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뚝배기 깨러 왔습니다-102화 (102/139)
  • 뚝배기 깨러 왔습니다 102화

    김성현이 다친 동생을 확인한 후, 박 비서에게 전화를 걸었다.

    - 네. 아가씨.

    “박 비서님, 주소 불러드릴 테니, 와주시겠어요? 동성이가 다쳐서요.”

    - 아, 어쩐 일로, 바로 달려가겠습니다.

    김성현은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사태를 수습했다.

    “사장님, 경찰에 신고는 하지 말아주세요. 제 동생이 취했나봐요. 금방 달래서 해결할게요. 피해보상은 해드리겠습니다.”

    “됐고요. 음식 값만 지불하고 나가세요. 아~ 재수가 없으려니까.”

    말은 그렇게 했지만, 음식점 사장도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

    피해보상을 요구하지도 않고 묵묵히 바닥에 엎질러진 치즈 불닭을 치우며 테이블 주변을 정리했다.

    때마침 근처에 있었던 박창현이 현장으로 달려왔다.

    “도련님, 괜찮으십니까?”

    정신을 차린 김동성.

    “아, 나 코 괜찮아?”

    “네. 괜찮습니다.”

    “내가 저 새끼 감방 꼭 보낸다. 바로 병원으로 가.”

    “알겠습니다. 바로 모시고 가겠습니다. 그리고 아가씨.”

    “네. 박 비서님.”

    “회장님께서 바로 집으로 들어오시라고 하셨습니다. 강 비서도 같이요.”

    “네?”

    “저는 일단 도련님 모시고 병원 들렀다가 가겠습니다. 아가씨는 김 기사 통해서 들어가세요. 강백현. 너도 같이 가.”

    “……”

    “왜 대답이 없냐?”

    “알겠습니다.”

    사태가 커졌다. 김동성은 회장의 부름에 실실 쪼개며 말했다.

    “누나, 저 자식 다 잊고 빨리 기웅이 형이랑 잘 해봐. 내가 어떻게든 그렇게 만들 테니까.”

    “일단 병원부터 가.”

    김동성은 박창현이 끌고 온 차에 타면서 강백현에게 소리쳤다.

    “야. 쓰레기! 너 교도소 갈 준비해라. 감히 나를 때려?”

    “……”

    “아빠가 너 가만 안 둘 거야. 두고 봐. 크크크.”

    박창현 비서가 김동성을 데리고 떠나고, 강백현은 김성현에게 먼저 사과를 전했다.

    “실장님, 죄송합니다.”

    김동성에게 주먹을 날린 것은 분명 잘못한 행동이었다. 아무리 패륜아라고 해도 공무원은 이런 일에 연루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그런 부분을 모를 리 없는 김성현이 강백현에게 오히려 사과의 뜻을 밝혔다.

    “내가 마음이 약해서 백현 씨가 나선 거잖아요. 괜찮아요. 그리고 아빠한테 이야기해서 어떻게든 막아볼게요. 그러니까 너무 걱정하진 마요.”

    “정말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곧 이어 김 기사가 이태원 거리까지 차를 몰고 왔다.

    복장은 평소 입던 양복이 아닌 츄리닝. 어지간히 급하게 차를 몰고 온 모양.

    “아가씨, 타시죠.”

    “네. 김 기사님.”

    “백현이, 너도 타.”

    “네. 김 기사님.”

    김 기사는 운전을 하며, 뒷좌석에 같이 탄 김성현과 강백현을 바라보았다.

    ‘젊은 나이, 좋은 시절이구만.’

    두 사람은 서로의 손을 꼭 잡은 채 아무 말 없이 차량이 집까지 도착하기를 기다렸다.

    회장은 어떤 말을 해올까?

    고발? 협박? 아니면 고함으로 끝낼까?

    말은 오가지 않지만, 서로의 생각은 일치했다.

    분명 회장이 어떤 식으로 나올지 예상할 수 없었다.

    강백현은 이럴 때 나타나지 않는 최용규 선배가 야속했다.

    ‘선배, 도대체 어디 계신 겁니까? 선배, 나 잘 한 거 맞죠? 네?’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상태. 김 기사는 백미러로 두 사람을 보며 입을 열었다.

    “아가씨.”

    “네. 기사님.”

    “주제 넘는 소리지만, 전 두 분 응원하고 있습니다.”

    “네?”

    “이미 회장님은 두 분 만나는 것 알고 계세요. 이미 도련님께서 두 분이 나누신 대화, 카톡, 그리고 근황 같은 거 다 말씀하셨습니다.”

    김 기사의 말에 강백현이 고개를 숙이며 사과의 뜻을 전했다.

    “저 때문에 불편 드려 죄송합니다.”

    “아니, 왜 자네 때문이야. 괜찮아. 남자가 한 여자를 사랑한다면 포기를 모르고 달려드는 거지. 아가씨, 백현이 제가 얼마 보진 못했는데, 괜찮은 놈입니다. 회장님이 어떤 결정을 하셔도 자신의 생각을 떳떳이 주장하십시오. 전 개인적으로 이 그룹에 20년 동안 일했는데요. 성현 아가씨가 성한그룹에 팔려가듯 가시는 거 절대 용납 못합니다. 그 놈들이 어떤 놈들인데요.”

    김 기사의 말 한 마디에 김성현의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

    “실장님, 울지 마요.”

    ‘전 왜 이럴까요? 백현 씨 미안해요.’

    김성현의 집 앞에는 이미 연락을 받고 대기 중인 김도한 회장과 그의 아내 노진희가 있었다.

    “아빠.”

    “춥다. 들어와.”

    “네.”

    “강 비서, 자네도 들어오게.”

    “네. 회장님.”

    “김 기사, 밤늦게 고생했네.”

    “아닙니다. 회장님.”

    김도한 회장은 쥐죽은 듯 조용히 들어오는 두 사람을 보았다.

    강백현과 김성현.

    그 둘을 본 김도한이 한숨을 내쉬며 생각했다.

    ‘결국 이렇게 될 줄 알았어.’

    김도한은 4300억의 채무를 변제하지 못해 답답할 따름이었다.

    채권 연장이 되지 않고, 신규 채권 발행도 실패한다.

    『회장님, 메리야트 패션을 매각한 것은 너무나 큰 실수였습니다.』

    『김성현 아가씨가 메리야트 패션을 지키고 있었다면, 그 회사 주식을 담보로 1000억까지는 유상증자가 가능했을 거라는 분석 자료가 나왔습니다.』

    젊은 사람들은 물론 중 장년층에게까지 크게 각인된 김성현의 패션쇼.

    그 가치는 천문학적으로 오를 수 있었는데, 그걸 막아선 것이 김도한.

    물론 김성현이 성한패션으로 이직하지 않는 바람에 메리야트 패션은 거의 공중 분해된 상태였지만, 그 결과 역시 자신의 잘못된 선택에서 비롯된 것이므로 김도한 회장으로서는 통탄할 만한 일이었다.

    “성현아. 한 마디 묻자. 기웅이랑 잘 해볼 생각은 없는 거지?”

    “네. 없어요. 제가 다시 태어나도 성한 그룹으로 가는 일은 없을 거예요.”

    김성현은 강백현의 손을 꼭 잡고 자신의 의지를 표명했다. 그러자 김도한 회장의 곁에서 지켜보고 있던 노진희가 가슴이 아픈지 눈물을 훔치며 주방으로 벗어났다.

    “강백현.”

    “네. 회장님.”

    “어디까지 갔는지는 묻지 않겠네. 하나만 말하지. 자네는 우리 성현이를 포기할 수 있겠나?”

    김도한 회장의 질문에 강백현이 대답을 머뭇거렸다.

    “왜 대답이 없어?”

    “죄송합니다. 회장님.”

    그때, 김동성이 코에 반창고를 붙인 채로 거실로 들어왔다.

    “와! 이 쓰레기 새끼! 야. 전치 3주 나왔어. 내가 너 반드시 감방 쳐 넣는다. 아빠, 빨리 경찰 부르세요. 엄마! 경찰! 경찰 빨리 불러.”

    김동성의 말에 김도한이 굳은 표정으로 응답했다.

    “김동성, 내가 다 해결할 테니까 네 방에 들어가 있어.”

    “네. 야. 너 이제 죽었다. 진짜 잘못 건든 거야. 알았냐?”

    김동성은 다친 얼굴로 강백현을 향해 깐족거렸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김동성은 2층에서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지 않고 계단 아래쪽을 바라보며 김도한 회장이 두 사람에게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지켜보았다.

    “강 비서, 우리 회사 기밀이지만 자네한테만 이야기하지. 우리는 4300억의 채무가 있네. 그것을 4월이 도래할 때까지 갚거나, 채권 발행을 통해 변제기간을 연장해야 하네. 하지만 이게 쉬운 게 아니야.”

    “네.”

    “하지만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닐세. 성한그룹은 우리에게 빚이 있어. IMF 이전 우리 그룹이 성한그룹을 도와줬듯, 성현이가 성한그룹의 며느리로 들어간다면 그쪽에서도 우리가 발행하는 채권을 매입하겠다는 의사를 보였네.”

    김도한 회장의 진지한 말에 강백현이 입을 다물었다.

    “내가 하려는 말이 무엇인지 자네는 잘 알거야. 그게 성사되지 않는다면 우리 그룹은 공중 분해가 될 거고, 우리 집안은 거리로 나앉을 수도 있겠지.”

    강백현은 김도한의 솔직한 말에 김성현의 손을 꼭 잡고 말했다.

    “회장님께서 말씀하신 바가 무슨 내용인지 압니다.”

    “……”

    “저 성현 씨 좋아합니다. 사랑한다고 생각하고 있고요.”

    강백현의 말에 김성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반면, 2층에서 지켜보고 있던 김동성은 강백현의 말에 주먹을 불끈 쥐며 소리쳤다.

    “야! 미친놈아! 우리 집 망한다고! 망한다고 이 개새끼야!”

    김동성의 욕에 진지하게 듣고 있던 김도한 회장의 호령이 떨어졌다.

    “김동성! 조용히 못해!”

    “하지만, 저 쓰레기 같은 놈이!”

    “조용히 해! 너 한 마디만 더하면 집안에서 내쫒을 줄 알아. 가만히 듣고나 있어.”

    “……”

    김동성은 분노의 감정을 간신히 참아냈다.

    하지만 강백현은 자신의 분수를 잘 알았다. 그가 김성현을 잡았던 손을 놓으며 말했다.

    “하지만 그 사랑이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도 압니다. 저 보잘 것 없는 공무원입니다. 이미 뒷조사까지 다 하셔서 아시겠지만, 그냥 지방의 평범한 공무원이죠. 성현 씨랑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 누구보다도 잘 압니다. 그런데 이 말씀 한 마디는 드리겠습니다.”

    “뭐지?”

    “고기웅은 아닙니다. 회장님. 저도 제 분수는 알지만, 그 사람은 절대 괜찮은 사람이 아닙니다.”

    “……”

    “다행히 성현 씨랑 저는 깊은 관계는 아닙니다. 호감은 있고 잘해볼 생각이었지만 회장님 말씀대로 모두를 위한 길은 아니란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 자리 이후 성현 씨를 향한 제 마음 깨끗하게 접겠습니다. 다만 성현 씨가 행복할 수 있게 다른 방법을 강구해주십쇼.”

    강백현이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자신의 행동에 용서를 빌었다.

    “백현 씨, 무릎 펴요. 백현 씨가 무슨 잘못이 있다고 그래요! 내 인생 내가 결정해요. 아빠! 아빠!”

    김성현은 강백현을 설득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말을 건넸다.

    사실 아무 사이도 아니고, 아직 제대로 된 데이트 한 번 안 해봤지만 김성현은 본능적으로 강백현이 자신의 남자인 것을 알았다.

    최용규보다 만난 시간은 짧지만 그럼에도 더 강렬하게 끌리는 사람이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이미 한번 잃었는데 이런 식으로 또 잃을 순 없다고 생각하는 김성현이었다.

    하지만 김도한 회장은 딸을 보지 않고 강백현만을 보고 있었다.

    “강 비서.”

    “네. 회장님.”

    “자네 이야기는 잘 들었네. 사실 나도 성현이를 성한그룹에 보내고 싶진 않아.”

    김도한 회장은 자신의 생각을 전하기 시작했다.

    “분명 난 우리 기업의 미래를 위해 성현이를 성한그룹에 보내기로 결심했었네.”

    “그 마음 이해합니다.”

    “백현 씨!”

    김도한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처음에는 모두를 위한 길이라고 생각했네. 그게 메리야트 그룹의 회장으로서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했지.”

    “회장님. 그래도 고기웅 본부장은 아닙니다.”

    “끝까지 들어보게. 난 이제 회장의 길을 놓을 생각이네.”

    “네?”

    “한 그룹의 회장 자리를 내려놓고, 딸의 행복을 빌어주는 한 명의 아버지로서 남고 싶다는 게 내 최종 결정이야.”

    김도한이 자신의 결심을 말했다.

    그러자 2층에 있던 김동성이 열을 내며 내려왔다.

    “아빠, 그게 무슨 말이야. 미쳤어? 그룹을 왜 포기해. 누나만 결혼시키면 다 해결되잖아. 다 해결되는 거잖아!”

    하지만 김도한 회장의 생각은 달랐다.

    “동성아, 성한그룹에서는 우리 채무를 변제해주는 게 아니야. 변제 기간을 늘리는 것뿐이지. 결국 시간문제. 성현이가 성한그룹으로 간다고 해서 무너지는 메리야트 그룹이 다시 살아나진 않는다. 시간이 지나면 결국 메리야트 호텔이 성한그룹에 넘어가겠지.”

    “아빠! 아빠!”

    “그룹의 생명연장을 위해 딸의 행복을 포기할 순 없다. 만약에 동성이 네가 성현이랑 같은 입장이었어도 나는 똑같은 결정을 했을 거야.”

    “아니야. 아니라고! 아빠. 호텔을 왜 넘겨! 왜! 왜!”

    김동성은 오열하며 김도한 회장의 몸을 흔들었다. 그러나 김도한 회장의 마음은 이미 결정되어 있었다.

    “성현이 네가 용규랑 결혼한다고 했을 때 난 말리지 않았다. 지금도 난 성현이 네가 행복해졌으면 한다. 강 비서와 결혼하는 게 네 인생의 행복이라면 그렇게 결정하렴. 그게 나에게는 더 큰 행복이니까.”

    김도한 회장의 끝말에 김성현이 펑펑 울며 아빠의 품에 안겼다.

    “아빠, 미안해. 정말 미안해.”

    “아니야. 아빠가 경영능력이 부족해서 그런 거지. 네가 미안할 게 어디 있어.”

    강백현 또한 고개를 숙이며 눈물을 흘렸다.

    ‘회장님, 정말 죄송합니다. 그리고 인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주방에 들어가 가족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노진희 또한 눈물을 흘렸다.

    ‘여보, 고마워요.’

    딸이 자신과 똑같은 인생을 살게 될까봐 마음 한켠이 늘 무거웠던 노진희, 그녀는 딸의 행복을 위해 그룹을 포기한 김도한의 결정이 너무나 고마웠다.

    비록 4개월 뒤에는 지금과 같은 풍요로운 삶을 포기해야 한다지만, 크게 걱정은 되지 않는다.

    모든 것을 잃는 것은 아니니까.

    마음의 준비를 하면 그 어떤 풍파가 몰려와도 이겨낼 수 있으니까.

    “강 비서.”

    “네. 회장님.”

    “우리 딸, 행복하게 해주게. 그리고 절대 내 결정 후회하지 않게 만들게. 알았나?”

    “알겠습니다. 회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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