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뚝배기 깨러 왔습니다-77화 (77/139)
  • 뚝배기 깨러 왔습니다 77화

    김태웅은 부들부들 손을 떨었다.

    특히 행동거지를 고치라는 말에 감정이 휘둘렸다.

    그 누구보다도 친한 친구였던 강백현이 자신의 상사로 들어오다니.

    더구나 김태웅은 최근 위기였다.

    정직 3개월이란 징계 후, 복직한 지 한 달이 채 안 되었기에 말과 행동을 조심하는 시기였다. 헌데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을 전해들은 것이다.

    충남도청의 공직기강감사팀에 강백현 주무관이 새로 발령왔다는 것.

    꼴 보기도 싫은 녀석이 자신의 직장 상사가 되어 돌아온 것이다.

    “알겠습니다. 고쳐보겠습니다. 강 팀장님?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네. 원만하게 지내보죠. 아무튼 제가 김태웅 씨 직속상사니까요. 관리요소가 없었으면 좋겠네요.”

    “뭐?”

    “이런 거요. 대드는 거, 말대꾸하고, 그리고 눈 까리 뜨는 것까지. 전반적이고 기본적인 요소죠.”

    “후-우. 미치겠네. 알겠습니다. 원하시는 게 그거라면 그렇게 해드리죠.”

    김태웅은 헛웃음을 터트리며 사무실에서 나갔다.

    건물 내 흡연이 금지되어 밖으로 나간 김태웅이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이며 생각했다.

    ‘내가 너 징계 받게 해줄게. 내가 감사실에서만 5년이야 인마, 나 김태웅을 무시해?’

    얼마 전 제보한 해외정책연수 관련해서 특별감사가 들어갔다는 것, 김태웅은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해당 제보로 인해 마일리지 회수는 물론이고 국고환수 및 경고, 징계 조치도 가능하다는 걸 그는 잘 알고 있었다.

    오자마자 경고 및 징계조치를 받은 신임사무관을 누가 따를까?

    ‘넌 내 손바닥 안이야. 쉽다고 인마. 그리고 여긴 내 구역이거든? 다 내 사람들이고. 입소문 내는 건 한순간이다 이 말이야!’

    때마침 동료가 흡연실에 왔다. 자신보다 5년 먼저 임용된 선배. 차우현 주무관이다.

    “선배님! 어디 다녀오십니까?”

    “은행 좀 다녀왔다. 불 좀 있냐?”

    “그럼요. 있죠.”

    “그래. 붙여 봐.”

    차우현의 말에 김태웅이 라이터를 꺼내 그가 문 담배 앞에 가져가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아, 선배님? 오늘 새로 오는 팀장 있지 않습니까?”

    “어. 강백현 팀장님 말하는 거지? 아까 봤어. 왜?”

    “걔가 제 고등학교 동창이거든요.”

    “걔?”

    “네. 곧 재미있는 일이 있을 거예요. 기대하세요.”

    김태웅은 확신에 찬 미소를 지으며 차우현 주무관에게 웃어보였다.

    “뭔데?”

    “기다려보시면 압니다. 일종의 신고식이라고 해야 될까요?”

    “뭔데?!”

    * * *

    공직기강감사실 실장 고태준은 감사실의 구성원들을 한데 소집했다.

    오늘 첫 출근한 백현에게 감사실 멤버들을 소개하는 자리.

    “강백현 팀장, 자기소개 좀 해볼래요?”

    “안녕하십니까! 감사팀장 강백현입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래요. 다들 박수!”

    강백현의 인사에 차우현이 박수를 치자, 김태웅도 마지못해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고태준 실장은 지금은 5급 공개채용으로 명칭이 바뀐 행정고시 출신, 강백현에게 우려스러운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

    “젊은 친구가 중앙부처도 아니고 지방 촌구석에 와서 어떻게, 괜찮겠어?”

    “아니요. 실장님, 오히려 바라던 바입니다. 제 고향도 충남 부주시여서 거리도 가깝고요. 도청인 홍성에서 한 번쯤은 일하고 싶었습니다. 출퇴근도 가능한 거리이고 부모님도 모실 수 있는 곳이라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고태준 실장은 강백현의 인사기록을 확인해보았다.

    징계위원회 회부는 무마되었으므로 인사기록상 강백현의 기록은 아주 깨끗한 상태였다.

    거기에 9급 공무원 합격 시에도 수석이었고, 5급 공개채용도 수석으로 합격, 수석으로 졸업이었다.

    그만큼 탐나는 인재.

    “인사기록 보니 자네, 성적도 좋았고, 공무원 생활도 열심히 했네.”

    “과찬이십니다.”

    “이야! 인사자력관리도 장난 아닌데? 임용이 늦긴 하지만, 그걸 감내하고 극복할 수석이라는 타이틀도 있고, 교육 성적도 최상위인데 도대체 감사원은 왜 지원한 거야?”

    “꼭 하고 싶었습니다.”

    “알았네. 곧 업무보고 시간계획 잡을 테니까, 한 달 동안 여기 차 주무관하고 김 주무관한테 물어보면서 현안업무 파악하고 하나하나 배워나가. 처음이라 모르는 게 많을 거야.”

    헌데 실장의 말에 강백현이 진지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저, 업무보고 미리 준비해 왔는데, 한 번 검토해주실 수 있으십니까?”

    “어?”

    “연수원에서 남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공직기강감사실 업무에 대해 기록물 관리함 접속해서 미리 확인해보았습니다. 업무보고 준비까지 할 수 있는 여유도 있었고요. 현재 초안은 완성되어 있는데, 초면부터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실장님의 관심 어린 지도를 통해 최대한 빨리 도지사님께 눈도장을 찍고 싶습니다.”

    고태준은 강백현의 첫인상이 놀라웠다.

    출근 첫날에 업무보고 초안을 작성해서 검토해달라고 하는 신임사무관이라니. 본 적도, 들어본 적도 없었다.

    고태준 실장은 15년 전 어리버리했던 자신의 초임 시절을 떠올리고 미소를 지었다.

    ‘세상이 이렇게 변했나? 요즘 젊은이들 수준이 여기까지 올라온 거야?’

    지능, 지식의 문제가 아닌 태도의 문제다.

    어딜 가나 날고 기는 사람은 있는 법.

    하지만 누구나 처음 하는 일에서는 실수를 거치면서 발전하는 법인데, 처음부터 완벽하게 준비했다는 백현의 말은 어떻게 보면 걱정스럽기도 했다.

    “자네 너무 앞서 나가는 것 아니야?”

    “그렇습니까?”

    “그래. 나무도 너무 두꺼우면 강풍에 부러지지. 준비를 확실히 하려는 자세를 부정하는 건 아닌데, 그럼에도 너무 과해. 아닌가?”

    고태준의 말에 김태웅이 말을 더했다.

    “네. 너무 나갔습니다.”

    “야! 누가 너한테 대답하래?”

    “네?”

    “김태웅 주무관, 자네 반성하고 있어야 하는 거 아니야? 복직한 지 얼마 안 됐잖아. 난 자네가 왜 아직도 여기 남아있는지 모르겠는데?”

    정직 3개월 후 복직한 김태웅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고태준 실장의 말이었다. 차 주무관은 옆에서 애써 자신의 표정을 숨겼다.

    ‘아~ 실장님도 너무 팩폭 날린다니까.’

    고태준 실장은 결국 그 자리에서 업무보고 초안 자료를 검토해보았다.

    첫 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하나하나 훑어보는 그의 눈에는 진지함이 묻어났다.

    그는 내심 놀라고 있었다.

    일단 문장의 깔끔함.

    보통 공문서에는 공무원들만 쓰는 특정 단어나 말투, 표현들이 녹아들어 있는데 강백현의 문서에는 이러한 것이 없고 군더더기가 없다.

    그뿐인가?

    공직기강감사실의 업무와 방향에 대해 이미 핵심을 파악하고 논리정연하게 표현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지적사항을 찾으려도 찾을 수가 없었다.

    고태준 실장은 생각했다.

    ‘첫날부터 칭찬하면 버릇 나빠지는데, 지적할 게 없군. 이미 공직기강감사실이 무슨 일을 어떻게 하는지 완벽하게 꿰뚫고 있어. 월간 계획, 연간 계획은 물론, 당면업무와 현안업무까지 파악했잖아. 그뿐 아니라 개인의 포부까지 잘 담겨 있어.’

    “흠. 최우선 당면과제로 부주시청 감사를 하고 싶다고?”

    “네. 감사팀장으로 임명받기 이전에 부주시 말단 공무원이었던 제 경험상, 부주시 감사실은 이미 그 기능을 상실했다고 보고 있습니다.”

    “개인적 판단인가?”

    “아실지 모르겠습니다만, 10개월 전 최용규 전 감사팀장에게 부주시의 비리를 제보한 게 저였습니다. 저는 그로 인해 내부고발자로 찍혀 한직으로 좌천되었고, 결국 사표를 제출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강백현의 말에 깜짝 놀라는 고태준 실장.

    그도 그럴 것이 김태웅에게서는 그런 언급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자네가 그 친구였단 말이야?”

    “네. 맞습니다.”

    고태준은 깜짝 놀라 강백현의 얼굴을 다시 한 번 바라보았다. 그리고 헛웃음을 터트리며 생각했다.

    ‘그 당돌함이 어디서 나왔는지 궁금했는데 복수심에서 나왔구만? 그렇다고 수석 합격에, 수석으로 수료를 해? 태웅이가 잠자는 호랑이를 깨웠네. 그냥 호랑이도 아니고, 대호(大虎)를 말이야.’

    고태준 실장이 오랜만에 관심 있는 인재의 등장에 혼자만의 고민에 빠졌다.

    “그래. 자네, 그 말 책임질 수 있나?”

    고태준 실장 또한 행정고시 출신.

    또한 이미 15년간 감사원에서 날고 긴 맹수였기에 다른 맹수의 눈을 알아볼 수 있었다.

    “네. 책임질 수 있습니다.”

    “좋아. 추진해 봐. 강백현 팀장이 말한 업무보고는 1월 초 우리 공직기강감사실 현안업무 보고할 때, 같이 할 거야. 지금은 연말인데다 도지사님은 도정활동도 다니시니 우리한테 따로 시간을 할당하기가 어려우시지. 그건 자네도 공무원이었으니 이해하지?”

    강백현은 부주시장을 떠올렸다.

    시장은 시정활동보다는 자기 밥그릇 챙기는데 바빴다.

    그래서 도지사가 도정활동으로 바쁘다는 시장의 말에 선뜻 동의하지 못하고 말았다.

    “후후, 부주시 출신이라 도지사님이 도정활동으로 바쁜 게 이해가 안 될 수도 있겠지. 그건 일단 나중에 차차 겪어가면서 스스로 판단하도록 하고, 자네가 말한 당면과제, 바로 추진할 수 있나?”

    고태준 실장의 말에 김태웅이 깜짝 놀랐다.

    “실장님, 강백현 주무관 오늘 왔습니다. 부주시 특별감사를 이렇게 갑자기 진행하신다는 겁니까?”

    “실장 권한으로 가능할 텐데? 그게 문제가 되나?”

    “아- 그건 아닙니다.”

    “차 주무관은 어떻게 생각해?”

    “저도 괜찮습니다. 연말이긴 하지만, 집에 좀 늦게 들어가면 되겠죠. 안 그렇습니까?”

    차 주무관의 말에 고태준 실장이 씩 웃었다.

    “그래. 그럼 차 주무관은 다음 주에 특별감사 나간다고 바로 기안 올려.”

    “알겠습니다.”

    “강백현 팀장.”

    “네.”

    “자네의 의지가 어떤지 한 번 보여주게. 그 의지는 자네의 감사결과 보고서로 확인하겠어. 알겠나?”

    강백현은 자칫 무례하게 들릴 수 있는 자신의 의견을 받아들여준 고태준 실장에게 큰 고마움을 느꼈다.

    [내가 말했지? 실장님은 올바른 분이라고. 썩은 놈은 태웅이 저 자식뿐이었다니까?]

    이제까지 지켜보던 최용규의 말이었다.

    그러나 강백현은 섣부른 판단은 하지 않았다.

    아직 결과가 나오지 않았으니까.

    “실장님, 결과로 보여드리겠습니다.”

    “그래. 뒷감당은 자네가 온전히 담당하는 거야. 부담 가질 필욘 없어.”

    * * *

    강백현은 그게 무슨 뜻인지 그때까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 다음주, 고태준 실장의 말이 어떤 의미인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인사명령 : 감사실장 대리 5급 강백현.

    아예 휴가를 신청해서 실장의 권한 자체를 넘겨버린 고태준 실장이었다.

    그는 정말로 결과만을 확인할 것이었다.

    “이 새끼야! 미친놈아. 갑자기 무슨 특별감사야? 실장님 휴가 내서 아예 싹 빠졌잖아.”

    단 둘이 있는 사무실에서 김태웅이 기가 찬 목소리로 말했다.

    “김태웅 주무관?”

    “뭐 인마!”

    “걱정하지 말고 이거나 처리해. 나머진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야! 야! 야!”

    강백현이 복사한 서류를 김태웅의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1번 서류 : [인사혁신처장 상장]

    2번 서류 : [인사혁신처장 표창장]

    “인사혁신처장 표창장하고 상장이니까, 이거 인사명령 기안해서 나한테 올려.”

    “뭐?”

    “문서 분류된 것 보면 우리 기관으로 인사혁신처에서 보낸 상훈결과 있을 거야. 충남도청 공직기강감사실 3641번 문서 확인해 봐. 문서담당자 너한테 지정했으니까.”

    김태웅이 공무원 전자결재인 온-나라 시스템에 접근해서 문서를 확인했다.

    특별감사에 따라 마일리지를 반납한 교육생 3명에게 표창장이, 개인 마일리지를 적립한 11명에게 경고가, 마일리지를 적립하고 사용한 3명에게는 경징계가 내려졌다는 문서였다.

    ‘잠깐! 특별감사면 내가 한 공익제보잖아! 씨발, 내가 얘 표창 만들어준 거야? 그것도 인사혁신처장님 표창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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