적 있어?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봐. 네가 그렇게 깨끗해? 존나 깨끗하냐고 이 새끼야!”

    강백현은 그의 질문에 자신 있게 대답했다.

    “네. 공직생활 하면서 민원인들이나 이해관계 있는 사람한테 그 흔한 밥이나 커피 한 번 얻어먹어본 적 없습니다.”

    강백현의 주장에 오복주의 입가에 조소가 흘러나왔다.

    “하하하하, 와, 우길 걸 우겨라. 이 쓰레기 같은 새끼, 장난 치냐? 정말 밥 한 번, 커피 한 번 얻어먹은 적 없다고?”

    오복주의 억지주장이 역겨웠던 강백현이 쓴웃음을 내뱉었다.

    “저기요. 팀장님, 팀장님 주장대로 만에 하나, 커피라도 얻어먹었다고 칩시다. 그런데 그거랑 이거랑 같습니까? 대가를 바라는 뇌물이잖습니까.”

    강백현의 말에 오복주가 황당한 표정을 애써 지우며 자신의 주장을 말했다.

    “이봐요. 네 마음 알겠고, 일단 난 돈 받을 거다. 넌 받기 싫으면 받지 마. 대신 입 꾹 닫고. 난 쥐꼬리만한 월급이라서 저 돈이라도 받아야겠거든?”

    “그게 말이라고 하십니까? 그 돈을 받는 순간 공직기강감사실의 공신력은 바닥으로 떨어질 겁니다. 팀장님 매일 돈돈돈 하시는 건 알겠는데, 이건 아니잖아요. 아니 이럴 거면 공무원 왜 해! 사업하거나 장사해서 돈 벌지. 쥐꼬리만큼도 못 버는 공무원 왜 하냐고요. 네?”

    강백현의 따지는 듯한 어조에 오복주가 단단히 화가 났다.

    “아, 진짜 꼭 이렇게까지 해야겠어? 그냥 좋게좋게 넘어가자. 응?”

    “아니 팀장님! 더 이상 말씀 못 드리겠습니다. 업무협조 차원에서 도와달라고 요청드린 건데 이렇게 나오시면 전 같이 일 못 합니다.”

    “일을 못해? 강 팀장, 다시 한 번 말해 봐. 뭐라고 했어?”

    오복주는 자신을 무시하는 듯한 말투에 단단히 화가 났다. 그러나 돌아온 대답은 여전히 같았다.

    “같이 일 못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지금이라도 말씀하신 것 철회하시고 본 감사 진행하시죠.”

    “너 이 새끼 진짜 뒤진다. 응? 너 공직생활 몇 년이야?”

    그때 뒤쪽에서 강백현에게 구원군이 등장했다.

    “팀장님들 무슨 일이십니까?”

    “별일 아니야. 우현이 넌 빠져있어.”

    “아니, 오 팀장님, 무슨 일이시기에 서로 주먹다짐을 하려고 그러신 건데요? 아~ 또 우리 강 팀장님이 언성 좀 높였구나. 저랑 얘기 좀 해요. 무슨 일 있으셨는데요.”

    “우현아, 별 일 아니래두.”

    그리고 백현의 친구도 등장했다.

    “강 팀장님은 저랑 좀 이야기 하시죠.”

    “……”

    * * *

    차우현은 오복주 팀장을 구워삶기 위해 말을 꺼냈다.

    “에이~ 오팀장님. 너무 나가셨네.”

    “어?”

    “그런 거 하려면 남들 모르게 하세요. 뽀찌 먹으려고 하니까 저희 팀장님이 화내는 거 아닙니까?”

    “쟤 그런 거 싫어해? 선비야? 미친놈이냐고.”

    “에이, 오 팀장님, 그건 아니잖습니까. 저희 시대 때야 선배들이 다 하니까 그러려니 했지만, 지금 강 팀장님 세대는 그런 세대가 아니잖습니까.”

    “그래도 공무원 생활 좀 했다며! 이런 건 좀 그냥 넘어가야 되는 거 아니야? 내가 요구한 것도 아니고, 지네들이 먼저 준다잖아. 이걸 왜 마다하냐?”

    차우현은 한숨을 내뱉었다.

    “선배님! 오복주 선배님! 이제 저희도 바뀌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이 새끼, 뭐라는 거야. 너 7개월 전 생각 안 나? 네가 태웅이 봐줘야 된다고 바락바락 우겨서 파면이나 해임 안 시키고 정직으로 판결났잖아.”

    “사람 인생이 걸려서 그랬지 않습니까.”

    “아니, 그 새끼도 뇌물 쳐 먹었다며. 왜 걔 편은 들면서 내 편은 안 드냐고 인마! 어?”

    “그거랑 그거랑 같은 게 아니잖습니까.”

    “똑같아. 아무튼 넌 나한테 얘기할 거 없고, 강백현 그 새끼 내 앞에 불러와서 사과시켜. 그러면 협조하는 거 생각해 볼 테니까, 그 전까진 나도 협조 못한다.”

    “선배님!!!”

    한편, 김태웅은 강백현 앞에서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팀장님, 아니 백현아.”

    “말해. 뭔데?”

    “오복주 팀장이랑 하는 이야기, 나랑 차우현 주무관이랑 다 들었어.”

    “그랬냐?”

    “사고친 내 입으로 할 말은 아니지만, 난 전적으로 네 행동이나 말이 맞다고 생각한다.”

    “……”

    “그래도 같은 팀끼리 싸워봐야 뭐가 이득이 되겠어?”

    “태웅아. 이건 내가 물러설 수 있는 게 아니잖아. 그리고 업무적인 이야기니까 이렇게 친구사이로 말 안 했으면 좋겠다. 지금 네가 하는 이야기가 나보고 뇌물을 받으라는 말인 거 너 알고 말하는 거지?”

    “아니 그게 아니라, 두 팀장들끼리 파워게임 해봐야 득볼 것도 없고 네가 화낼 일도 아니라고 얘기해주려고 한 거야.”

    “그럼 할 이야기가 뭔데.”

    “내가 있잖아. 굳이 네 입 더럽힐 필요 뭐가 있어.”

    김태웅은 그 말을 끝으로 백현 앞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바로 오복주 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 넌 또 왜?

    “선배님. 이번 건 선배님이 사과하십시오.”

    - 뭐야?

    “안 그러면 저 부주시장한테 돈 받고 나서 일부 금액 선배님한테 드린 것 진술하겠습니다.”

    - 이 미친놈아! 그거 진술하면 너랑 나랑 같이 죽어. 알아?

    “네. 압니다. 아니까 말씀드리는 겁니다. 욕심 그만 내고 이번엔 물러서 계십쇼. 저나 선배님이나 둘 다 깨끗한 놈은 아니지 않습니까.”

    * * *

    잠시 후, 오복주가 꼬리를 내리고 강백현에게 다가왔다.

    “강 팀장. 아까 실수했던 건 내가 사과할게. 다 내 잘못이다.”

    “네? 갑자기 무슨 심정의 변화를 느끼신 겁니까?”

    “아니, 심정 변화는 아니고, 나는 그냥 서포트 하러 왔는데 내가 나서는 게 당신 권한을 침해한 것 같아서, 그 부분은 사과해야 된다고 생각됐거든.”

    “알겠습니다.”

    “그럼 돈은 어떻게 할까?”

    “안 받겠습니다. 일단 저도 사과는 드리겠습니다. 교감 선생님한테는 안 받겠다는 의미로 2억이란 금액을 불렀는데, 그 말에서 오해의 소지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래. 알았어. 다시 들어가자고.”

    “네. 팀장님, 제가 지난 1주일 동안 사전감사 하면서 발견한 사항들입니다. 이것 위주로만 확인하셔도 10건 이상은 충분히 나올 겁니다. 혹시 불편하시다면 그냥 제가 혼자 해도 다 할 수 있으니까, 업무 때문에 바쁘신 거라면 제가 책임지고 해당분야 완벽하게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혹시나 평가 관련해서 소홀히 했다는 말 나오지 않도록 할 테니, 언제든 편하게 말씀해주십쇼.”

    강백현이 사전감사로 확인한 내용을 쭉 훑어본 오복주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의심스런 정황이 다분한 선생님들의 해외출장 업무시간에 영외출장, 단체기관의 장인 교장에게 신고 되지 않은 교습 및 강의 행위, 거기에 직무에 관련된 내용이 포함된 개인방송까지.

    ‘이걸 언제 다 한 거야? 겨우 1주일 만에 내 분야를 이렇게까지 확인했다고?’

    살인적인 업무분량이었을 것이다.

    ‘실장님이 좋아하는 이유가 이런 부분이었나?’

    꼼꼼했다. Why? 라는 주석을 달고 확인해야 하는 이유까지 세세하게 달아서 본 감사 간 필요한 사항을 깔끔하게 정리해두었다.

    최연주 국어 선생님의 11월 13일, 도서관 평생학습 특별강의료 입금계좌 및 신고내역 확인.

    김태훈 영어 선생님의 민원 내용 중 00학원에서 문제가 유출되었다는 인터넷 댓글 자료.

    조달청에서 구입한 물품을 검수하는 물품선정위원회 위원의 적정 여부 및 실제 물품 수령 여부, 여기에서 빔프로젝트의 경우 조달청 요청자료와 실제 납품된 물건의 스펙이 달라, 해당 위원들에 대한 조사가 필요하겠다는 내용까지.

    자신이 두 눈을 부릅뜨고 하나하나 확인해도 찾지 못할 사항을 강백현은 이미 많이 찾아놓은 상태였던 것이다.

    다시 교감을 만나는 자리.

    강백현이 오복주와 함께 한종구 교감에게 말했다.

    “불미스러운 제안이 있었던 것에 대해 유감스럽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저희는 일체의 뇌물을 받지 않을 것이고 이 제안에 대해서는 듣지 못한 것으로 하겠습니다. 오간 돈이 없으니 현재까지 범죄행위도 아닐 테니, 이 사안에 대해서는 더 이상 왈가불가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네. 그렇게 하시죠. 교감선생님.”

    “아…… 저 그럼 저희 이사장님한테 보고만 드려도 되겠습니까?”

    “그렇게 하시죠.”

    한종구 교감은 당황스러운 얼굴로 잠시 밖으로 나가 이사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한편, 강백현은 오복주 팀장에게 다시 한 번 사과의 마음을 전했다.

    “아까 버릇없게 굴어 죄송합니다. 제가 감정 조절이 잘 안 되다 보니 그런 실수를 한 것 같습니다.”

    “아니야. 강 팀장. 나 괜찮아요. 괜찮으니까, 우리 더 이상 그 말은 하지 말자고.”

    “네. 감사합니다.”

    그런데 오복주 팀장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실장님이 무슨 일이시지? 네. 실장님, 오복주입니다.”

    - 그래. 오 팀장, 자네 지금 홍진중학교인가?

    “네. 맞습니다. 지금 강백현 팀장하고 같이 중, 고등학교 본감사 나와 있습니다.”

    - 자네 당장 돌아와. 네가 뭔데 강 팀장한테 사과하라고 지시해? 네가 아무리 선배여도 같은 팀장 직급이잖아. 조직이 장난인가?

    “네?”

    - 인마. 차우현이가 다 말했어. 너 뇌물 받으려고 난리쳤다며. 당장 돌아오지 못해?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