뚝배기 깨러 왔습니다 96화
강백현은 회의실을 나오며 한숨을 내쉬었다.
어차피 3등, 융통성이 없다, 그런 편견이 쓸데없는 갈등을 만든다.
공무원 조직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대한제국, 그 전에는 조선시대, 고려, 삼국시대부터 하나하나 기틀이 잡혀진 것이다.
나라의 녹봉을 받는 관료조직들의 방만함과 나태함은 언제나 문제였다. 그것을 해결하는 것은 왕과 충신이었는데, 그들이 흔들리면 결국 나라가 망하고, 백성이 궁핍해졌다.
‘왜 정해놓은 틀에서 벗어나려는 거지? 감사실 소속이면서 왜 이런 기본적인 것까지 협상을 하려는 거냐고.’
물론 경제적인 논리로만 보면 대상이 겨우 2명밖에 없는 부서가 S등급을 받는 것은 아깝다.
인원이 많은 쪽이 S등급을 받아야 전체적으로 받는 금액이 늘어나는 게 맞다.
하지만 그렇게 경제적인 논리로만 돌아가서는 안 된다.
이건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게 아니었다.
모든 게 국민들의 피땀 어린 세금에서 나오는 돈. 그것을 합리적이라는 둥, 당연히 그런 관례라는 둥의 핑계로 합의를 보려는 그 태도가 문제였다.
‘볼수록 다들 개새끼들이네.’
강백현은 입에서 욕이 절로 나왔다.
다들 깨끗하고 청렴한 척 하지만, 알고 보면 자기들한테 유리한 대로 해석하는 합리화를 융통성이라고 여기고 있다. 그걸 스스로 자각하지 못한 어리석은 자들을 보면 자연스레 욕이 나왔다.
그런데 사무실을 나오는 강백현의 손을 오복주 감찰팀장이 잡는다.
“강 팀장, 그렇게 하고 나가는 게 어디 있어? 다시 들어와.”
“제 결정은 바뀌지 않습니다.”
“아유~ 사람이 인마. 좀 들어. 당신 부주시장으로부터 상처 받은 거 잘 알고, 공무원 조직 싫어하는 것도 알아. 그래도 우리 같이 일 하려면 이런 식으로 나가면 안 되잖아.”
오복주 감찰팀장의 말에 최기철 조사팀장이 말을 거들었다.
“그래. 한솥밥 먹을 텐데, 우리끼리 이러면 안 돼지. 응? 한 번 협조하고 다 같이 실장님께 들어가자고.”
“알겠습니다. 실장님께 성과상여금 관련해서 같이 들어가겠습니다.”
“그래. 서로 각 세울 필요 없잖아?”
“아~ 강백현 팀장이 이렇게 나오니까 참 좋네. 까칠하지 맙시다. 응?”
강백현은 헛웃음을 간신히 참아냈다.
조사팀장이나 감찰팀장이란 직책은 공무원의 비위사실을 적발하고 관리하는 역할인데 저딴 말을 지껄이니 화가 난다.
하지만 백날 말해봐야 소용이 없었다. 그래서 강백현은 그들과 같이 실장님께 보고를 올리러 들어가기로 했다.
물론, 성과상여금에 대해 그들과 같은 의견은 아니었다.
실력대로, 공정하게 평가해달라고 말씀드릴 생각이니까.
[왜 같이 들어가? 안 들어가는 게 좋은 거 아니야?]
최용규가 강백현의 결정에 의구심을 품었다.
그러나 강백현은 오히려 이걸 기회로 삼았다.
‘고태준 실장님의 그릇도 확인하고 싶네요. 그 둘의 이야기를 듣고 어떻게 결정을 내리느냐에 따라 고태준 실장을 대하는 제 자세가 변화될 것 같거든요?’
고태준 실장에 대한 평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는 명백한 야당 지지자로서 강백현을 이용하려 한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그가 어떤 사상을 가지고 있는지 어떤 판단을 내리는지에 따라 그를 어떻게 대할지 변할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15분 후, 도지사와 이야기를 나누고 사무실로 돌아온 실장 앞에 세 사람이 기다리고 있다.
“다들 뭐 있나?”
“따로 보고 드리고 싶은 일이 있습니다.”
“팀장 셋이 같이?”
“네.”
“들어오지.”
실장은 영문도 모른 체, 팀장 셋이 나란히 자신을 찾아준 것에 고마움을 표시했다.
“팀장 셋이 벌써부터 이렇게 모여서 찾아온 것을 보니 기분이 좋네. 다들 통성명 하는 자리도 없었는데……. 일단 다들 앉지. 먼저 찾아왔는데 뭐라도 마시지.”
고태준 실장이 온장고에 들어있는 커피와 꿀물을 꺼내 각 팀장들에게 돌렸다.
캔커피를 고른 고태준 실장은 따뜻한 음료를 음미하며 팀장들이 왜 찾아왔는지에 대해 잠시 고민했다.
‘아……. 회식이군. 연말이기도 하고, 강백현 팀장도 새로 왔는데 제대로 된 환영식도 없었어. 그것 때문인가?’
고태준은 자신의 감각을 칭찬했다.
‘역시 사람은 부하직원들의 감정을 잘 헤아려야 돼. 그게 맞는 거지.’
그래서 말했다.
“안 그래도 오늘 자네들한테 회식 이야기를 꺼내려고 했었네. 연말 성과분석 회의도 끝났고 다 같이 뭉치는 자리도 필요하겠지.”
그런데 분위기가 조금 어색하다.
“실장님, 성과상여금 관련해서 저희 팀장 셋이 드릴 말씀이 있어서 찾아온 겁니다.”
“어? 성과상여금?”
“네. 올해 초에 오셔서 잘 모르시겠지만, 2년 전에는 조사팀이 S등급이었고, 작년에는 감사팀이 S등급이었습니다. 그래서 올해는 저희 감찰팀이 S등급을 받아야 됩니다.”
“조사팀은 2등인 A등급 차례이고요.”
오복주와 최기철의 콜라보.
강백현은 그 둘의 말에 고태준 실장의 반응을 지켜보았다.
그는 뭔가 뚱한 표정으로 오복주와 최기철을 바라보았다.
“성과상여금이 언제부터 그렇게 했던 거지?”
고태준 실장의 질문에 오복주 감찰팀장과 최기철 조사팀장이 자신의 주장을 관철했다.
“7년 전부터 그래왔습니다. 저희 감찰팀 직원들은 전부 S등급 받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저희 조사팀도 올해는 전부 A등급 받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실장님.”
고태준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잠시 계산을 했다.
일단 걸리는 건 2가지.
첫째, 도지사님이 감사팀에 성과상여금 1등을 주라는 지시가 있었다.
이건 다시 정정보고 하면 되는 부분이다.
그리고 둘째, 둘의 태도를 보아할 때, 감찰팀과 조사팀은 이 부분에 있어서 이의가 없어 보인다. 그런데 감사팀의 의견이 궁금하다.
고태준 실장이 강백현을 바라보며 물었다.
“강백현 감사팀장, 성과상여금에 대한 의견은?”
“저는…….”
강백현이 대답을 머뭇거리자, 오복주 감찰팀장이 갑자기 끼어들어 대신 대답했다.
“감사팀은 올해 3등인 B등급 받을 차례이기도 하고, 대상자 중 한 명은 사고를 쳐서 정직이라는 징계를 받기도 했습니다.”
“맞습니다. 그로 인해 저희 공직기강감사실의 위상이 땅 끝까지 떨어지기도 했죠. 다 실장님이 계셨을 때 있었던 일입니다.”
고태준 실장은 두 명 팀장의 말에 동의의 의사를 표했다.
하지만 강백현이 문제였다.
“저는 업무실적 가지고만 구분해주셨으면 합니다. 실장님과 도지사님이 저희 팀을 생각하는 점수와 감찰팀을 생각하는 점수, 조사팀을 생각하는 점수가 있으실 겁니다. 그냥 전 그대로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게 3등이라도 괜찮다는 소리인가?”
“네. 감사팀의 업무실적이 3등이라면 3등을 받아도 괜찮습니다. 하지만 1년 단위로 돌려먹기 하는 행태는 절대 인정 못합니다.”
돌려먹기란 말에 오복주 감찰팀장이 강백현을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최기철 조사팀장도 마찬가지였다.
순간 싸늘해진 분위기.
그때 고태준 실장이 자신의 의견을 정리한 후 한마디를 꺼냈다.
“그래. 돌려먹기는 아니지. 성과상여금의 최초 의도는 그게 아니니까.”
고태준 실장의 말 한마디로 분위기가 굉장히 심각해졌다. 그걸 환기시키기 위해 고태준이 말했다.
“그런데 강 팀장은 욕심이 많은 것 같네. 부임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성과상여금에 욕심을 내다니. 그렇게 안 봤는데……. 실망이군.”
강백현은 고태준 실장의 실수에 호기를 잡았다.
“저는 올해 성과상여금 관련해서 해당사항이 없습니다. 연수원 기준으로 성과상여금을 받아서 125%로 고정지급 받거든요. 이건 저를 위한 게 아니라 저희 팀원들을 위해서 주장하는 겁니다.”
강백현이 판을 흔들자, 오복주가 참질 못하고 자신의 의견을 토해냈다.
“그렇습니다. 강백현 팀장은 해당사항이 없습니다. 감사팀은 총 4명인데, 부임 한 달 미만 대상자 1명, 징계대상자 1명이 속해 있어, 성과상여금 받는 사람은 2명밖에 안 됩니다. 반면 저희 감찰팀은 12명이나 대상자여서, 저희가 S등급을 받는 게 감사실의 사기증진이나 금액적으로도 이게 맞습니다.”
“저희 조사팀 10명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대상자 2명밖에 안 되는데 그 팀이 S등급을 받으면 다들 난리칠 겁니다.”
두 팀장의 주장이 확고하다. 하지만 고태준은 그 두 명의 주장의 논리가 강백현 팀장의 논리에 미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두 명은 팀의 성과가 아닌 차례라는 주장을 하고 있고, 한 명은 성과로 달라고 주장하고 있다.
각 팀의 업무성과 서열이 아직 정해지지도 않은 상황에서 강백현 팀장의 주장은 아주 합리적인 것으로 보였다.
더구나 그는 자신의 팀이 1등을 한다고 해도 얻을 수 있는 이익이 전혀 없었다.
단지 불이익이라면 팀의 사기 저하.
그것 또한 저들이 주장하는 대로 비위사실이 나와 어쩔 수 없었다는 핑계로 팀원들을 설득하면 그만인 것이다.
그럼에도 왜 강백현 팀장은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을까? 그게 궁금했다.
“강백현 팀장, 주장을 굽힐 생각은 없는 건가?”
“네. 이게 원리원칙대로 하는 일이니까요. 차례대로 받을 거면 성과상여금 자체를 없애버리는 게 맞습니다. 이렇게 중구난방으로 주는 건 공무원 전체조직을 위해서도 결코 좋지 않습니다. 오복주 감찰팀장님이나 최기철 조사팀장님의 행동처럼 분란만 조장할 뿐이죠.”
오복주와 최기철이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자신의 속내를 말했다.
“와— 어떻게 말을 그렇게….”
“강 팀장, 말이 좀 심한데?”
그러자 고태준 실장이 강백현을 나무랐다.
“강 팀장, 주장이 조금 과해.”
“……”
고태준 실장의 태도에 오복주와 최기철이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했다.
‘그래. 역시 실장님이야.’
‘이렇게 가는 게 맞는 거지. 강 팀장 저거 개념 존나 없네. 진짜.’
그런데 고태준 실장의 대답은 의외였다.
“하지만 꽤나 설득력 있는 주장이었네. 군더더기 없는 표현이었고. 성과상여금은 업무성과에 따라 차등분배하게 되어 있네. 나눠먹기든 돌려먹기든 그런 말이 우리 공직기강감사실의 구성원의 입에서 나왔다는 사실 자체가 꽤나 실망스럽군.”
고태준 실장의 발언에 최기철과 오복주의 고개가 절로 숙여졌다.
‘아, 씨바, 젓 됐다.’
‘강 팀장, 저 새끼 때문에 망했네. 저 친구 도대체 왜 저러는 거야?’
“성과상여금은 도지사님과 상의해서 업무성과대로 측정될 거야. 나 고태준이 감사실장으로 있는 한, 순서대로 받는 일은 절대 없을 걸세. 다들 돌아가지.”
최기철과 오복주가 고개를 숙여 오늘 있었던 일을 사과했다.
“알겠습니다. 실장님, 물의를 일으켜서 죄송합니다.”
“실장님, 정말 죄송합니다.”
“죄송은 무슨, 오늘 성과분석회의도 했으니 곧 결과는 나올 게야. 자네들 마음도 알았으니, 거기에 대해 좀 더 고민해보고 빨리 알려주지. 상도, 매도 빨리 받는 게 나으니까.”
“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실장님.”
최기철과 오복주가 실장실 밖으로 빠져나갔다.
강백현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럼 나가보겠습니다.”
“그래. 아니, 강 팀장.”
“네. 실장님.”
“자네는 좀 앉지.”
“어떤 일 때문에 그러십니까?”
“혹시 자네 여자 친구는 있나?”
“좋아하는 사람은 있는데, 아직 여자 친구는 아닙니다.”
“음…… 애매하군.”
고태준 실장의 발언의 이유가 좀 궁금했다.
“뭐 때문에 그러십니까?”
“내 딸이 있는데, 한 번 만나보면 어떤가 싶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