뚝배기 깨러 왔습니다 91화
강백현은 갑자기 자신을 따라 나온 김지혜를 나무라며 말했다.
“왜 나왔어? 성환이랑 좀 더 있지.”
“오빠 나갔으니까 나왔죠. 가까운 커피숍으로 갈까요?”
그런데 지혜 입장에서 불청객이 따라붙었다.
“지혜야. 나도 같이 가.”
오현수의 등장에 얼굴이 구겨지는 김지혜. 그런 지혜의 표정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들러붙는 오현수.
“곱창 먹을까요? 2차 가려고 생각해 뒀었는데.”
“곱창 좋지.”
곱창 집에 들어갔는데, 채팅방에 글이 하나 올라왔다.
[조성환] : 거머리 현희 누님 떼놓고 금방 합류하겠습니다. 형님, 누님들 어디세요?
[오현수] : ㅋㅋㅋㅋ. 미틴. 현희 걔 갑자기 왜 온 거냐?
[조성환] : 몰라요. 백현 형님 본다니까 자기도 나온다고 떼를 쓰더라구요. 어디서 만나냐고 물어봐서 가산디지털단지역 4번 출구라고 얘기했는데, 제가 실수한 것 같아요. 빨리 떼놓고 저도 합류하겠습니다.
[김지혜] : [내 위치 정보]
김지혜가 GPS로 현재 위치 정보를 채팅방에 올렸다. 그러자 30초도 안 돼서 조성환의 답장이 도착했다.
[조성환] : 알겠습니다. 5분만 더 빙빙 돌다가 현희 누님 집에 보내고 그쪽으로 가겠습니다.
곱창 집에는 3명이 남았다.
친한 동기 셋.
오현수, 김지혜, 강백현이다.
백현은 만나기 전 현수에게 부탁받은 대로 작전을 시작했다.
“지혜야. 요즘 현수랑 어때?”
“네?”
“네가 말했잖아. 둘이 사귀게 됐다고. 그 후 어떻게 되고 있나 해서.”
“말도 마요. 아오! 쟤랑 나랑 잘 안 맞아요.”
“뭘 안 맞아? 우리 엄청 잘 맞잖아. 그날 밤에도 서로!”
오현수가 선을 넘으려 하자, 김지혜가 오현수의 발을 또 한 번 세게 걷어찼다.
“아-아아아.”
그러거나 말거나, 김지혜는 강백현의 최근 근황을 물었다. 정확히는 그의 애정도 테스트.
“오빠는요? 그 김성현 디자이너랑은 잘 만나요?”
“그때 이후로 만나진 못하지만 종종 연락은 해. 1월 1일날 한국 들어온다고 해서 그때 보기로 했어. 왜? 같이 볼래?”
“어? 정말요? 그래도 돼요?”
김지혜는 1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를 시작했다. 분명 뽀뽀까진 했지만, 상대는 외국에 있고, 자신은 한국에 있다.
이 점은 분명히 유리할 터.
“응. 그럼 우리 더블 데이트 하자. 같이 만나서 쇼핑하고 밥 먹고 그럼 좋겠다. 현수야 어때?”
강백현은 현수를 쳐다보았다. 그러자 오현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백현의 질문에 답했다.
“좋아요. 형 다음 주 시간 돼요?”
“그럼, 데이트 하려면 와야지. 아~ 기대 된다. 성현 씨랑 데이트 하면서 너희들하고 같이 저녁 먹고 야경 보는 거 진짜 재밌을 것 같아. 종각에서 볼까?”
“종각은 왜요?”
“종각에서 매 새해마다 제야의 종 행사를 하잖아. 그때 성현 씨랑 같이 있으면 좋을 것 같아서. 너희도 같이 있으면 어때?”
김지혜는 밝은 웃음을 지어보이며 대답했다.
“좋아요.”
김지혜의 말에 오현수도 방긋 웃으며 말했다.
“아, 네. 저희 커플도 같이 갈게요. 아-아얏!”
오현수의 웃는 얼굴과 해맑은 대답에 김지혜가 신발을 벗어 발가락으로 오현수의 허벅지를 꼬집었다. 깜짝 놀란 오현수가 당황한 표정을 지었지만, 김지혜는 오현수를 무시하고 백현의 옆자리에 앉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형님, 누님, 떼어놓고 왔어요.”
“아, 성환아, 내 옆에 앉아.”
“네.”
“아이고~ 너도 고생이 많다. 군대 언제 제대하냐?”
“그래도 뭐, 금방 시간 가겠죠.”
“그럼 좋고.”
곱창과 함께하는 즐거운 연말.
술과 함께하는 직장인 라이프.
회식자리 연례행사로 다 같이 사진을 찍어 인스타에 올리고, 페이스북에 올린다.
취기가 살짝 오른 백현은 다 비워진 곱창접시를 보며 물었다.
“3차는 맥주집으로 갈까? 아니면 노래방 갈까? 아니면 스크린 야구로 갈까?”
그때 다른 사람들이 자꾸 스마트폰을 확인하며 불만을 털어놓았다.
“최현희, 계속 전화하는데요?”
성환이가 따돌렸던 최현희가 이번에는 현수에게 전화를 했던 모양이었다.
“받아.”
“됐어요. 귀찮아요.”
그러자 이번에는 지혜의 핸드폰이 울려대기 시작했다.
“이거 최현희 번호 맞지?”
“어. 맞네.”
“와, 진상. 한 번 얘기하면 알아듣지. 나한테 전화를 하네.”
“지혜야 받아.”
“아니에요. 오빠. 그냥 무시할게요.”
강백현은 이미 최현희의 번호를 예전부터 차단해놓았기에 그녀에게 전화가 올 일은 없었다.
최현희가 자신을 왜 찾았는지 호기심이 일었지만, 굳이 그녀에게 전화를 걸진 않았다.
스크린 야구, 스크린 골프에 비해 접근이 쉽고, 난이도도 낮아 2차, 3차로 각광받고 있는 장소다.
수도권에는 많이 있지만, 소도시에서는 흔히 찾을 수 없는 곳이기에 백현은 스크린 야구를 하러 가자며 밀었다.
“스크린 야구 고고.”
“넵.”
“진 사람은 게임비 내기다.”
스크린 야구에 간 4명은 서로의 실력에 따라 공의 빠르기를 선택했다.
강백현은 야구에 자신 있었기에 구속 120.
오현수와 조성환은 구속 90.
지혜는 신체적 불리함과 평소 접해보지 못한 스포츠임을 고려해서 구속 70으로 설정했다.
조성환이 설정을 마친 후 동기들에게 물었다.
“팀은 어떻게 짤까요?”
“나랑 백현 오빠랑 한 팀 할래.”
김지혜는 취기를 들어 사심을 드러냈다. 하지만 그것을 철벽 방어하는 오현수.
“저랑 지혜랑 커플이니까 같은 편 할게요. 백현이 형이랑 성환이랑 같은 편 하세요.”
“아- 그래. 그게 좋겠다.”
“저도 찬성이요.”
3명이 그렇게 몰아가자 김지혜의 주장이 설득력을 잃는다.
첫 타자는 조성환.
구속 90킬로인데도 성환이는 헛스윙을 계속했다.
그래서 백현이 성환이 옆에 가서 허리를 잡아주며 말했다.
“공을 끝까지 보고 휘둘러. 공의 예상 궤도를 보고 거기에 1초 전에 휘두른다고 생각하면 잘 맞아.”
“아, 네. 해볼게요 형님.”
밀착지도를 받으며 휘두르는 조성환의 스윙이 공을 갈랐다.
스크린 너머, 안타! 라는 화면이 뜨며 조성환 주자가 1루까지 이동했다.
다음은 강백현 차례였다.
당연히 홈런.
선발로 나선 강백현과 조성환의 활약에 스코어는 2:0.
이제 공격권은 오현수와 김지혜에게 넘어갔다.
김지혜는 구속 70킬로임에도 치질 못했다.
1번의 아웃.
오현수 또한 아웃된 후, 다시 김지혜의 차례.
김지혜는 2번의 스트라이크를 당하자 백현에게 SOS를 요청했다.
“오빠, 나도 자세 좀 잡아주면 안 돼요?”
“앞에 보고 있을래? 보고 자세 알려줄게.”
“네.”
강백현은 씩 웃으며 현수에게 말했다.
“현수야. 지혜 허리가 왼쪽으로 좀 비틀어졌는데, 가서 고쳐줘.”
“아. 넵!”
“이번엔 어깨가 오른쪽으로 좀 치우친 것 같거든?”
“아, 그러네요.”
강백현이 자세를 고쳐줄 줄 알았는데, 그는 말만 하고 정작 자신의 동작을 봐주는 사람은 오현수.
기대했던 사람과 다른 사람의 손길이 몸에 닿자 소름끼치는 듯 파르르 떠는 김지혜의 모습을 보며 오현수가 물었다.
“추워? 추우면 잠바 벗어줄까?”
“됐어! 좀! 아~ 진짜.”
“왜?”
“아니, 넌 진짜 눈치가 없냐?”
“…….”
김지혜는 방망이를 베이스에 찍어 공이 날아오게 해놓고는 대충 휘두르고원래 있던 테이블로 돌아갔다.
그리고는 사장님을 불러 술과 안주를 왕창 시키기 시작했다.
“사장님, 여기 맥주 4병이랑 노가리 주세요.”
“네. 맥주 4명, 노가리 드리겠습니다.”
* * *
게임은 결국 강백현 팀의 승리.
게임비와 술값까지 오현수가 독박을 썼다.
지혜는 끝까지 둘이 같이 내겠다고 했지만, 오현수는 김지혜의 환심을 사기 위해 자기가 다 내겠다고 하며 카드를 3개월로 나눠 긁었다.
3차가 끝나고 이제 헤어져야 할 시간.
부주시로 돌아가는 고속버스 막차는 오후 11시 40분차.
현재시각 오후 10시 30분, 미리 예매해둔 탓에 이제 터미널로 돌아가 봐야 할 때였다.
야구장에서 나온 일행은 각자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형님, 좀 더 놀다 가시면 안 돼요?”
“막차 시간 다 됐어. 여기서 고속터미널까지 30분 걸리니까, 20분밖에 여유 없다. 화장실도 들러야 하니까 지금 가봐야 돼.”
“아~ 진짜 아쉽네요. 진짜 형님 룸메이트여서 너무 즐거웠어요. 군대에서 저 잘 적응할 수 있겠죠?”
조성환이 군 입대를 걱정하자, 강백현이 악마의 미소를 지어보였다.
“적응이 쉽진 않을 걸? 내가 장교로 가보진 않아서 모르겠지만, 훈련소가 생각보다 빡세더라. 아마 평생 해도 적응은 힘들지 않을까?”
강백현의 말에 오현수가 방긋 웃었다.
“와, 백현이 형 완전 악마. 입대도 안 했는데 겁부터 주시면 어떻게 해요.”
“왜? 당연히 겁 줘야지. 거기서 사고 칠지도 모르는데. 오늘도 사고 쳤잖아. 어떻게 최현희를 여기 데려올 생각을 다 하냐? 미친 것도 아니고.”
“아~ 진짜, 형님 제가 데려올 생각 없었다니까요.”
한편, 평소대로 이미 취한 김지혜 또한 갑자기 강백현의 팔짱을 끼며 말했다.
“야! 좀만 더 마시다 가자. 응?”
“응?”
“나 친구들하고 약속도 깨고 왔단 말이야. 어?”
취기에 반말이 나오는 김지혜.
그때 오현수가 강백현과 팔짱을 낀 김지혜의 팔을 빼낸 후 자신에게 끼우며 말했다.
“지혜 많이 취했네요.”
“안 취했어! 나 완전 멀쩡하거든?”
“그게 취한 거야.”
강백현은 지혜의 취기 섞인 목소리에 웃으며 말했다.
“미리 말하지. 아쉽네. 그래도 지혜랑 현수는 다음 주에 같이 보기로 했으니까 이만 헤어지자. 나 진짜 막차 타야 돼. 같이 놀다 와.”
강백현이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지하철을 탔다.
서울의 지하철, 주말, 그리고 늦은 밤이라 그런지 사람이 그렇게 많지는 않았다.
고속터미널 앞.
부주시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는데 누군가가 백현의 등을 두드렸다.
“네?”
“백현 씨, 오랜만이네요?”
그녀는 최현희였다. 부주시로 돌아가는 버스 탑승구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갑자기 뭡니까? 그리고 존댓말이네요? 화내고 욕할 때는 언제고 이제와서 왜?”
“인정해요. 그땐 내가 백현 씨한테 졌다는 것에 분해 이성을 잃었어요. 백현 씨는 내 인생을 꼬이게 만든 장본인이죠. 생각해봐요. 항상 1등만 해온 내가 백현 씨 때문에 2등으로 밀려났잖아요.”
“아- 그러셨나요? 그런데 2등이 아니라 115등 아니었나요?”
강백현은 최종 성적 발표 때 최현희의 순위를 기억해놨다.
그러자 최현희가 입술을 꽉 깨물다가 간신히 평온을 되찾으며 말했다.
“아빠가 백현 씨 보고 싶어 해요.”
“절 왜요?”
“일종의 화해 제스처죠. 백현 씨가 대선후보 1위 세력을 지탱하는 한 명의 지지자를 없애버린 것에 대한 보상이라고 할까요?”
강백현은 헛웃음이 튀어나왔다.
“최장철 국회의원께서 직접 그렇게 말씀하신 겁니까?”
“거기까진 말하지 않겠어요. 다만 시간은 내주셨으면 해요. 우리 여당 내 친최 라인에서는 백현 씨 같은 인재를 원하니까요. 언제 시간 내실래요?”
강백현은 여당과 야당, 두 곳에서의 러브콜에 황당해했다.
그러나 언제나 정답은 정해져 있었다.
“전화로 얘기하죠. 전 막차를 타야 돼서 이만.”
강백현이 막차에 탔다.
버스가 출발하려 하자, 최현희가 강백현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강백현은 전화를 받는 기색이 없다.
- 연결이 되지 않아 삐 소리 후 소리샘 퀵 보이스로 연결됩니다.
전화를 차단했을 때 나오는 연결음.
최현희가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소리쳤다.
“백현 씨 전화 차단부터 풀어요.”
최현희의 요청에 강백현이 씩 웃으며 창문에 대고 말했다.
“현희 씨! 난 정치 관심 없어요. 우리 평생 연락하지 맙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