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뚝배기 깨러 왔습니다-85화 (85/139)

뚝배기 깨러 왔습니다 85화

부주시 초유의 징계대란.

표창 대상은 11명.

징계대상자 총 54명.

묵묵히 일을 하던 사람은 감사결과에 따라 표창을 수여받고, 꼼수를 부리고 사익을 취하던 공무원들은 징계를 받는다.

감사에 따른 징계처분 요구 사유는 다음과 같았다.

1. 대기오염물질 배출시설의 대기오염물질 발생량 산정 부적정

2. 조형물 대행업체 관리 등 부적정

3. 강화된 배출허용기준 적용 부적정

4. 특정대기유해물질 불법 배출 관리 미흡

5. 원산지 표시 위반정보 공유 및 활용 부적정

6. 태양광발전소 발전사업허가 및 기술검토 업무 부당처리

7. 블록형 단독주택사업 시범사업 추진 부적정

8. 매입처별 계산서합계표 작성 및 제출 부적정

9. 임직원의 음주운전 비위 관리 부적정

10. 퇴직급여충당금 적립 및 퇴직금 지급 부적정

11. 물품 검사·검수 업무 태만

12. 공사하도급 계약 관리 부적정

13. 지방투자촉진보조금 신청 및 관리업무 부적정

14. 임차보증금 채권보전업무 부당처리

15. 시설물에 대한 하자보수 미요청 및 이행관리 부적정

16. 수문 및 통문 유지관리 부적정

17. 하도급 관리 및 감독 부적정

18. 5급 승진예정인원 산정업무 부적정

19. 직급보조비 등 수당 과다 지급

20. 건축사 징계처분 업무 처리 및 사후관리 부적정

21. 공사 계약업무 처리 부적정

22. 공무원 범죄처분결과 통보사항 처리 부적정

23. 교육비특별회계전출금 용도의 국고보조금 미전출

24. 시비유학 장학생 선발 부적정

25. 채용공고 미실시 등 규정에 위반되게 직원 채용

26. 문화관광지 조성사업 추진 부적정

27. 불법축사 허가 선정

단순히 나온 건수만 해도 28건. 그에 연루된 공무원도 무려 54명.

인구 8만의 작은 도시, 공무원들끼리 얼굴만 봐도 알 정도로 조그마한 도시에서 28건의 시정사항과 54명에 대한 징계처분요구가 결정되자, 부주시 자체 내에서도 상당한 논란과 이슈가 된다.

강백현은 쉼 없이 울리는 전화를 아예 끊어놓았다.

부주시에서 걸려오는 전화.

감사결과가 부당하다며 소를 제기하겠다는 공무원들의 항의다.

한 번만 봐달라고, 돈은 얼마든지 주겠다는 청탁에, 제발 만나만 달라는 부탁까지. 다양한 연유로 전화를 걸어오지만 결국 그들이 전화하는 목적은 딱 하나. 징계요구를 철회하라는 것이다.

고태준 감사실장은 영악했다.

모든 책임을 백현에게 미루고 아예 병가 신청을 내버렸다.

고혈압으로 인해 정밀 검진을 받겠다며 10일 간의 병가신청을 내고 스마트폰을 꺼버린 탓에 연락이 되지 않는다.

가족이나 친지를 통해 겨우 연락이 닿아도 자신은 모르는 일이라며 발뺌하니 청탁자 입장으로서는 답이 없는 상황.

그렇다고 새로 온 강백현 팀장이 청탁을 들어주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전 원칙대로 하겠습니다.』라며 일관하니 말이 통하지가 않는다.

물론 징계의결요구가 곧 징계로 확정되는 것은 아니다.

인사위원회를 거쳐 잘잘못을 따지고 거기에 대해 충분히 소명가능하다면 자신에 대한 징계의결요구가 철회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대충한 감사가 아니니 문제였다.

처음부터 내부 정보를 전부 알고 달려든 공직기강감사실의 감사결과를 어떻게 소명할 것인가?

결론은 하나.

잘못을 인정하고 징계를 받아들일 수밖에.

감사결과가 나온 다음주 월요일.

강백현은 같은 팀원 3명을 이끌고 부주시장을 만나러 갔다.

본래 감사가 끝나면 앞으로 시정해야 될 사항이나 잘된 사항 등에 대해서 시장과 이야기하는 자리를 가진다. 이는 차후의 시정활동에 도움이 되도록 의견을 조율하는 긍정적인 취지였다.

다소 불편할 순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평소의 시정 활동에서는 확인할 수 없는 부패한 관료들을 척결하고, 내년부터는 정상적인 시정활동을 이끌어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자리.

그런데 곧 시장이 바뀔지도 모르는 지금, 현재 상황의 특수성이 평소와는 다른 결과로 이어졌다.

“강백현 주무관님? 시장님이 단독으로 보자고 하십니다.”

“네? 저희 팀원들은?”

부주시의 비서실장, 강실장의 말에 강백현이 되물었다.

그러자 뒤에 있던 차우현 주무관이 강실장의 표정을 확인하고 자신의 의견을 전했다.

“저희는 괜찮습니다. 시장님과 두 분이서 이야기 나누시지요. 특별히 저희가 없어도 되는 자리지 않습니까?”

“괜찮으신가요?”

강백현의 미안한 표정에 차우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당연히 괜찮죠. 걱정 마시고 혼자 들어가십시오. 저희는 1층 카페에서 차 한 잔 마시고 있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강백현이 시장실로 독대하러 들어가자 차우현이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그의 한숨에 김태웅도 자신의 의견을 전했다.

“선배님, 잘 하셨습니다. 들어가 봐야 저희한테 좋을 것 없지요. 내려가실까요?”

“그래. 1층이나 가자고.”

“넵.”

차우현이 1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에서 조은혜 주무관과 김태웅 주무관 뒤를 따르며 혼자만의 생각에 빠졌다.

‘아, 세상에서 가장 재밌는 게 싸움구경하고 불구경이라고 했는데, 같이 들어갈 걸 그랬나?’

* * *

시장실에는 차우현이 생각한 대로 싸움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강백현은 이미 부주시장이 어떻게 나올지 알고 있었다.

단독으로 부른 것부터가 그의 본 모습을 가감 없이 드러내려는 것.

아니나 다를까, 부주시장의 입에서 고압적인 말투가 흘러나왔다.

“자네 혼자인가?”

“네. 시장님이 원하셨잖습니까? 원하는 대로 해드려야죠.”

꿀리지 않고 하고 싶은 말을 툭툭 내뱉는 말단공무원 출신 강백현의 대꾸. 부그 하나하나가 심기가 거슬리는 부주시장이 화를 참으며 말했다.

“하-아, 자네는 말이야. 내 인내심의 한계를 시험하는 것 같아. 내가 어떻게 하면 좋을까?”

“네?”

“돈으로도 안 되고, 협박도 안 먹히고, 도대체 자네가 원하는 게 뭐야?”

부주시장이 최후의 협상에 들어갔다.

선거까지 단 한 달.

징계처분 요구를 받아들여야 하는 입장인데, 막상 징계를 하자니 자신의 정치적 생명력이 걸린다.

자신이 부주시장으로 있으며 얼마나 부패했던 것인가에 대한 시민들의 의구심이 확산되기 전에 이 모든 것을 원래대로 되돌려야 한다.

그러려면 방법은 단 하나.

감사결과를 뒤집는 것.

부주시장은 감사문서에 강백현 감사실장 대리로 문서가 전결되어 있음을 확인했다. 즉 그에게 전권이 있다는 것.

그래서 이 자리에서 마지막으로 협상을 하려고 한다.

“내가 주변에서 듣기로는 윤미진 주무관하고 사귀는 관계였다더군.”

“네?”

“지금은 헤어졌지만, 서로 아직도 많이 그리워하는 상태고.”

“네?!”

“그 부분을 해결해주면 자네의 결정이 다시 번복될 수 있지 않을까? 그거라면 어떻게든 내가 처리가 가능한 부분일 것 같은데?”

부주시장은 강백현의 표정을 보며 확신했다.

부주시장에게 있어 남자의 인생은 3가지로 좌우되는 것이었다.

첫 번째는 돈이다.

돈이 없으면 남자는 기를 펴지 못한다. 돈이 없으면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고 사람도 잘 따르지 않는다.

그래서 돈이 필요하다.

두 번째는 권력이다.

돈으로 살 수 있는 권력과 돈으로 살 수 없는 권력이 있다.

그러나 눈앞의 상대는 예전과 달리 권력을 가지게 되었다.

충남도청 공직기강감사실의 감사팀장.

절대 낮은 직위가 아니다. 그의 나이가 32살임을 고려해볼 때, 과분하고도 남는 자리.

그렇다면 마지막 세 번째, 여자다.

마음에 드는 이성에게 선택받지 못한다는 것은 남자로서 가치를 상실하는 것과 같다. 더구나 자신의 손아귀에 한번 잡혔던 이성이라면 더욱 그렇다.

가지고 있던 것을 누군가에게 빼앗겼을 때의 상실감.

그로 인한 복수심이라면 충분히 이해가 된다.

처음에는 강백현의 마음을 돈으로 회유하려 했다.

그의 집안 사정을 너무나 익히 알고 있어 통할 것이라 자부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그는 돈에 휘둘리지 않았다.

그러면 두 번째, 권력이 있다.

예전 8급 공무원 시절이라면 승진이라는 달콤한 말로 회유할 수 있었겠지만, 지금은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 5급 공무원이다. 부주시장은 자신의 힘으로는 두 번째 방법으로 강백현을 통제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꺼내든 것이 세 번째 방법이었다.

세 번째 방법은 보통이라면 통하지 않는 수였다.

그러나 그가 좋아하는 윤미진 주무관은 부주시청의 공무원이다.

그녀를 승진이라는 달콤한 말로 회유한다면, 강백현과 다시 재결합시키는 것은 일도 아니라고 보았다.

자신이 알고 있는 윤미진 주무관은 권력을 쫓는 타입으로, 지금의 강백현과도 충분히 재결합 의사가 있을 테니까.

“물론 그것뿐이라면 부족할 수 있겠지. 돈도 얼마든지 주겠네. 얼마가 필요한가? 한 장? 두 장? 두 장까지는 내가 어떻게 마련해보겠어. 아, 여기서 말하는 두 장은 2천만원 아니고 그 위네. 2억. 2억 정도면 자네도 해볼만하지 않겠어?”

“2억을 주신다고요?”

“그래. 한 달 뒤, 선거에서 내가 재선이 되면 자네한테 2억을 마련해주지. 대신 감사결과는 철회하게. 특히, 축사허가 관련 건하고 조형물 건은 절대 언급도 되지 않도록 자료를 파기하는 조건이네.”

강백현은 부주시장이 왜 저렇게까지 제안하는지 속내를 알게 되었다.

지금의 대화 속에 그의 약점이 포함되어 있다.

축사허가 건과 백제문화제 조형물 업체 선정 관련이 그의 아킬레스건이라는 이야기였다.

[……]

최용규는 부주시장의 달콤한 제안에 강백현의 결정을 기다렸다.

확실히 2억원이라고 하면 누구든지 흔들릴 수밖에 없다.

부주시장에게 2억원이야 승진을 빌미로 공무원에게 삥을 뜯거나 건설, 하도급 허가를 조건으로 업자들에게 뜯으면 그만이다.

한 해에 적어도 10억씩은 뜯을 수 있는 자리가 바로 이 기초자치단체장 자리다. 더구나 인구 8만의 조그마한 부주시는 언론에서 관심도 갖지 않는 유령도시나 다름없으므로 돈을 뜯어내는 것도 부담이 없었다.

전임자도, 전전임자도 부주시장을 해먹으며 30억이란 돈을 벌었다.

시장 선거에 들어가는 돈이 약 5억, 그리고 임기동안 빼먹는 돈은 최소 30억.

그러니 남는 장사, 여기서 리스크를 제거하는 조건으로 2억을 떼어 준다고 해도 결코 손해가 아니다.

강백현은 시장의 제안을 듣고 자신의 직책이 가져오는 힘을 알게 되었다.

『어휴~ 이 조그마한 부주시에서 너도 고생 많이 한다. 시장 따까리 하고, 과장 똥꼬 빨고, 씨발 어디나 다 썩긴 썩었어. 맞지?』

『감사실은 그래도 파워 있잖아요.』

『큭큭, 내 자리는 그래. 힘 좀 있지.』

죽기 전 최용규 선배와 나눈 대화.

감사실의 절대적인 힘은 권력자들을 통제하는 데서 나온다.

그러고 보니 김태웅조차도 시장으로부터 억대 금품을 수수한 사실이 떠올랐다.

요즘에는 뇌물을 암호화폐로 주기 때문에 들키지도 않는다.

수사가 들어와도 금융거래 기록이 없기 때문에 리스크가 없다.

“그래. 차근차근 생각해 봐. 뭐 줄까? 녹차? 커피? 아! 홍차가 좋겠군.”

부주시장은 시장실 내 전화를 들어 비서실장에게 차를 내올 것을 요구했다.

“강비서, 홍차 두 잔.”

『네. 시장님, 홍차 두 잔 준비하겠습니다.』

강백현은 부주시장의 제안에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는 중이었다.

“돈은 어떻게 주실 거죠? 기록이 남을 텐데요.”

“암호화폐 계정만 알려주게. 그쪽으로 전달해주지.”

“암호화폐요?”

“그래. 블록체인 방식을 활용하는 암호화폐는 어떤 수사에서도 자유롭지. 물론 우리끼리 배신하면 결과는 죽음뿐이지. 나도 뭐, 거기까지 하고 싶진 않고. 내가 여기까지 말해야 되나?”

조폭 출신들이 대거 정치계에 들어왔다.

그들은 자신이 조폭 출신인 것을 숨긴다. 굉장히 청렴한 척, 깨끗한 척 이미지를 세탁해나간다.

부주시장도 그 중 하나였다.

온갖 더러운 일은 자신의 친척, 지인들을 통해 시키고, 자신은 깨끗한 사람인양 포장하며 얼굴마담을 계속한다.

강백현은 부주시장이 어떤 사람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에게 해코지를 하면 어떤 결과를 불러오게 되는가도 잘 알고 있었다.

‘그냥은 안 끝내겠죠.’

하지만 암호화폐로 뇌물을 전달한다고 생각하니 머리가 아파온다.

증거를 어떻게 잡을까? 어떤 식으로 해야 그의 계획을 봉쇄할 수 있을까?

홍차를 가지고 들어온 비서실장이 두 사람의 분위기를 살폈다.

냉담하기만 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차분한 두 사람이 감사결과보고서를 펼치지도 않은 채 서로를 바라보고 있다.

‘두목님은 역시 대단하시다니까. 이 미친개의 입을 닫게 만드시다니.’

비서실장이 꿀 먹은 벙어리가 된 강백현을 보고 비웃었다.

강백현은 잠시 고민하다, 암호화폐에 대해 무지한 자신에 대해 깨달았다.

‘결국 돈이야. 돈의 흐름을 막아야 시장을 막을 수 있어.’

강백현은 홍차를 다 마신 후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서 말했다.

“제안 주신 것은 시간을 두고 검토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감사결과보고서를 수정할지 말지는 다시 판단해보도록 하죠.”

“후후, 그래. 그렇게 해주게.”

“네. 오랜 시일이 걸리진 않을 겁니다.”

* * *

강백현이 최종감사결과를 시장에게 통보하지 못한 채, 동료들과 도청으로 되돌아왔다.

감사결과를 통보했다고 생각한 직원들은 의외로 잠잠한 부주시의 행동에 이상함을 느꼈고, 그에 따라 차우현 주무관은 부주시의 근황을 알아보려 비서실장에게 전화했다.

그런데 시장과 협상에 나섰다는 이야기, 그 이후는 아무 것도 모른다는 말을 들었다. 강백현을 믿었던 차우현은 실망의 기색을 드러내고 말았다.

김태웅은 그 이야기를 듣고 미친 듯이 웃었다.

“선배님, 이것 보십시오. 사람은 다 똑같습니다.”

“허허, 진짜 믿을 놈 하나 없네. 부주시를 미친 듯이 후벼 판 게 돈 때문이었어? 강백현 팀장, 완전 쓰레기네.”

“맞습니다. 원래 그 새끼, 쓰레기였어요. 아무튼 전 오히려 이 상황이 더 좋네요.”

김태웅은 차우현이 들은 정보를 토대로 윤미진에게 전화를 걸었다.

- 뭔데?

“미진아, 너 징계 안 받을 것 같다.”

- 진짜?

“응. 자세한 건 너 만나서 이야기해줄게.”

한편, 도청에서 암호화폐의 원리에 대해 연구하던 강백현은 무언가를 깨닫고 전화하는 제스처를 하며 유령 최용규에게 물었다.

“선배, 알아냈어요?”

[응. 놀랍게도 시장실에 있던 컴퓨터더라.]

“그럼 이야기가 빠르겠네요.”

강백현이 큰 소리로 자신의 직속부하인 차우현 주무관을 불렀다.

“차우현 주무관님!”

그러자 자신의 자리에 앉아있던 차우현이 못마땅한 얼굴로 강백현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지금 바로 감찰 쪽하고 같이 시장실 컴퓨터 압수하러 가시죠. 자세한 것은 나중에 말씀드리겠습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