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뚝배기 깨러 왔습니다-101화 (101/139)
  • 뚝배기 깨러 왔습니다 101화

    맥시멈이란 말에 김성현이 웃음을 터트렸다.

    자신이 내뱉은 패션에서의 미니멀리즘과 맥시멀리즘을 저런 식으로 화답한 센스가 돋보였기 때문이었다.

    ‘조금 장난 좀 쳐볼까?’

    김성현은 포옹하는 상태로 농담을 건넸다.

    “맥시멈 뜻은 시간 아니면 진도?”

    “아, 뭘 물어요. 둘 다죠.”

    강백현이 짓궂은 질문을 던지는 김성현을 꼭 안아주었다.

    그때, 지켜보던 자가 헛기침을 하며 나타났다.

    “흠흠, 아가씨, 귀국 축하드립니다.”

    깜짝 놀라 포옹을 멈추고 자연스럽게 대응하는 강백현.

    “아, 이게 프랑스식 인사였죠?”

    그리고 그것을 받아치는 김성현.

    “네. 어색하네요. 아, 박 비서님, 보셨어요? 저희 프랑스식 인사 해야죠. 얼른 와요. 포옹하게요.”

    “아-아아, 그렇게 안 하셔도 되는데.”

    “그럼 한국식 인사로 할까요? 아, 나도 적응 안 된다니까.”

    박창현은 어색함을 지우고 자연스럽게 대처하는 두 사람의 행동에 웃음을 참았다.

    ‘아가씨, 백현이가 여기 온 것부터 이미 들켰습니다. 뭘 그리 비밀로 하시려고 그러십니까? 그나저나 백현이 이 놈 장난 아닌데?’

    박창현은 방긋 웃으며 장난을 쳤다.

    “백현이 넌 공항에 웬일이야?”

    “아- 그게요.”

    강백현의 당황하는 모습을 본 박창현이 씩 웃었다. 그런데 김성현이 그 이유를 대신 설명해주었다.

    “강 비서, 내일 해외 출국한다고 유심(Usim) 받으러 왔다면서요. 해외 출국하는 게 비밀이었어요?”

    “아, 유심이란 말이 생각이 안 나서요. 박 비서님, 저 유심 받으러 온 김에 실장님 귀국하신다고 전해 듣고 얼굴 보려고 온 거예요. 오해 마세요.”

    “아, 그러세요? 아가씨, 그럼 댁으로 모시겠습니다. 지하 주차장에 차량 대기시켜놓았습니다.”

    박창현의 말에 강백현이 아쉬운 표정을 지어보였다.

    ‘이럴 줄 알았으면 미리 말해두고 올 걸.’

    아직 정식으로 교제하는 사이도 아니고, 그 부분에 대해 서로의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해 보지도 않았다.

    좀 더 적극적으로 마음을 표현하고, 좀 더 적극적으로 행동했으면 이렇게 아쉽게 헤어지는 일은 없었을 텐데.

    강백현은 아쉬움에 쭈뼛거리며 눈치를 보았다.

    그런 강백현의 마음을 김성현도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바보, 먼저 얘기하고 기다렸으면 박 비서 대기시킬 일 없었잖아.’

    연애의 기본은 진실이다.

    서로의 모든 것을 터놓고 시작해야 사랑의 변수를 차단할 수 있다.

    “백현 씨, 들어가요?”

    “네. 이제 유심도 받았는데 다시 돌아가야죠.”

    “식사나 같이 해요.”

    “이 시간에요? 오후 9시면 공항에서 먹을 데 많이 없을 텐데.”

    “서울에는 많잖아요. 박 비서님, 이태원으로 가주세요. 오랜만에 퇴직한 직원 봤는데 식사 하고 갈게요.”

    “아, 그러시겠습니까? 그럼 이태원으로 모시겠습니다.”

    박창현은 차량을 운전하며 서로 예의를 차리는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속으로 피식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실장님, 많이 예뻐지셨네요.”

    “뭐래요. 백현 씨 새로 얻은 직장은 마음에 들어요?”

    “네. 잘 적응해나가고 있습니다.”

    “다행이네요. 성한 패션 말고 성현 패션에서 일하고 싶다고 할 때가 엊그제 같은데, 새로운 직장에서 잘 적응하신다고요?”

    “아니, 제가 그래서 말씀드렸잖아요. 죄송하다고요.”

    “됐거든요?”

    “삐지신 겁니까?”

    존댓말이라고 하지만 누가 봐도 썸 타는 관계.

    그 이상이라고 생각해도 전혀 이상할 게 없다.

    박창현은 그 둘이 서로 손을 꼭 잡고 있는 것을 백미러로 확인했다.

    ‘하긴 아가씨도 연애할 나이고, 백현이도 연애할 나이긴 하지.’

    자신과는 이루어질 수 없는 운명.

    백현이와 같이 근무하면서 키 크고 잘 생긴 그라면 김성현 아가씨와 잘 될지도 모르겠다고 몇 번 생각한 적은 있었다.

    그런데 진짜로 이렇게 급진전된 관계를 보니 뭔가 마음이 뒤숭숭했다.

    “이태원 도착했습니다.”

    “아, 박 비서님, 저녁 식사는 하셨나요?”

    도착이란 말에 김성현이 저녁 식사 여부를 물었다. 박창현은 잠시 고민하다 그 둘의 관계가 어디까지 진전됐는지 궁금해 같이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직 안 했습니다.”

    “아, 그래요? 그럼 제 짐 집에다 두고 일찍 퇴근하세요. 저는 백현 씨랑 같이 저녁 먹고, 패션 관련해서 이야기 좀 하다가 들어갈게요.”

    김성현의 대답에 강백현이 미소를 지었다.

    ‘실장님, 센스!’

    반면 박창현은 김성현의 지시에 당황했다.

    ‘어라, 이게 아닌데…….’

    “그럼 조심히 들어가요. 집에는 따로 저에 대해 말씀하지 마시고, 혹시 물어보면 패션 관계자 만나고 들어간다고 해주세요.”

    “아- 알겠습니다.”

    이태원, 김성현은 차량이 떠난 것을 확인하고 곧바로 백현의 손을 잡았다.

    “우리 뭐 먹을까요?”

    “전 실장님하고 먹으면 아무거나 좋습니다.”

    “느끼해. 느끼한 거 좋아하면 치즈불닭 먹으러 가죠.”

    외국인이 넘치는 거리에서 서로 팔짱을 낀 두 사람이 음식점에 들어갔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자연스럽게 팔짱을 끼던 둘이 테이블에 앉을 때가 되자 고민에 빠졌다.

    팔짱을 낀 채로 옆에 앉아야 할까, 아니면 서로 마주보고 앉아야 할까?

    그 고민은 오래가지 않았다.

    김성현이 강백현의 팔을 붙잡고 자신의 옆자리에 앉혔기 때문이었다.

    “그 맥시멈하게 가는 거 자세하게 얘기해 봐요.”

    “네?”

    “빨리빨리. 네?”

    김성현의 애교 섞인 재촉에 강백현의 얼굴이 붉어졌다.

    “……”

    “왜 이렇게 어색해해요?”

    “아닙니다. 먼저 주문부터 할게요. 여기 치즈 불닭 하나랑요. 레몬소주 하나 주세요.”

    “네. 치불 하나, 레소 하나. 식사도 준비해드릴까요?”

    “아니요. 괜찮습니다.”

    김성현은 더 이상 고민하지 않았다.

    더 이상 재벌가의 운명이라는 틀에 사로잡히고 싶지 않았다.

    자신의 꿈을 이루어준 백현이 옆에 있기에 그 마음은 더 커졌다.

    ‘백현 씨 만나서 나 너무 행복한 거 알죠?’

    재벌은 외롭다.

    시키는 대로, 마치 장기말처럼 경제논리에 따라 삶이 좌지우지 된다.

    특히 메리야트 그룹처럼 재정이 어려운 곳은 더욱 더 그렇다.

    “실장님, 괜찮아요?”

    “네?”

    “왜 눈물을 흘려요?”

    김성현은 자신의 눈망울에 가득 맺힌 눈물을 확인하고 깜짝 놀랐다.

    분명히 행복한데, 이보다 더 행복할 수 없는데 왜? 왜 이렇게 슬플까?

    강백현이 자신의 소매로 김성현의 눈물을 훔쳤다.

    “실장님 울지 마요. 프랑스에서 많이 힘들었어요? 무슨 일 있었는지 이야기해봐요.”

    강백현은 따스한 말로 김성현을 위로해주었다.

    “아니, 힘들지 않은데, 행복한데 왜 눈물이 나죠?”

    “많이 힘들었나봐요. 실장님 고생 많이 하셨잖아요. 많이 힘들었던 시절에 꿈꾸던 결실이 하나하나 이뤄지니까 행복해서 눈물이 나는 거죠.”

    “아, 진짜 이러려고 이태원 온 거 아닌데. 다 백현 씨 탓이에요.”

    “네? 왜 제 탓인가요?”

    “백현 씨가 말없이 인천공항까지 와서 내 감정 흔들었잖아요. 아무리 찾아봐도 부족함이 없어. 정말.”

    강백현은 김성현의 말에 피식 웃었다.

    그때 점원이 치즈 불닭과 레몬소주를 가지고 왔다.

    “느끼해서 치즈 불닭 좀 드셔야겠네요. 음식 나왔으니까 빨리 먹어요.”

    두 사람은 너무나 행복했다.

    치즈 불닭을 먹으며 셀카를 찍고, 오늘 있었던 일을 하나하나 추억에 담기 위해 노력했다.

    “실장님.”

    “네?”

    “약속 착각한 거 알죠?”

    “어떤 거요?”

    “저희 1월 1일 종각에서 제야의 종 울리는 거 보기로 했잖아요.”

    “그거 내일이잖아요.”

    “오늘이에요. 12월 31일에서 1월 1일로 넘어가는 날. 그러니까 1월 1일이 아니라 오늘 12월 31일날 보는 게 맞는 거예요.”

    “그럼 미리 말을 했어야죠.”

    “말은 했죠. 다만 비행기 티켓을 오늘 끊었다길래 아는 줄 알았죠.”

    “그럼 원래 오늘 우리 이렇게 보기로 되어 있었던 거네요?”

    “네. 한 시간 30분 안에 종각까지 가야되긴 하지만요. 다 먹고 가기에는 조금 빠듯하겠네요.”

    둘의 약속.

    새해를 맞이하는 첫 시작을 제야의 종과 함께 하겠다는 것.

    암묵적인 교제를 의미하는 그 약속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서는 서로가 잘 알고 있었다.

    “그럼 일어날까요?”

    그런데 두 사람의 데이트를 방해하는 자가 나타났다.

    “누나. 여기서 이 병신이랑 뭐해?”

    그 존재는 김동성. 김성현의 하나뿐인 남동생.

    그는 나타나자마자 김성현과 함께 있는 강백현을 확인하고 레몬소주가 담긴 컵을 그대로 백현의 얼굴에 부어버렸다.

    얼굴에 웃음기가 사라진 강백현이 냅킨으로 얼굴과 옷을 닦았다.

    “백현 씨, 괜찮아요?”

    “아, 괜찮습니다.”

    “동성이 너 뭐하는 짓이야.”

    “누나야 말로 지금 이딴 놈 만날 때야? 누나가 만나야 될 사람은 따로 있잖아!”

    김동성은 억지를 부렸다.

    만나야 될 사람이란 언급하기도 싫은 고기웅 본부장.

    “너 계속 이럴 거야?”

    “누나, 내가 누누이 말했지? 누나는 태어난 이유가 성한 그룹에 가기 위해서야. 거기 가서 우리 집안 살려야 돼. 아빠도 고모도, 고모부도 항상 말씀하시잖아. 누나가 집안을 살려야 된다고. 누나 밖에 없다고.”

    “김동성, 진짜 너 백현 씨 앞에서까지 이럴래?”

    “백현 씨? 이딴 쓰레기 놈들하고 시간 아깝게 왜 말을 섞어. 얘네들은 돈만 주면 뭐든 하는 놈들이잖아. 그런 놈보다 기웅이 형이 백배는 낫다.”

    쓰레기라는 말에 강백현의 표정이 일순간 굳어졌다. 그것을 본 김성현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백현을 일으켰다.

    “우리 나가요. 백현 씨 일어나요.”

    김성현의 뜻대로 강백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강백현이 자리를 뜨려고 하는 찰나, 김동성이 김성현에게 명령조로 말했다.

    “누나는 앉아.”

    “뭐?”

    “쓰레기 내보내고 누나는 앉으라고. 내가 하는 말 못 들었어?”

    김동성은 어떻게든 마지막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려고 했다.

    공항에서 사고를 친 기웅이 형은 그때부터 연락이 안 되고 있다.

    ‘내가 프랑스까지 가서 설득했는데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거냐고!’

    “누나가 한국에 왔으면 다 해결됐을 일이야. 기웅이 형은 마지막까지 누나랑 잘 해보려고 생각했었어. 프랑스로 떠나는 비행기 티켓도 나한테 보내줬었고.”

    “김동성!”

    강백현은 고기웅이란 말에 환멸을 느끼는 김성현의 표정을 보며 무언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도련님, 고기웅 본부장님은 공항에서 음란행위를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 분하고 아가씨를 연결해드리는 건…….”

    “네가 뭘 알아! 뭔데 끼어드는데? 기웅이 형이 그렇게 된 이유 다 설명해줬어. 자기 형이 자기한테 환각제 먹였대. 그래서 실수한 거라고 검찰에도 다 진술했고.”

    억지주장을 펼치는 김동성의 말에 김성현이 결국 화를 냈다.

    “김동성, 적당히 해. 너 왜 이렇게 망가졌어. 왜! 왜!”

    갑자기 분위기가 싸해지는 매장.

    사장님이 나와 사건을 중재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손님, 더 소란 피우시면 경찰 부르겠습니다.”

    김동성은 사장의 말에 단단히 화가 나 앞에 있는 불닭이 든 냄비를 땅바닥에 내동댕이쳤다.

    망연자실한 얼굴로 바라보는 사장. 손님들도 웅성거리고 매장 분위기는 쑥대밭이 됐다.

    “왜? 돈 물어주면 되잖아. 얼마면 돼? 얼마면 되냐? 어?”

    김동성이 조롱하는 듯한 말투로 사장에게 소리쳤다.

    그때, 쿵!

    김동성이 얼굴에 망치에 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

    움직여지지 않는 몸. 좁아지는 시야.

    그리고 코에서 흐르는 피.

    강백현이 김성현의 동생, 김동성에게 말했다.

    “김동성, 인간부터 되고 와라. 안 그래도 마음 약한 누나 앞에서 이게 무슨 짓이냐? 그리고 나 돈으로 안 움직여 인마. 돈 없어도 빽 없어도 잘 살아. 이 쓰레기 같은 새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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