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뚝배기 깨러 왔습니다-86화 (86/139)
  • 뚝배기 깨러 왔습니다 86화

    백현이 시장실을 압수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크게 2가지가 있었다.

    첫 번째, 시장의 친척과 연관된 비리. 즉 축사허가 사항과 조형물 업체 선정 과정에서의 의혹에 대한 분석자료다.

    이 자료들은 시장의 비리를 합리적으로 의심할 수 있는 증거가 되었다.

    두 번째, 바로 강백현의 녹음파일이다.

    *******

    『돈은 어떻게 주실 거죠? 기록이 남을 텐데요.』

    『암호화폐 계정만 알려주게. 그쪽으로 전달해주지.』

    『암호화폐요?』

    『그래. 블록체인 방식을 활용하는 암호화폐는 어떤 수사에서도 자유롭지. 물론 우리끼리 배신하면 결과는 죽음뿐이지. 나도 뭐, 거기까지 하고 싶진 않고. 내가 여기까지 말해야 되나?』

    *******

    시장의 목소리가 담긴 녹음을 들은 감찰관은 백현의 요청에 응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들도 그들 나름의 부담이 있었다.

    도청이면 같은 식구.

    그렇기에 이걸 터트리면 발생하는 반대급부에 대해서도 경고해주었다.

    “그러니까, 이 녹음파일이 부주시장님과 강백현 주무관님 두 분이서 한 대화라는 거죠?”

    “네. 맞습니다.”

    “취소 안 하실 거죠? 강백현 주무관님, 새로 와서 잘 모르시는 것 같은데, 이거 터트리면, 사태 정말 커질 겁니다. 저희가 움직이면 그 순간 돌이킬 수 없어요. 정말 터트리실 겁니까?”

    “네. 터트리겠습니다.”

    “아~ 실장님 대리라고 해도 이건 아닌 것 같은데, 아무튼 알겠습니다.”

    충남도청 공직기강감사실 조사과 소속 조남형 팀장.

    그는 강백현과 같은 5급 사무관이다.

    고태준 감사실장 밑에 있는 또 다른 팀, 조사팀의 리더 역할을 맡는 사람.

    보통 감사실장의 대리는 감사팀장이 맡는다. 업무의 유형과 성격으로 볼 때 조사팀보다는 감사팀이 더 이런 종류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리 대리라고 해도 이런 일을 실장의 허락 없이 진행할 순 없다고 생각한 조남형 팀장. 그는 더블 체크를 진행한다.

    - 선배님? 조남형입니다. 부주시 특별감사 건으로 의논드릴 게 있습니다. 문자 보시면 연락 주십쇼.

    * * *

    한편, 부주시장은 충남도청에서 무슨 일이 진행되는지도 모르는 체 승리의 미소를 지었다.

    ‘클클, 어차피 돈이면 다 되는 세상이지. 지가 별 수 있어? 세상은 돈이 전부인데.’

    생각해보니 요즘 상납이 뜸하다.

    자신이 부주시장 임기 말이라 그런지 와봉건설의 최태식은 코빼기도 비추지 않고, 운필종합건설의 강춘석도 요즘 들어 만남을 피한다.

    작년까지만 해도 만날 때마다 5천에서 1억씩 찔러주던 녀석들인데, 최근 변심한 것인지 자신에 대한 대우가 박했다.

    그러나 이 녀석은 달랐다.

    “형님! 이번에도 당선되실 겁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래. 아우야. 고맙다. 그동안 고생 많았지?”

    지금 부주시장 앞에서 같이 차를 마시고 있는 이 녀석은 한 번 자신을 배신했던 녀석이었다.

    장춘호, 부주시에서 나름 규모 있는 건설업체를 소유한 녀석은 저번 선거에서 상대편 진형에 서서 부주시장을 견제했던 적이 있었다.

    ‘클클, 많이 배고팠지?’

    자신의 임기동안 장춘호가 대표로 있는 춘호건설에 단 한 건의 수의계약도 허락하지 않은 부주시장의 집념.

    그래서 그의 회사는 경영상태가 극도로 나빠졌고, 이제는 몇 년 버티기도 힘든 상황이었다.

    지역사회에서 자신을 배신한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한 부주시장. 장춘호는 두손두발 다 들고 부주시장인 자신을 만나러 찾아온 것이다.

    “형님, 이거 선거자금으로 쓰십쇼. 얼마 안 되는 금액이라 죄송합니다. 형님 이번에도 당선되시면 제가 팍팍 밀어드리겠습니다.”

    수표를 챙겨온 장춘호를 보며 부주시장이 조소를 머금었다.

    “아우야.”

    “네. 형님.”

    “요즘엔 수표 안 받아.”

    “아, 죄송합니다. 5만원 짜리 현금으로 준비해오겠습니다. 제가 처음이라 실수한 것 같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김춘복의 말에 부주시장이 방긋 웃으며 쪽지하나를 건넸다.

    암호화폐 지갑계좌.

    영어와 특수기호로 너저분한 계좌를 본 김춘복이 당황한 채 묻는다.

    “이게 뭡니까?”

    “암호화폐, 환전해서 송금해. 그래야 증거 안 남으니까.”

    “아, 뭔지 모르겠지만 바로 해보겠습니다.”

    “그래. 오늘까지 입금해라. 섭섭지 않게 넣어줘. 네 성의 보고 결정할 테니까.”

    “네. 형님.”

    부주시장은 환한 웃음을 지었다.

    계획대로다.

    한 번 더 부주시장에 당선된 후, 30억을 모아 도지사에 출마한다.

    도지사에 출마해서 잘 되면 대선도 노려볼 수 있겠지.

    물론 희망사항이다.

    일개 시장과 달리 도지사는 쉽지 않은 법이니까.

    그때, 부주시장의 윗선에서 전화가 왔다.

    “네. 형님. 직접 전화주시고 정말 영광입니다.”

    - 그래. 여론조사 결과 확인해보니 네 당선이 확실시된다고 나오더라. 별 문제 될 거 없는 거지?

    “네. 그럼요. 문제없습니다. 다 형님이 밀어주신 덕분입니다.”

    - 그래. 더 좋은 자리 못 밀어줘서 미안하다. 이번에 당선되면 다음에는 더 좋은 자리 공천해서 줄게.

    “감사합니다. 형님. 열심히 하겠습니다.”

    - 그래. 당선되면 나 적극적으로 밀어줘. 이번에 대선 준비하고 있으니까, 너희들이 날 밀어줘야 내가 큰다. 난 내 새끼는 끝까지 챙기는 거 알지?

    “당연히 알지 말입니다. 걱정 마십시오. 형님, 대통령 되는 그 날까지 제가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부주시장은 현재 정계에 막대한 영향력을 지닌 선배의 전화에 미소를 지었다.

    무려 4선 국회의원의 전화.

    최장철 국회의원이 친히 전화한 것이다.

    최장철 국회의원은 자신의 직속 라인에게 하나하나 전화를 돌렸다.

    지방기초단체장 선거. 거기에 자신의 라인이 당선되느냐 마느냐에 따라 자신의 영향력도 달라진다.

    당 내에서 경선 3위 안에 드는 최장철은 한 명이라도 더 자신의 세력을 늘려야만 했다.

    그래서 일개 부주시장의 안위까지도 살피며 하나하나 챙기는 것이었다.

    그런 최장철이 밀어주는 부주시장.

    여론 조사 결과 45.3%의 지지율로 2위 김경선 후보의 19.3%와 압도적인 차이를 내고 있었다.

    차기 부주시장의 자리는 자신이 차지할 것이 분명해 보인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들어가시면 안 됩니다! 시장님 허락 없이 시장실에 들어가시면 안 됩니다.』

    갑자기 치고 들어오는 도청의 조사과.

    그리고 동행한 경찰이 시장실로 들이닥쳤다.

    “이게 뭐야? 당신들 뭐야?”

    “시장님, 뇌물수수 및 부정청탁, 금품 등 수수 혐의 위반으로 즉각 체포하겠습니다. 시장님은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으며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습니다. 진술을 하지 않아도 불이익을 받지 않습니다. 그럼 바로 저희와 동행하시죠.”

    “이게 뭐냐고! 이게 뭐냐니까!”

    그때 강백현이 뒤에서 나타났다.

    “감사결과 보고서에 첨부된 비리 의혹 자료들을 감찰과 경찰에 넘겼습니다. 시장님이 저한테 제안하신 청탁내용이 담긴 녹음파일도 넘겼고요. 아쉽지만 시장님은 저를 너무 쉽게 보셨습니다.”

    “야! 내가 언제 그랬어? 언제 그랬냐고?”

    부주시장은 갑자기 들이닥친 경찰과 감찰 앞에서 자신의 본성을 거침없이 드러냈다.

    하지만 이미 증거는 확보되어 있다.

    “경사님, 연행하시죠.”

    “네.”

    강백현이 더 이상 말을 아꼈다.

    이제는 경찰에게 모든 공이 넘어간 것.

    그들의 조사결과에 따라 모든 것이 결정될 것이다.

    * * *

    한편, 윤미진은 행복한 얼굴이었다.

    지옥 같았던 강백현의 복수, 그러나 모든 것을 해결한 것은 결국 김태웅.

    그렇다고 김태웅과 다시 만나겠다는 건 아니었다.

    ‘그래. 태웅 오빠, 잘했어. 7급 공무원이란 타이틀, 쓸모는 있었네.’

    조금은 아둔하고 멍청한 김태웅이 그래도 마음에 드는 점, 그건 자신이 원하는 대로 움직여준다는 것이었다.

    다만, 결혼에 대한 집착이 강해서 자신과의 합의 없이 미리 청첩장을 만들어둔다거나, 어차피 숨길 수 없는 결격사유를 끝까지 아닌 척 발뺌하는 등의 상식 이하의 행동이 문제였다.

    그래도 결국엔 자신을 위해 움직여주는 인형과 다름이 없었기에 김태웅과는 제법 오래 만날 수 있었다.

    “미진아, 오늘 기분 좋아 보이네. 괜찮아?”

    “네. 언니. 나 징계 뺐대요.”

    “진짜?”

    “네. 태웅 오빠가 한 건 했나 봐요. 방금 전에 전화 왔어요. 감사결과 철회 될 것 같다고요.”

    “잘 됐다. 정말 잘 됐네.”

    그런데 김태웅이 했던 이야기와는 정 반대 상황이 나타난다.

    “미진아, 너한테 감사결과 처분 공문 왔는데?”

    “네?”

    “어떻게 하지? 일단 너한테 지정해줄게. 확인해 봐.”

    “넵.”

    윤미진은 자신에게 온 문서를 확인했다.

    ────

    ○ 시간외근무수당 부당 수령에 따른 징계조치 통보.

    대상 : 부주시청 주제동 주민센터 윤미진 외 13명.

    관련 근거

    가) 공무원수당 등에 관한 규정」제15조(시간외근무수당)

    나)「공무원보수 등의 업무지침(안전행정부 예규)」

    다)「국가공무원 복무규정」제9조의 근무시간이 적용되는 공무원

    ○ 비위 사실 통보

    직급 / 이름 : 9급 윤미진

    주제동 주무관 윤미진은 2015년 1월부터 11월까지 실제 초과근무확인대장에 기재한 시간대로 초과근무를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붙임문서와 같이 총 119회에 걸쳐 허위로 초과근무확인대장을 작성하여 3,563,000원을 부당하게 수령한 사실이 있음.

    ○ 조치 결과

    가) 부당 지급된 초과근무수당 3,563,000원에 가산징수금액 7,126,000원을 더한 10,689,000원을 충청남도특별회계계정에 반납

    나) 해당 공무원은 적발시점 이후 3개월간 초과근무명령을 금지

    이후 부주시에서는 해당 비위사실에 대한 징계의결 요구 후, 징계 결과를 충남도청 공직기강감사실로 공유 바랍니다.

    ────

    “어떻게 된 거야! 이게 뭐야!”

    윤미진은 해당 공문을 보고 눈이 돌아갔다.

    즉시 반납해야 될 돈만 10,689,000원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승진 명단에서도 윤미진의 이름이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징계위원회(인사위원회)에 회부가 되면 승진 대상자에서 제외된다.

    윤미진이 바로 그런 케이스였다.

    올해 4년차로 무조건 8급 승진이 확실시되는 상황이었던 그녀. 시간 외 근무수당 부당수령으로 승진에서 밀렸다.

    3일 뒤 열린 인사위원회.

    결과는? 기껏해야 경고 조치나 견책을 맞을 줄 알았는데.

    “감봉이요?”

    “어쩔 수 없었어요.”

    징계 결과 감봉 3개월 결정.

    월 200만원을 받던 윤미진은 3개월 감봉 처분을 받고 월급의 1/3이 날아갔다.

    윤미진이 텅텅 빈 통장을 보며 오열했다.

    9급 공무원 연봉 약 2000만원.

    이제 수당도 받지 못한다.

    월급도 깎였다.

    만 3년 동안 그녀가 모은 금액 총 500만원.

    거기서 1000만원을 변제해야 한다. 그러니 대출을 받아야 했고, 가뜩이나 적은 월급은 1/3인 130만원으로 줄어들었다.

    윤미진이 스마트폰을 쥐고 분노를 폭발시켰다. 그 분노의 대상은 바로 전 남자친구.

    지금의 도청 감사팀장이다.

    - 상대방이 전화를 받지 않아…

    전화가 차단되어 있는 상태.

    자신의 번호를 차단한 강백현의 행동에 윤미진이 하늘을 향해 소리쳤다.

    “강백현! 죽여 버릴 거야. 강백현! 강백현! 강백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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