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뚝배기 깨러 왔습니다-105화 (105/139)
  • 뚝배기 깨러 왔습니다 105화

    결혼식 이야기에 놀란 김성현의 표정을 보고 노진희가 말했다.

    “강 비서, 회장님이 농담하신 거니까 밥부터 들어요.”

    “네. 사모님.”

    “아~ 호칭을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네.”

    노진희의 말에 강백현이 예의를 차렸다.

    “지금 그대로가 좋습니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회장님, 사모님이셨으니, 지금 와서 바뀔 것 없지요. 김성현 실장님도 저한테는 여전히 실장님입니다.”

    “뭐 아무튼 밥 좀 들어요. 호칭 문제는 차차 고민하자고.”

    “네.”

    식사가 끝나고, 김성현은 집에 내려가려는 백현에게 말했다.

    “백현 씨, 백현 씨가 말한 편집샵 한 번 제대로 추진해볼게요.”

    “제가 말한 건 아니죠. 실장님 머릿속에 있었던 거죠.”

    “전 총판만 생각한 거잖아요. 백현 씨 아이디어 맞아요. 이게 우리 그룹의 마지막 희망이 되겠네요.”

    “네. 아무튼 잘되시길 빌겠습니다.”

    “가요! 1월 1일인데 차 많이 막힐 텐데, 빨리 가야죠.”

    “1시간 30분밖에 안 걸려요. 부주시 생각보다 안 멉니다.”

    강백현은 머쓱한 얼굴로 김성현에게 대답했다.

    “아~ 그리고 이 말도 해야겠다.”

    “네?”

    “밤에 좋았어요.”

    “아… 네. 실장님, 저도 좋았습니다.”

    강백현은 성현의 집을 나서며 얼굴에 미소를 지었다.

    ‘아, 선배한테 너무 미안해지네.’

    정식으로 교제도 허락 받고, 사랑도 나누고, 그룹의 큰 숙원이던 호텔 사업 유지도 어느 정도 해결책이 보이기 시작했다.

    ‘잘 됐으면 좋겠다. 정말 잘 됐으면 좋겠다.’

    * * *

    한편, 박창현 비서의 방에서 깬 김동성은 불만을 삭히며 바깥으로 나왔다.

    그런데 바깥에서 박창현 비서가 통화를 하고 있다.

    - 아가씨 방에 백현이가 알몸이었어?

    “네. 상의 탈의 상태였습니다. 이거 도련님이나 회장님께 보고를 해야 될까요?”

    - 됐어. 모른 척 해. 보고해서 좋을 일 없다.

    “알겠습니다. 실장님. 특이사항 있으면 추가로 보고 드리겠습니다.”

    통화가 끝나기 무섭게 김동성이 박창현을 몰아세웠다.

    “상의 탈의가 무슨 소리야?”

    “아닙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뭐가 아무것도 아니야? 도련님이나 회장님께 보고를 해야 되냐고 허락 맡고 있었잖아. 전화 상대방 누구야?”

    “……”

    “전화기 내 놔!”

    “……”

    “전화기 내놓으라니까! 잘릴래?”

    김동성의 말에 박창현이 한숨을 푹 쉬며 자신의 전화기를 내놓았다.

    “비서실장하고 통화했었네?”

    “네. 도련님.”

    “상의 탈의 누구냐? 우리 누나냐?”

    “아닙니다.”

    “그럼 설마 강비서야?”

    “대답 못합니다.”

    “강비서가 내 방에서 상의 탈의를 하고 있었다고? 그게 왜 문제가 되지?”

    “……”

    “내 방이 아니었구나? 내 방은 여기서 보이지도 않잖아. 그 새끼 누나 방에서 잤어?”

    “……”

    김동성은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집 안으로 들어갔다.

    1월 1일의 아침 9시, 김도한 회장은 휴일임에도 이미 일찍 회사로 출근한 상태였고, 노진희만이 집에서 TV를 보고 있다.

    “엄마, 강 비서 누나 방에서 잔 거 알아?”

    “그랬다더라. 왜?”

    “아니, 이 미친 새끼가 누나 방에서 옷을 탈의했대.”

    “아들! 아무리 그래도 없는 말은 지어내지 마.”

    “아니, 진짜 그랬다니까? 비서 새끼들이 완전 흥분해가지고, 지들끼리 꼴리는 대로 그 얘기 하면서 난리 피웠다니까. 누나랑 비서 애들 행동거지 똑바로 해야 되는 거 아니야?”

    김동성의 말에 노진희가 한숨을 내쉬었다.

    “설사 그랬다고 하더라도 네가 신경 쓸 일 아니잖아. 그리고 말끝마다 욕! 욕! 욕! 으이구! 너희 누나나 아빠는 회사 살리려고 발버둥을 치는데, 넌 고작 한다는 게 그거야?”

    “엄마나 잘 해! 아~ 진짜, 누나가 기웅이 형이랑 결혼했으면 이런 일도 없었어.”

    “자! 강 비서 집에 갔으니까 올라가서 자.”

    “누나 방에 있지?”

    “있어도 아는 체 하지 말고 자.”

    “알았어. 알았어. 엄마 나 신경 쓰지 말고 TV나 봐.”

    김동성이 엄마를 무시하고 2층으로 올라갔다.

    자신의 방에 누군가가 들어온 흔적은 없었다. 어질러진 상태 그대로.

    침대 이불조차도 변한 게 없다.

    ‘이 자식! 미쳤네? 내 방에서 잔 게 아니야? 누나랑 잔 거야? 진짜 잔 거야?’

    김동성은 화가 나서 누나의 방으로 직진했다.

    “누나!”

    김성현이 동생의 등장에 화를 냈다.

    “피곤해. 급한 거야?”

    “왜 피곤해?”

    “방금 전까지 업무 때문에 로체 씨랑 통화했단 말이야. 내일 바로 프랑스로 오래.”

    “통화한 건 통화한 거고, 왜 피곤하냐니까?”

    김성현이 자꾸 치근덕대는 김동성의 말에 화를 냈다.

    “안 나갈래?”

    자신에게 적반하장으로 나오는 누나의 말에 동생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누나 하나만 묻자. 어제 강 비서랑 잤어?”

    “뭐?”

    “강 비서랑 잤냐고.”

    “너 미쳤어? 그런 걸 왜 물어? 나가! 당장 나가!”

    * * *

    김동성은 자신의 누나 김성현의 폰 기록을 뒤지기 시작했다.

    복사폰을 이용하면 문자 메시지나 SNS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런데 어젯밤 이후 서로 통화한 기록이 없다.

    김동성이 복사폰을 통해 강백현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김성현] : 강 비서, 이대로 가니 아쉬워요.

    [강백현] : 아, 좀 더 있을 걸 그랬나요? 아니다. 좀 더 있었으면 도련님이 많이 싫어하셨을지도 모르겠네요.

    “하아-, 이 미친 놈, 뭐라는 거야?”

    김동성은 다시 한 번 누나의 연기를 했다.

    [김성현] : 강 비서, 창가에서 상의 탈의한 거 박 비서가 봤나 봐요.

    [강백현] : 진짜요? 아, 몰랐어요. 어떻게 하죠?

    “와. 진짜였네. 누나 방에서 잤네. 잤어! 이 개새끼!”

    김동성이 다시 한번 복사폰으로 누나의 연기를 했다.

    [김성현] : 어제 우리 어디까지 갔어요?

    [강백현] : 네? 같이 있었잖아요.

    근데 갑자기 자신이 입력하지 않은 메시지가 떠오른다.

    [김성현] : ??

    [강백현] : 네?

    [김성현] : 백현 씨, 내가 입력한 거 아니에요.

    [강백현] : ??!

    [김성현] : 동생이 복사폰 쓰고 있나 봐요. 전화통화로 하기 전에 메시지 하지 마요.

    [강백현] : 헐… 네. 알겠어요.

    김동성이 쓴웃음을 지었다.

    ‘아, 들켜버렸잖아.’

    갑자기 방문을 열고 뛰어나오는 김성현.

    단단히 화가 난 그녀가 동생이 가지고 있는 핸드폰을 보며 불같이 소리를 질렀다.

    “너 그거 아직도 안 없앴어?”

    “누나 같이 잤지?”

    “야! 내 사생활이잖아. 빨리 그거 안 내놔!”

    “대답해. 잤어? 안 잤어?”

    “내놔! 내놓으라니까!”

    김성현의 말에 김동성이 복사폰을 내놓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씨발 완전 깊은 관계구나.’

    부모님의 반응도 그렇고 이건 아주 좋지 않았다.

    결국 김동성은 바로 전화를 걸었다.

    - 어. 동성이니? 새해 복 많이 받아라.

    “아, 기웅이 형, 형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지금 어디세요?”

    - 제주도. 여기서 친형하고 같이 살아.

    “형! 누나 한국 귀국했어요. 형 시간 되면 잠깐 우리 집 오시면 안 돼요?”

    - 동성아, 나 이제 김성현 포기할란다.

    “왜요? 형! 갑자기 왜요?”

    - 그냥 헛것도 보이고, 성현이랑 있으면 뭔가 일이 진행이 잘 안 돼. 나랑 잘 안 맞는다고 생각하지 뭐.

    “형! 그런 게 어디 있어요? 형 저희 누나 좋아하잖아요. 그 어떤 일이 있어도 누나랑 결혼하겠다고 했잖아요.”

    - 크크, 사람 마음이 항상 똑같냐?

    “기웅이 형! 일단 알았어요. 나중에 통화할게요.”

    - 응. 새해 복 많이 받고.

    * * *

    그날 저녁.

    강백현은 또 다시 전화를 받았다.

    “모르는 번호네. 누구지? 여보세요?”

    - 강 비서, 나야.

    “아, 도련님. 어제 일은 죄송했습니다. 제가 흥분하는 바람에.”

    - 응. 괜찮아. 됐고 남자끼리 술 먹고 풀자. 어디야? 내가 살게.

    “저 부주시예요. 서울까지는 힘들 것 같은데요.”

    - 내가 부주시로 갈게. 군장면 소호리 엄하가든으로 와. 밤 9시에 보자.

    “네. 알겠습니다.”

    부주시 군장면 소호리, 굉장한 시골 깡촌이다.

    1월 1일, 이런 날에 엄하가든이 열렸을까?

    강백현은 일단 엄하가든에 전화를 걸어 영업 여부를 물었다.

    - 오늘 장사 안하는데요?

    “아, 그런가요? 알겠습니다.”

    강백현은 김동성에게 전화를 걸어 오늘은 장사를 하지 않는다는 소식을 전하려 했다. 그런데 전화통화가 되질 않는다.

    ‘아, 뭐지?’

    강백현은 아버지의 차를 빌려 타고 엄하가든으로 이동했다.

    가로등 하나 없는 시골마을.

    엄숙하다 못해 너무 조용한 마을에 엄하가든이 덩그러니 놓여있는 게 보인다.

    차량 한 대 주차되지 않은 공간.

    강백현은 이곳 주차장에 차를 주차해놓고 멀뚱멀뚱 김동성이 오기를 기다렸다.

    그때, 차량 한 대가 엄하가든으로 들어왔다.

    처음 보는 차량, 김동성의 차량은 아니다.

    그런데 차량에 탄 누군가가 어딘가로 전화를 거는 게 보였다.

    강백현은 자신의 전화기가 울리는 것을 확인하고 전화를 받았다. 그런데 상대의 숨소리가 아무리 들어도 익숙한 느낌이었다.

    “안녕하세요. 도련님. 마침 문이 닫았더라구요. 다른 데로 이동하실까요?”

    - 강비서. 그동안 수고 많았어.

    “네? 무슨 말씀이십니까?”

    김동성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은 채 엑셀레이터를 밟았다.

    “크크크, 이거 대포차에 대포폰, 이제 너만 죽으면 끝나. 최용규처럼 그냥 죽어!”

    강백현은 놀란 눈으로 자신을 향해 돌진하는 차량의 유리 너머를 확인했다.

    복면을 써 누군지 알아볼 수 없는 얼굴, 거기에 처음 보는 차량과 처음 보는 번호.

    목소리를 들었기에 김동성인 것을 알았지, 그게 아니었으면 절대 알아차리지 못했을 것이었다.

    “죽어. 이 새끼야. 너도 최용규처럼 죽으라고!”

    강백현이 기겁하며 김동성이 모는 차량으로부터 도망치기 시작했다. 차에 타고 도망치기에는 문을 열고 닫을 시간이 부족했기에 곧바로 시골 차도를 달려 내려갔다.

    그러면서 김동성에게 전화로 말을 걸어 만류하기 시작했다

    - 도련님! 왜 그러세요? 왜 절 죽이려고 그러세요?

    “네가 없어야 우리 그룹이 살아. 네가 없어져야 누나가 기웅이 형하고 결혼한다고!”

    - 설마 도련님이 용규 선배도 죽이신 겁니까?

    “클클, 너도 같이 보내줄게. 멈춰! 멈추라니까!”

    강백현은 절망적인 상황에 울분을 토해냈다.

    이제까지 선배를 죽인 사람은 부주시장이라고 생각했다. 진한 선배를 죽음으로 몰아넣고, 용규 선배까지 죽음으로 몰아넣을 사람은 아무리 봐도 부주시장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왜? 왜 김동성이냐고!

    그때, 차량이 급가속을 하기 시작했다.

    부아아아앙! 소리를 내며 강백현에게 돌진하는 차량.

    강백현은 그제야 왜 이 한적한 시골로 자신을 유도했는지 알게 되었다.

    목격자가 없다. 그리고 도망칠 곳이 없다.

    즉 사람을 죽이기에 더할 나위 없는 공간.

    강백현은 주차장을 빠져나와 2차선 도로로 향했다.

    그런데 그 2차선 도로가 하필이면 다리와 연결되어 있다.

    도망칠 곳이 없는 강백현이 겁을 먹기 시작했다.

    차량은 순식간에 백현을 따라잡고 최고속력으로 돌진해 온다.

    ‘아, 나 죽나? 진짜 죽는다.’

    그런데 차량이 갑자기 급회전을 하더니 차도를 벗어나 다리의 펜스를 치고 아래로 추락해버린다.

    “헉-헉헉. 도련님? 도련님?”

    그때 차량에서 희미한 무언가가 빠져나오는 게 보였다.

    강백현은 그 존재가 너무나 익숙했다.

    “선배!”

    [백현아, 잘 있었냐?]

    “용규 선배. 선배가 한 거예요?”

    [그래. 이렇게 안 했으면 네가 죽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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