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뚝배기 깨러 왔습니다-80화 (80/139)
  • 뚝배기 깨러 왔습니다 80화

    강백현과 부주시장 사이에 보이지 않는 눈싸움이 계속되었다.

    놈, 놈, 놈.

    부패한 놈, 미친 놈, 죽은 놈.

    서로 다른 3명이 섞인 공간에서 부패한 놈이 성을 냈다.

    “존댓말? 너 미친 거냐? 진짜 죽고 잡냐?”

    부패한 놈의 말에 미친놈의 태도가 돌변했다.

    “녹음 끝. 공직기강감사팀장 강백현과 부주시장과의 대화 기록 수집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야! 그거 안 내놔? 내 놔! 좋은 말로 할 때 내놔!”

    요즘 스마트폰은 기능이 좋다.

    전화통화 자동녹음은 물론, 실내 공간에서의 대화도 또렷한 음질로 녹음해둘 수 있다.

    부패한 시장의 욕설이 담긴 녹음파일이 담긴 강백현의 스마트폰.

    이를 빼앗으려는 시장이 흥분하며 돌진하자, 미친놈이 몸을 비틀어 간단히 피하고 킥킥 웃었다.

    “어이쿠~ 우리 시장님이 왜 이러실까요?”

    “강백현! 강백현!”

    거친 소 마냥 숨을 몰아쉬며 흥분한 시장이 다시 한 번 손을 뻗어 미친놈의 스마트폰을 빼앗으려 든다.

    하지만 미친놈은 보통 미친놈이 아니었다.

    뻗어오는 시장의 손을 손날로 내려쳐버린다.

    타고난 근육과 발달된 신체를 가진 강백현에게 시장이 힘으로 이길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건달 출신인 부주시장이 말빨로 강백현을 이길 수도 없다. 그래서 욕이 튀어나온다.

    “너 이 새끼! 너 이 새끼! 그거 안 내놓을래?”

    “크크크크.”

    강백현이 한껏 지금의 감정을 즐겼다.

    그러나 어차피 자신의 승리는 정해져 있었다.

    “좋습니다. 지워드리죠. 이런 걸로 시장님을 협박하고 싶은 생각은 없으니까요.”

    부주시장은 강백현이 스마트폰에 녹음한 파일을 삭제하는 걸 현장에서 확인했다.

    그리고 협상에 돌입했다.

    “야. 강백현! 얼마면 돼? 너 이 새끼, 얼마면 입 다물 거야?”

    조폭 출신답게 계산에 능한 부주시장.

    하지만 미친놈 앞에서는 협상이 먹히지 않는다.

    “막아보시죠. 전 오늘부터 시장님과 관련된 모든 비리를 조사하고 다니겠습니다.”

    “뭐야?!”

    “공직기강 특별 감사는 오늘부터 목요일까지 총 4일에 걸쳐 진행될 예정이고요. 감사실장님이 휴가인 관계로 대리근무자인 제게 전권이 넘어온 상태입니다. 아~ 물론 현재 여건상 전 분야를 확인할 순 없고, 회계 및 계약, 공직기강 관리, 특명, 제보사항, 그리고 학술용역, 인쇄물, 전산, 일반물품, 일반용역 건에 대해서만 감사 실시하도록 하겠습니다.”

    “이 새끼야! 그건 거의 전부잖아. 이렇게 나올 거야? 1장이면 만족하겠니? 1억 찔러줄게. 너도 결국 돈이 목적 아니야?”

    강백현이 씩 웃었다.

    그리고 미친놈처럼 호탕한 웃음을 지었다.

    “돈으로 막아보세요. 시장님이 그동안 해왔던 것처럼 돈으로 사람 매수하고, 돈으로 협박해서 제 행동거지 하나하나 막아보십쇼. 쉽지는 않을 겁니다. 전 이제 도청 사람이니까요.”

    “허- 미치겠네.”

    “미치겠죠. 그렇겠죠. 갑과 을이 바뀌었으니까요. 그럼 전 지금부터 시장님의 비리를 캐기 위해 부주시 전역을 돌아다니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강백현이 그 말을 끝으로 시장실을 박차고 나간다.

    시장은 강백현이 그 말을 끝으로 나가자 황당한 표정을 짓다가 금세 상황파악이 되었는지 마구 고함을 질렀다.

    『야! 거기 안 서? 야! 강백현! 강백현!』

    그때, 시장이 직접 임명한 비서실장이 시장실로 들어왔다.

    “강백현 사무관, 허가과로 들어갔습니다.”

    “허가과? 씨발, 빨리 붙어. 붙어서 감사 뭐하는지, 어떤 거 확인하는지 다 조사해.”

    “그럼 비서실 자리는 비워둬도 될까요?”

    “당연하지 인마! 우선순위 몰라! 빨리! 빨리! 빨리. 하나라도 놓치는 거 없이 다 확인해!”

    시장이 이렇게 흥분한 모습은 처음 본 비서실장이었다.

    기초단체장 선거 당시, 당선 전에도 저렇게 흥분하진 않았었다.

    항상 표리부동을 유지하며 감정을 좀처럼 드러내지 않았던 시장이 강백현의 행동으로 긴장하고 있다.

    ‘강백현 저거, 도대체 무슨 짓을 벌였기에 시장님이 저러시는 거야?’

    비서실장은 수첩을 들고 곧바로 강백현과 차우현이 들어간 허가과로 발걸음을 옮겼다.

    * * *

    허가과.

    강백현이 올해 초까지만 해도 근무했던 장소다.

    인테리어도 그대로, 사무실 인원도 그대로. 바뀐 건 아무것도 없다.

    “선배님! 오랜만입니다. 퇴직하고 요즘 뭐하고 지내십니까?”

    강백현의 직속후배인 태곤이가 강백현을 맞이했다.

    “응. 태곤이 별 일 없어?”

    “네. 연말이라 좀 바쁘긴 합니다.”

    그런데 강백현을 바라보는 태도가 다 태곤이 같은 건 아니었다.

    “여기 일반인 출입하시면 안 됩니다. 나가주세요!”

    강백현을 못마땅하게 쳐다보며 나가라고 하는 사람, 다름 아닌 김여린 주무관.

    자신이 해야 할 축사허가 건을 떠넘기고 강백현이 무혐의로 결정되자, 오히려 업무기피 사유라는 항목으로 감봉이라는 경징계를 받았다.

    그에 따라 승진이 1년 이상 뒤로 밀렸으니 강백현의 등장이 못마땅했던 것.

    “어쩌죠? 전 업무 때문에 왔는데. 아! 내 소개를 안 했네. 태곤아! 나 5급 사무관이야.”

    “네?”

    “5급 공개채용 합격해서 충남도청 공직기강감사실 팀장으로 왔어. 아~ 오늘은 부주시 특별감사 건으로 오게 된 거고.”

    “네?!!!!”

    김태곤은 선배의 신분변화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건 김여린 주무관도 마찬가지였다.

    “장난치지 마요. 강백현 씨! 농담 하실 거예요?”

    “김여린 씨는 믿기지 않으시겠지. 아! 여기 명함 있습니다. 태곤이 한 장 받고! 여린 씨도 내가 특별히 줄게요. 잘 확인하세요!”

    김여린은 강백현의 명함을 받고 깜짝 놀라 자신의 컴퓨터 자리에 앉아 충남도청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충남도청 공직기강감사실 조직도를 열람한 그녀는 강백현을 쳐다보며 씨익 웃었다.

    “지금 공무원 사칭 하시는 거예요?”

    “뭐라고요?”

    “조직도 보니까 공석인데 무슨 소리예요? 비어 있구만. 강백현 씨, 장난 쳐요?”

    그러자 뒤쪽에 있던 차우현 주무관이 눈치를 보며 나섰다.

    “공직기강감사팀 회계/계약 담당 차우현입니다. 홈페이지는 아직 업데이트 안 됐고요. 온-나라 시스템에서 근무지를 조회하시거나, 저희 도청 홈페이지에서 검색해보셔도 나오실 겁니다. 저희 팀장님 맞으세요.”

    갑자기 얼굴이 붉어지는 김여린. 그녀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믿기 힘든 사실.

    공직사회에서 버티지 못하고 퇴직한 강백현, 그가 신분상승해서 돌아온 사실이 믿기지 않는 것이다.

    더구나 다른 공무원도 아니고 감사원 공무원이다.

    자신들의 행동 하나하나를 감시하고 파악하고 지적하고, 때론 징계 등을 통해 제재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 돌아온 것이다.

    강백현은 방긋 웃으며 김여린에게 사무적인 말투로 말했다.

    “김여린 주무관님? 지금부터 감사 실시하겠습니다. 먼저 김여린 주무관님 아이디로 건설정보시스템 접속해주세요.”

    “네?”

    “못 들으셨어요? 김여린 주무관님 아이디로 건설정보시스템 들어가 주세요. 올해 김여린 주무관님이 허가한 사업 건 하나하나 출력할까 하거든요?”

    김여린이 주먹을 꽉 쥐었다.

    그러자 뒤에 있던 차우현 주무관이 방긋 웃었다.

    ‘와, 봐주는 게 없구나. 얼마나 당했길래 저렇게까지 나오는 거야?’

    같은 편이기에 안심이지.

    만약에 반대편으로 만났다면 강백현은 인생 최악의 인물일 수 있었다.

    지금의 부주시장에게 강백현이 그랬고, 지금의 김여린 주무관에게 강백현이 그랬다.

    “아이디랑 비밀번호 모르겠는데요.”

    “아, 그러세요? 그럼 어쩔 수 없네요. 차우현 주무관님, 여기 김여린 주무관, 건설정보시스템 운영체계 관리미흡으로 비고란에 체크해주세요.”

    “네. 팀장님. 알겠습니다. 김여린 주무관님, 건설정보시스템 운영체계 비고란에 체크하겠습니다.”

    “그리고 차우현 주무관님, 건설정보시스템 마스터 ID로 접속하셔서 김여린 주무관이 최근 3개 년도 승인한 자료, 바로 이 자리에서 띄워주세요.”

    “알겠습니다. 김여린 주무관이 승인한 자료 바로 띄우겠습니다.”

    김여린이 온 몸을 바들바들 떨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마스터 아이디가 있었으면 말을 할 것이지, 이렇게까지 치욕적으로 나올 것을 예상하지 못한 그녀. 눈빛이 매섭게 변했다.

    하지만 강백현은 그녀의 눈빛이 어떻건 개의치 않았다.

    “지금 불만인가요?”

    “네?”

    “김여린 주무관, 눈에 힘주지 마세요! 장난하는 거 아닙니다. 김태곤 주무관은 바로 김여린 주무관 건설정보시스템 아이디/비밀번호 관리 미흡에 따른 확인서 작성할 수 있게 확인서 출력해주시기 바랍니다.”

    독기찬 눈은 오히려 독이 되어 돌아왔다.

    완벽하게 미친놈으로 빙의한 강백현은 차우현 주무관과 함께 부주시의 행정 미흡사항을 쉴 새 없이 잡아냈다.

    김여린은 바들바들 떨며 확인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아이디와 비밀번호, 사실 알고 있었는데… 괜히 거짓말을 했다가 확인서만 작성하는 상황이다.

    그래서 다시 정정해서 말했다.

    “저, 아이디랑 비밀번호 생각났습니다.”

    “네?”

    “아까 잠깐 까먹었는데 이제 기억난 것 같습니다.”

    “아, 그래요? 그럼 거짓말 한 건가요?”

    “네?”

    “아까 까먹었는데, 어떻게 지금 기억이 나요? 상식적으로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세요? 아니면 제가 상식이 없는 분하고 대화를 하고 있는 건가요?”

    강백현의 핀잔에 김여린 주무관의 눈에 눈물이 핑 돌았다.

    한 때, 친하게 지냈던 강백현.

    같은 동료로 있을 때는 너무나 편한 동료였는데, 타 부서로 전출가자마자 저렇게 돌변하다니.

    “선배님, 잠시 따로 이야기 좀 하면 안 될까요?”

    “제가 왜 김여린 주무관 선배죠? 김여린 주무관은 업무를 이상하게 하시네요.”

    “아니! 아니! 아니 그게 아니라요.”

    “확인서나 작성하세요. 그게 아니면 감사업무 방해죄로 당신 고발조치 들어갈 겁니다.”

    강백현은 웃음기를 지우고 차우현 주무관에게 지시했다.

    “보증가능금액 실효되었는지 먼저 확인해주세요. 작년 5월경에 김여린 주무관이 담당했던 재동건설 건입니다.”

    허가과에서 근무했던 강백현이 기억하는 김여린 주무관의 실수를 정확히 제보했다.

    그러자 김여린이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기 시작한다.

    하지만 가차 없었다.

    “팀장님, 찾았습니다.”

    “네. 열람해보시죠.”

    열람문서 건에 보증가능금액서 유효기간을 넘긴 게 확인된다. 그럼에도 해당건설업체는 영업정지 처분을 받지 않고 넘어간 상태.

    허가과는 건설과와 업무를 연계하고 있다.

    그리고 작년, 건설업 등록기준에 미달되는 건을 승인한 직원이 바로 김여린 주무관.

    강백현의 동료였던 것이다.

    당시 이를 알고 있던 강백현이 지금 이 순간, 김여린 주무관의 비위사실을 현장에서 통보하기 시작했다.

    “김여린 주무관은 2014년 5월 6일, 건설정보시스템을 통해 보증가능금액 확인서가 실효된 재동건설 주식회사 건을 확인한 바 있으며, 같은 해 7월 16일, 정당한 사유 없이 해당업체를 영업정지 처분하지 않고 무혐의 처리한 바가 있습니다. 『건설업관리규정 제 3장의 3-라, 및 제 6장의 2에 따르면』 건설업 등록관청은 건설정보시스템 이하, 건설행정정보시스템에 건설업 등록기준 위반 혐의업체를 입력하게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허가과 김여린 주무관과 당시 허가과장이었던 최태욱 사무관은 해당업체를 영업정지 처리해야만 했습니다. 맞습니까?”

    강백현의 말에 김여린이 말을 못하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눈물을 흘렸다.

    여자의 눈물은 무죄이지만, 공무원의 업무미숙은 유죄.

    공무원인 김여린의 비위 사실은 곧 공직사회의 퇴보를 의미한다.

    “대답 안 해도 됩니다. 김여린 주무관은 저희 공직기강감사실 특별감사 사항에서 처분이행관리 업무미흡으로 적발되셨으며, 그에 따라 저희는 감찰을 통해 경찰에 해당사항을 고발, 추가 비위사실이 있는지 조사 진행토록 하겠습니다. 허가과장님이 없으시네요. 이 건은 김태곤 주무관이 허가과장님 오시면 전달해드리도록 하세요.”

    강백현이 후배인 김태곤에게 지시를 전달했다. 그러자 김태곤이 고개를 끄덕이며 엄숙한 분위기로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나중에 뵙도록 하죠. 차우현 주무관은 해당 건 캡쳐 및 출력한 후 차로 돌아와요. 다음 장소로 이동할 테니까.”

    “네. 알겠습니다. 먼저 나가시죠. 전 확인하고 가겠습니다.”

    강백현이 허가과에서 당당히 밖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최용규는 강백현의 돌변한 모습을 보며 헛웃음을 터트렸다.

    앞, 뒤 재지 않고 화끈하게 밀어붙이는 강백현의 업무스타일.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21세기 암행어사가 등장한 것이다.

    [미친놈! 야! 강백현! 다음은 어디 가냐?]

    “어디가긴, 미진이 뚝배기 깨러 가야죠.”

    [아~ 그 미진! 네 전 여자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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