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뚝배기 깨러 왔습니다-103화 (103/139)

뚝배기 깨러 왔습니다 103화

2016년 1월 1일. 새벽 1시 10분.

막차가 끊긴 시간이다.

원래라면 제야의 종을 보기로 했는데, 계획이 제대로 꼬여버렸다.

정식으로 사귀기도 전에, 제대로 된 데이트도 해보기 전에 이미 허락부터 받아버린 난감한 상황. 김성현이 백현에게 말했다.

“늦었어요. 차도 끊겼죠? 자고 가요.”

강백현은 김성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아닙니다. 근처 숙소 잡겠습니다.”

“백현 씨, 숙소 잡지 말고 내 방으로 와요. 내 방에 간이침대 있어요.”

김성현의 말에 강백현이 당황한 얼굴로 김도한 회장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김도한 회장은 거기에 대해 별 말이 없었다.

“늦은 밤인데 들어가지. 강 비서 시간 되면 약주라도 하고 싶지만, 그건 나중으로 미루지. 여보. 들어가자고.”

“그래요.”

김도한 회장이 자신의 아내인 노진희와 함께 안방으로 향하자, 김동성이 당황한 채 소리쳤다.

“아빠, 이렇게 끝이야? 쟤 고발 안 해? 쟤 처벌 안하냐고!”

“동성아, 내일 얘기하자. 오늘은 그만.”

“아빠! 아빠!”

그런데 김도한 회장은 김동성 대신 강백현을 신경 썼다.

“강 비서는 2층에서 자고 가게. 늦은 밤에 숙소를 어떻게 구한다고 그래?”

“알겠습니다.”

“아빠! 이건 아니잖아.”

김동성은 떼를 쓰듯 김도한 회장의 손을 붙잡았다.

아들의 행동이 선을 넘는다고 여긴 김도한 회장이 김동성에게 호통을 치며 말했다.

“동성이 너는 성현이랑 강 비서 자는데 방해되니까 박 비서 방에서 자.”

“네?”

“호적에서 파는 꼴 보이고 싶지 않으면 시키는 대로 하고. 알았어?”

“아빠……. 아빠…….”

“강 비서는 올라가게. 동성이가 만약 2층에 올라오면 바로 나한테 보고하고.”

“네.”

김성현은 동생의 한심한 모습을 애써 외면한 후 강백현의 손을 잡고 2층으로 향했다.

“올라가요.”

“네.”

김성현의 방안.

생각보다 넓다. 화장품 냄새인지 아니면 방향제 냄새인지는 모르겠지만, 풋풋한 향기가 방 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제 침대 밑에 간이침대 있거든요? 불편할 텐데 제가 실례한 건 아니죠?”

“아니요. 전 괜찮은데, 실장님이야 말로 불편한 거 아닌가 모르겠네요.”

강백현은 기분이 굉장히 묘한 상태였다.

여자 혼자 사는 방에 들어온 것이 처음이기도 하고, 지금의 상황 자체가 굉장히 어색하기도 했다.

미진이는 결코 자신의 집에 들어오게 하지 않았다.

뭘 그리 숨기는지 비밀이 많았던 그녀와 달리 김성현은 자신의 모습을 당당하게 드러내고 인생과 맞서는 타입이었다.

“복도 나가면 화장실 있어요. 세면도구랑 수건 다 안에 있으니까 씻고 와요.”

“알았어요.”

강백현은 어색한 분위기를 환기하기 위해 그녀가 시키는 대로 2층 화장실로 향했다.

재벌가문이라고 특별히 화장실이 세련되어 보이지는 않았다. 평범한 집. 그래도 조금 다른 편이라면 화장실이 좀 넓다는 것.

아무래도 가정주택이니까 경제성보다는 편의성 위주로 설계한 면이 여실히 드러난 모양이다.

강백현은 웃옷을 벗고 머리를 감기 시작했다. 그녀의 말대로 세면도구는 많이 비치되어 있었다. 일회용 칫솔을 꺼낸 그는 양치를 하며 김성현에 대한 생각에 잠겼다.

‘실장님, 오늘 선택 원망 안 할 자신 있죠?’

김성현은 분명 오늘 자리에서 자신을 선택했다.

보잘 것 없을지 모른다.

재산도 겨우 3천만원 남짓 밖에 없는 볼품없는 공무원.

과연 그녀를 행복하게 만들어줄 수 있을까?

‘고민하지 말자. 이게 내 마음이잖아.’

최용규 선배한테는 미안한 일이었다. 평소처럼 옆에 있다면 정말 진심을 터놓고 이야기하고 허락을 맡는 건데, 일이 이렇게 삽시간에 진행이 되니 아직도 어안이 벙벙했다.

- 똑똑.

“네. 들어오세요.”

“백현 씨, 면도기 안에 없죠?”

“아, 괜찮습니다.”

“면도기 제가 내일 사오라고 할게요. 지금은 시간이 늦어서. 어?”

김성현은 강백현의 상체를 보며 깜짝 놀랐다.

잔근육이 세밀하게 자리 잡은 균형 잡힌 몸매.

평소 패션모델을 자주 보던 그녀는 강백현의 균형 잡힌 몸이 모델에 굉장히 적합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강백현은 자신의 몸에 고정된 시선에 깜짝 놀라 수건으로 가리며 말했다.

“아, 너무 응큼하신 거 아닙니까?”

“후후, 아니 보기 좋아서요. 불편했으면 미안해요. 얼른 씻고 교대해요.”

“네. 알겠습니다.”

씻고 나온 강백현이 김성현의 방으로 돌아가자 김성현이 파자마 하나를 꺼내며 말했다.

“아빠 잠옷인데 일단 입어요.”

“괜찮아요.”

“아까 옷 젖었었잖아요. 그대로 입고 자면 내가 걱정 돼서 안 돼요.”

“알겠습니다.”

강백현이 김성현이 건네준 파자마로 갈아입으려 하자, 김성현이 씩 웃고는 방문을 나서며 말했다.

“나 씻고 올게요.”

“네. 실장님.”

김도한 회장이 입던 파자마.

생각보다 짧다. 허리 사이즈는 비슷하지만 기장에서 비롯된 차이.

월등히 키가 큰 강백현에겐 소매와 기장이 짧아 손목과 발목이 크게 노출되어 있다.

‘그냥 입자. 입을 만하네.’

파란색 땡땡이 무늬에 피식 하고 웃음을 터트린 강백현이 간이침대에 누웠다.

‘아, 이것도 짧네.’

길이가 짧아 다리가 바깥으로 삐져나온 상태.

‘그냥 바닥에서 자는 게 낫겠지?’

바닥에 간이침대 위에 올려진 이불을 깔고, 강백현이 잠을 청했다.

잠시 후 잠옷을 입은 김성현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그런데 들어오자마자 불을 끄는 그녀.

“불 꺼도 괜찮죠?”

“아 전 켜도 괜찮아요.”

“화장 지워서 맨 얼굴 보여주기 좀 그래요.”

김성현은 자신의 침대에 올라가 맨바닥에 누운 강백현에게 물었다.

“왜 침대에서 안 자고 바닥에서 자요?”

“다리가 짧아서요.”

“바닥 안 불편해요?”

“네. 괜찮습니다.”

김성현은 침대에 누운 채 오늘 일을 상기하며 말했다.

“작년에는 많은 일이 있었네요.”

김성현의 말에 강백현이 공감하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다사다단했죠. 정말 고생 많으셨어요. 올해에는 실장님 일 좀 잘 풀렸으면 좋겠네요.”

“저는 작년 한 해, 용규 씨가 떠나가고 고기웅이 올 뻔 했지만.”

“……”

“그 자리에 백현 씨가 와줘서 너무 기뻤어요.”

“실장님……”

“아~ 진짜. 오늘도 정말 웃겨. 예상대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어. 원래 오늘 집에서 발 뻗고 푹 쉬려고 했었거든요. 근데 갑자기 백현 씨가 딱 인천공항에 나타난 거야. 그때 내가 생각했던 계획이 다 하얗게 백지가 되잖아요. 참 이상해요.”

“회장님 오늘 많이 슬퍼 보이시던데, 후회하고 계신 건 아닐까요?”

“알아요. 아빠가 얼마나 힘든 결정 하신 건지 잘 알죠. 그래서 정말 고마워요. 행복하고.”

“제가 성현 씨 삶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와닿지는 않지만, 정말 고생하셨고, 힘든 결정 내리신 것 같다는 마음은 들어요.”

강백현의 말에 김성현이 씩 웃었다.

“백현 씨, 그것보다 우리 오늘부터 정식교제 허락 맡은 거 알죠?”

김성현의 말에 강백현이 얼떨떨한 표정을 지으며 대꾸했다.

“무를까요?”

“아니요. 미쳤어요? 우리 아빠, 쉬운 사람 아니에요. 호락호락하지 않다고요. 이 허락 받는 게 얼마나 어려운 지 아세요?”

“……”

강백현이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이며 무언의 긍정을 표시했다.

“도련님은 괜찮으실까요? 제가 주먹다짐을 해서 많이 속상하신 것 같은데요.”

“동성이도 이제 성인이에요. 벌써 스물일곱이잖아요. 철이 들 때도 됐는데 아직 저러는 것을 보면 안타깝기도 하고, 제가 동성이한테 남모르게 위기감을 준 것도 있어서 다 제 탓이라는 기분이 들어요.”

“위기감이라니요.”

“일단 제가 아빠 회사에서 일을 했잖아요. 나름 인정도 받고, 성과도 있었고요. 그런 부분에서 동성이가 위기감을 느끼지 않았나 싶고, 그런 위기감이 조금은 건방질 수 있는 행동으로 나오지 않았나 생각해요.”

“실장님, 너무 자신 탓으로 몰아가지 마세요. 그렇게 살면 힘들어요.”

강백현의 말에 김성현이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아니요. 모두가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아빠도, 엄마도, 동생도 저도.”

“그러실 거예요. 분명 잘 해결 돼서 모두 다 행복하게 사실 겁니다.”

강백현이 받아주는 말 하나하나가 김성현에게는 주옥같은 보물이 되었다.

『힘든 결정 하셨습니다.』

『자신 탓으로 몰아가지 마요.』

『모두 다 행복하게 사실 겁니다.』

대화의 한마디 한 마디가 타인을 배려하고 있다.

그래서 더 마음이 간다.

“백현 씨, 바닥 안 추워요?”

“잘만 합니다.”

“추울 텐데. 침대에서 자죠?”

“키가 커서 다리가 빠져나와서 그런지 조금 불편해서요.”

강백현의 말에 김성현이 피식 웃었다.

‘맞다. 백현씨 키 크지?’

“저 신경 쓰지 마시고 주무세요. 오늘 많이 힘드셨잖아요.”

“네. 자요.”

“네. 실장님.”

강백현은 김성현이 잠에 들기만을 기다렸다.

‘아무래도 집에 돌아가서 자는 게 맞는 것 같아.’

새근새근 숨소리가 들려왔다. 김성현이 잠에 든 모양.

강백현이 조심스럽게 일어나 자신의 옷을 챙기고, 파자마를 벗기 시작하자 자는 잘 알았던 김성현이 물었다.

“백현 씨, 옷은 왜 갈아입어요?”

“……”

“물었잖아요.”

“밖에서 자는 게 맞는 것 같아서요. 실장님, 주무세요. 여기서 자는 것은 아닌 것 같아요.”

“내가 싫어요?”

“그건 아닙니다.”

“그럼 여기로 와요.”

김성현이 자신의 침대 옆 빈자리를 툭툭 쳤다.

“네?”

“빨리 와요. 같이 자요.”

강백현이 김성현의 말에 잠시 고민하다 물었다.

“맥시멈…하게 가도 되는 건가요?”

“뭘 물어요! 더 이상 어떻게 말해!”

김성현이 자리에서 일어나 강백현의 손을 잡고 자신의 침대로 이끌었다.

강백현은 김도한 회장의 땡땡이 파란 파자마를 벗으며 김성현을 꼬옥 안아주었다.

30대의 두 남녀가 한 침대에 누웠다.

처음에는 포옹.

포옹 다음에는 뽀뽀.

그리고 이어지는 키스.

더 이상 그 둘은 서로에 대해 탐색하지 않았다. 꼭 붙은 두 사람의 신체가 점점 달아올랐다.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허락까지 받은 두 사람은 서로의 몸을 감싼 잠옷을 벗겨주며 맥시멈의 끝을 보기 위해 움직였다.

“실장님, 아파요?”

“아- 아니, 괜찮아요. 계속 해요.”

두 사람이 처음 맞대는 살결에 집중했다.

1분 1초, 들릴 듯 말 듯한 시계의 시침 소리마저 너무나 소중한 시간.

그들을 그렇게 새해를 함께 보내고 있다.

* * *

한편, 최용규는 짜증 섞인 표정으로 저승사자에게 항의하고 있었다.

[어르신, 언제까지 수련해야 되는 겁니까?]

[네 놈이 한 사람 몫을 할 때까지지.]

[이제 곧 내려가 봐야 합니다. 백현이 오늘 죽어요.]

[죽는 장소 알잖아. 뭘 그리 고민해. 아직 20시간이나 남았는데…….]

[아, 저는 이게 강해지는 건지도 모르겠고, 과연 이게 맞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원귀가 그렇게 무섭습니까?]

[너도 봤잖아. 그 놈 그 기운, 시끄럽게 하지 말고 수련에 정진해. 지금 당장 네가 그 놈하고 맞붙으면 넌 1초도 안 돼서 죽을 게야.]

가부좌를 틀고 눈을 감은 채, 폭포에서 멀리 떨어진 원귀의 기운을 느낀다.

[이제 말해 봐.]

[반경 30km 내에 귀신은 저를 제외하고 총 다섯이 있고요. 전내신 둘, 잡귀 하나, 가택신 하나에 저승사자인 어르신까지네요.]

최용규의 말에 저승사자가 호리병을 든 채 그의 머리를 내리찍었다.

[아야!]

[이놈아, 나를 왜 세?]

[아~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뭔데요?]

[너는 1분에 몇 리까지 이동 가능하냐?]

[리는 모르겠고, 1000km도 가능하죠.]

[이놈아, 어떤 상황에서도 귀신의 존재를 느껴야지만 위험에서 자신의 영혼을 지킬 수 있는 게야. 곧 원귀랑 붙을 놈이 수련 가지고 불만을 가져? 옛끼 이놈!]

최용규는 강백현과 김성현의 상황을 알지 못한 채, 계속 수련에 정진하며 생각했다.

[‘백현아, 내가 너 꼭 구해주마. 조금만 더 기다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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