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뚝배기 깨러 왔습니다-93화 (93/139)
  • 뚝배기 깨러 왔습니다 93화

    2015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

    정모한지 3일 밖에 안 된 채팅방에 글이 올라왔다.

    [조성환] : 아, 금천구청 문화체육과 엄청 빡세네요. 6개월 실무과정 토할 것 같아요. 곧 군대가지만 ㅋㅋ

    [강백현] : 서울에 근무하는 사람이 왜 이래?

    [오현수] : 와, 형들 자연스럽게 엿 먹이네. 난 경기도 포천군청이고, 지혜는 평택이라서 만나지도 못한다. 오늘 데이트하기 딱 좋은 날인데.

    [김지혜] : 오현수 ㅋㅋㅋ. 누가 너하고 데이트 해준데? 오늘 엄마랑 쇼핑할 건데?

    [오현수] : 여보여보~! 왜 이래?

    [김지혜] : 아~ 진짜!

    강백현은 아직 떨떠름한 김지혜 앞에서도 잘 해나가려고 노력하는 현수의 모습에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성환이한테 조금의 악감정이 생겼다.

    [강백현] : 우리 헤어진 그날, 최현희 버스터미널에서 기다리고 있더라.

    [김지혜] : 정말요? 미쳤나봐.

    [오현수] : 헐 ㅋㅋㅋ 왜요? 형이 좋대요?

    [강백현] : 그건 아닌데, SNS로 말할 건 또 아니네. 나중에 만나면 말해줄게.

    [조성환] : 헉. 형, 죄송해요.

    [강백현] : 아니야. 너 아니어도 나한테 접근하려고 했었나 봐.

    [오현수] : 와!! 백현이 형, 전 이해가 안 되는 게 처음부터 괜찮게 만났으면 이렇게까지 싫어하진 않았을 텐데 현희가 조금 막나가는 애잖아요. 근데 형한테 지금 와서 친한 척 하려는 거 조금 이해가 안 되긴 하네요.

    [김지혜] : 맞아. ㅋㅋㅋ. 그 썅뇬 ㅋㅋㅋ 내가 후들겨 팼어야 하는데.

    김지혜의 욕설이 올라온 후, 잠시 정적이 흐르자, 김지혜가 다시 채팅을 올렸다.

    [김지혜] : 앗, 백현 오빠, 제가 조금 과했죠? 미안해요.

    [오현수] : 지혜, 너 이상하다. 왜 백현이 형한테만 사과해?

    [김지혜] : 뭐! 화났어?

    [오현수] : 아니…ㅋㅋ. 너무한 거 아니야? 형 너무 편애하는데? 너 나랑 사귀잖아.

    뭔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

    [강백현] : 지혜야. 나 아무렇지도 않아. 괜찮아.

    [김지혜] : 아, 오빠 고마워요. ㅎㅎ

    [오현수] : 아니…ㅋㅋ. 너무한 거 아니야? 형 너무 편애하는데? 너 나랑 사귀잖아.

    └ 답장 [김지혜] : 개인 톡으로 해.

    강백현은 민망한 채팅방 분위기를 환기시키기 위해 지혜를 두둔했다.

    [강백현] : 현수야. 지혜가 그래서 그랬겠냐? 너무 나갔네.

    [오현수] : 아~ 이건 아니죠.

    [김지혜] : 아, 그만 하라니까. 백현 오빠, 미안해요. 현수랑 따로 전화 통화 할게요.

    싸늘해진 분위기.

    그때 조성환도 같은 느낌을 받았는지 다른 주제로 전환하기 위해 글을 올렸다.

    [조성환] : 형님, 공무원 노조 가입해야 돼요? 가입하실 거냐고 위원장이 연락 왔네요.

    [강백현] : 난 가입 안 했어. 가입한다고 해서 딱히 득볼 것도 없고, 가입 안한다고 해서 손해볼 것도 없거든.

    [조성환] : 아, 고민이네요. 노동조합 가입해야 공무원들의 권리를 누릴 수 있다는데 전 곧 군대 가잖아요.

    [강백현] : 아, ㅋㅋ 그럼 제대 후에 다시 와서 들어. 그게 나을 것 같다.

    [조성환] : 넵. 그래야겠네요.

    채팅방에서 이야기가 끝나기 무섭게 강백현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말이 씨가 된다고.

    나라공무원 노동조합 위원 중 하나의 전화가 걸려온 것이다.

    “여보세요?”

    - 안녕하십니까? 나라공무원 노동조합 지연우입니다. 강백현 사무관님 되십니까?

    “네. 맞습니다.”

    - 이번에 신규임용 되셨던데 노동조합 가입하시라고 연락드렸습니다. 지금 충남도청 공직기강감사실에 근무하시는 걸로 아는데 맞으신가요?

    “네. 그런데요?”

    - 아, 저희 막 이상한 곳 아니고요. 다니시는 곳에 직장협의회를 통해서 가입하실 수 있는데 강 사무관님께서 이제 신규로 임용되셨다보니까 잘 모르실까봐 소개해드리려고 전화 드린 거고요. 가입하시게 되면 통일조국 건설을 위해 앞장서는 민주적인 조합 활동을 주로 하게 될 거예요.

    강백현은 쓴 웃음을 지었다.

    “그런 활동이 왜 필요하죠?”

    - 공무원의 정치기본권 보장을 얻기 위해서 뭉칠 필요가 있어요. 저희가 궁극적으로 원하는 건 통일이잖아요?

    “그렇진 않죠. 통일을 원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통일을 원하지 않는 사람도 있죠. 사람의 생각은 각자 다르니까요.”

    지연우의 말에 강백현이 대답하자, 그가 놀라는 목소리로 말했다.

    - 백번 맞는 말씀이신데요. 일단 저희가 그것만 활동하는 건 아니거든요. 공무원들의 과중된 업무로 인해 지금도 많은 공무원들이 죽어가고 있어요. 그런 분들을 위해 저희가 힘을 뭉치면 정치권도 바뀔 거라고 보고 있고요.

    “네. 압니다만, 그런 부분은 휴직이나 보직조정, 아니면 직무변경, 순환근무 등을 통해서 해결 가능한 부분이지 않나요?”

    강백현의 대답에 지연우가 깜짝 놀라 다시 한 번 강백현을 설득했다.

    - 저, 강 사무관님, 저희 진짜 나쁜 곳 아니고요.

    “나쁜 곳이라고 이야기하는 게 아닙니다. 충분히 조직 내에서 개편이 되어 있는 부분이고 충분히 조정가능한 부분인데, 제가 굳이 조합 활동을 해야 되는지에 대한 의문점을 질문으로 해결하려고 한 겁니다. 일단 조합의 취지는 알았어요. 그런데 또 뭐가 있죠?”

    조금은 공격적인 발언에 지연우는 안내의 주안점을 변경했다. 전화로 해봐야 설득이 되지 않는다면, 직접 찾아가 안내하는 방법이 제일이었기에 다른 사람을 연결해주는 것이다.

    - 일단 직장협의회에서 연락을 드릴 거예요. 충남도청 직장협의회 통해서 강백현 사무관님 연락드리라고 해도 괜찮을까요?

    “네. 문제는 없습니다만, 저한테 안내해주신 지연우님의 말이 저를 설득하진 못하는군요.”

    - 앗, 제가 설명이 좀 약했던 것 같아요. 죄송해요. 그럼 이번 주 내로 충남도청 직장협의회 측에서 사무관님께 연락드리라고 하겠습니다. 나라공무원노동조합 지연우였습니다. 귀한 시간 내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나라공무원 노동조합의 연락이 강백현을 심난하게 만들었다.

    ‘그 놈의 정치, 정치, 정치.’

    대한민국 시민들을 위해 도움을 주고 나라를 위해 이바지하겠다는 포부를 가지고 공무원 시험 공부를 시작한다.

    그런데 공무원이 되고 나서는 스탠스가 변한다.

    이런 것들은 다 국가의 이익이나 시민의 이익보다 개개인의 이익을 중요시하다 생긴 것이다.

    강백현은 한 사람의 공무원으로서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은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방금 전 전화를 받아 봐도 공무원 노조의 목적은 분명히 한 곳으로 치우쳐져 있었다.

    통일 한국.

    통일, 좋은 언어다. 좋은 단어다.

    그러나 6. 25 전쟁이 발발한지 60년이 지났고, 그 동안 북한과 대한민국은 상당히 다른 노선을 걷게 되었다.

    어느 시민은 북한을 깡패국가로 분류할 것이고, 어느 시민은 북한을 형제국가로 분류할 것이다. 어느 시민은 해당 문제에 대해 고려해본 적 없고, 어느 시민은 통일에 대해 엄청난 고민을 하지만 아직 결론을 내지 못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나라공무원 노조는 무조건 통일이 돼야 한다는 정치적 신념을 노동조합의 목적 부분에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그게 국익을 선양하는 일일까?

    헌법에 따르면 대한민국은 아직까지 북한을 나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헌법과 다른 견해, 그리고 다른 주장. 그들의 목적은 과연 무엇일까? 수뇌부는 누구일까?

    강백현은 관심 갖고 싶지 않았다.

    그런 것에 얽매이고 이용당하기 싫었다.

    ‘정치적 견해만 밝히지 않았어도 충분히 가입을 고려할 만해. 하지만 그들 스스로 말하잖아. 통일을 원한다고, 정치 기본권을 원한다고. 그게 하나의 방향으로 고정되어 있는 거잖아.’

    그때 충남도청 직장협의회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익숙한 목소리다.

    - 강백현 팀장, 부지사네.

    “네?”

    - 직장협의회 회장으로서 연락하는 걸세. 시간 되면 건물 3층 협의회 사무실로 올라오지. 나도 곧 가지.

    강백현은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가 원망스러웠다.

    사랑을 고백하기 좋은 날, 데이트하기 좋은 날, 이런 행복한 날에 왜 이런 일을 겪는 걸까?

    그럼에도 피할 순 없었다. 부지사는 자신의 결재 라인.

    괜한 행보는 자신의 활동범위를 줄이게 만든다.

    직장협의회 사무실에는 한 개의 소파와 2개의 책상, 그리고 의자가 놓여있었다.

    “아, 강백현 사무관님, 안녕하세요. 김진만입니다.”

    “네. 안녕하세요.”

    “원래 여기 근무하시는 건가요?”

    “아, 저는 공무원 해직된 상태고요. 복직할 때까지 여기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해직…이요?”

    “네. 일반 임기제 공무원으로 임용되어서 2년 근무하고 1년씩 3번 연장해서 5년 했는데, 그 이후 연장이 안 되더군요.”

    강백현은 안타까운 목소리로 말했다.

    “아… 그럼 언제부터 실직하신 건가요?”

    “2011년도요. 저하고 같은 동지가 180명 정도 있어서 그분들 복직을 위해 열심히 발로 뛰고 있습니다. 여기 가입신청서 써주시면, 저희 같은 분들 복직을 위해 정말 큰 힘이 될 것 같습니다.”

    강백현은 안타까운 목소리와는 달리 속으로는 한숨을 내쉬었다.

    ‘와, 씨발 개새끼들이잖아.’

    물론 모든 사람들이 저런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시험을 치고 들어온 것도 아니고, 계약직으로 2년 계약하고 들어와서 5년까지 연장해서 했다가 더 이상 연장이 안 되니 저렇게 떼를 쓰려는 사람이 180명이나 있다는 것이 강백현의 입장에선 속이 쓰렸다.

    ‘이 새끼들, 4년 동안 조합원들 돈 먹으면서 연명하고 있었네?’

    한 달에 12,000원씩 내는 회비. 그건 과연 어디에 쓰일까?

    “회비는 어디에 쓰이죠?”

    “일단 저희같이 해임당한 동지들 생활자금으로 월 150만원씩 지원이 들어가고, 몇 명은 저처럼 조합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에게 들어가는 인건비고요.”

    단순계산으로 1년에 1800만원, 180명이면 32억4천만원.

    강백현이 나라공무원 노동조합에 가입하면 내는 월 12,000원의 회비들이 모여 저렇게 생산성 없는 사람에게 돌아가다니.

    강백현은 자신도 모르게 본심이 흘러나왔다.

    “와, 미쳤네.”

    “네?”

    “아뇨. 너무 적게 준다고요. 150만원 가지고 가정생활 꾸리기 어렵잖아요. 더 드려야 되는 거 아닌가 해서요.”

    “아, 그렇죠? 저희도 그래서 더 많은 분들이 저희와 함께 해주셨으면 해요. 저희가 그렇다고 돈만 받고 노는 것도 아니거든요. 공무원 노동조합 활동을 기본적으로 하고 있고요. 각종 시위가 필요한 부분이 있으면 100% 참석하고 있어요.”

    “아… 고생하십니다.”

    강백현은 위기를 모면한 후 속으로 쓴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그 쓴웃음 뒤에는 한숨이 터져 나오고 있었다.

    ‘저런 놈들이 모여서 대한민국이 망하는 거야. 차라리 그 시간에 노동을 하거나 좀 더 생산성 있는 활동을 했다면 대한민국은 지금보다 더 발전할 수 있었을 텐데.’

    국가에 대한 반기, 국가에 대한 불복종.

    정치적 중립은 나라의 근간을 확립하기 위해 나온 내용이다.

    국가의 정책을 결정하는 놈들이 무슨 정치적 신념이고 정치적 기본권이란 말인가?

    한숨이 절로 나왔다.

    ‘다행히 아직은 올바른 시민의식을 가진 시민들이 많아. 그렇기에 대한민국은 아직까지 발전할 수 있었어. 정치는 자유민주주의 국가답게 개개인에게 맡기면 되는 거야. 우리 공무원들이 이렇게 뭉치는 건 국가를 위해서도 국민을 위해서도 아니잖아? 하지만 이들이 이렇게 세력을 뻗치고 있다는 건……혼란스럽다.’

    “저, 신청서는 한 번 고민해보고 써도 될까요?”

    “네? 부지사님 통해서 가입하신다고 들었는데.”

    강백현은 야당과 여당 한쪽이 세력을 키우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서로 견제해야 대한민국이 발전한다. 그래야 올바른 정책도 나오고,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는다.

    ‘그래. 정치적 중립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아니야. 정치적 견해가 한쪽으로 쏠리지 않도록 중도를 지켜, 대한민국이 좀 더 살기 좋은 나라로 발전할 수 있는 정책이 지속적으로 나올 수 있도록 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어.’

    강백현은 생각했다.

    만약 자신의 힘이 커진다면 여당도 야당도 아닌 중립적인 자세를 취하겠다고.

    ‘이게 그를 위한 한 걸음이야.’

    강백현은 일단 그 자리를 빠져나와 힘 있는 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바로 자신의 동기인 최현희였다.

    - 여보세요?

    “아, 현희 씨, 잘 지냈죠?”

    - 네. 아주 잘 지냈죠. 바람 맞고 팽 당하고, 망신까지 당하면서요. 백현 씨가 먼저 전화를 다 하고 뭐죠?

    “혹시 나라공무원 노동조합에 대해 들어보셨어요?”

    - 네?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에요?

    “아버님인 최장철 국회의원님과 그와 관련해서 만나고 싶습니다. 언제 시간이 괜찮으실까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