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뚝배기 깨러 왔습니다-78화 (78/139)

뚝배기 깨러 왔습니다 78화

공직기강 감사실, 무언가 거창할 것 같지만 사실은 매뉴얼에 따라 행동하는 단순한 조직이다.

발전이 없고, 그냥 한해한해 똑같은 패턴으로 공무원들의 비리나 선행을 찾아내 상벌을 부여하는 단순한 작업.

문제는 대한민국 공무원들이 너무나 썩어 있다는 것이다.

부주시만 해도 공무원이 2천명을 넘는다.

공무원들의 기강을 바로잡고 단속할 감사실 조직은 오로지 3명.

2천명이 넘는 인원들을 3명으로 관리해야 하니 평소 제대로 된 감사가 진행될 리 없다.

더구나 그 감사실 조직은 같은 부주시의 행정, 기술직에서 감사실로 지원한 인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부주시 공무원이었던 그들이 부주시 공무원들의 기강을 바로잡고 단속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에 가까운 것.

따라서 상위조직이 있는 것이다.

상위조직인 충남도청 공직기강감사실은 총 26명으로 이루어져 있다.

다만 팀별로 운영되는 탓에 강백현이 속한 조직 자체는 그리 비대하지 않았다.

단출하게 5명.

강백현의 직속상사인 감사실장 4급 고태준의 아래에 감사팀장을 맡고 있는 5급 강백현이 있다.

그리고 강백현의 아래에 회계/계약 담당인 차우현 주무관(7급), 공직기강관리, 특명, 제보사항을 조사 처리하는 김태웅 주무관(7급), 더하여 학술용역, 일반용역, 일반물품 구매 및 제조, 전산, 인쇄물 감사와 계약 담당으로 조은혜 주무관(8급)이 속해 있었다.

때마침 사무실에 차우현 주무관이 들어왔다.

“준비 다 되셨다면 가실까요?”

강백현 팀장의 말에 차우현 주무관이 대답했다.

“네. 팀장님? 조은혜 주무관은 서천에 검수를 가서 오늘도 시간이 안 될 것 같습니다.”

“아, 연락 받았어요. 내일부터 합류하신다고 하시더라구요. 일단 출발하시죠. 오늘은 부주시장님 뵙는 게 먼저니까요.”

“네. 차량 준비해놓겠습니다.”

차우현 주무관의 말에 갑자기 김태웅이 끼어들었다.

“어? 선배님, 저 차량이용 신청 안 했는데 어쩌죠?”

“응?”

“차량이용 신청 안 해서, 오늘 못 갈 것 같은데요?”

“야. 그걸 신청 안 하면 어떻게 해? 그럼 네 차로 가자. 네 차로 가고, 기름값은 출장비 항목에서 여비처리 하면 되잖아.”

차우현의 말에 김태웅이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아, 제가 차를 정비 맡겨서 안 될 것 같은데요.”

“그럼 내 차로 가지 뭐! 팀장님, 괜찮으시죠?”

차우현은 허탈한 웃음을 지으면서도 바로 해결 가능한 방책을 제시했다. 그런데 강백현이 대답하기도 전에 김태웅이 곤란한 표정을 짓는다.

“개인 차량 이용하시면 안 되죠. 보험도 그렇고, 사고 나면 어떻게 될지 몰라서 전 못 탈 것 같은데요.”

“뭐? 너 새삼스럽게 왜 그래? 내 차 자주 탔잖아.”

“아니, 껄끄럽잖아요.”

강백현은 김태웅의 행동에 기가 막혔다. 하지만 강백현은 이미 준비가 다 된 상태였다.

“김태웅 주무관,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이미 제가 저번주 금요일에 관용차량 신청해서 승인 받았어요. 오늘부터 목요일까지 도청에서 부주시까지 이동하는 걸로 신청해서 승인 다 된 사항이고요. 운전자는 제가 고민고민하다 차우현 주무관하고 김태웅 주무관 이름으로 둘 다 냈거든요. 둘 다 운전하셔도 상관없으니까 그 부분은 걱정 말아요. 다 해결됐나요?”

강백현의 명석한 결론에 차우현 주무관이 방긋 웃었다.

“네. 역시 새로 오신 팀장님이 훌륭하시네요. 준비도 철저하시고요.”

“아닙니다. 이 정도는 해야죠.”

“팀장님 이제 사무관이십니다. 이런 거 하실 필요 없습니다. 다 막내인 김태웅 저 자식이 해야 되는 건데, 저 새끼가 빠져서 그렇습니다. 신경 쓰지 마십시오.”

“그래도 같은 동료인데 그렇게까지 말하시는 건 좀….”

강백현은 차우현이 김태웅을 무시하는 발언에도 예의를 갖추었다.

물론 어디까지나 예의.

김태웅과 같이 일하는 것 자체가 불쾌했지만, 어쩌겠는가? 자신이 복수를 위해 직접 지원한 공직기강감사실인데.

김태웅은 운전을 하며 자존심이 상했다.

히히덕거리는 차우현과 강백현.

언제 봤다고 저렇게 친하게 지내는 건지.

“아~ 우리 차 주무관님, 월요일인데 팔팔하시네요.”

“아내가 어제 애들 데리고 친정 갔었거든요. 얼마나 행복하던지~ 하하, 오랜만에 휴가였습니다.”

차우현이 방긋 웃으며 말했다. 그러더니 강백현을 향해 말했다.

“팀장님 연세가 이제 서른다섯이죠?”

“네.”

“어휴~ 빨리 결혼하셔야겠네. 아니다. 아니다. 안 하시는 게 낫겠네요. 요즘 비혼도 많이 하잖아요. 요즘 같아선 총각일 때가 진짜 재미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가요? 전 빨리 결혼하고 싶어서요.”

“어? 설마! 만나시는 분이 있으신 거예요?”

“네. 오랜만에 연애를 시작하긴 했는데, 실패하지 않도록 잘 해봐야죠.”

“하하하, 나중에 얼굴 좀 보여주세요.”

“그럼요. 보여드려야죠.”

그때, 강백현은 김태웅이 백미러를 통해 자신을 노려보는 것을 발견했다.

‘뭐야? 뭐가 그렇게 불만인데?’

강백현의 예상대로 김태웅은 지금 이 상황이 굉장히 불편했다.

첫째, 자신의 직속선배인 차우현 주무관이 강백현과 예상 외로 궁합이 잘 맞는다는 것.

둘째, 강백현이 새로 연애를 시작했다는 것.

‘설마 미진이는 아니겠지? 미진이랑 다시 합친 거야? 이 새끼! 이 새끼! 그건 아니겠지?’

* * *

김태웅은 정직 징계가 결정되고 미진이에게 파혼 통보를 받았다.

“오빠 때문에 못 살아. 5개월 뒤 결혼인데 쪽팔리게 이게 뭔데? 어? 뭐냐고!”

“미진아, 그래도 파면이나 해임은 면했잖아. 앞으로 잘할게. 반성하면서 미진이 너 욕 안 먹게 잘 할 테니까 오빠 한 번만 믿어줘라. 응?”

김태웅은 미진이에게 매달렸다.

자신이 이제껏 만난 사람 중에 가장 아름다운 외모의 소유자인 윤미진.

3년 동안 짝사랑했고 겨우 결실을 맺었는데, 그런 미진이에게 실망감을 안겨준 것이다.

어떻게든 그녀의 마음을 되돌려야 하는 김태웅의 절실함이 그를 무릎 꿇게 했다.

하지만 미진이는 단호했다.

“오빠, 내가 말했지? 미래가 없는 남자는 내 스타일 아니라고. 오빠가 스스로 말했잖아. 10년 안에 5급 공무원 돼서 떵떵거리며 나 살 수 있게 해준다고 약속했잖아. 그런데 이게 뭐야? 이게 뭐냐고!”

“미진아. 나 할 수 있어. 5급 공무원 충분히 될 수 있고, 징계 받아도 조금 늦어지겠지만 노력하고 열심히 공직생활 하다보면 충분히 될 수 있어.”

“오빠! 나 공무원이야. 내가 모를 줄 알아? 요즘 원스트라이크 아웃인 거 몰라? 한 번 징계 받으면 끝이라고 끝! 5급이 무슨 애들 이름이야? 쉽게쉽게 부르게? 아! 짜증나.”

“미진아! 미진아!”

* * *

어쩌면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더 절실했는지도 모른다.

징계를 받으면 끝난다는 것. 자신의 인생이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나락으로 떨어진다는 것.

그런데 자신을 징계 받게 한 당사자가 직장 상사가 되어 돌아왔다.

그가 자신의 영역에 들어와 낄낄거리며 자신과 가장 친했던 차우현 주무관과 유대를 나누고 있었다.

‘아, 새끼, 존나 짜증나네.’

생각할수록 열이 뻗치는 상황.

그 상황에서 강백현이 김태웅의 운전을 지적한다.

“김태웅 주무관님, 저기 속도가 너무 빠른 것 같은데 규정 속도로 가주실래요? 여기 시속 60km 제한구역인 건 아시죠?”

“앗 씨ㅂ. 아니, 네. 그럼요. 알죠. 압니다. 시속 60km 지켜야죠. 넵~ 그래야죠.”

욕이 입 밖으로 튀어나온 김태웅 주무관.

하지만 지금은 공석이다.

둘만 있는 것도 아니고, 차우현 주무관이 있는 상태에서 직속 상사에게 들이박는 것은 자살행위나 다름없었다.

한 번의 실수로 품위 유지 위반, 공직기강 문란 등의 이유로 얼마든지 징계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러니 증인이 있는 현 상황에선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녀석이 또 화를 돋운다.

“김태웅 주무관님, 저한테 욕하신 건 아니죠?”

“아니, 욕이라뇨. 우리 팀장님 욕을 왜 합니까? 제가 모시는 분인데요.”

“네. 알겠습니다. 주의해주세요.”

“네?”

“아니, 운전 간에 욕하시는 거, 주변 기분 나쁘니까 조심해달라고요. 차주무관님 제가 틀렸나요?”

강백현이 차우현 주무관에게 웃으며 물었다. 그러자 차우현이 환한 웃음을 지으며 김태웅에게 말했다.

“김태웅 주무관이 오늘 조금 선을 넘긴 하네요. 맞냐? 틀리냐?”

“아니! 제가 선을 언제 넘었다고 그러세요?”

김태웅의 말에 차우현이 그를 죽일듯한 눈빛으로 노려보았다.

그리고 잠시 후, 차우현 주무관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휴게소 좀 들렸다 가시죠.”

“네. 그러시죠.”

“태웅아, 차 세워라. 화장실 좀 가자.”

“아. 넵.”

휴게소에 주차를 하는데, 김태웅이 춥다고 운전석에서 나오질 않자 차우현이 그를 끌어냈다.

“태웅아, 화장실 같이 가자니까.”

“어? 저 차 안에 있을게요.”

“야! 나와.”

“아~ 괜찮은데.”

차우현이 그를 부른 것은 당연히 그를 교육하기 위해서다.

같은 7급 공무원이지만 선, 후배 관계는 존재한다.

나이 차이도 무려 8년.

공무원 경력은 6년.

나이로 보나, 공무원 경력으로 보나 차우현이 선배.

“야이~ 미친놈아! 팀장님이 고등학교 때 동창이라고 지금도 동창이야? 개념이 없어! 어?”

“아니, 저 새끼가 자꾸 절 무시하잖아요.”

“야! 네가 먼저 시작했잖아. 오히려 저 정도면 굉장히 부드럽게 나오는 건데 뭐가 문제인데?”

차우현은 김태웅을 갈구기 시작했다.

“아니, 선배님, 이건 아니잖아요. 아니 씨발, 갑자기 특별감사를 한다고 하지 않나, 이제 막 와서 일만 존나 벌리는데, 선배님은 열 안 받으세요?”

“응. 난 괜찮은데?”

“네?”

“난 괜찮다고. 원래 우리가 하는 일이잖아. 아니야?”

“하는 일은 맞는데, 일부러 만들어가면서 할 것까진 없잖아요.”

김태웅의 말에 차우현이 기가 차서 헛웃음을 터트렸다.

“넌 공무원 맞냐?”

“네?”

“너 이 새끼! 부주시장한테 뇌물 먹은 거 우리가 모를 줄 알아? 이 새끼 진짜 선 존나 넘네. 야! 너 그거 선관위한테 걸렸으면 너 구속되기 전에 내 손에 죽었어.”

“제가 무슨 뇌물을 먹었다고 그러세요. 증거 없잖아요.”

“개-새끼! 그만 해라. 선 한 번만 더 넘으면 죽는다.”

차우현이 결국 자신의 속마음을 드러내고 말았다. 그때, 강백현이 차우현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아, 네. 팀장님.”

- 혹시 싸우고 계신 건 아니죠? 전 괜찮아요. 그냥 농담한 겁니다.

“싸우다뇨. 그럴 리 없죠. 금방 들어가겠습니다.”

- 네. 그럼 화장실 가셨다가 휴게소 커피숍으로 얼른 오세요. 제가 따뜻한 아메리카노 주문해놓겠습니다. 혹시 다른 걸로 주문할까요?

“아닙니다. 아메리카노 좋습니다.”

강백현과의 전화가 끊긴 후, 차우현이 김태웅을 향해 다시 한 번 말했다.

“김태웅, 경고한다. 한 번만 더 사고 치면 진짜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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