뚝배기 깨러 왔습니다 83화
초과근무 신청기록과 CCTV를 대조해보는 것은 출퇴근 시간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공무원은 조기출근 1시간 전부터 출근이 인정된다. 즉 기본 9시 출근이므로 8시 이전부터 초과근무 신청을 할 수 있다는 것.
그런데 놀랍게도 주민센터 공무원 중 조기출근을 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 이유는 백현이 알고 있었다.
‘아침엔 회식을 안 하니까. 당연히 조기출근을 안 하지.’
그러나 저녁때는 상황이 달랐다.
오후 6시면 비워지는 주민센터.
그런데 7명 중 5명은 초과근무가 신청되어 있었다.
주민센터에서 퇴근한 후, 8시부터 9시 사이에 비틀비틀 들어오는 인영을 목격한 강백현이 CCTV를 돌리던 김태웅에게 말했다.
“확대해 봐요.”
“넵.”
술에 취해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남자들이 잠겨있는 주민센터 안으로 지문을 찍고 들어온다.
곧바로 컴퓨터를 켜더니 5분 내로 컴퓨터를 종료하고 다시 주민센터 밖으로 나간다.
“초과근무 신청은 공문 및 기안문서 확인, 결산 종합사항 정리라고 적어두셨는데, 다들 사무실이 아닌 바깥에서 하셨나 봐요?”
강백현의 한 마디에 분위기가 갑자기 싸해진다.
“다음날도 보죠.”
강백현은 다음 날 초과근무 신청 멤버를 확인했다.
거기에는 윤미진이 포함되어 있었다.
윤미진이 당황한 채 노려보자, 김태웅이 재빨리 다음 날로 카메라를 돌린다. 그러나 그것을 포착하지 못할 강백현이 아니다.
“김태웅 주무관, 뭐하는 건가요?”
“네?”
“다음 날이라고 했잖아요. 다다음 날하고 다음 날하고 구분이 안 돼요?”
“아… 아닙니다.”
“2015년 9월 13일, 오후 6시부터 8배속으로 돌려봅시다.”
정확하게 지침을 내리는 강백현의 지시에 김태웅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갔다.
김태웅은 윤미진의 다급한 표정에 쓴웃음으로 답을 대신했다.
윤미진의 모습이 보인다.
운동 후 트레이닝 복 상태로 주민센터에 들어오는 모습.
그걸 본 강백현이 자신의 옛 연인이었던 미진에게 말했다.
“윤미진 주무관은 초과근무인데 운동하고 들어온 거네요?”
“……”
“다시 한 번 물을게요. 윤미진 주무관은 2015년 8월 13일 목요일 오후 6시에 다음날 이동목욕 지원물품 정리라는 사유로 초과근무를 신청했습니다. 이동목욕 지원물품은 보통 주민센터 내 창고에 보관하겠고요. 제 말이 틀렸나요?”
“……”
“그런데 신청 내역과는 다르게 윤미진 주무관은 트레이닝 복으로 갈아입고 오후 9시가 다 되어 주민센터에 나타납니다. 이 3시간동안 윤미진 주무관은 어디에서 이동목욕 지원물품을 정리하고 있었던 걸까요? 트레이닝 복은 어디에서 갈아입었고요?”
강백현의 말에 윤미진이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분노를 못 이기고 나가는 윤미진을 본 김태웅은 자신의 일인 마냥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그런데 강백현은 그녀가 자리를 떠나는 것을 용납하지 못했다.
“윤미진 주무관, 어디가세요?”
“네?”
“이 자리에서 바로 진술서 받겠습니다. 그 날 있었던 일을 육하원칙에 의거하여 사실대로 작성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저, 너무하신 거 아닌가요?”
“아니요. 너무한 거 아니고, 너무 잘 하고 있는 겁니다. 썩어빠진 공직윤리 기강을 아주 잘 바라잡고 있는 중이고요. 더 할 말 있나요?”
윤미진은 머리끝까지 열이 뻗쳤지만, 강백현이 도청의 감사실에서 나온 이상 더 이상 대응할 수 없었다.
나중에 김태웅을 통해 어떻게든 징계를 모면하는 게 최선이라고 판단한 윤미진이 진술서를 쓰기 시작했다.
윤미진은 눈빛으로 김태웅에게 자신의 처지를 설명했다. 찰떡같이 알아들은 김태웅이 고개를 끄덕이며 어떻게든 해보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연락도 하지 말라던 윤미진과의 관계가 진전된 것을 느낀 김태웅. 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강백현이 지시하는 CCTV화면 대조를 계속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8월 19일 수요일 확인해주세요. 그 다음은 8월 21일 금요일 확인해주시고요.”
CCTV에 윤미진이 계속 등장한다.
강백현은 윤미진의 초과근무 기록을 중점적으로 살폈다.
8월 13일, 8월 19일, 8월 21일.
초과근무 신청한 날마다 그녀의 일탈 행동이 잡히고 있다.
강백현은 벌레 보는 표정으로 윤미진에게 말했다.
“윤미진 주무관.”
“……”
“진술서 4장 추가합니다. 8월 13일 말고, 19일, 21일, 26일, 28일도 추가로 작성하세요. 그 날 오후 6시 이후 초과근무 내용에 대해 빠짐없이 기술하시고, 주민센터를 나간 후에 무엇을 하며 초과근무를 했는지 육하원칙에 의거하여 자세하게 진술하기 바랍니다.”
* * *
공직기강 감사 둘째 날, 윤미진은 진술서를 쓰며 펑펑 울었다.
‘내가 도대체 뭘 잘못했다고 나한테 저 지랄이야. 미친 놈! 진짜!’
김태웅이 눈치를 보며 윤미진의 진술서를 빼려고 하는데도 강백현은 그걸 놓치지 않는다.
“어 8월 26일 진술서가 없네요. 뭐죠?”
“아…….”
“이유는 필요 없습니다. 김태웅 주무관, 퇴근 안 할 거예요?”
“네?”
“진술서 받을 때까지 퇴근 못 합니다. 놓치지 말고 받으세요.”
“네. 알겠습니다.”
집요하게 진술서를 받아내는 강백현의 모습에 김태웅이 혀를 찼다.
김태웅은 자신도 모르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만약 자신이 녀석의 부하가 아닌 일반 행정부서의 공무원이었다면 얼마나 탈탈 털렸을까?
강백현은 초과근무만 본 것이 아니었다.
비밀문서 관리취급현황, 그리고 주민대피계획의 적정성, 비밀인가자의 관리, 보안점검 등 기본적인 부분을 하나하나 꼼꼼히 체크해 나갔다.
지적사항만 무려 58건.
일개 주민센터에서 나온 항목이다.
강백현은 쉬는 시간을 이용해 옥상에 올라갔다.
최용규와 대화하기 위해서였다.
“선배, 나 잘하고 있는 것 맞죠?”
[너무 꼼꼼히 보는 거 아니야? 이렇게 사소한 것까지 볼 필요 있나?]
“사소하다뇨. 기본적인 거죠. 기본적인 것을 못하니까 공무원들이 욕을 먹는 겁니다. 시민들이 공무원들에게 얼마나 큰 것을 바라겠어요? 그냥 해야 할 일 하고, 하지 말아야 할 일 안 하면 시민들은 만족한다고요.”
[그건 그렇지.]
“그런데 그게 안 되잖아요. 이런 부주시의 조그마한 동네 주민센터부터 그런 식인데, 시청, 구청, 도청들은 어떻겠어요? 다 썩은 거죠.”
[……]
최용규는 강백현의 생각에 동조했다. 하지만 문제는 모든 것을 혼자 해결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다음 계획은 뭔데?]
“비정상의 정상화.”
[뭐?]
“아주 기본적인 것이라도 지키자는 게 제 신념이에요. 그러기 위해서 한 번쯤은 칼을 꺼내들 필요가 있어요. 관료조직은 관행에 사로잡혀 서로 봐주고 있어요. 올해 부주시에서 징계 받은 공무원이 겨우 2명이라는 것도 사실 말이 안 되죠.”
강백현이 자신의 기억에 빗대, 의견을 피력했다.
“제 마지막이 어떻게 될지는 저도 몰라요. 선배 말처럼 금방 죽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이 일에 후회는 없어요. 선배의 죽음 때문에 하는 일도 아니고, 진한 선배의 죽음 때문에 하는 일도 아니에요. 제가 좋아서, 이게 시민들을 위한 일이니까, 크게는 국가를 위한 일이니까 저도 이렇게까지 하는 거죠.”
[네 전 여자친구는? 징계할 거냐? 안 봐줘?]
“네. 안 봐줍니다. 태웅이 손에 의해 처리하게 할 거예요. 태웅이가 직접 기안한 문서로 감사결과에 징계의결요구를 반영할 겁니다.”
[독한 새끼! 넌 진짜 찐이다 인마.]
최용규가 헛웃음을 터트렸다.
그런 선배의 웃음에 강백현이 말했다.
“말씀 드렸잖아요. 부정부패, 비리척결, 제가 원하는 것은 그것뿐이라고. 다 선배가 했어야 하는 일이었어요. 여기까지 오느라 얼마나 오래 걸렸는데, 그 동안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세요?”
[대신에 내 여자 친구도 빼앗아갔지.]
“아니! 그건 제 잘못이 아니잖아요.”
[미친 놈! 됐어. 네 할 일이나 해. 나도 내 할 일이나 할 테니까.]
강백현은 최용규와의 대화를 마치고 주민센터 옥상에서 다시 1층으로 내려갔다.
겨울임에도 하늘이 참 맑았다.
최용규는 이렇게 화창한 날씨처럼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도 청렴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 * *
감사 3일차 및 4일차.
강백현은 부주시 도서관, 보건소는 물론 박물관까지 탈탈 털었다.
이런 동떨어진 기반시설의 근무태만은 일반 주민센터보다 더 심했다.
“이 봐요. 공중보건의는 일반 병원에서 일하면 안 되는 것 모릅니까?”
“……”
“의무 복무중이잖아요. 그리고 의무 복무를 떠나서 공무원은 겸직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강백현의 질문에 공중보건의 차일우가 대답을 미룬다.
“아니! 겸직을 떠나서 말해봅시다. 대학병원 응급실 밤새 대기하고 아침에 보건소에 와서 환자들에게 정상적인 진료를 제공할 수 있겠습니까?”
강백현의 말에 차일우 보건의가 한숨을 내쉰다.
“이봐요. 차일우씨, 한숨 쉰다고 잘못한 걸 되돌릴 순 없습니다. 돈이 부족해도 지킬 건 지켜야죠. 저희가 보건소를 왜 운영합니까? 생활 곤란하신 시민들에게도 질 좋은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자 만든 게 보건소지 않습니까? 물론 방역, 예방활동도 하고요. 그런 서비스 제공에 가장 영향을 주는 게 우리 차일우 선생님인데, 대충대충 하시면 시민들이 보건소를 어떻게 생각하겠어요? 그런 분들이 우리 대한민국 국가의 의료시스템을 얼마나 신뢰하겠습니까?”
강백현은 말을 계속해나갔다.
“차일우 선생님의 행적은 감찰을 통해 인계가 될 것이고, 해당사항에 대해 이후 인사위원회가 개최되어 정상적인 절차를 통해 징계가 진행될 것입니다. 만약 해당 사항에 만족하지 못하신다면, 항소나, 한 달 이내에 징계위원회에 재심 처리하는 방법도 있으니 어떻게 대응하실지는 선생님께서 직접 생각해주시기 바라겠습니다. 그럼. 이만 나가보겠습니다.”
공중보건의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는 보건소장도 마찬가지였다.
“보건소장님은 이곳으로 임용되는 공중보건의 분들을 책임질 의무가 있어요. 그러라고 경력 30년 사무관님을 시장님이 여기에 배치시키는 것 아닙니까? 안 그렇습니까?”
강백현의 말에 보건소장 김길태가 말했다.
“야, 백현아, 너 왜 이렇게 나와? 내가 너한테 잘못했니?”
“사사로운 건으로 그런 거 아닙니다. 저는 공직기강 감사팀장으로 이 자리에 왔고요. 공직기강문란행위를 적발했기에 그 책임자인 김길태 보건소장님께도 말씀드리는 겁니다. 김길태 보건소장님도 관리미흡으로 같이 징계의결요구 나갈 겁니다. 대비해주시고요. 징계위원회 발족되면 거기서 잘 진술해서 좋은 결과 있길 바라겠습니다.”
“야! 강백현! 너 이럴 거야?”
“네. 뭐, 더 지적해드립니까?”
“이 새끼! 이 새끼! 이 새끼!”
강백현은 안면몰수한 채 자신의 할 말만 내뱉고 보건소를 빠져나왔다.
썩을 대로 썩은 부주시에서의 감사가 모두 끝이 나고.
차우현 주무관이 강백현에게 말했다.
“감사결과보고서 작성이 늦어질 것 같습니다.”
“왜 그렇죠?”
“평소보다 지적사항이 10배는 넘게 나온 것 같습니다. 아~ 이건 팀장님이 적발하신 사항만 그렇고요. 저희 것까지 종합해서 작성하면 총 200페이지는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공직기강감사결과 보고서는 보통 15~18페이지 분량으로 작성된다.
하지만 이번 특별감사 결과를 모두 담으려면 첨부문서까지 200페이지가 넘을 거라는 예상에 강백현이 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럼 초과근무 결정이네요. 다들 승인해드릴 테니, 저랑 같이 야근 해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다들 문제없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