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뚝배기 깨러 왔습니다-107화 (107/139)
  • 뚝배기 깨러 왔습니다 107화

    경찰관은 혀를 차며 김도희 회장에게 통보했다.

    “신고가 장난인 줄 아십니까?”

    “아니, 이렇게 사람 잡아가는 게 어디 있어. 오빠, 말 좀 해 봐.”

    김도희가 김도한 회장을 향해 도움을 요청했다. 그러나 김도한 회장은 오히려 단호하게 잘라 말했다.

    “구속 시키시고, 범죄행위에 대해 용서 없는 처벌을 원합니다. 그리고 강 비서.”

    “네. 회장님.”

    “자네도 마음 약해지지 말게. 비록 내 아들이지만, 저런 썩어빠진 행동은 사형도 당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하네. 내가 대신 사과하지.”

    김도한 회장의 사형이란 말에 김동성이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아빠……. 아들한테 사형이라니.”

    그때 김도한 회장의 손이 김동성의 뺨을 강하게 후려쳐버린다.

    “아-아아악!”

    “이 새끼가,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려? 강 비서, 자네한테는 내 모든 인맥을 동원해서 최고의 변호사를 붙여주겠네. 그러니 못난 아들 때문에 성현이랑 헤어지는 일은 없어야 하네. 알았나?”

    “……”

    강백현은 대답하지 못했다. 그의 진심이 무엇인지 알았기에 더욱 더 마음이 아팠다.

    “아빠…….”

    김성현이 김도한 회장의 말에 공감하며 눈물을 흘렸다.

    * * *

    강백현은 병원을 나와 별빛에 물든 하늘을 보며 한숨을 푹 쉬었다.

    “선배, 한은 풀리셨어요?”

    [모르겠다. 저런다고 내가 다시 살아나진 않잖아. 그건 그렇고 회장님이 성현이랑 헤어지지 말라고 하신 말은 뭐냐?]

    최용규의 말에 강백현이 아차 싶었다.

    ‘아, 모르셨구나. 깜박했네.’

    그때 병원 문을 열고 나오는 김성현.

    “백현 씨. 추워요. 밖에서 혼자 뭐해요?”

    “아, 실장님.”

    김성현의 등장에 최용규가 반가운 얼굴로 그녀의 주변을 날아다녔다.

    [성현아! 왜 이렇게 슬퍼해? 응?]

    김성현은 최용규가 있는지도 모른 채 강백현의 뒤에서 백허그를 시도했다.

    “실장님….”

    “미안해요. 정말 미안해요. 백현 씨.”

    강백현은 김성현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실장님이 미안할 이유는 없죠. 다 김동성 도련님이 혼자 계획하신 거잖아요.”

    “꿈에도 몰랐어요. 동성이가 설마 그런 행동을 할 줄은….”

    “저도 몰랐습니다. 알았으면 이렇게 될 때까지 아무 조치도 안 하진 않았겠죠.”

    강백현의 말에 김성현이 눈물을 흘렸다.

    “어떻게 하면 백현 씨 마음이 풀어질 수 있을까요? 아니 그것보다 백현 씨 마음은 왜 이렇게 착해요? 그냥 처음부터 사실대로 말할 수 있었잖아요. 그런데 왜 동성이의 범죄를 숨기려고 했어요?”

    “그룹에 영향을 끼치잖아요. 재벌가 장남의 살인미수혐의. 언론에서 엄청 떠들어댈 걸요? 이것보다 좋은 기사거리가 있을까요?”

    “바보! 어떻게 자기를 죽이려는 사람에게 온정을 베풀 수 있어요? 난 이해 못해.”

    김성현이 강백현의 허리를 더 꽉 감싸 안았다.

    [성현아! 너 미쳤어? 네가 먼저 스킨십을 하면 어떻게 해!]

    최용규는 당황한 눈치였다.

    강백현이 뒤돌아 김성현의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

    “실장님, 얼른 들어가요. 회장님, 사모님 걱정하시겠어요.”

    “같이 들어가요.”

    “네.”

    * * *

    그날 강백현은 김동성과 있었던 일을 모두 사실대로 진술했다.

    김성현도 마찬가지였다.

    복사폰을 사용한 뒷조사에 백현을 사전 계획한 장소로 불러내 살해하려 한 정황까지, 전반적인 내용이 모두 기록되었다.

    경찰서장은 한숨을 내쉬며 설명했다.

    “이 사건을 적당히 처리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기자들이 곧 냄새를 맡고 찾아올 겁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김도한 회장에 대한 최소한의 예우.

    “네. 원칙대로 부탁드립니다.”

    김도한 회장은 고개를 숙이며 법의 집행에 순응하겠다는 의사를 전했다.

    “강백현 씨도 이제 돌아가셔도 좋습니다.”

    “네. 고생 많으셨습니다. 경관님.”

    모든 조사가 끝나고 김도한 회장이 강백현을 따로 불러 당부했다.

    “아무 걱정 말게. 아무 생각 말고. 일반인인 자네 이름이 언론에 나오는 일은 없을 게야.”

    “감사합니다.”

    * * *

    1월 2일. 강백현은 충남도청에 출근했다.

    그와 김성현이 사귀는 줄을 모르는 도청 직원들은 어제 대서특필된 기사를 가십거리로 즐기고 있었다.

    “와! 메리야트 패션 이것들 안 되겠네. 누나가 재벌이랑 결혼 안 한다고 살해하려고 했대.”

    “미친놈들, 원래 재벌들이 지들끼리 결혼하는 이유가 있다니까요. 가진 것을 잃지 않으려고 얼마나 바둥바둥 하는 놈들인데요. 그렇죠?”

    강백현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다들 일 합시다. 재벌들하고 저희들하고 무슨 관계라도 있나요?”

    “재밌잖아요.”

    시간은 굉장히 빠르게 흘러갔다.

    김성현은 프랑스로 돌아가 신규브랜드 런칭을 성공적으로 마쳤고.

    김도한 회장이 아들을 선처 없이 처벌해달라고 한 것이 언론을 통해 공개되기도 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의외로 이 기사를 호의적으로 바라보았다.

    “와, 그래도 회장은 회장이네. 어떻게 자기 자식새끼를 직접 고발하냐.”

    “그렇게 독하게 마음먹었으니까 지금 회장 자리까지 올라간 거지.”

    “안 그래도 메리야트 그룹 지금 위험하다던데? 곧 부도나는 거 아니야?”

    “그게 알 바냐?”

    김도한 회장과 그의 아들 김동성의 이야기가 지방 구석인 충남도청에까지 전해졌지만, 언제나 그렇듯 시간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었다.

    2주가 지난 지방선거일 당일 오후.

    강백현은 혀를 차며 당선결과를 확인했다.

    “귀신같은 놈들.”

    2016년 감사계획 일정표대로 여당, 야당의 당선후보가 변한 게 없었다.

    “어떻게 예상한 그대로 당선되냐?”

    여론조사의 힘은 무서웠다.

    박빙인 지역을 제외하고는 결과가 변하지 않는다.

    물론 백현은 해외유학이라는 빠져나갈 구멍을 미리 만들어 놓았기에 웃을 수 있었다.

    그리고 선거 다음날 출근한 강백현, 그는 충남교육청의 감사계획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홍진중, 고등학교라….”

    본래 교육청 내에는 감사실이 따로 있다. 그런데 작년 해외 연수 중 알프스 산맥에서 인명사고가 생겼고, 이 때문에 작년에는 교육청의 자체 감사가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리고 이것이 올해 인근 기관인 도청으로 이관된 것.

    “실장님, 이거 저희가 해야 되는 겁니까?”

    “그렇지. 작년에 못한 거니까. 올해라도 하라는 게 지침이네.”

    “충남교육청에서 처리 못하면 상급기관인 교육부에서 하면 되잖습니까?”

    “그러게 말이야. 아무튼 교육부에서는 인접 감사기관인 우리가 하라고 협조공문을 보냈고, 그걸 감사원에서 허락했거든. 그러니까 불만 없이 진행하면 돼.”

    “그래도 중, 고등학교를 저희가 감사한다는 건 조금….”

    “그냥 하게.”

    “알겠습니다. 해야죠. 하겠습니다. 팀원은 어떻게 꾸립니까?”

    “자네가 결정해서 오늘 내로 나에게 보고해주게.”

    “알겠습니다. 실장님.”

    강백현은 애써 웃음을 지으며 팀원들을 불렀다.

    “차우현 주무관님, 김태웅 주무관님, 그리고 조은혜 주무관님 잠시 차 한 잔 하시죠.”

    1층의 커피숍.

    감사팀원들은 씩 웃으며 각자 마시고 싶은 커피를 마셨다.

    “다들 왜 이렇게 표정이 좋아요?”

    “성과상여금 들어왔잖아요.”

    “아~ 그것 때문에요? 김태웅 주무관은 무슨 좋은 일 있어요?”

    친구인 김태웅이 씩 웃는다.

    “소개팅 했습니다.”

    “아….”

    “병원에서 일하시는데 정말 마음씨도 예쁘고, 착합니다.”

    김태웅의 말에 차우현이 씩 웃으며 덧붙였다.

    “제 아내가 소개시켜 준 겁니다.”

    “아, 그러시군요.”

    “팀장님도 소개시켜드립니까?”

    “아닙니다. 제 연애사 신경 쓰지 마시고요. 다름 아니라 저희가 이번에 교육청 감사를 대신 하게 됐어요. 작년에 알프스 해외연수 중에 사고가 있었잖아요. 그것 때문에 가장 가까운 저희 도청 감사실이 일을 대신 맡게 되었나봅니다.”

    “하-아, 야근 확정이군요. 대상은 어떻게 됩니까?”

    “홍진중학교와 홍진고등학교입니다. 야근까지는 아니고, 업무시간 내에 끝낼 수 있도록 노력해야죠. 아무튼 이 자리를 빌어 양해를 구하고자 말씀을 드립니다. 원래는 바쁘지 않은 시기인데 업무가 끼어 들었네요. 그래서 차 한 잔 하자고 불렀습니다.”

    팀원들은 사정을 이해는 하면서도 처음 하는 업무다보니 나름 부담을 느끼는 표정이었다.

    조은혜 주무관이 물었다.

    “팀장님, 분야는 어떻게 될까요?”

    조은혜의 질문에 강백현이 자신이 훑어본 교육청의 감사중점 사안을 전했다.

    “크게 6가지인데요. 복무, 일반행정 분야, 교무 학사 분야, 학교 회계, 보수 재산 및 물품 분야, 기타 분야, 공무원 범죄 분야. 이렇게 나뉩니다.”

    “저희 팀만 나가는 건가요?”

    “일단 복무 분야와 일반행정 분야는 김태웅 주무관이 맡아야 할 것 같고요. 학교 회계 분야는 차우현 주무관님이 맡아주시고, 보수 재산 및 물품 분야는 조은혜 주무관님이 맡아주시면 문제는 없을 것 같아요.”

    “공무원 범죄분야는 감찰팀이 도와줘야겠군요.”

    “네. 일단 감찰팀에서 한 분 지원요청할 예정이고, 기타 분야는 보건, 급식, 체험활동 분야 등인데 이쪽은 식검 담당하시는 분께 지원요청 드릴 예정이에요.”

    “그럼 본 감사일정은 어떻게 됩니까?”

    “다음 주부터입니다. 사전감사 기간이 1주일 정도밖에 없으니 시간이 조금 빠듯하네요. 공문을 미리 내려줬으면 좋았을 텐데, 보니까 오늘 내려왔더군요.”

    “하아~, 교육청 놈들 진짜 짜증나네요.”

    차우현의 말에 강백현이 팀원들의 감정을 추스르기 위해 말했다.

    “어쨌든 사고가 있었던 곳이니까요. 업무를 제대로 할 여건이 되지 않았겠죠. 그래도 일단 저희가 하기로 한 이상, 열심히 해서 결과 제대로 내도록 합시다!”

    “네. 알겠습니다. 한 가지만 더 여쭙겠습니다.”

    “네.”

    “출장비 나옵니까?”

    강백현이 조은혜의 질문에 환한 웃음으로 답했다.

    “네! 나옵니다. 안 나오면 사비를 털어서라도 드리겠습니다.”

    티타임이 끝난 팀원들은 분주하게 움직였다.

    중/고등학교의 본 감사에 들어가기 전에 행정 서류를 확인하는 사전 작업이 필요하다.

    교원의 근무 현황을 확인하기 위해 근무상황부 및 근무상황 카드를 준비해달라고 요청해야 하고 지난 한 해의 출장 기록도 넘겨받아야 한다.

    이에 관련해서 홍진중/고등학교 측에 미리 연락을 돌려야 하는 건 물론이다.

    강백현은 팀원들이 각자 준비를 진행하는 동안 감찰팀장 오복주를 만났다.

    “팀장님, 잘 지내셨습니까?”

    “하하하, 잘 지냈죠. 강. 백. 현. 팀장이 나를 찾아오시고. 어떤 일로?”

    “방금 전에 공문 공유해드렸는데, 홍진중학교하고 고등학교 감사이관 건으로 팀원 한 분만 지원 부탁드리고자 찾아왔습니다.”

    “음… 우리가 왜?”

    “네?”

    “성과 1등인 감사팀이 해야지, 3등인 감찰팀이 가서 뭘 할 게 있다고.”

    성과상여금 때문에 단단히 화가 난 오복주의 태도. 강백현이 속으로 혀를 차며 말했다.

    “벌써 한 달 전 이야기지 않습니까?”

    “그 성과상여금이 들어온 건 이번 달이지.”

    “뭘 어떻게 하면 지원해주실까요?”

    감찰팀장 오복주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그럼 성과상여금 1등만큼 돈 이체시키던가.”

    “네?”

    “아니면 말고. 가 봐요. 우리 감찰팀 바쁘니까.”

    “안 바쁘시지 않습니까.”

    “강 팀장은 말투를 고칠 필요가 있어 보여.”

    방금 전까지만 해도 핸드폰으로 주식 시세를 확인하던 오복주였다. 강백현은 더 이상은 굽히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그럼 실장님께 방금 있었던 사항 말씀드리고 조정 받겠습니다.”

    “맘대로 해. 개념 없는 새끼!”

    * * *

    30분 후.

    고태준 실장이 오복주 팀장을 불렀다.

    오복주는 강백현이 고자질을 했다는 생각에 씩 웃었다.

    ‘병신 같은 놈, 진짜로 말했냐? 실장님은 원래 고자질하는 놈 싫어한다. 어떻게든 잘 해결해보려는 사람 좋아하지. 조치를 받아? 오히려 능력 없다고 실망만 하실 걸?’

    오복주가 실장에게 인사를 올렸다.

    “네. 실장님, 부르셨습니까?”

    “그래. 강 팀장으로부터 이야기는 들었네.”

    “아, 들으셨습니까? 제가 직접 말씀드렸어야 했는데, 그 친구가 좀 그렇죠?”

    “아니야. 네가 중, 고등학교 감찰파트 직접 맡기로 했다며.”

    “네?”

    “오 팀장, 이번 일 직접 맡는다는 소리 듣고 내가 자넬 다시 봤어. 팀원들 안 시키고 직접 한다는 거, 그거 쉽지 않은데.”

    “제가 직접…….”

    “그래. 강 팀장에게 그렇게 말했다며. 팀원들이 바빠서 본인이 직접 하는 게 낫겠다고. 강 팀장이 자네를 얼마나 칭찬하던지, 내 얼굴에서 웃음이 지워지질 않더군. 아무튼 고맙고 사전 감사, 본 감사 철저하게 해서 우리 감사실이 일 똑바로 했다는 말 들을 수 있도록 열심히 해주게.”

    오복주 팀장이 좌절했다.

    ‘아, 이게 뭐야! 뭐냐고!’

    실장님이 저렇게까지 말하니 오복주로서는 거절할 수 없는 상황이 된 것.

    “네. 실장님, 맡겨만 주십쇼. 열심히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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