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뚝배기 깨러 왔습니다-108화 (108/139)
  • 뚝배기 깨러 왔습니다 108화

    오복주는 실장과의 면담 후 곧바로 강백현을 찾았다.

    “강 팀장.”

    “네. 감찰팀장님.”

    “자네 멋대로 해봐. 내가 도움 주는 일은 없을 거야.”

    “도와주시면 안 됩니까?”

    “야! 먼저 협조부터 하고 내 의견을 듣고 실장님께 보고해서 조율을 해야지. 네 멋대로 보고하는 게 어디 있어?”

    강백현은 오복주 팀장의 비협조적인 자세에 한숨을 내쉬었다.

    “한숨을 쉬어?”

    “아닙니다. 오 팀장님 말씀이 맞긴 한데, 제가 협조를 안 한 게 아니지 않습니까.”

    “선배한테 말대답 하는 거야?”

    “인생으로 보나 공직 경력으로 보나 오 팀장님이 저보다 선배시죠. 제가 왜 하늘 같은 선배에게 말대답을 하겠습니까? 정 힘드시면 이름만 올려주십쇼. 제가 일주일 동안 밤을 새서라도 감찰 파트까지 다 완벽하게 봐놓겠습니다. 이렇게 하면 될까요?”

    “네 마음대로 해. 난 신경 끌 테니까.”

    “출장 나갈 때만 옆에 계셔주세요. 더 이상 바라는 건 없습니다.”

    “……”

    오복주는 강백현의 마지막 부탁을 무시하고 고개를 돌려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오복주는 매일 야근까지 불사하며 사전 감사를 진행하는 감사팀원들을 보고 마음이 약해졌지만, 성과상여금에 따른 괘씸함이 더 컸기에 애써 자신의 마음을 모른 척 했다.

    4일 째, 강백현이 일하다가 코피를 흘렸다.

    “팀장님, 괜찮으세요?”

    “괜찮습니다.”

    “잠 좀 주무세요. 어제도 밤 새신 거죠?”

    “새벽 2시에 들어갔습니다. 잠 충분히 잤습니다. 걱정 안하셔도 돼요.”

    차우현은 물티슈를 꺼내 강백현에게 건네며 한탄을 늘어놓았다.

    “아, 진짜 교육청 놈들! 공문만 1주일 전에 줬어도 이렇게 빠듯하진 않을 텐데.”

    “그쪽도 사정이 있었잖아요. 사고 처리 하느라 연말까지 쉬지도 못했대요. 인명 사고인데, 저희도 같이 고생해야죠.”

    “오복주 팀장님은 도와주고 계십니까?”

    “아니에요. 제가 하는 게 맞는 것 같아요. 실장님은 저한테 맡기신 거잖아요.”

    “아무리 그래도 지금 팀장님이 하고 계신 업무는 원래 감찰팀이 해야 하는 일이 맞지 않습니까?”

    “원래가 어디 있습니까? 누군가 한 명 맡아서 하면 되는 거죠.”

    차우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식품안전관리과의 차수현 주무관이 감사를 지원해주기로 약속했지만, 그건 본 감사기간 동안뿐이고 사전 감사기간에는 다른 일정이 있다는 이야기를 했던 것이다.

    ‘혼자 세 사람 몫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감찰팀에서라도 도와주면 좋으련만, 그걸 팀장 혼자 감당하려니 저렇게 몸이 축날 수밖에.

    “팀장님, 제가 감찰팀 가서 도와달라고 하겠습니다.”

    “아닙니다. 하지 마세요. 제가 하면 됩니다.”

    “그래도 이건 아니지 않습니까?”

    “아니에요. 저희가 성과상여금 1등을 받았기 때문에 그에 상응하는 반대급부가 작용한 겁니다. 그리고 이제 와서 도움 받으면 사람 수 늘어나서 더 골치 아픕니다. 이제 거의 다 끝났는 걸요?”

    차우현이 백현의 책상 위 법령에 밑줄이 쳐져 있는 것을 놀란 눈으로 바라보았다.

    “법령을 직접 다 보고 계셨어요?”

    “그럼요. 수도법 시행규칙하고 학교보건법 시행규칙 확인하고 있는데 서로 상충되는 점이 있어서 사례집까지 찾아보느라 고생 많이 했습니다. 보니까 수도법 시행규칙 제 22조의 9항에는 수질검사는 연 1회 이상 하도록 되어 있는데, 학교 보건법 시행규칙 제 3조의 별표 5항을 확인해보면 저수조는 연 1회이지만, 정수기는 연 4회, 즉 분기별 1회씩 하도록 되어 있거든요. 그래서 교육청에서 하달한 『학교 환경위생 관리방향』까지 확인해보니까 교육청 지침도 학교 보건법 시행규칙에 의거해서 수질검사를 하라고 지침을 내렸네요. 아~ 이거 찾느라 30분이나 걸렸지만, 뭔가 뿌듯하네요.”

    차우현은 왜 강백현이 코피를 쏟았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저렇게 꼼꼼하게 보니까 피곤하지. 나도 꼼꼼한 편이지만 그 지침의 근거까지 올라가서 확인하는 건 정말 못할 짓일 텐데.’

    하지만 분명 저렇게 하는 게 업무의 정석이었다.

    그 지침이 왜 나왔는지 확인하고, 감사를 수검하는 사람들에게 이걸 왜 점검해야 하는지, 평소에 이 지침을 왜 지켜야 하는지 알려주는 것.

    강백현은 없는 지식을 익히기 위해 일주일동안 밤을 새어가며 하나하나 체크해 가고 있었다.

    “아, 차우현 주무관님, 제가 식검 쪽 확인하다가 차 주무관님하고 겹치는 분야가 생겨서요. 혹시 학교급식 식재료 계약 관련해서 수의계약을 2천만원으로 확인하셨어요? 아니면 천만원으로 확인하셨어요?”

    “2014년 감사결과 확인해봤는데 2천만원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무슨 일 때문에 그러십니까?”

    “아, 2015년 기준으로 충남교육청에서 1천만원을 초과하는 경우는 지정정보처리장치로 2인 이상의 견적을 받으라는 지침을 내렸네요. 이거 금액 확인해서 특정업체가 지속적으로 낙찰되지 않았는지 다시 한 번 확인해주셔야겠습니다.”

    “네. 추가로 확인하겠습니다.”

    “법률은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 제 7조 확인하시면 될 겁니다. 작년에 개정돼서 지침이 다시 내려간 것 같아요.”

    “네. 알겠습니다.”

    차우현은 곧바로 자신의 자리로 가서 수의계약 쪽을 확인해보았다.

    『정보입찰 계약 집행 기준』 제 10조에 의하면 추정가격 2천만원 이하는 국가종합전자조달전달 시스템을 사용하지 않고 수의계약으로 계약할 수 있었다.

    그런데 강백현 팀장의 말대로 충남교육청은 천만원 이상일 경우 모두 학교급식전자조달시스템(EAT)을 사용할 것을 의무화한 바 있었다.

    차우현이 혀를 차며 자신이 놓친 부분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1월 이상 없고, 2월……이 문제군.

    2월, 1200만원짜리 수의계약이 체결된 것을 확인한 차우현이 씩 웃었다.

    ‘방학이라 금액이 애매했나? 일단 하나 발견했군. 진짜 강 팀장, 대단하단 말이야. 꼼꼼해. 진짜 꼼꼼해.’

    목요일 퇴근 시간을 앞두고 강백현이 팀원들을 불렀다.

    “차우현 주무관, 사전감사 완료했나요?”

    “네. 다 완료했고 메모보고로 파일 첨부해서 보내드렸습니다.”

    “조은혜 주무관은 다 끝내셨나요?”

    “네. 30분 전에 팀장님께 보냈습니다.”

    “감사합니다. 김태웅 주무관은 어떻게 됐나요?”

    강백현이 김태웅을 바라보자, 김태웅이 입술을 꽉 다물고 실망스런 답변을 내놓았다.

    “내일 오전 중으로 다 해놓겠습니다.”

    김태웅의 답변에 차우현과 조은혜의 표정이 굳어졌다.

    ‘시간 많았잖아. 왜 아직도 못 했냐?’

    ‘사람 진짜 피곤하게 만드는 스타일이야.’

    강백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답했다.

    “오늘 중으로 다 끝내셔야 제가 확인하고 내일 사전 감사했던 사항을 종합해서 미흡한 점을 최종 확인할 수 있어요. 실장님께도 감사 중점하고 사전 감사에 대해 보고하고 어떤 문제가 생길 수 있겠다 언질도 드릴 수 있고요.”

    “네. 잘 하겠습니다. 팀장님.”

    김태웅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차우현 주무관하고 조은혜 주무관은 일찍 퇴근하시고, 김태웅 주무관은 저랑 야근 하도록 하죠. 다 끝내고 넘기셔야 제가 최종확인하고 내일 오전에 미흡한 점 보완하도록 요청할 수 있으니까, 김태웅 주무관은 야속하게 생각하지 말고 저랑 남아서 다 끝내고 가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오늘 하루도 고생 많으셨어요.”

    강백현의 말에 김태웅이 못마땅한 얼굴로 말했다.

    “저 오늘 저녁 약속 있는데요.”

    “네. 식사 하고 오세요.”

    “그게… 새로 사귄 여자 친구하고 약속이라서요.”

    김태웅의 말에 차우현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태웅아, 너 그게 말이라고 하냐?”

    “아니, 선배님, 어쩔 수 없었습니다.”

    “넌 책임감이 없냐? 그럼 업무를 일찍 끝내놓던가.”

    “……”

    강백현은 한숨을 내쉬고는 일단 김태웅에게 말했다.

    “알겠습니다. 김태웅 주무관도 퇴근하세요.”

    “네. 죄송합니다. 내일 오전 일찍 출근해서 다 끝내고 보고 드리겠습니다.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연애사업도 중요하죠. 그럼 지금까지 한 거라도 넘겨주세요. 그거라도 확인하고 있을게요.”

    * * *

    그날 밤 10시.

    장모님이 아이를 돌봐준다고 해서 아내와 오붓하게 식사를 마친 차우현 주무관. 그는 공직기강감사실 감사팀 사무실의 불이 여전히 켜져 있는 것을 확인하고 혀를 차며 말했다.

    “여보, 나 사무실 좀 들어갔다 올게.”

    “갑자기 왜?”

    “불이 켜져 있잖아. 우리 팀장님 계신 것 같아서.”

    “아, 그 젊은 팀장님? 나도 같이 보면 안 돼?”

    “그럴래?”

    차우현은 자신의 아내와 함께 사무실로 향했다.

    늦은 밤. 지문을 찍고 들어가니 예상대로 강백현이 홀로 남아 서류를 확인하고 있었다.

    “팀장님, 아직도 퇴근 안하고 뭐하십니까?”

    “아, 이제 다 끝났습니다. 내일 오전 중으로 실장님께 사전감사 결과 보고 드리고 지침 받고 본 감사 나가야죠. 옆에는 누구시죠?”

    “아, 제 아내입니다.”

    차우현의 말에 옆에 있던 여성이 인사말을 건넸다.

    “말씀 많이 들었어요. 일도 잘하시고, 성격도 호탕하시고, 거기에 어우~ 진짜 잘 생겼다~”

    “아닙니다. 지금 너무 피곤해서 꼴이 말이 아닌데…. 그런데 갑자기 사무실에는 웬일이세요?”

    “불 켜져 있는 거 보고 들어왔죠. 제가 도와드릴 일은 없을까요?”

    “아니요. 2분만 더 하면 끝납니다.”

    “서류 정리라도 도와드릴게요. 여보, 조금만 앉아있어.”

    차우현은 아내에게 양해를 구하고 강백현의 책상 위에 놓인 서류를 확인했다.

    ‘태웅이 할 일까지 다 하느라 늦으신 거구나. 사전 감사 내용 미흡한 거 일일이 다 채워 넣고 그게 맞는지 대조하면서 확인한 거야. 그래서 밤 10시가 넘어서도 퇴근을 못한 거고.’

    혼자 3인분을 하는 것도 무리인데 거기에 김태웅 몫까지 하려니 몸이 축날 수밖에 없다.

    5급 공무원은 초과근무수당도 없는데 왜 사서 고생을 하는지…….

    그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애써 밝은 웃음을 지은 강백현이 차우현과 그의 아내를 향해 말했다.

    “다 끝났습니다. 불 끄고 나갈 겁니다. 얼른 집에 들어가시죠.”

    * * *

    사무실에서 나온 차우현 주무관의 아내 허지영이 남편에게 팔짱을 끼며 말했다.

    “당신이 말한 팀장, 직접 보니까 조금 안쓰럽다.”

    “왜 그런 생각을 했어?”

    “젊어서 사무관 돼서 그런지 밑에 사람들도 잘 안 따르고, 혼자 야근하면서 애쓰는 거잖아. 보통은 부하직원들한테 일 맡기고 먼저 퇴근하지 않아?”

    아내의 말에 차우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보통은 그렇지.”

    “아무튼 조금 그렇다. 결혼 안 했다고 했지?”

    “응. 왜?”

    “나중에 집에 초대해. 당신이 좋아하는 술상 한 번 차려줄게.”

    “칫… 맘에도 없는 소리 하고 있어. 됐어.”

    차우현은 씩 웃으면서도 아내의 그런 말이 어색해 빈말로 답했다.

    “꼭 그렇게 말해야 돼? 남편! 나이 40 넘어서 술상 차려준다는 아내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해. 대한민국에 몇 없을 걸?”

    “아이고~ 우리 마누라 성격은 대한민국 최고지.”

    “춥다. 들어가자.”

    “응. 들어가기 전에 장모님 드실 오뎅 좀 사들고 갈까?”

    * * *

    다음 날, 차우현 주무관은 아침 정시에 출근한 김태웅을 불렀다.

    “태웅아. 잠깐 나 좀 보자.”

    “네. 선배님.”

    흡연장소로 불러낸 차우현은 담배를 물자마자 김태웅의 업무량부터 물었다.

    “너 사전감사 다 했냐?”

    “아, 3시간 정도만 더 하면 끝날 것 같아요. 오전 중으로 끝내서 팀장님께 드릴게요.”

    “이 새끼야. 이미 네가 안 한 거 어제 팀장님이 밤새서 다 끝냈다. 아침 8시 50분에 실장님께 업무보고하면서 이미 사전감사까지 보고하는 중이다. 넌 어떻게 네 생각만 하냐?”

    “아니, 원래 사전감사 후에 보고하는 체계 같은 거 없었잖아요. 본감사까지 끝나고 감사결과 문건 작성하면서 보고하면 되는 거 아닌가요?”

    김태웅은 기존 최용규 체계의 업무방식과 현재의 업무방식을 비교하며 불만을 토로했다.

    그러자 평소라면 말로 잘 타일렀을 차우현 주무관이 주먹으로 김태웅의 볼을 후려쳤다.

    “아! 선배… 갑자기 뭡니까?”

    “잘 생각해. 선배 사이에서 너 매장당하는 수가 있다. 각도기 잘 세워 인마! 이기적인 새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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