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뚝배기 깨러 왔습니다-98화 (98/139)
  • 뚝배기 깨러 왔습니다 98화

    사무실의 분위기는 조그마한 디테일의 차이부터 시작한다.

    “은혜 씨, 오늘 머리 자르고 오셨네요. 화사해 보이세요.”

    “아, 팀장님, 안 그래도 어제 미용실 다녀왔어요. 괜찮나요?”

    “네. 남편 분이 칭찬 안 하세요? 스타일이 굉장히 모던해서 엄청 좋아하실 것 같은데?”

    “우리 남편은 머리한 거 알아차리지도 못해요. 아마 일주일 지나도 모를 걸요?”

    “아, 유감이시겠어요.”

    “아니요. 오히려 이제는 없는 사람 취급하면 되니까 편해요. 팀장님, 제가 기혼자로서 조언 하나 해드리는데, 기왕이면 솔로일 때 즐기세요.”

    강백현은 조은혜 주무관의 말에 웃음을 머금으며 되물었다.

    “그래도 결혼하지 말라는 말은 안하시네요.”

    “결혼은 해야죠. 결혼은 원래 자식 보는 맛으로 하는 거예요. 우리 서진이, 기진이가 얼마나 예쁜데요. 한 번 보실래요?”

    업무 이야기만 나누던 사무실. 조은혜는 그동안 사무실 동료와 말을 섞지 않았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대화가 잘 통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김태웅은 워낙 쓰레기였고, 차우현 주무관은 나이가 많아서인지 뭔가 접근하지 못할 분위기였다.

    그런데 강백현 팀장은 조금 달랐다.

    배려심 깊은 행동과 목소리가 그녀의 일상을 털어놓게 하는 재주가 있었던 것이다.

    “우와, 진짜 은혜 씨 꼭 닮았네요.”

    “그런 말 많이 들어요. 아, 요즘 우리 애들이 로봇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해서 미치겠어요. 남자 둘이니까 하나 가지고 엄청 싸우고, 그래서 각자 다른 로봇을 사주면 서로 자기가 형 거, 동생 거 가지고 놀겠다고 싸워요.”

    “그래도 유튜브 볼 때는 조용해지잖아요.”

    “어? 그건 또 어떻게 아셨어요? 팀장님 혹시 유부남 아니에요?”

    “애들 관련해서는 저도 노하우가 있답니다.”

    보육원 봉사활동 경력만 쳐도 애들 몇은 키웠다.

    요즘 애들 관심사를 모르는 바가 아닌 강백현은 주부들과도 말이 잘 통했다.

    『자자~ 우리 감사팀 전달사항 있습니다. 내일 실장님이 회식 주관하신다고 합니다. 내일 약속 빼주시고, 약속 빼는 게 불가능하신 분은 저한테 살짝 말씀해주세요. 미리 말씀하신 분만 실장님께 대신 제가 욕을 먹겠습니다. 갑자기 생긴 사정은 거짓말로 간주하고 제가 욕을 해드리겠습니다. 참석여부 오늘 퇴근 전까지 알려주세요.』

    결과는 100% 참석.

    의외인 것은 처음 만났을 때는 까칠했던 김태웅은 자포자기 했는지 요즘 꽤 조용하다는 것.

    강백현은 그런 태웅의 속내가 궁금해 선배에게 물었다.

    “용규 선배, 태웅이 무슨 일 있어요?”

    [그냥 모든 일이 꼬였으니까 조용한 거지 뭐. 안 그래도 요 며칠 확인해봤는데 퇴근하면 그냥 소주 나발 불고 자더라.]

    “불쌍하네요.”

    [불쌍은 무슨, 그냥 뒈지면 좋겠구만. 그것보다 백현아.]

    “네. 말씀하세요.”

    [이어폰 빼고 잠깐 사람 없는 곳으로 가 봐. 할 이야기 있어.]

    “그냥 여기서 말씀하셔도 되는데.”

    [중요한 이야기니까 잠시.]

    “네.”

    강백현은 선배의 중요한 이야기라는 말에 자리에서 일어나 옥상 계단으로 향했다.

    최용규는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나 저승사자 수련생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저승사자 수련생은 뭐에요?”

    [그냥 조수라고 생각하면 돼. 원귀 제압할 때 같이 싸우는 그런 역할일 거야. 저승사자랑 같이 다니면서 어느 정도 소정의 시험을 통과하면 저승사자가 될 수 있는 그런 과정인가 봐.]

    강백현은 선배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해서 도움 될 게 있나요?”

    [나한테 도움 될 건 없지.]

    “그럼 왜 해요?”

    [너나 성현이한테 도움이 되니까.]

    “네?”

    [아무튼 평소하고 달라진 것은 없어. 다만 업무수행 중에는 불러도 안 나오니까 알아둬. 아- 그리고 몸조심하고. 물론 위험할 때는 내가 곁에 있을 거지만, 너도 스스로 조심해.]

    “알겠습니다. 고마워요. 선배.”

    최용규는 그 말을 끝으로 다시 상공으로 올라갔다.

    [이야기는 다 끝났나?]

    [네. 어르신. 약속대로 알려주세요. 성현이의 죽음과 백현이의 죽음이요.]

    [그래. 일단 김성현을 찾아보지.]

    살생부에서 김성현을 찾았다.

    [10년 내로는 안 죽네.]

    [네? 우리 성현이 죽는다면서요.]

    [사람은 언젠가 죽어.]

    [아~ 어르신! 저 성현이 때문에 수련생으로 들어간 거라고요. 아- 취소하겠습니다.]

    [아서라. 이미 두루마기에 영혼의 날인까지 다 찍었는데. 김성현이 죽는 날까지는 죽었다 깨어나도 수련생 못 그만둔다.]

    저승사자 이성복의 말에 최용규가 황당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아~ 어르신! 말씀이 다르잖아요.]

    [병신년 일월 이일 자시.]

    [네?]

    [네가 알고 싶어하던 또 다른 자의 죽음. 아마 이름이 강 자, 백 자, 현 자 였지?]

    [백현이가 다음 주에 죽는다고요?]

    [살생부는 거짓말을 하지 않아. 물론 운명이 바뀌는 경우도 분명 있지. 하지만 그에 대한 반대급부는 반드시 있어. 어떻게 하겠나? 운명을 바꾸겠나? 아니면 따르겠나?]

    강백현의 죽음과 삶은 이제 최용규의 손에 달려 있었다.

    [제가 어떻게 하면 됩니까? 반대급부는 또 뭐고요?]

    [원귀 한 놈만 잡으면 돼. 그놈. 산 자의 몸을 제물삼아 이승에 남아있는 그놈을 잡으면 운명을 바꾼다 해도 용서 받을 수 있지.]

    최용규가 손을 벌벌 떨었다.

    [저번에 폐가에 살던 그 원귀 말씀하시는 거군요.]

    [그래. 그 놈한테 저승사자 여럿 당했다. 그 놈을 없앨 수 있으면 운명을 바꾸는 죄악을 저질러도 용서 받을 수 있겠지.]

    [그 놈과 싸우면 제가 죽을 수도 있겠네요.]

    [이놈아, 재수 없는 소리 그만해. 마음의 결정이 끝났으면 가자고.]

    이성복의 재촉하는 말에 최용규가 다시 되물었다.

    [진짜 죽을 수도 있는 거겠네요?]

    [아~ 옛끼 이놈아, 싸워보지도 않고 어떻게 알아?]

    [아니, 어르신이 말씀하셨잖아요. 저승사자 여럿 당했다고.]

    [그냥 가자? 응? 좋은 말로 할 때 원귀 잡으러 가자고. 응?]

    이성복이 최용규의 귀를 붙잡고 끌고 가기 시작하자, 최용규가 고통으로 소리를 질렀다.

    [아, 아파요. 살살, 살살.]

    [영혼이 뭘 아파? 영혼 반쪽 날아가도 살아남는 게 우리야. 시간 끌지 말고 빨리, 해가 떠 있을 때 싸워야 유리하다.]

    [갑니다. 가니까 귀는 놓고 가시죠. 갑니다.]

    * * *

    강백현은 부모님과 오랜만에 오붓한 시간을 보냈다.

    처음에는 너무 비싸 부담스러워 하시는 부모님의 표정을 보며 마음이 아팠다.

    그런데 소고기를 드시면서 표정이 풀어지는 걸 보니 기분이 좋아졌다.

    “소고기 왜 이렇게 고소해?”

    “맛있네. 진짜 맛있어. 아들이 사줘서 그런가?”

    당연히 맛있을 수밖에. 국내에서 가장 높은 등급인 투쁠 소고기였다.

    처음에는 한우불고기만 먹으려고 했는데, 너무 좋아하시는 모습에 한우 안심과 등심도 시켰다.

    정육점 식당이라 가격은 그리 많이 나오진 않았다. 토탈 15만원.

    3명이서 소고기를 먹은 것 치고는 많이 나온 게 아닌데 부모님은 괜히 마음 아프게 미안해하셨다.

    “커피 마시러 갈까?”

    “아니에요 엄마. 사실 밥 먹고 갈 곳이 있어요. 그곳으로 모실게요.”

    가족 3명이 차를 타고 간 곳은 사진 스튜디오.

    목적은 가족사진을 찍기 위해서다.

    백현의 엄마는 스튜디오 방문에 놀란 눈으로 물었다.

    “갑자기 사진은 왜?”

    “저 사무관 됐잖아요. 사무관 된 기념으로 가족사진 찍고 싶었어요.”

    “아-. 그럼 엄마가 낼게.”

    “아니에요. 제가 낼게요. 집에 걸어둘 거예요.”

    “엄마가 낸다니까? 얼마에요?”

    “액자 하실 거죠? 26만원입니다.”

    “네?”

    가족사진 액자 가격이 무려 26만원.

    생각보다 비싼 가격.

    경비원을 하는 백현의 아빠와 식당일을 하는 엄마에게는 너무나 부담스러운 금액.

    “가자. 사진 필요 없다. 너무 비싸.”

    “그래. 소고기도 부담스러웠는데, 사진까지, 이렇게 돈 쓸 필요 없어. 장가갈 돈 모아야지. 왜 이런 데 써.”

    “아아, 얼른 찍으세요. 여기까지 왔는데 또 이러실 줄 알았다. 사장님, 저희 예쁘게 찍어주세요.”

    “네. 포즈 잡으시죠.”

    3일 뒤 액자를 받으러 오라는 사장의 말에 내심 기분 좋으면서도 미안해하는 엄마와 아빠의 얼굴을 본 백현이 말했다.

    “걱정 마세요. 5급 공무원, 월급 많이 받아요. 저 연봉 4000 넘어요.”

    “그래도 이렇게 돈 헤프게 쓰면…….”

    “헤픈 거 아닙니다. 아, 미안하면 엄마가 커피는 사요. 아빠는 디저트 사고.”

    커피숍에서 그 날의 일상을 마무리하는 백현이 생각했다.

    ‘회식 미루고 부모님하고 있길 잘했다. 정말 기분 좋아보이셔.’

    * * *

    부주시의 특별감사에 따른 징계결과가 문서로 접수됐다.

    한바탕 언론에서 난리를 쳐서인지, 선관위와 감찰, 경찰이 합동해서 조사한 덕인지는 몰라도 징계 수위는 징계 양정기준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파면 3, 해임 2, 정직 5, 감봉 31, 경고 3, 혐의없음 2.

    혐의 없음 2명을 살펴보니 전임자가 잘못한 케이스.

    “팀장님, 좀 더 완벽했어야 되는데 죄송합니다.”

    차우현 주무관은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곧장 사과를 해왔다.

    “아닙니다. 회계 파트가 일일이 쳐다보기 쉬운 것도 아니고, 금전사고가 난 시기는 뒤쪽이어도 그 이전부터 사고가 난 상황일 수도 있는 거니까 쉽게쉽게 파악되는 건 아니죠. 그래도 2건에 대해서 억울한 분들의 누명은 벗어져서 다행이네요.”

    “네. 대부분 상급자가 책임을 하급자에게 떠민 경우였습니다. 이제 막 임용된 초임공무원들이었네요. 제가 후배들한테 안 좋은 기억을 심어준 건 아닌가 반성하고 있습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저도 따로 전화를 해서 오해 없도록 할게요. 원래 감사라는 게, 조사가 50%지 않습니까? 그 짧은 기간, 특별감사를 통해 그 정도 발견한 것도 전 대단하다고 생각하는데요.”

    강백현은 바로 전화를 걸어 혐의가 없는 공무원들의 오해를 불식시켰다.

    “공직기강감사팀장 강백현입니다. 김준우 주무관님 되시죠?”

    - 아, 선배님. 안녕하세요.

    “응. 준우야. 징계대상에 포함되었었다며, 오해해서 미안하다. 마음고생 많았지?”

    - 아니에요. 선배님 덕분에 일 짬당하던 것도 다 원상복구 됐고, 오히려 요즘에는 썩은 선배들이 줄줄이 다 징계 받은 덕분에 갑질도 안 당하게 됐고요. 편해요.

    “그렇게 생각해주면 고맙고. 나 사실 준우 너 2번 밖에 못 봤는데 선배라고 불러주니까 마음 한켠에 미안함이 생기네.”

    - 아닙니다. 선배님. 진짜 우리 부주시에서 영웅이에요. 진짜 부러워요.

    “준우 너 우리 학교 3년 후배지?”

    - 네. 부주고등학교 제가 80기고 선배가 77기죠.

    “너도 안 늦었다. 5급 공무원 빨리 시험 봐.”

    - 에이, 저 그럴 능력 안 돼요.

    “나도 그런 생각했어. 아무튼 혐의 없음 나와줘서 고맙고, 앞으로도 있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 해줘. 나도 공직기강 확립 및 부정부패 척결 관련해서 지금 이 자리에 있는 동안 최선을 다 할게.”

    - 네. 감사합니다. 고생하셨습니다. 연락 주셔서 감사합니다.

    강백현은 겨우 2번 얼굴을 봤을 뿐인 후배 공무원의 바른 말에 많은 것을 느꼈다.

    ‘다행이다.’

    그리고 다음 전화. 백현이 일했던 부제동장이다.

    “안녕하세요. 동장님, 잘 지내시죠?”

    - 우리 강 주무관, 아니 이제 강 사무관. 오랜만이야.

    “전화로 인사드리니까 정말 죄송하네요. 혐의 없음 결과 확인했습니다.”

    - 그래. 나 뇌물 안 줬다니까. 뭔 자꾸 뇌물을 줬다고.

    “죄송합니다. 일단은 계좌이체 관련 건이 있어서 고발조치를 했나 봐요.”

    - 그거 내가 바로 이체한 그 사장놈한테 돌려줬어. 30분 만에 돌려줬을 걸?

    “네. 그거 소명한 것 확인되셨으니까 혐의 없음이 뜬 거죠. 아무튼 부제동은 별 일 없죠?”

    - 없지. 잘 지내고 있어?

    “네. 아! 동장님, 청소하시는 분들 휴게실 만들어주셨더라구요. 감사해요.”

    - 하하하, 네 마지막 부탁인데 들어줘야지. 당연한 걸.

    “아닙니다. 신경 쓰지 않으면 쉽지 않았던 걸 텐데, 들어주셔서 감사해요. 나중에 한 번 들릴게요.”

    - 그래. 지금은 홍성에 살고 있나?

    “부주, 집 그대로 살아요. 출퇴근 합니다.”

    - 그럼 오늘 소주 한 잔 하지. 기분도 좋은데.

    “하하, 오늘은 회식 있습니다. 나중에 연락드릴게요.”

    - 그래. 그래. 강 주무관, 아니 강 사무관! 파이팅!

    “네. 동장님도 파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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