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뚝배기 깨러 왔습니다-79화 (79/139)
  • 뚝배기 깨러 왔습니다 79화

    강백현은 차우현과 김태웅의 현재 상황을 최용규에게 실시간으로 전해 듣고 있었다.

    [차 주무관, 저런 사람 아니었는데, 생각보다 매섭네.]

    “어떻게 하고 있는데요?”

    [태웅이가 못마땅한가 봐. 엄청 갈구는데?]

    블루투스 이어폰을 낀 채 혼잣말을 하는 강백현.

    이제는 최용규와의 대화가 전혀 어색하지 않다.

    “입장 바꿔 생각해보세요. 안 열 받겠어요? 보니까 태웅이가 공문서 위조한 후에, 감사실에 자체공직기강확립을 위한 특별지시사항이 하달되었더라고요. 특히 내부기강확립을 위해 발 벗고 뛰어야 할 감사실에서 벌어진 일이니 더욱 난리였겠죠.”

    [그렇겠네. 난 왜 몰랐지?]

    “그거야 선배가 성현씨한테만 관심이 쏠려있었으니까.”

    최용규는 자신이 죽은 후 성현이만을 바라보았던 것을 깨달았다.

    그녀가 죽지는 않을까, 올바르지 못한 선택을 해서 자신과 같이 천국에 가지 못하진 않을까.

    그런데 지금은 김성현이 천국을 가고 못 가는 것에 더해서, 천국을 가도 백현과 자신 사이에서 자신을 선택해줄지가 문제다.

    때마침 차우현 주무관과 김태웅이 아무 일 없었다는 듯한 얼굴로 커피숍으로 걸어왔다.

    저들이 저렇게 나오니, 강백현도 얼굴에 철판을 깔 수밖에.

    “커피 타임 가지시죠.”

    * * *

    커피를 마신 후 운전수는 차우현 주무관으로 바뀌었다.

    아까와는 달리 무거운 분위기.

    강백현은 부주시에 도착하기 전, 감사지침서를 열어 부주시에서 어떤 점을 중점적으로 확인해야 할지 검토하는데 매진중이다.

    반면, 김태웅은 조수석에 앉아 전화기를 들고 연락을 할지 말지 고민이다.

    그의 폰에는 아직 부주시장의 번호가 저장되어 있다.

    하지만 그가 연락하려던 번호는 바로 미진이의 번호.

    강백현과의 관계가 궁금했다.

    과연 그녀는 지금 뭐하고 지내고 있을까?

    김태웅은 미진이에게 이별 통보를 당한 후, 단 한 번도 전화를 하지 못했다.

    자신감 부족이 가져온 결과.

    그건 부주시장에게도 마찬가지다.

    암호화폐로 받은 뇌물은 증거가 남지 않아 잘 처리됐지만, 정직이란 중징계가 확정된 이후 그는 전화기를 꺼두고 부주시장의 전화를 일절 받지 않았다.

    그리고 4개월이 지난 시점.

    그들을 만나면 어떤 결과가 기다리고 있을까?

    분명 부주시장은 자신에게 이를 갈고 있을 것이다.

    그것보다 미진이는 백현이와 재결합한 걸까? 현재 둘은 또 어떤 관계지?

    그런 고민이 계속될 즈음, 차우현 주무관이 차량을 멈추며 말했다.

    “도착했습니다. 주차하겠습니다.”

    “바로 시장실로 직행하시죠.”

    “네.”

    강백현의 말에 잠시 머뭇거리는 김태웅.

    “무슨 문제 있습니까?”

    “두 분만 들어가셔도 되겠습니까? 시장님 뵙기가 조금 그래서….”

    김태웅의 사정을 잘 알고 있는 강백현이 별 고민 없이 대답했다.

    “네 그러시죠.”

    강백현과 차우현이 떠나자, 김태웅이 자신의 스마트폰을 열어 [부주시장]이라고 저장된 번호로 발신버튼을 눌렀다.

    - 부주시장입니다.

    “김태웅입니다. 시장님.”

    - 이 새끼가 미쳤나? 제 정신이야?

    “시장님? 강백현이 지금.”

    - 끊어. 이 새끼야! 전화하면 너 죽인다!

    * * *

    한편, 강백현은 6개월 전, 시장실에 들어갔던 때를 떠올렸다.

    퇴직자 간담회라는 명목으로 면담을 유도, 공무원 임용을 막겠노라고 협박하던 시장의 모습이 생각난 것이다.

    시장실 앞에 앉아있던 비서실장이 마침 백현을 발견하고 의아한 얼굴이 되었다.

    “뭐죠?”

    “비서실장님 오랜만입니다. 강백현입니다.”

    분명히 퇴직신청을 하고 나간 말단 공무원이 자신을 향해 반갑게 인사하고 있으니 강실장의 얼굴이 순식간에 찌푸려진다.

    “민원인은 1층 민원실로 가셔야죠. 왜 여기에?”

    “시장님 뵈러 왔죠. 안에 계시죠?”

    “시장님은 아무나 만날 수 있는 분이 아닙니다. 민원인은 가던 길로 돌아가시죠.”

    비서실장의 말에 차우현 주무관이 걸어나와 명함을 꺼냈다.

    “충남도청 공직기강감사팀에서 나왔습니다. 특별감사 건으로 시장님과 만나 뵐까 하는데, 괜찮을까요?”

    차우현 주무관의 명함을 본 부주시 비서실장이 깜짝 놀라 되물었다.

    “네?! 도청 공직기강감사팀이요?”

    “도청 맞습니다.”

    “그럼 옆에 민원인은 왜 같이 오신 거죠?”

    강백현의 동행을 납득하지 못하는 비서실장. 그가 왜 저런 표정을 짓는지 알고 있는 차우현은 강백현 사무관의 동행 이유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번에 도청에 새로 부임하신 공직기강 감사팀장님이십니다. 부주시 공무원 그만두시고 5급 공채 붙으신 후 저희 도청으로 오셨습니다.”

    강백현은 그제야 한때 자신에게 반말을 찍찍 내뱉던 비서실장에게 명함을 전달했다.

    “사무관이 되어 돌아왔습니다. 잘 부탁드려요. 강 주무관.”

    강 비서실장은 6급, 강백현은 5급.

    이제는 강백현의 서열이 위.

    물론 같은 시청 소속도 아닌 5급과 6급이 서로 말을 놓고 지내진 않는다.

    다만, 자신보다 서열이 위인 강백현을 예전처럼 편하게 대할 수도 없는 상황.

    곤란한 상황을 피하기 위해 그가 전화를 들어 시장에게 현재의 상황을 전한다.

    “시장님? 충남도청 공직기강감사팀에서 두 분 오셨습니다. 들여보낼까요?”

    - 무슨 일이지?

    “특별감사 나왔다고 합니다.”

    - 들여보내도록 해요.

    “아 그게… 강백현 사무관이 시장님을 뵈러 왔다고 합니다.”

    - 두 분 들여보내요.

    부주시장은 들여보내요 라는 대답을 끝으로 전화를 끊었다.

    그런데 좀 이상했다.

    ‘사무관? 동명이인인가? 이름 한 번, 진짜 재수 없군. 공직기강감사팀에선 갑자기 왜 온 거지?’

    부주시장은 지자체장 선거를 앞두고 있었다.

    한 달 뒤부터 시작되는 전국동시지방선거 기초단체장선거.

    그가 후보로 출마한 직위는 현재 맡고 있는 부주시장이다.

    연임에 성공하기 위해, 지금의 자리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모든 관심이 그쪽으로 쏠려 있는 상황이다.

    그런 시기에 충남도청 공직기강감사팀의 방문은 그에게 결코 유쾌한 일이 아니었다.

    이미 8개월 전 한차례 거대한 파도가 그를 지나갔었다.

    강백현이라는 내부고발. 그로 인한 공문서 노출.

    그에 따라 자신의 관련 여부가 조사 대상이 되었다.

    공직기강감사실과 선거관리위원회의 합동조사에서 간신히 빠져나왔건만, 아직도 감사실이나 선관위의 이름만 들으면 치가 떨린다.

    하지만 피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실질적으로 자신의 평안과 안위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단체였기에, 그들에게 호감을 사서 어떻게든 자신의 부주시장 출마에 영향이 없게 만들어야 한다.

    문을 열고 누군가가 들어온다.

    한 사람은 자신이 잘 모르는 얼굴이었다.

    “어서 오세요. 부주시장입니다. 반갑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충남도청 공직기강감사실의 회계/계약 담당 차우현 주무관입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아, 그래요. 반가워요.”

    그리고 한 명은 자신이 익히 알고 있는 얼굴이다.

    부주시장의 눈이 찌푸려졌다.

    “자네가 여긴 무슨 일이지?”

    “태도가 좀 그렇습니다?”

    “뭐? 태도?”

    “공익제보자 사건 때문에 그러십니까? 아니, 시장님 입장에서는 공익제보가 아니라 내부고발이겠네요.”

    강백현의 말에 차우현이 속으로 웃음을 머금었다.

    ‘와, 저 독기 품은 눈 봐. 진짜 복수하러 왔구나. 무섭네. 수석으로 수료하고 감사원 올 때부터 뭔가 있다고는 생각했는데, 진짜 무섭네. 무서워.’

    한편,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부주시장.

    그는 차우현이 옆에 있어서인지 평소와 달리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차 주무관, 이 사람한테 무슨 말을 들었는지 모르겠는데, 그 일에 난 전혀 관계없어요. 이런 식으로 갑자기 연락 없이 들이닥치는 건 서로 간에 예의가 아닌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죠?”

    시장의 말에 차우현이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아니, 장난치지 마시고, 저 근본도 없는 잡배 놈 말을 듣고 여기까지 불쑥 찾아오시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얼른 내보내세요.”

    시장의 불호령에 차우현이 입을 열었다.

    “저희 쪽에 새로 오신 감사팀장님이십니다. 팀장님 내보내시려면 저도 같이 나가야 할 것 같습니다.”

    “네? 지금 뭐라고 하셨죠?”

    강백현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한발짝 앞으로 나아가는 강백현.

    그가 악수를 하기 위해 시장에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제가 시장님 비리 척결하러 나왔다는 말입니다. 그것도 충남도청 공직기강감사실 팀장으로 임용이 된 상태로요.”

    “공직기강감사실 팀장?”

    “네. 그것 때문에 5급 공채 합격 사실 숨기느라 얼마나 입이 근질거렸던지…. 저, 차 주무관님.”

    “네. 팀장님.”

    “잠시 자리 좀 비워주셔도 될까요? 부주시장님하고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요.”

    “네. 잠시 나가있겠습니다.”

    차우현 주무관은 시장과 한 판 하려는 강백현의 패기를 보며 터져 나오는 웃음을 간신히 참아냈다.

    시장실 문을 닫고 나오자, 곧바로 터져버린 웃음.

    “하하하하, 미쳤네.”

    ‘우리 팀장님 완전 상남자잖아.’

    그런 차우현 주무관을 비서실장이 의아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왜 혼자 나오십니까? 안에 무슨 일 있습니까?”

    “크크, 저도 그게 궁금하네요. 진짜 궁금해 미치겠습니다.”

    단 3명만이 이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었다.

    황당한 표정을 짓는 시장과 복수의 칼을 들고 찾아온 강백현.

    그리고 강백현의 전임자이자, 죽은 선배인 최용규.

    최용규는 신나는 얼굴로 강백현이 무슨 말을 하는지 지켜보았다.

    “시장님, 선거가 한 달 남으셨다고요?”

    “야! 이 새끼야! 너 뭐야. 뭐냐고 이 미친 새끼야!”

    “뭐긴요. 시장님 발목 잡으러 온 사람이죠. 제가 이날을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시장님은 잘 모르실 거예요.”

    “뭐?”

    “어떻게 보면 시장님이 저 5급 공무원 만들어주신 거니, 감사의 인사를 드려야겠네요.”

    “뭔 개소리야! 이 새끼가! 야. 너 일단 앉아. 앉아서 이야기 해!”

    시장은 흥분을 최대한 가라앉히고 싶었다.

    하지만 아직 32살 밖에 되지 않은 젊은 놈이 자신에게 대드는 모습이 용납이 되지 않았다.

    탁탁.

    이빨과 이빨이 부딪히고.

    쒜엑, 쒜엑.

    흥분한 감정 때문에 숨결도 거칠어졌다.

    쿵쾅쿵쾅.

    상대의 심박이 올라가는 게 눈에 보이자 강백현이 방긋 웃었다.

    그의 웃음이 시장으로 하여금 피로감을 느끼게 했다.

    그의 등장이 얼마나 긴박한 일이었는지 이제야 깨닫는다.

    시장은 당시 강백현에게 했던 조치를 떠올렸다.

    “야. 너 임용 어떻게 했어? 내가 분명히 막았는데, 누구 빽이야?”

    “시장님 빽은 정말 대단했죠. 대전에서 9급 공무원으로 임용될 저를 무려 2년이나 연기시켰으니까요. 하지만 시장님 빽은 딱 거기까지더군요.”

    “이 씨발 새끼가! 말 곱게 안 해?”

    “그 말은 제가 시장님께 드리고 싶은 말이네요. 전 처음부터 지금까지 시장님께 존댓말 하고 있는데요. 그럼 서로 존댓말로 이 유익한 대화를 이어나가볼까요?”

    강백현은 지금 이 시간이 서막에 불과하다는 것을 부주시청, 시장실에서 통보했다.

    부주시의 비리, 관행을 오늘부터 제대로 손보겠다는 강백현의 다짐이 이제 막 날개를 펴는 순간, 그 순간을 함께 한 최용규가 활짝 웃으며 중얼거렸다.

    [강백현, 완전 미친 새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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