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뚝배기 깨러 왔습니다-82화 (82/139)
  • 뚝배기 깨러 왔습니다 82화

    “팀장님, 장난 아닌데요? 최근 5년간 계약 문건 확인해봤는데 백제문화제 행사 조형물을 한 업체에서 다 계약했네요.”

    차우현 주무관은 붙임문서에 첨부된 파일을 열람하며 놀라워하고 있었다.

    그런 차우현 주무관의 말에 강백현이 뒤의 과장과 직원들 들으라는 듯 물었다.

    “부주시에서는 수의계약을 얼마까지 자체적으로 할 수 있게 되어 있죠?”

    “1,000만원까지요. 아, 2011년 전까지는 2,000만원이었는데, 규정이 개정되는 바람에 1,000만원으로 줄은 상태죠.”

    “그런데 해당 조형물 계약은 얼마에 되어 있나요?”

    “4억이네요.”

    그러자 조한돌 과장은 강백현이 몇 번이나 들여다봐서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입찰 사안에 대해서 설명하기 시작했다.

    “백현아, 분명 조형물 관련 예산이 4억이긴 하지만, 우리 시의 요구조건에 부합하는 적정업체가 없어서 도에 건의를 해서 승인을 받은 사항이야. 뭔가 잘못 알고 있는 것 같은데, 내가 그 때 계장으로 일했기 때문에 잘 알고 있어. 문제없는 사항이야.”

    “네. 도에서 분명 승인을 받았죠. 그런데 왜 요구조건이 부주시에 위치한 사업자여야 하고, 매출 30억 미만의 중소기업이어야 하며, 최근 10년간 문화재 조형사업에 참여한 경험이 0회 이상 3회 미만이어야 되는 걸까요?”

    “그건… 중소기업을 살리고자 하는 차원에서.”

    “그것뿐만이 아니네요. 왜 지난 5년간 3번이나 같은 업체가 맡게 된 거죠? 5년에 3번이라고 하면 2번은 다른 업체겠네 생각할 수 있겠지만, 부주시와 공여시는 2년에 한 번씩 돌아가면서 백제문화제를 개최하고 있습니다. 즉, 최근 5년간 3번의 백제문화제가 열렸고, 그 3번 모두 한 업체에서 부주시와 계약을 맺었다는 거죠. 여기에 대해서 할 말 있으실까요?”

    조한돌은 갑자기 말문이 막혔다.

    ‘씨-이발.’

    하나부터 끝까지,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강백현이 야속하다.

    “백현아, 나가서 이야기하자니까? 우리 잘 알잖아. 응?”

    문화재과장의 말에 강백현은 모르쇠로 일관하며 차우현에게 지시를 내렸다.

    “차우현 주무관은 해당업체 사장이 현재 시장님과 어떤 관계인지 알아보고 보고해주세요.”

    “네. 팀장님.”

    “제가 알고 있기로는 조형물 제작업체가 현재 시장님의 친척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는 이 자료에 대한 분석이 끝나는 동시에 선거관리위원회로 넘기겠습니다. 거기에 대해서 조한돌 과장님께서는 모르신다는 거죠?”

    “백현아! 인마!”

    “인정에 호소할 것 없습니다. 어차피 증거는 남게 되어 있어요. 대한민국이 제 아무리 썩었어도, 예산 사용에 대한 흐름은 증거가 남거든요. 그만큼 금융 선진국이기도 하고요. 미안하지만 횡령했을 때부터 이미 이런 결과를 각오하셨어야 합니다. 아니 생각해보니까 내가 미안해야 할 이유가 없네.”

    “……”

    “조한돌 과장님? 이제 끝입니다.”

    강백현은 시장실에 이어 허가과, 문화재과를 탈탈 털어버렸다.

    “야! 야!”

    오후 6시.

    문화재과에서 모든 일정을 마친 차우현이 강백현에게 말했다.

    “팀장님은 바로 댁으로 가셔도 될 것 같습니다.”

    “아, 그럴까요?”

    “댁이 부주인데, 도청이 있는 홍성까지 돌아가실 것까진 없죠.”

    “감사하네요.”

    안 그래도 6시 30분에 약속이 있는 강백현은 못이기는 척 대답했다.

    차우현은 눈치가 빨랐다. 팀장의 대답을 듣고 백현이 원하는 말을 내놓았다.

    “내일 아침 8시 50분까지 댁 앞으로 모시러 가겠습니다. 전 어차피 홍성이 집이라서 도청으로 가봐야 합니다. 팀장님은 퇴근시간도 지났으니 바로 집으로 가십쇼.”

    “네. 감사합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강백현을 태우지 않고 홍성으로 향하려는 차량. 그런데 김태웅이 차우현에게 말했다.

    “저도 내릴게요.”

    “뭐?”

    “저도 먼저 퇴근하겠습니다. 약속이 있어서요.”

    “넌 서류 정리해야지. 어딜 도망가려고 그래?”

    “아, 내립니다. 내려야 합니다.”

    * * *

    같은 시각. 강백현은 약속장소로 향하고 있었다.

    약속장소는 선배의 장례식장 참석 후 친구들과 만났던 그 레스토랑이었다.

    윤미진은 부쩍 수척해진 얼굴로 강백현을 맞이했다.

    “오빠, 왔어?”

    “응. 무슨 일이야?”

    “얼굴 좋아 보이네. 오늘 태웅 오빠한테 전화 받고나서 알았어. 5급 붙었다며.”

    윤미진의 말에 강백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할 말이 뭔데 보자고 한 건데?”

    “일단 앉아. 오빠 뭐 먹을래? 오빠 함박스테이크 좋아하지? 오늘 내가 살게.”

    “……”

    강백현이 허탈한 표정으로 윤미진을 바라보았다.

    그가 째려보는 눈빛을 아무렇지 않은 척 넘기는 윤미진. 미소를 지으며 점원에게 주문했다.

    “저 함박스테이크 하나랑 새우카츠 하나 주문할게요. 함박스테이크는 제 남친이 먹을 거니까, 맛있게 해주세요. 아시겠죠?”

    “아, 네. 알겠습니다. 15분 정도 걸립니다.”

    윤미진은 자연스럽게 강백현의 옆 자리에 앉았다.

    [와, 소름 돋는다. 미쳤네.]

    “……”

    최용규의 반응과 달리 강백현은 아무 소리 없이 윤미진이 하는 행동을 지켜보았다.

    “오빠가 태웅 오빠 처벌해달라고 증언한 이후, 내가 곰곰이 생각해봤어.”

    “아, 그랬어?”

    “응. 내가 진짜 나쁜 년이더라. 오빠한테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었지? 나, 진짜 오빠 사랑했는데, 오빠랑 만나고 진짜 행복했었는데!”

    윤미진이 그 말을 끝으로 강백현의 팔짱을 끼었다.

    살얼음 공기가 파고드는 추운 겨울임에도 쫙 달라붙는 스타킹을 신은 미진의 몸이 백현에게 닿았다.

    강백현은 아무 말 없이 윤미진이 하는 행동을 바라보았다.

    “떨어져줄래?”

    “싫어.”

    “너 지금 이 행동 매우 추해. 못 보겠어.”

    “추해도 괜찮아. 추해도. 내가 말했잖아. 난 능력 있는 남자 좋다고, 내가 이기적인 년일지 모르지만, 나, 윤미진이란 사람이 원래 이런 사람이야. 오빠도 이런 내 모습이 좋아서 결혼하자고 했던 거잖아. 안 그래?”

    함박스테이크가 나왔다. 강백현의 곁에 꽉 붙어 있는 미진을 본 점원이 헛기침을 하며 주문한 메뉴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그때, 김태웅이 허겁지겁 레스토랑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기겁하며 말했다.

    “야! 너희 둘 뭐하는 거야?”

    김태웅의 등장에 당황한 것은 윤미진이었다.

    “아이 진짜! 여기 왜 왔어?”

    “너야말로 여기서 뭐하는데? 빨리 꺼져! 지금 네가 여기 왜 온 건데?”

    김태웅은 강백현에게 딱 달라붙은 윤미진을 끌어내려 했다.

    하지만 윤미진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백현에게 끼운 팔짱을 풀지 않으려 기를 쓰고 김태웅을 막는다.

    강백현은 어처구니 없는 상황을 끝내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둘이 놀아. 갈게.”

    “오빠! 오빠!”

    떠나려는 백현을 윤미진이 붙잡으려 하지만, 김태웅이 그런 윤미진을 막았다.

    “제발! 미진아. 백현이 말고 나랑 다시 잘 해보자. 응? 제발! 이렇게 빌게.”

    “꺼지라니까! 얼른 안 비켜?”

    “제발, 미진아. 나 아무리 생각해도 너 밖에 없어. 나 너 진심으로 사랑해. 진짜! 진짜! 진짜야.”

    “아, 꺼지라고! 김태웅 꺼져! 내 앞에서 나타나지 말라니까!”

    * * *

    강백현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집으로 향했다.

    그런 백현의 옆에 최용규가 붙어 물었다.

    [뭐하러 만났냐?]

    “그냥 추억이잖아요.”

    [추억이 아니잖아.]

    “혹시 제 마음이 정리되지 않은 건 아닐까 확인해보고 싶었어요. 그리고 확실히 알게 되었죠.”

    [확실히 알게 되다니? 설마 너 미진이랑 다시 합칠 생각은 아니지? 내가 아무리 너랑 성현이 잘 되어가는 거 반대여도, 저런 여자랑은 안 된다.]

    최용규는 진심이었다.

    김성현의 행복을 바라지만, 그리고 자신과 잘 되었으면 하지만, 강백현 또한 가능하면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이다.

    성주신이 아니라, 한 명의 선배로서 후배를 위하는 마음이었다.

    강백현은 집에 돌아와 피곤해 곯아떨어진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경비원이신 아버지와 식당 일을 하는 어머니는 세상 물정을 잘 모르신다.

    공무원에 취직해보니 알게 된 것.

    공부를 잘해서건 무슨 이유에서건 위에 있는 사회 기득권층은 부패하기 일쑤였다. 반면 공부를 못 하거나 사정이 어렵거나 아니면 개인 사정에 의해 허드렛일에 종사하는 사람은 정직했다.

    ‘엄마, 아빠, 미안해요. 이게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는 저도 잘 몰라요. 하지만 사회를 바꿔보고 싶었어요. 그러니 응원해주세요.’

    강백현은 이미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오늘 한 행동으로 부주시가 발칵 뒤집힐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그런 우려 때문일까?

    차우현 주무관에게서 전화가 왔다.

    - 팀장님, 이대로 계속 추진하실 겁니까?

    “그래야죠.”

    - 이제 막 임용되셨는데, 신고식 너무 크게 하는 게 아닌가 싶네요.

    “저도 그 부분에 대해서는 잘 압니다. 만약 진행과정에서 문제가 있다면 제가 책임질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 말씀만이라도 감사드리지만, 팀장님께 모든 책임을 돌릴 생각은 없습니다. 오히려 더 제대로 분석해서 저희가 놓치는 부분이 없도록 해야겠죠. 아~ 오늘 종합했던 자료는 분석이 좀 더 필요할 것 같습니다. 밤 11시까지만 일하고 일찍 퇴근하겠습니다. 오늘내로 못 끝내서 죄송합니다.

    “아, 죄송하네요. 얼른 퇴근하세요.”

    - 시간 되시면 초과근무 승인 좀 부탁드릴게요.

    그러고 보니 강백현은 이제 초과근무 신청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업무관리수당을 받는 5급.

    이제 초과근무수당 대신 봉급의 9.5%만큼 수당을 따로 받는다.

    강백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전화기 너머 차우현 주무관에게 대답했다.

    “넵. 걱정 마세요.”

    * * *

    다음날 강백현이 김태웅과 함께 향한 곳은 주제동 주민센터였다.

    “조은혜씨, 오늘 차우현 주무관하고 같이 시청에 가서 자료 좀 확인해주세요. 저랑 김태웅 주무관은 주제동 주민센터 확인하고, 도서관 확인한 후에 시청으로 넘어갈게요.”

    “네. 알겠습니다.”

    차우현과 조은혜가 관용차량을 타고 시청으로 떠났다.

    주제동 주민센터에 남은 두 사람.

    김태웅이 친구이자 상사인 강백현에게 물었다.

    “여긴 왜 왔어? 여기 미진이 일하는 곳이잖아.”

    “그런데?”

    “너 설마 미진이 꼬투리 잡으려고 온 거냐?”

    “김태웅 주무관, 말씀 조심해주세요. 꼬투리 잡으러 온 게 아니라 업무를 수행하러 온 겁니다.”

    “진짜! 아! 왜 그러냐?”

    “김태웅 주무관, 경고입니다. 우리는 감사를 하러 온 감사관 신분입니다. 업무에는 공과 사가 없음을 명확히 인식해주기 바랍니다. 들어가죠.”

    “……”

    강백현과 김태웅 그 둘은 말없이 주제동 주민센터로 들어갔다.

    어제의 소문을 들었는지 벌벌 기며 걸어오는 주제동장.

    “아이고~ 강 팀장님, 어서 오세요.”

    “동장님, 오랜만입니다.”

    “기억해줘서 고마워요. 우리 백현이 얼마나 오랜만이야~ 따뜻한 커피부터 마실까? 아니면 녹차?”

    주제동장의 말에 강백현이 미소를 지운 채 말했다.

    “CCTV부터 확인하죠.”

    “네?”

    “출퇴근 기록부터 확인하겠습니다.”

    강백현의 말에 주민센터 안내데스크에 앉아 있는 윤미진을 비롯한 여러 공무원들이 당황했고, 그걸 본 강백현이 한 마디를 더했다.

    “아~ 김태웅 주무관은 최근 15일 초과근무 신청기록도 출력해오세요. CCTV랑 대조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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