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뚝배기 깨러 왔습니다-84화 (84/139)
  • 뚝배기 깨러 왔습니다 84화

    백현은 밤을 세워가며 종합된 자료를 취합, 감사결과 보고서를 최종 작성했다.

    특별히 어려운 점은 없었다.

    쳇바퀴 돌 듯 똑같은 업무를 하는 감사실 특성상 작년 자료와 재작년 자료들이 기록물 관리함 내에 보관되어 있었다.

    그것을 다운로드 받아 감사에 나가서 확인한 자료들로 최신화하는 과정이니 단순히 시간만 들인다면 크게 난감할 일은 없는 것이다.

    “먼저 퇴근해도 되겠습니까?”

    김태웅의 말에 강백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먼저 가세요. 차우현 주무관님도 얼른 퇴근하시죠.”

    “아니요. 전 팀장님하고 같이 퇴근하겠습니다.”

    “전 밤새야 될 것 같은데…. 실장님 내일 출근하시기 전까지 끝내놓고 싶거든요.”

    각 담당자들의 자료는 종합된 상황이지만, 그것을 정리하는 것은 본래 팀장의 역할.

    지금부터 강백현은 회계/계약 파트, 공직기강 관리 파트, 각종 용역, 일반물품 구매 및 제조, 전산 파트에서 종합된 것을 취합하고 정리해야 한다.

    그런데 차우현 주무관이 퇴근하려는 김태웅을 불렀다.

    “태웅아.”

    “네?”

    “원래 종합하는 건 네 일이잖아.”

    “아…. 제 일이라뇨.”

    강백현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차우현에게 물었다.

    “김태웅 주무관이 하는 일이라니요?”

    “원래 종합하는 건 다 막내가 하는 거고, 팀장님은 확인/결재만 해주시면 됩니다. 팀장님이 직접 종합하실 필요는 없으십니다. 같이 퇴근하시죠. 태웅아, 마무리 하고 퇴근해라.”

    차우현의 말에 김태웅이 난색을 표했다.

    사실 공직사회에서 이건 틀린 말이 아니었다.

    가장 어린 친구, 가장 직책이 낮은 사람이 초안을 종합해오면, 팀장이나 실장이 마음에 안 드는 부분만 고쳐 수정한 후 제출한다.

    그런데 강백현은 달랐다.

    “아니요. 이건 제가 할 일이 맞습니다. 세 분 먼저 퇴근하세요. 제가 종합하고 퇴근할게요.”

    “아닙니다. 같이 있겠습니다.”

    “아니에요. 먼저 퇴근하세요. 제가 직접 해야 할 일을 간과해서는 안 되죠. 직책에는 책임이 따르는 법입니다. 단순한 종합작업이라고 해도 이건 제가 책임을 져야 하는 일이니까, 부담 가지지 말고 퇴근하세요.”

    강백현의 말에 세 명이 고개를 끄덕이며 퇴근했다.

    차우현 주무관은 잠시 고민하다가 말을 꺼냈다.

    “술이나 한 잔 할까?”

    그러자 가정이 있는 조은혜 주무관은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조심스럽게 거절했다.

    “회식 때는 참가할게요.”

    “그래. 오늘 고생했어. 조심히 들어가.”

    “네.”

    그리고 김태웅 주무관 또한 거절의 의사를 표현했다.

    “저도 일찍 들어가야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차우현은 김태웅이 먼저 들어가는 것은 용납하지 않았다.

    “태웅아, 남아.”

    * * *

    차우현과 김태웅이 포차집으로 들어갔다.

    소주에 계란말이, 거기에 얼큰한 오뎅탕.

    남자들이 즐겨먹는 안주다.

    “집에 일찍 들어가고 싶은데 왜 붙잡으십니까?”

    “김태웅! 넌 왜 이렇게 까칠하냐?”

    “그거야 주무관님이 절 사람 취급 안 하시니까 그렇죠.”

    차우현은 김태웅의 호소에 그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

    잠시 그의 얼굴을 쳐다본 차우현이 자신의 본심을 말했다.

    “진짜 사람이 미워졌을 때는 말을 안 걸어. 무관심으로 일관하지. 적어도 사무실에 너한테 그런 사람은 없잖아? 뭐가 그렇게 억울해?”

    “……”

    “그리고 새로 온 팀장, 네 고등학교 동창이라고는 하지만 마음가짐은 너보다 한 없이 크더만.”

    “아니, 그 싸이코 새끼 편을 왜 자꾸 드세요? 안 그래도 야근시켜서 빡쳐 죽겠는데, 11시까지 아무 일도 안 하고 전화만 붙잡고 살던데, 그게 무슨 팀장이에요?”

    김태웅의 말에 차우현이 헛웃음을 터트렸다.

    “지금 강백현 팀장님이 단순히 종합업무만 하고 있는 줄 아냐?”

    “그럼요? 아닌가요?”

    “2013년, 2014년 기초생활수급자 탈락한 사람들 하나하나 확인해서 2015년 소득기준에서 생계급여 대상이 된 사람들 조사하고 있었나 보더라. 진짜 어려운 사람들 중에 혜택 못 받는 사람 있는지 확인하고 있었다고.”

    차우현의 말에 김태웅이 당황했다.

    “올해 기준중위소득이 팍 올랐잖아. 그래서 추가로 수급 기준에 든 사람이 5명인가 있었나 봐. 그 명단 확인해서 그 분들이 새로 신청했는지 안내하고 그동안 못 받았던 혜택, 소급 적용할 수 있는지 하나하나 알아보고 있었던 거야. 그런 분한테 넌 띵까띵까 놀았다고 말할 수 있는 거냐?”

    김태웅은 속이 터질 지경이었다. 뭐 하나 깔 수 있는 게 없는 강백현의 행동이 오히려 그로 하여금 답답하게 만든다.

    “속상하지? 신념을 가진 사람은 자신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 해. 그런 사람을 자주 찾아볼 순 없지만, 찾아보면 없는 건 아니지.”

    “하-아, 소주 한 잔 주십시오.”

    “그래.”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김태웅은 속상해 미칠 지경이었다.

    단순한 복수심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강백현을 차우현 주무관이 오해하고 있다.

    그의 복수심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었지만, 강백현을 까내릴수록 자신에게만 자꾸 피해가 오니 이것도 못할 지경.

    더구나 김태웅을 계속 압박하는 이도 있었으니.

    - 오빠, 뺐어? 내꺼 뺐냐고.

    “어. 최종 보고서 작성하는 부분에서 뺐으니까 걱정 마.”

    - 알았어. 고마워. 오빠.

    “응. 사랑해. 우리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거지?”

    - 일 잘 되는지 봐서 말해줄게. 아직 오빠 못 믿겠어. 믿음 갖게 결과로 가져와.

    감사 후, 미진이가 자신이 지적받은 사항을 빼달라고 자꾸 전화를 걸었던 것이다.

    그런데 미진이와 잘 되는 건 또 못 보는 강백현이다.

    “여보세요?”

    - 김태웅 주무관, 퇴근해서 고생하는 건 아는데, 윤미진 주무관 초과근무 건 자료 빼놓았네요. 지금 장난하는 거 아닌 거 알죠?

    “……”

    - 제대로 파악해요. 김태웅 주무관 한 번 더 징계 받으면 공무원 해임될 지도 모르는데, 선을 너무 넘네요.

    “……”

    - 대답 안 해도 좋습니다. 하지만 명심해두세요. 전 당신의 학교 친구, 동기가 아니라 팀장입니다. 그럼 끊습니다.

    강백현의 전화가 끊어지고, 김태웅이 한숨을 푹 쉬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차우현이 욕을 퍼부었다.

    “전 여자친구? 그거 또 뺐냐? 너 미친 거지?”

    “이래서는 안 되는 거 저도 압니다.”

    “알면 하지 말아야지.”

    “머리는 아는데, 몸은 마음대로 안 되니까 그렇죠.”

    “그럼 목을 잘라.”

    “네?”

    “아니다. 됐다. 마셔라.”

    차우현은 아직도 철없이 행동하고 다니는 후배 김태웅을 답답해하며 소주를 넘겼다.

    * * *

    부주시 특별감사 결과보고서가 완성되었다.

    김태웅이 마지막까지 빼려했던 윤미진 관련 건도 포함된 보고서였다.

    새벽 6시에 해당 문건을 완성한 강백현은 잠시 사무실에서 쪽잠을 잔 뒤, 동네 허름한 목욕탕에서 땀을 빼고 다시 사무실로 출근했다.

    다시 출근한 사무실, 자신의 책상 위에 올려진 감사 보고서를 바라본 강백현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공정 정대한 감사를 진행했다고는 하지만, 평소와는 다른 수많은 지적 및 시정사항이 나왔고, 거기에 따른 수많은 상벌 대상자가 결정되었다.

    가장 큰 문제는 오늘 출근하는 공직기강 감사실장님의 의중이다.

    휴가에서 돌아오신 실장님이 해당 문건을 보며 어떻게 반응하는지에 따라 향후 자신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 정해지기 때문이다.

    드디어 오전 8시 55분이 되었다.

    밀린 잠을 보충하고, 얼굴에 생기를 머금은 공무원들이 하나 둘 출근하기 시작한다.

    “좋은 아침입니다. 팀장님.”

    “아, 차우현 주무관도 좋은 아침이에요.”

    “팀장님, 많이 피곤해보이시는데 괜찮으세요?”

    “네. 괜찮습니다. 조은혜 주무관, 어제 늦게 들어갔는데 남편이 바가지는 안 긁었어요?”

    “그럼요. 저희 남편, 저한테 붙잡혀 살아요. 걱정 안 하셔도 돼요.”

    강백현은 차우현과 조은혜 주무관의 인사에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파김치가 되어 들어오는 동기가 보인다.

    “김태웅 주무관, 새벽에 뭐 했어요?”

    “아--. 아닙니다.”

    김태웅은 눈을 질끈 감더니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그리고 긴장해야 할 시간이 다가왔다.

    실장님이 출근할 시간이다.

    차우현 주무관은 강백현 팀장의 책상 위에 올려 있는 보고서 뭉치를 확인한 후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예상대로 밤 새셨네. 잠 한 숨도 안 주무셨어.’

    그럼에도 멀쩡하다는 표정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는 그의 모습이 기특할 따름이다.

    어느새 8시 59분.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고태준 실장이 휴가를 마친 후 모습을 드러낸다.

    강백현이 자리에서 일어나 실장의 출근을 반겼다.

    “실장님, 좋은 아침입니다.”

    “아~ 그래요. 좋은 아침입니다.”

    차우현 주무관 또한 실장님께 인사를 건넸다.

    “휴가 잘 다녀오셨습니까?”

    “네. 덕분에 잘 다녀왔습니다. 감사팀 내 방으로 다들 들어오시죠.”

    감사실장의 자리는 파티션으로 따로 구역이 나뉘어져 있다.

    크진 않지만, 확실한 개인 프라이버시가 보장되는 공간.

    그의 사무용 데스크 앞, 작은 일자형 테이블의 의자에 둘러앉은 사람들 앞에 김태웅 주무관이 따끈한 녹차를 타서 내려놓았다.

    “그래요. 강백현 팀장, 내 대리임무 간 특별한 사항은 없었나요?”

    “네. 없었습니다.”

    강백현은 곧 이어 다음과 같이 생각했지만, 직접 말로 내뱉진 않았다.

    ‘다만, 다른 팀장들도 많은데 저한테 실장대리 명령을 내셨다는 부분에서 조금은 의아했습니다.’

    그런 강백현의 생각에는 내포된 의미가 있었다.

    건방진 자신을 내칠 의미로 함정을 판 것인지, 아니면 자신을 적극적으로 밀어줄 생각으로 대리임무를 낸 것인지 의문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실장이 감사결과 보고서를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따라 이를 판가름할 수 있기에 굳이 속내를 드러내지 않은 것이다.

    차를 마시며, 고태준 실장은 지난 4일 동안 부주시를 특별감사한 감사 보고서를 한 장 한 장 읽고 있었다.

    그는 글자 하나까지 꼼꼼히 살피며 강백현과 각 담당 주무관들의 감사 결과를 확인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한 40분 간의 초조한 시간이 흘러서야 실장의 입에서 최초의 말이 흘러나왔다.

    “강백현 팀장 말고는 자리 좀 비켜줘요.”

    “네. 실장님.”

    허무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나는 차우현과 김태웅, 그리고 조은혜 주무관.

    단 둘이 남은 사무실에서 고태준이 자신의 부하직원이 된 신임사무관 강백현을 호명했다.

    “강백현 팀장.”

    “네.”

    “나보다 연배가 낮으니까 말을 놓지.”

    “네. 괜찮습니다.”

    “우리 강 팀장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누구나 할 수 없는 길을 걸으려 하고 있어. 내가 하는 말의 의미를 알고 있나?”

    “네. 무슨 말씀을 하시고자 하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 길은 매우 외롭고 혼란한 길이 될 수 있고, 때로는 주변에 피해를 줄 수도 있는 길이지.”

    “무슨 말씀이신지 잘 알고 있습니다. 불편하셨다면 죄송합니다.”

    결국 공무원도 공무원들끼리는 같은 편이다.

    즉, 너무 눈에 띄는 행각은 적을 만들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자신에게 돌아온다.

    부정부패 척결. 말은 좋지만 결국 모두가 편하게 지내는 현 상태를 폐지하고, 원리원칙대로 가자는 것이다.

    즉, 스스로의 행동을 제약하는 양날의 검이란 뜻이다.

    강백현은 사표를 낼 준비도 하고 있었다.

    만약 자신이 눈곱만큼의 잘못이라도 했다면 지금의 말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도 있겠지만, 그게 아니기에 더 이상 공직사회는 희망이 없다고 판단하고 모든 것을 그만두려 한 것.

    하지만 고태준 실장의 말은 그 뜻이 아니었다.

    “오늘까지 휴가를 연장했네.”

    “네?”

    “이 문서는 자네가 전결하게. 그리고 그 책임은 자네가 지는 걸세. 나는 전적으로 자네의 뜻에 따르지만, 책임은 함께 할 수 없다는 뜻이야. 이게 무슨 의미인지 알겠나?”

    강백현은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러자 그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감정이 벅차올랐다.

    자신을 믿어준 고태준 실장의 결정.

    비록 본인이 빠져나갈 구멍은 만들어놓았지만, 그래도 자신이 행하려는 바를 막지 않고 믿고 추진해준 것만으로도 너무나 고마운 일이었다.

    “자네가 공직사회의 희망이 되어주게. 썩어빠진 공직문화를 변화시키고, 부정부패가 없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힘써주게. 가끔 가지가 부러지는 날도 있을 게야. 열매가 익기 전에 떨어지는 날도 있을 거고. 하지만 그런 풍파 속에서도 버티고 버티다보면 언젠가 세상이 자네를 알아봐줄 날이 있을 테지. 그때까지 버틸 수 있겠나?”

    “네. 할 수 있습니다.”

    “좋아. 그럼 이 문건은 자네가 다시 가져가도록.”

    부주시 특별감사 결과 보고서가 다시 강백현의 앞에 놓여졌다.

    강백현은 [代 감사실장 강백현]이라는 서명을 하며 자신이 이 문건에 대해 모든 책임이 있음을 증명했다.

    강백현이 나가자 다시 사무실을 나가는 고태준 실장.

    “아아아~ 나 오늘도 휴가니까. 하던 거 마저들 해요.”

    고태준 실장은 도청 밖으로 나오며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 어. 고 실장. 어떻게 됐어?

    “선배님, 선배님이 말씀하신 그대로입니다.”

    - 그래. 그 놈 잘 지켜봐. 우리가 반격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일지 모르니까.

    “네. 선배님. 좋은 인재를 배정시켜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 후후, 자네에게 막중한 책임을 지게 해서 미안하네.

    “아닙니다. 선배님도 말씀하셨잖습니까? 언젠가는 우리가 주역이 될 날이 올 거라고요. 이제 슬슬 나라를 바꾸어야 할 때가 온 거지요.”

    - 그래. 차후에 한 번 뵙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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