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뚝배기 깨러 왔습니다-109화 (109/139)
  • 뚝배기 깨러 왔습니다 109화

    백현의 사전감사 결과를 확인한 고태준 실장은 우려스러운 시선을 보였다.

    “이렇게나 많이 찾아낸 거야?”

    “일단 사립학교니까요. 원래 사립학교들이 통제가 잘 안 되지 않습니까?”

    “교육청 이 놈들. 일부러 우리한테 맡긴 게야. 맞지?”

    “그런 것 같습니다.”

    백현의 소문은 자자했다.

    부주시에서 50여명을 징계한 그 사건은 국민들은 잘 몰라도 공무원들은 말단까지 다 알고 있을 터.

    자신들의 안위에 영향을 미치는 사안이다 보니 소문이 빨리 퍼진 모양이다.

    “전 평소대로 가겠습니다. 실장님은 휴가 처리 하십니까?”

    “됐네. 이번에는 내가 결재하지 않았나.”

    “그 말씀은 제 행동에 책임을 지시겠다는 말씀이군요.”

    “어디 한 번 제대로 날뛰어 봐. 교육청 놈들도 사립학교 놈들 손봐주고 싶어서 일부러 우리한테 맡긴 걸 테니.”

    같은 시각.

    홍진 중학교, 고등학교는 난리가 났다.

    이사장이 노발대발하며 실세인 교감을 찾았다.

    “아니, 교감 선생! 갑자기 무슨 감사래요? 갑자기 왜 도청에서 나와. 응?”

    “모르겠네요. 공무원 얘네들은 융통성이 없는 것 같습니다. 작년에 못했으면 그냥 넘어가는 거지, 뭘 그렇게 트집을 잡으려고 난리를 피우는지, 진짜 생각들이 없는 것 같습니다.”

    “공무원 새끼들이 다 그렇지 뭐. 돈 몇 푼 쥐어주지도 않으면서 우리 사립학교까지 통제하려 들고, 그것보다 어떻게 감사준비는 잘 되어가고 있어요?”

    이사장의 질문에 교감이 고개를 저었다.

    “사전 요구자료가 장난이 아닙니다. 일단 최대한 수검자료 숫자는 맞춰보는데 이게 도저히 안 됩니다. 이제까지 이렇게 제대로 수검 받아본 적도 없어서 조금은 답답합니다.”

    “아, 씨발. 멍청한 새끼들. 그 새끼들은 국민 세금으로 알프스 가서 왜! 그냥 뇌물 먹었으면 적당히 먹고 있어야지. 받을 거 다 받고, 국가에서 얻는 혜택은 혜택대로 다 누리고. 씨발. 답답해 미치겠네. 내 돈이라도 쳐 안 받았으면 내가 억울하지나 않지.”

    최우석 이사장은 이제까지 뇌물을 줘가며 잘 넘어갔던 그들의 죽음을 폄하하기 시작했다.

    한 번 올 때마다 한 사람당 500만원씩 찔러준 이사장.

    그로 인해 홍진중, 고등학교는 10년째 청렴한 사립학교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있었고, 이사장 또한 10년간 재직하며 많은 뒷돈을 챙겼다.

    “교감선생은 걱정 마요. 내가 따로 불러서 뒷돈 찔러 줄 테니까. 대신에 교사들 입에서 딴 소리 안 나오게 출근하지 않도록 통제 잘 해요. 알았어요?”

    “……”

    교감은 저 말에 담긴 속뜻을 잘 알았기에 섣불리 대답하지 못했다.

    “교감선생, 교장 이제 곧 달아야죠. 연차도 다 채운 것 같던데.”

    “……”

    “이번 감사 건은 우리 교감선생이 판을 만들어 봐요. 우리 한 번 잘 해보자고. 나도 좋은 학생들 유치해서 돈 벌고, 교감도 이제 교사 지겹잖아. 교장 해야지.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것 아니겠어?”

    최우석은 작년에 찔러준 2000만원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지만 무사통과가 예정되었던 정기감사를 지금에 와서 다시 한다고 하니 찔러준 돈이 너무나 아까웠다.

    ‘어쩔 수 없지. 버리는 돈이라고 생각하고 또 찔러 주자. 내가 한 해에 코 묻은 돈으로 버는 게 얼마인데, 푼돈 가지고 아쉬워할 필요 없지. 이것도 투자라고 생각하면 돼.’

    “알겠습니다. 이사장님이 원하시는 판 한 번 깔아보겠습니다.”

    “총 몇 명이 온다고 했죠?”

    “6명이랍니다.”

    “아니, 이 새끼들 소문 듣고 2명 늘렸네. 6명이면 명당 500씩 해서 3000 맞죠? 아, 1000만원 더 쓰게 생겼네.”

    이사장의 한숨에 교감선생이 조심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제안했다.

    “이사장님, 한 사람당 주는 금액을 줄이면 어떨까요? 어차피 얘네 뜨내기고, 300이면 충분하고도 남을 것 같은데요.”

    “음! 역시 똑똑해. 내가 이래서 우리 교감선생 좋아하잖아. 300씩 6명 찔러주면 1800이니까, 작년보다 200 덜 써도 되겠네. 더 요구하진 않겠죠?”

    “300이면 충분할 겁니다. 조금 분위기가 묘하면 제가 걔네들이 원하는 금액이 얼마인지 운을 띄워보겠습니다.”

    교감선생의 말에 최우석이 방긋 웃었다.

    “아, 알겠습니다. 우리 교감선생만 믿어요. 아! 이 건 성사되면 그 친구들 데리고 체육교사, 김철우 선생, 그 친구랑 같이 룸싸롱 한 번 가요. 그건 내가 금액 따로 챙겨줄 테니까. 걔네들 환심부터 사자고. 알겠죠?”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일단 수검하는 건 그냥 준비 안하고 넘어가겠습니다. 괜히 수검 받다가 지적사항만 더 나오면 곤란해지니까요.”

    “교사들 입은 어떻게 막으려고?”

    “다 방법이 있습니다. 더구나 지금은 방학기간이지 않습니까? 출근을 안 시키면 됩니다.”

    * * *

    한 주가 지났다.

    먼저 들린 곳은 홍진 중학교.

    그런데 황당하게도 사람이 없다. 근무하는 사람은 한 명뿐.

    20대 중반의 교사로 보이는 한 명이 백현 일행에게 황당한 소리를 전했다.

    “어떤 일로 오셨어요?”

    “학교 감사 일정 전달 못 받으셨나요?”

    “저 계약직인데, 계약직도 감사랑 관련이 있나요?”

    백현은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해당 교사에게 물었다.

    “실례지만 선생님 직함이 되십니까?”

    “아, 전 김상훈이고요. 현재는 계약직이라 자세한 것은 잘 몰라요.”

    백현이 고개를 저었다.

    “김상훈 선생님?”

    “네.”

    “선생님은 학생들 교육 하시죠?”

    “네.”

    “계약직은 선생님 아닌가요? 왜 몰라야 되죠? 선생님도 감사랑 관련 있으세요. 이렇게 모르쇠로 대답하실 게 아니세요. 네?”

    강백현의 말에 오복주가 뒷짐을 지으며 살펴보았다.

    ‘뭐야. 전달이 안 된 거야? 일을 어떻게 진행한 거야?’

    김상훈은 교감선생님에게 교육받은 대로 행동했다.

    “아~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오늘 출근한 사람은 저 밖에 없고요. 아 맞다. 교감선생님께서 손님 오시면 바로 연락 달라고 하셨는데 지금 바로 전화 드려도 될까요?”

    “예. 그러시죠.”

    중학교. 교원은 35명. 출근한 사람은 고작 1명. 그것도 계약직.

    아무리 학교가 방학이라고 하지만 출근조차 하지 않는 선생님들의 행태에 백현은 혀를 차고 말았다.

    백현은 텅 빈 교무실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상황 근무표 좀 확인해 봐도 될까요?”

    “계약직이라 잘 모르겠습니다.”

    백현의 얼굴에 피로가 쌓이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심각한 수검자세.

    아무리 사립학교라지만, 이건 거의 감사를 안 받겠다는 수준이라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알겠습니다. 김상훈 선생님은 지금 상황근무 서시는 게 맞죠?”

    “네?”

    “상황 근무일지 쓰시는 책임이 지금 김상훈 선생님에게 있는 거 맞는 거죠? 그래서 출근하신 거잖아요.”

    “……”

    강백현의 말에 김상훈의 얼굴이 급격하게 굳어가기 시작했다.

    “알겠습니다. 차우현 주무관님, 김상훈 선생님, 공무원 근무사항에 관한 규칙 제 4조 위반사항으로 올려놓으세요.”

    “아, 잠시만요.”

    “네. 무슨 할 말 있으신가요?”

    “아니, 제가 위반했다기보다는 그냥 몰라서 대답한 건데, 지금이라도 작성해야 되는 거라면 하겠습니다.”

    “아니, 해야 되는 게 아니라, 이미 했어야 하고, 적혀 있어야 되는 거예요. 그런데 근무자가 근무상황부의 존재 자체를 모르잖아요. 이건 계약직이 문제가 아닌 것 같은데요. 계약직으로 일하신 지 얼마나 되셨죠?”

    “1년 3개월 됐습니다.”

    “1년 3개월?”

    “네.”

    “이봐요. 장난해요?”

    강백현의 얼굴에서 싸늘한 표정이 흘러나왔다. 그걸 본 차우현이 씩 웃었다.

    ‘또 미친 개 표정이 나왔구만.’

    강백현의 모습을 본 오복주도 당황하긴 마찬가지였다.

    ‘오~ 세게 나가는데? 하긴, 교사 새끼들이 잘못했지. 미친놈들. 우리가 병신인가? 자리를 왜 다 비워? 할 일 없는 새끼들인가.’

    김상훈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감사실 공무원들의 이런 행동은 예상치 못했기 때문이었다.

    “아니요. 그런 건 아닌데요. 아니 선생님. 제가요.”

    “선생님이라고 부르지 마세요. 저 감사관이라고 부르시면 됩니다.”

    “아, 네… 감사관님, 이거 그냥 저도 잘 모르거든요. 사실 여기 학교는 근무상황부 이거 작성 안 한다고 해서 저 왔을 때부터 작성 안 했거든요.”

    김상훈의 말에 김태웅이 황당해하며 물었다.

    “그럼 근무하실 때 근무상황부 작성 안 하시고 도대체 뭐하세요?”

    “보통 공문 처리 하는 것 같아요. 할 게 많거든요.”

    “그럼 그 업무관리시스템에 접속 좀 해주실래요?”

    “네. 알겠습니다.”

    김상훈이 접속한 업무 포탈.

    기록물 관리함에 접수된 홍진중학교의 공문은 약 1000여개.

    일반 공무원들이 한 부서에서 처리하는 4000여개의 공문과 비교하면 1/4수준이었다.

    “많은 건가요?”

    백현의 질문에 교감선생님이 등장했다.

    “도청에서 나오셨죠? 교감 한종구입니다. 반갑습니다.”

    “네. 감사팀장 강백현입니다.”

    “감찰팀장 오복주입니다.”

    “팀장님들만 따로 교장실로 가서 이야기하시죠.”

    강백현은 교감의 말에 양해를 구했다.

    “우리 주무관님들. 일단 본 감사 진행 간, 사전감사 내용하고 일치하는지 이중 체크부터 부탁드리겠습니다.”

    “네. 팀장님.”

    “알겠습니다. 다녀오십시오.”

    강백현과 오복주가 교장실로 들어갔다.

    교감은 교장실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사실 뭐 저희 학교가 여건이 안 좋습니다. 해야 될 일은 많고 선생님 수도 적고, 이게 사람 사는 짓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하하.”

    교감의 말에 강백현이 의문을 제시했다.

    “여건이 안 좋다고 보기에는 출근 안 하신 선생님들이 너무 많은데요?”

    “하하, 다들 교육연수 가시고, 해외출장 가시고, 연구수업 준비하시는 분들도 계시고요. 그리고 논다고 생각하는데 사실 선생님들은 집에서도 업무 보거든요. 교육과정 운영, 업무 운영, 학교폭력 운영. 교육청에서 내려오는 추가 공문들 하나하나 처리하려면 이게 보통 일이 아닙니다. 집에 가서도 공문 접수하고 있다니까요.”

    교감의 말에 강백현이 곧바로 전화를 걸었다.

    - 네. 팀장님.

    “차우현 주무관님, 오늘 학교에서 접수한 공문 건수랑 현재까지 기안한 건수 확인해서 바로 알려줘요.”

    - 아. 네. 알겠습니다.

    강백현의 패기 어린 행동에 교감이 당황했다.

    “아니… 그건 왜…….”

    “교감선생님 말씀이 맞는지 확인해보려고요. 상식적으로 35명이나 되는 교원이 있는데 1000개 밖에 안 되는 공문이 버겁지는 않을 것 같거든요.”

    “그게 그렇지가 않습니다. 수업을 준비하다보면 시간이 많이 부족하거든요.”

    “아니, 선생님이 출근해서 모든 시간에 수업을 하시는 건 아니잖아요. 그리고 선생님 말고 행정만 맡으시는 분들도 따로 있으신 거잖아요. 안 그래요?”

    강백현의 말에 교감이 눈썹을 치켜 올렸다. 그때, 강백현의 전화기가 울렸다.

    - 최근 1주일간 접수한 공문 5개고, 기안한 공문은 초과근무 신청 외 없습니다.

    스피커폰으로 해서 결과를 바로 공유하는 강백현의 행동에 교감의 얼굴이 붉어졌다.

    교감은 공격적으로 나오는 강백현의 분위기를 누그러뜨리기 위해 자신의 무기를 꺼내들었다.

    “저희 이사장님께서 두 분께 전달해드리라고 하셨습니다. 조그마한 성의인데 이게 두 분에게 도움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만족스러우실까요?”

    어린 친구를 앞에 두고 협상하는 게 못마땅했지만, 교장을 시켜주겠다는 이사장의 제안이 있었기에 이런 창피는 무릅쓸 수 있었다.

    오복주가 입가에 미소를 짓더니 봉투를 살짝 열어보고 안에 있는 금액을 대강 짐작해보았다.

    ‘호오, 200은 되어 보이는데? 횡재잖아. 아, 이 새끼가 어떻게 반응할지 모르겠네. 나 혼자 있을 때 주지. 병신같이 왜 저놈이랑 있을 때 주냐?’

    생각보다 많은 금액.

    200만원이면 감사를 봐주는 대가로 뇌물을 받을만하다.

    오복주는 강백현이 거절할 것 같아 먼저 선수를 치며 말했다.

    “뭐, 큰 거는 빼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작은 건 몇 개 넣어야 저희도 할 말이 있지 않겠습니까?”

    “아, 괜찮으시다면 금액 좀 더 얹어드리겠습니다. 한 장 더 드리면 작은 것도 빼드릴 수 있으실까요?”

    교감은 속마음을 감춘 채 씩 웃었다.

    ‘역시 200으로 시작하길 잘했어. 얘네 시세 모르네. 병신 같은 놈들. 처음부터 300 줬으면 큰일날 뻔 했네.’

    그런데 강백현이 의외의 말을 내뱉었다.

    “뒤에 숫자 0, 2개 더 붙이시죠.”

    “네?”

    “이거 가지고 감사지적항목 뺄 수 있겠어요? 뒤에 0 2개 더 붙이고 협상 시작하자고요. 6명이니까 12억 되겠네요. 12억 현금상자로 주실 수 있어요? 오늘까지 마련할 수 있다고 하면 한 번 고려는 해보겠습니다. 가능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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