뚝배기 깨러 왔습니다 100화
다시 식당에 들어온 강백현은 다소 지루해하는 실장에게 물었다.
“회식 종료할까요?”
“그래. 이만 일어날까?”
“건배사 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바로 진행하겠습니다.”
강백현은 실장의 허락을 맡고 말을 꺼냈다.
『마지막으로 실장님 말씀을 끝으로 회식 종료하겠습니다.』
강백현 팀장의 말에 실장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
“연말 잘 보냅시다. 위하여!”
짧은 건배사.
1차 회식이 끝났다.
오복주 감찰팀장은 아쉬워하는 눈치였다.
집에 들어가면 반겨주는 사람도 없는데, 알딸딸한 지금 기분을 좀 더 느끼고 싶었던 것.
최기철 조사팀장도 마찬가지.
“실장님, 2차 어떠십니까? 좋은 곳으로 모시겠습니다.”
“좋은 곳 어디?”
“쌔끈한 노래방 있습니다. 실장님하고 저하고 조사팀장 이렇게 셋이 가면 딱인 것 같습니다. 나이대도 맞고요.”
“최 팀장도 2차 가나?”
“네. 당연히 갑니다. 실장님 가시는데 어디라도 가야죠.”
접대원 나오는 노래방을 제안한 최기철과 오복주가 서로를 향해 방긋 웃으며 상의를 시작했다.
“에이스 노래방으로 가자.”
“지금 시간에는 뷰티풀 노래방이 물이 좋습니다. 그쪽으로 가시죠. 실장님 택시 부르겠습니다.”
그런데 고태준 실장은 그 둘의 대화를 끊으며 누군가를 불렀다.
“강 팀장!”
“아, 실장님 부르셨습니까?”
“두 팀장이 노래방으로 2차 가자는데 생각이 어때? 접대원도 나오는 곳이라는데…….”
고태준은 강백현의 대답을 기다렸다.
키워볼만한 인재인가의 평가는 평소 행동에서 나온다.
말이 노래방이지, 유흥주점과 다를 바 없는 곳.
이런 곳을 다니는 청년인재는 자신의 소속에 하등 쓸모없는 존재다.
한편, 오복주 팀장은 인상을 찌푸렸다.
‘아, 저 새끼하고 같이 가기 싫은데.’
최기철 팀장도 마찬가지.
‘젊은 놈 있으면 짜증나. 어느 정도 나이대도 맞아야 재밌지.’
접대원도 여성인 이상 젊은 남성을 좋아한다. 키도 크고 잘 생긴 강백현이 노래방에 가면 인기를 독차지할 게 분명한 상황.
말도 안 되는 언변에 술자리에서는 억지로 친한 척 했지만, 사실은 결코 백현과 친하고 싶지 않은 최기철이 인상을 찌푸렸다.
“죄송합니다. 제가 유흥은 별로 좋아하질 않아서요. 저는 빠지겠습니다.”
“아, 그래? 그럼 할 수 없지.”
고태준은 강백현의 대답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남자 나이 서른 둘.
유흥도 마다하는 그의 바른 생활과 가치관을 알게 된 실장은 더욱 더 그가 탐났다.
“다들 들어가지.”
“네? 택시 불렀는데 노래방 안 가십니까?”
“2차 안 가고 집에 가자고. 자네 둘은 공직기강감사실의 구성원이면 정신 좀 차려. 무슨 접대원을 부르고, 2차를 가자고 그래? 그러고도 공직기강이 바로 서겠어? 자네들부터 썩었는데. 어?”
“죄송합니다.”
“실장님, 죄송합니다.”
고태준 실장이 그 말을 끝으로 택시를 타고 떠났다.
보통의 남성이라면 얼씨구나 좋다 하고 노래방을 가는 게 맞는데, 저렇게 정색을 하니 감찰팀장과 조사팀장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실장님 가셨네요. 그럼 조심히 들어가세요.”
“강 팀장, 어디가?”
“아~ 전 저희 팀원들이랑 2차 회식 있어서요. 차우현 주무관이 자리 잡고 연락주기로 했습니다. 무슨 일 있으십니까?”
“아니, 됐어. 됐어.”
“네. 그럼 수고하시고 내일 뵙겠습니다.”
강백현이 유유자적, 횡단보도를 건너며 자리를 떴다.
남은 두 팀장은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왜 우리만 이런 취급을 받냐?”
“실장님 처음부터 노래방 가실 생각 없으셨던 거 아니에요?”
“그거야 나도 모르지.”
“아, 좀 알아보셨어야죠. 오 팀장님 말 듣고 괜히 동조했다가 저만 이렇게 된 거잖아요.”
“야! 나 너보다 선배다.”
“아- 네. 그러시겠죠. 아- 모르겠습니다. 그만 집에 가시죠.”
“야야야야! 노래방 안 가?”
“기분 상해서 안 갑니다.”
* * *
한편, 강백현은 최근 유행하는 스몰비어에서 맥주와 감자튀김을 먹으며 팀원들에게 말했다.
“차우현 주무관님, 올 한해 수고하셨고, 그 결과는 곧 나올 겁니다.”
“네? 무슨 결과요?”
“좋은 결과죠.”
“올해 사고 친 놈이 있어서 성과상여금은 아니겠고, 혹시 근무평정 관련 말씀하셨나요?”
“아니요. 근무평정은 저한테 말씀하실 리가 없죠. 개인점수잖아요. 성과상여금 맞습니다. 아직 오피셜은 아닌데, 저희 결과가 좀 좋게 나올 것 같아요.”
“진짜! 진짜요? 진짜요?”
“네.”
“오! 제가 2차 사야겠네요. 사장님! 메뉴판 좀 가져다주세요.”
조은혜 주무관도 방긋 웃으며 말했다.
“와, 팀장님 능력 있다. 올해 우리 3등 받을 차례였는데 어떻게 하셨어요?”
“제가 잘한 건 없습니다. 다 차우현 주무관님하고 조은혜 주무관님이 발 벗고 뛰어서 그런 거죠. 결과는 아직 안 나왔으니까 입조심 해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그나저나 조은혜 주무관님은 왜 2차 참석했어요? 애들이 안 보채요?”
“오늘 울 남푠한테 다 맡겨놨어요. 지금 키즈 카페 가서 놀고 있을 거예요.”
“아, 다행이네요. 그럼 내년에도 각자 하는 일 잘 되시길 바라며, 막잔 올릴까요?”
“네!”
* * *
회식 자리가 끝나고 또 하루가 지나갔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연말.
각 팀의 분위기는 첨예하게 갈렸다.
1월에 받는 성과상여금 등급이 결정된 것.
감사팀은 1등으로 S등급.
조사팀이 2등으로 A등급.
감찰팀이 3등으로 B등급.
비교구분대상이 3곳뿐이었으므로 가장 낮은 등급이 B등급.
A등급은 본봉의 125%를 받고, S등급은 179%를, B등급은 71%를 받게 된다.
조사팀은 감사팀이 1등을 받았다는 것에 이외라는 반응이면서도, 본래 예상과 다르지 않은 순위에 별 말이 없었다.
그런데 문제는 감찰팀이었다.
“팀장님, 이게 어떻게 된 건가요?”
“나도 몰라.”
“아니, 우리 차례잖아요. 실장님께 말씀 안 드렸어요?”
“나도 모르겠다니까. 조용 좀 해.”
“아- 진짜, 300만원 차이난다고요.”
성과상여금 등급에 따른 급여 차이.
적게는 200만원에서 많게는 400만원까지 차이나는 상황.
강백현은 환하게 웃고 있는 팀원들을 향해 주의를 주었다.
“다들 얼굴에 화색 좀 숨겨요. 다른 팀원들이 질투하잖아요.”
“아, 네. 조절하고 있습니다. 미리 듣긴 했지만 받아보니 정말 기분이 좋네요.”
“아직 받은 거 아니잖아요. 1월 20일 월급날까지 아직 많이 남았습니다.”
“그래도 좋습니다. 하하하, 팀장님.”
“네.”
“우리 마누라가 팀장님 집에 초대 좀 하랍니다. 삼겹살 구워준다고.”
“어? 왜요?”
“뭐긴 뭐겠습니까? 성과상여금 때문이죠. 아무튼 기분이 좋습니다.”
강백현은 상대적으로 침울해 보이는 김태웅을 향해서도 말을 걸었다.
“김태웅 주무관은 올해 징계 때문에 성과상여금 날아간 거 너무 신경 쓰지 말고 내년에 정진하도록 해요.”
“아-아. 넵. 신경 안 씁니다.”
강백현은 더 이상 김태웅에게 말을 걸진 않았다.
그 스스로도 자신의 실수에 대해 반성하고 있었고, 이미 징계까지 받은 마당에 더 이상 그에게 원망과 미련을 남겨두고 싶진 않았다.
그때 강백현의 사무실 전화기가 울렸다.
“감사팀장 강백현입니다.”
- 강백현!
“네. 강백현 팀장입니다. 전화거신 분은 누구십니까?”
- 나야. 윤미진.
“아, 근데? 왜 반말이시죠?”
- 장난 까지 말고, 야! 너 때문에 가산금 내뱉은 것도 짜증나는데 성과상여금도 날아갔잖아. 너 진짜 나쁜 새끼인 거 알지?
강백현은 직접 전화해 자신에게 원망을 토해내는 전 여자 친구 윤미진의 말이 너무나 즐거웠다.
“응. 그래도 내가 너한테 쓴 금액보다는 적은 것 같은데?”
- 네가 나한테 얼마나 썼다고. 넌 대가리에 든 게 없니? 이 상황이 즐거워?
“아, 그만 하자. 우리 추접하게 과거사 따지지 말자고.”
- 아- 빡쳐. 아 진짜 개 빡쳐. 네가 그러고도 사람이야? 꼭 사람을 이렇게까지 구차하게 만들어야겠어?
윤미진의 말에 강백현이 오히려 반론을 던졌다.
“구차하게 행동하는 건 누가 봐도 너인 것 같은데? 할 말 그것뿐이면 끊는다. 아, 네 번호 차단도 해놓을게. 업무적인 거 있으면 온나라 메모보고로 보내줘. 아, 너보다 직급 높으니까 존댓말 꼭 하고.”
- 야! 야야야야!
강백현은 전화를 끊은 후, 방금의 전화번호를 무음으로 설정했다.
요즘 업무용 키폰은 차단도 되고, 무음 설정도 된다.
‘참 세상 좋아졌단 말이야.’
* * *
12월 31일 목요일 오전.
기다리던 전화가 걸려왔다.
“여보세요?”
- 백현 씨, 나 곧 비행기 타요.
“네. 성현 씨 인천공항 맞죠? 마중 나갈까요?”
- 아뇨. 박 비서가 데리러 오기로 했어요. 박창현 비서 기억나죠?
“아, 기억하죠. 그런데 도착은 몇 시에요?”
- 한국시간으로 저녁 9시요. 나 때문에 미리 올라와있지 마요. 어차피 와도 오늘은 바로 집에 들어가야 돼서 별로 보지도 못하니까.
“네. 실장님. 들어가요.”
- 네. 백현 씨도 일 열심히 하고, 한 해 마무리 잘 해요.
강백현은 김성현과 전화를 한 후 얼굴에 웃음이 걸렸다. 내일 오랜만에 김성현을 본다.
윤미진과 데이트를 할 때는 의무감이 컸다.
자신이 더 좋아하는 입장이어서 하나라도 더 해주고 싶다는 마음에 의무적으로 만나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김성현과의 데이트는 살짝 달랐다.
좋아해주는 마음과 배려가 느껴지니 사랑은 배가 된다.
‘보러 가야겠지?’
부주시에서 인천공항까지 245km.
꽤 먼 거리지만, 강백현은 김성현과 만나기로 결심하고 오후에 0.5일 연가를 썼다.
인천공항 제 1터미널.
양복에 코트를 차려입은 강백현이 말끔한 얼굴로 김성현을 기다렸다.
그때 울리는 핸드폰. 백현이 최현희의 이름을 보고 얼굴이 구겨졌다.
“여보세요?”
- 내일 만나기로 했던 거 일정 미뤄야겠어요. 아빠가 동료 의원들하고 현충원 참배 행사가 잡혔네요.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일정 잡히면 다시 연락줘요.”
- 네. 이번 건은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네. 끊어요.”
갑자기 약속을 취소시키다니. 그래도 하루 전에 연락을 받아 다행이라 생각한 백현이 비행기편 도착을 알리는 전광판을 바라보았다.
오후 9시, 전광판에 프랑스에서 출발한 비행기가 한국에 도착했음을 알리는 정보가 떴다. 그리고 1분도 되지 않아 강백현의 전화에 김성현의 메시지가 전달되었다.
[김성현] : 한국 무사히 도착했어요. (찡긋!)
[김성현] : (사진)
비행기 비즈니스석 자리에서 셀카를 보낸 김성현, 사진을 본 강백현이 방긋 웃으며 전화를 걸었다.
“표정이 좋아 보이네요.”
- 패션 관련해서 디자인 컨셉을 제대로 잡았거든요.
“디자인 컨셉이요?”
- 백현씨는 말해도 모를 거예요.
“모를 거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저도 어느 정도는 공부했거든요?”
- 요즘 전통적인 미니멀 디자인이 고착화되어 있거든요.
“미니멀 디자인?”
- 네. 디자인을 최소화하는 패턴이요. 제가 그걸 뒤집어봤어요. 그걸 보고 샬롯에서는 의견이 분분한 것 같아요.
“어떻게 디자인 하셨는데요?”
- 고착화된 미니멀 디자인을 타파하고, 아예 화려한 색감과 디자인으로 제품을 가득 채우는 거죠. 유럽에서는 제 디자인을 보고 너무 맥시멈하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그것 가지고 조금 의견 충돌이 있었는데, 다행히 로체 씨가 제 디자인을 밀어주겠다고 결정해주셔서 이번에 한국에 온 김에 동대문에서 컨셉으로 따올 수 있는 걸 확인 좀 해보려고요.
“네. 그것보다 성현 씨 지금 어디에요?”
- A게이트로 나오고 있어요. 왜요?
“손 흔드는 사람 보여요? 코트 입은 사람.”
- 네?! 잠깐. 백현 씨?
강백현이 전화를 끊고 김성현에게 다가갔다.
김성현이 게이트에서 나온 것을 확인한 박창현 비서는 강백현의 모습에 깜짝 놀라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와 아가씨를 관찰했다.
“오지 말라고 했잖아요.”
“그게 오라는 말하고 뭐가 틀려요?”
“네?”
“오지 말라는 말이 오라는 말이잖아요. 내가 온 게 싫어요?”
“아니, 딱히 그런 것까진….”
강백현이 가방을 끌고 오는 김성현에게 포옹을 시도했다.
김성현은 잠시 고민하다 끌고 오던 가방을 놓고 강백현의 포옹에 응했다.
그리고 김성현의 얼굴이 자연스레 백현의 얼굴로 향하자, 강백현이 씩 웃으며 말했다.
“이번엔 미니멈 하게 말고 맥시멈하게 가죠.”
박창현은 황당한 얼굴로 강백현과 김성현을 바라보았다.
‘강백현, 이 새끼, 일부러 게이로 오해받게 행동한 거네. 아가씨랑 언제부터였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