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뚝배기 깨러 왔습니다-95화 (95/139)

뚝배기 깨러 왔습니다 95화

크리스마스 이브, 그리고 성탄절이 지나고 출근하는 날이 찾아왔다.

오늘은 충남도청 공직기강감사실의 연말 성과분석회의 날.

처음으로 도지사를 대면하는 날이다.

이날의 주인공은 단연코 공직기강감사실의 리더를 맡고 있는 고태준 감사실장이었다.

고태준 실장이 회의실에서 자신의 구성원들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다들 자리에 앉았죠?”

“네. 선배님.”

5급 공채 출신은 실장을 선배라고 부르고.

9급, 7급 출신은 선배님이라는 용어 대신 직급을 부른다.

“실장님, 혜지 씨는 오늘 휴가 때문에 참석 못하게 됐어요.”

“알았어요. 감기몸살 때문에 아프다는 문자 받았어요. 많이 아프다고 하나요?”

“성과분석 끝나고 연락해보겠습니다.”

선배님, 실장님, 이런 호칭은 공무원 사이에 통일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각 기관별로, 지역별로, 개인별로 부르는 호칭이 전부 다르다.

회의실에 모인 멤버 중 하나인 강백현은 1년에 한 두 번 밖에 볼 수 없는 실장의 브리핑을 기다렸다.

실장이 문 밖에서 도지사가 오기를 기다리고, 그 동안 회의실에서는 서로 처음 보는 사람끼리 인사가 오고 갔다.

“강백현 팀장님? 감찰팀 서예원입니다. 처음 인사드리네요. 잘 부탁드려요.”

“아, 잘 부탁드립니다. 저번에 인사차 찾아뵈었었는데 휴가 중이셔서 인사를 못 드렸네요.”

“후후, 잘 지내봐요.”

“네.”

강백현에게 호의적으로 나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예의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사람도 있다.

“강 팀장, 먼저 인사를 안 하네요?”

“네? 아, 아닙니다. 안녕하세요. 오복주 감찰팀장님, 저번 주에 뵈었었죠?”

백현에게 말을 건 사람은 부주시장 관련해서 감찰활동을 같이 진행했던 감사실 내 감찰팀장 오복주였다. 그는 7급 공채로 합격해서 15년 만에 5급 사무관 자리에 오른 사람. 나이는 강백현보다 10살 위인 42세였다.

“감사팀 최근 선 씨게 넘는 거 알죠?”

“네?”

“공직생활은 원래 적당히 하는 겁니다. 있는 듯 없는 듯, 차분히 주어진 일만 하시면 돼요. 알아서 찾아서 하지 마시고요.”

“아- 넵. 저는 대충 하는 쪽하고는 성미가 안 맞아서요. 자주 부딪히게 되겠네요.”

“뭐?”

“저한테 맞춰주시면 조금 덜 부딪힐 수도 있고요.”

“뭐, 이런 놈이 다 있어?”

강백현의 성격을 익히 알고 있는 차우현 주무관이 넉살좋은 얼굴로 오복주 팀장을 만류했다.

“아따! 팀장님, 살살 합시다. 서로 각 세울 거 없죠?”

“아, 쟤 좀 이상하지 않아?”

“이상하지만 나쁜 사람은 아니죠. 하하, 좋은 게 좋은 겁니다.”

강백현은 차우현의 말을 듣고도 그냥 흘려 넘겼다.

어차피 감사실 내에서 인간관계를 맺는 이유는 단 하나였다.

업무를 똑바로 하기 위해, 부정부패를 바로 잡기 위해서다.

그 직무를 부정하는 사람에게까지 호의를 비출 정도로 강백현의 성격은 부드럽지 않았다.

그때, 회의실로 도지사가 들어왔다.

“오오오오, 다들 반가워요. 고 실장은 자주 보니까 그렇다쳐도, 여기 각 구성원 분들은 다들 오랜만이네.”

도지사는 정원 26명 중 참석한 25명에게 일일이 악수하며 인사를 건넸다.

굉장한 호감형.

강백현이 얼굴에 웃음이 가득한 그의 모습을 묵묵히 관찰했다.

[도지사는 나쁜 사람 아니야. 꽤 합리적이고 스마트하기도 하고.]

그는 한 사람, 한 사람 악수를 건네며 자신의 반가움을 전했다.

굉장히 짧은 시간이었지만 사람들과 눈을 마주하며 인사를 건네는 그의 모습, 그건 부주시장의 고압적이고 이기적인 행동과는 다소 거리가 멀어 보이긴 했다.

‘첫 인상으로 모든 것을 판단할 필요는 없어.’

충남도지사와 강백현이 인사를 할 차례가 다가왔다.

그는 강백현의 이름을 공무원 출입증을 통해 확인하더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강백현 팀장, 요즘 수고가 많아요.”

“처음 뵙겠습니다. 도지사님.”

“네. 활약 많이 듣고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내년에도 계속 봤으면 좋겠네요.”

내년이란 말에 강백현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

‘아, 내년 선거 말씀하시는 거구나.’

도지사가 바뀔 수도 있다. 충청도는 야당, 여당의 집권세력이 따로 없기로 유명하다.

일부 타 도에서 한 정당만 미는 것과 달리 민심이 쉽게 바뀌는 곳이기 때문에 어떤 후보가 나오느냐, 그 해의 분위기가 어떠냐에 따라 선거의 분위기가 확확 바뀌곤 한다.

사실 강백현 입장에서 그동안 선거는 관심 외 분야였다.

그들의 정책에 관심 갖지 않았고, 그들이 뭘 하는지 크게 개의치 않았다.

하지만 부주시장으로 인한 지난 3년의 세월이 그를 변하게 만들었다.

올바른 정치인이 올바른 사회를 만든다.

‘과연 그는 어떤 인물일까? 어떤 가치관과 포부를 가지고 있을까?’

내심 궁금해졌다.

연말 성과분석 회의는 공직사회 특유의 느릿느릿 문화를 대변하고 있었다.

지루하기 짝이 없는 30분간의 PPT.

맨 처음은 충청남도 도정방침인 깨끗한 공직생활이나 민생, 환경의 개선에 대해 다루고, 그 후에는 감사실의 지난 1년 활동에 대한 자료가 기사 및 자체 사진자료가 첨부되어 보기 좋게 나열되었다.

도지사는 밝은 목소리로 똑같은 대사를 읊어댔다.

“다음.”

“네. 좋습니다.”

“다음장 넘겨주세요.”

자료를 한참 보던 도중 1월~12월 충남도청 감찰활동 및 비위사실 통계표가 등장하자 충남도지사가 브리핑을 하는 실장의 말을 막았다.

“아아아, 잠깐만요. 감사활동 중에 특이한 게 있네요. 12월 징계위원회 회부된 공무원들이 왜 이렇게 많지요?”

도지사의 말에 모든 시선이 고태준 실장에게 향한다.

“이번 부주시 특별감사에서 많은 미흡한 부분이 적발되었습니다. 강백현 팀장이 본래 부주시 공무원 출신이다 보니 내부 정보에 대해 많이 알고 있었고, 그 부분을 파고든 결과 부주시 공무원 자체가 상당히 곪아있었다고 생각됩니다.”

“그렇군요. 부주시라……. 알겠습니다.”

부주시장은 야당인 도지사와 달리 여당 소속이었다.

그래서일까? 더 이상의 발언 없이 넘어갔다.

그 후에는 딱히 관심 가질만한 건 없었다.

내년도 당면업무와 충남도청 도정활동을 위해 앞으로 열심히 노력하겠다는 것뿐.

“그래요. 아, 신년 업무보고는 이것으로 같이 갈음하도록 하지요. 혹시 새로운 도지사가 당선되면 그때, 그 사람한테 보고하는 것으로 하는 게 좋겠어요.”

충남도지사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 그러자 고태준 실장이 자연스럽게 도지사에게 아부발언을 건넨다.

“당연히 당선되실 겁니다. 4년 더 하셔야죠.”

“선거는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니까요. 오늘은 여기까지 할까요?”

도지사는 그 말을 끝으로 실장에게 어투를 바꾸었다.

공석에서는 존댓말이지만, 사석에서는 반말이다.

“아 맞다. 고 실장, 성과상여금 너희만 안 올렸더군.”

“아, 제가 병가를 내는 바람에 아직 처리를 못했습니다.”

“성과상여금. 그건 내 방으로 가서 이야기 하지.”

도지사가 회의실에서 일어나자, 실장이 일어나서 그를 수행한다.

공직기강감사실 사람들은 실장이 떠나자 하나 둘 자리를 뜨기 시작했다.

25명이라는 인원이다 보니 관리도 잘 되지 않고, 같은 감사실 소속이지만 팀별로 활동하기에 서로에 대한 관심이 부족하다.

그런데 강백현과 약간 충돌이 있었던 감찰팀장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팀장님들은 남으시죠.”

“네?”

“아까 도지사님이 성과상여금 관련해서 언급하셨는데 그에 대해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네?”

“이번에 성과상여금 등급 관련해서 저희 감찰팀이 S등급을 받았으면 합니다. 이의 있으실까요?”

강백현은 감찰팀장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감사실은 김태웅 주무관의 비위 적발 건도 있었고, 거기에 강백현 팀장은 전입 온지 얼마 안 돼서 교육기관 기준으로 기본 본봉의 130% 지급이라 해당 사항 없을 겁니다. 그러니 이번은 양보하는 게 맞는 것 같고, 민원조사팀은 작년에 S등급 받았으니까 이번에는 저희 감찰팀인 것 같은데, 다들 그렇게 생각하죠?”

감찰팀장 오복주의 말에 조사팀장 최기철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게 맞겠네. 그럼 우리가 A고 감사팀이 B등급 받으면 되겠네. 혹시나 바뀌면 다시 분배하면 되고. 어차피 새로 오신 감사팀장은 해당사항 없으니까 문제없잖아. 그렇게 합시다.”

감찰팀과 조사팀장은 서로 궁합이 잘 맞았다.

순서를 정해 자체 등급을 정하는 감사실의 민낯. 이를 본 강백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이의를 제기했다.

“그건 불가능하겠는데요?”

“뭐?”

“저희는 그냥 도지사님이 주시는 대로 등급을 받겠습니다. 1등을 주시면 1등을 받고 2등을 주시면 2등을 받고, 3등을 주시면 3등을 받겠습니다. 거기에 대해서는 협상의 대상이 아닌 것 같은데요?”

강백현의 주장에 오복주 감찰팀장이 헛웃음을 터트렸다.

“이봐. 자네가 우리 도청의 룰을 몰라서 그런 것 같은데, 우리는 다 순서대로 돌아가면서 받아. 이번 차례가 우리 감찰팀이고, 내년이 자네들 감사팀 차례고. 알겠어?”

“그래. 새로 온 강 팀장, 뭔가 불합리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데 여기선 이게 당연한 거야. 그리고 어차피 팀원들 포함해봐야 감사팀은 총 4명밖에 안 되잖아. 거기에서 강 팀장은 교육기관 소속으로 성과상여금 받으니까 해당사항 없고, 거기 김태웅 주무관은 징계 받아서 성과상여금 대상 아니라서 어차피 차우현하고 조은혜 주무관 밖에 해당사항 없는데, 2명 받는 곳에서 1등이나 2등 받으면 돈 아깝잖아. 합리적으로 생각해도 이게 맞아. 우리 셋이 다 같이 실장님 만나 뵈러 가자고. 3명 다 가서 말씀드리면 실장님도 어떻게 못하실 거야.”

오복주와 최기철의 말에 강백현이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그때, 최용규가 강백현의 곁에 나타나서 그가 원하는 정보를 알려주었다.

[백현아, 도지사가 너희 감사팀 성과상여금 1등급 주라고 실장에게 지시했다.]

‘정보 고마워요. 선배. 차우현 주무관과 조은혜 주무관을 위해서라도 더 물러날 수 없겠네요.’

그때 최기철이 나이 어린 강백현에게 강요하듯 말했다.

“이봐! 뭘 고민해? 자네 팀은 꼴지가 결정되어 있다니까? 그냥 들러리만 서면 돼.”

생각해보니 부주시도 성과상여금에 대해 좋지 않은 관례가 있었다.

그들은 성과상여금을 각 경쟁자들을 취합하여 1/n로 나눈다.

그래서 다들 같은 금액을 분배해서 받는다.

성과상여금은 본래 업무 성과에 따라 지급하는 보너스 개념이었다.

그런데 그런 보너스를 자체 취합하여 같은 금액으로 분배함으로써 성과라는 것 자체를 의미 없게 만드는 병폐가 있었던 것이다.

충남도청은 개인 구성원별로 등급을 나누지 않고 팀별로 나눴다.

즉 팀별 경쟁. 거기에 균등하게 나눠 먹는 게 아니라 돌려먹기.

결국 조삼모사다.

강백현이 자신의 결심을 입에 올렸다.

“저는 두 분과 성과상여금 관련해서 협조할 생각은 없습니다. 해당 사항은 제 가치관에 맞지도 않고요. 그럼 전 업무 때문에 이만 가보겠습니다.”

“야! 너희는 어차피 3등이라니까.”

“아, 저 친구 왜 이래? 왜 이렇게 융통성이 없는데?”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