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뚝배기 깨러 왔습니다-76화 (76/139)
  • 뚝배기 깨러 왔습니다 76화

    신임관리자과정 수료식은 인사혁신처장의 주관으로 이루어진다.

    인사혁신처장이 식순에 앞서 학업우수자에게 상장을 수여했다.

    [상장, 인재개발원 5급 강백현]

    위 사람은 2015년 제 1기 신규관리자과정 교육기간 중 제반학습규칙 준수 및 자치생활 준수를 통해 신임관리자과정 교육생 중 두서와 같은 성적을 거두었기에 이 상을 수여함.

    2015년 12월 18일 인사혁신처장 남재복.

    1등으로 인사혁신처장 상장을 받는 강백현.

    [상장, 인재개발원 5급 김지혜]

    이하 내용은 같습니다.

    2015년 12월 18일 인사혁신차장 김을민

    2등으로 인사혁신차장급의 상장을 받은 김지혜.

    [상장, 인재개발원 5급 조성환]

    이하 내용은 같습니다.

    2015년 12월 18일 인재개발원장 유성재

    3등으로 인재개발원장급 상장을 받은 조성환까지.

    상장 수여가 끝나고 찰칵찰칵! 성적 우수자에 대한 사진 촬영을 한다.

    남재복 처장은 진행자를 향해 물었다.

    “다 끝났나요?”

    “아닙니다. 이제 표창 수여가 남았습니다.”

    “표창 수여요? 대상자 앞으로 나오라고 하세요.”

    “이미 나와 있습니다. 성적 우수자 3명이 표창 수여 대상자이기도 합니다.”

    “그래요?”

    [표창장, 인재개발원 5급 강백현]

    위 공무원은 평소 모범적인 자세로 교육을 받아왔으며, 특히 해외정책연수간 인사혁신처 내부계정으로 항공마일리지 반납 및 신고로 국가재정정책 이행에 힘써 왔으며, 불시내부공직감사간 해당내용이 인정되어 이에 표창함.

    2015년 12월 18일 인사혁신처장 남재복.

    남재복이 강백현을 유심히 쳐다보았다.

    “훌륭한 인재가 되겠군요.”

    “운이 좋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열심히 하겠습니다.”

    “운이 좋았다고 말하긴 어렵겠네요. 성적 1등에, 불시 감사에서도 이런 행운이 따르다니, 올바른 공직자세가 이런 기회를 만든 거겠죠. 앞으로 열심히 하세요.”

    “네. 열심히 하겠습니다.”

    강백현은 처장급 상장과 표창에 감격하고 말았다.

    물론 김지혜와 조성환도 마찬가지였다.

    [표창장 인재개발원 5급 김지혜]

    [표창장 인재개발원 5급 조성환]

    이하 내용은 같습니다.

    * * *

    수료식이 끝나고, 백현은 친하게 지냈던 4명과 마지막으로 자리를 함께 했다. 짐을 싸서 기숙사에 둔 채로 인재개발원 내 커피 전문점에 모인 것이다.

    “다들 고생 많았어.”

    백현의 말에 조성환이 씨익 웃었다.

    “와~ 마지막에 처장님 상장에 표창까지, 형님 진짜 처음 봤을 때부터 친해지고 싶었다니까요.”

    “뭐라는 거야. 너도 원장님 상장하고 처장님 표창 받았잖아.”

    “처장님 표창은 진짜 운이었어요. 마일리지 반납한 사람이 형님하고 저하고 지혜 누님 밖에 없을지는 상상도 못했어요.”

    강백현이 룸메이트의 말에 한숨을 내쉬었다.

    “그만큼 공직자들 마인드가 썩었다는 거지. 뭐. 진짜 우리 동기들 실망했다. 48명 중에 어떻게 마일리지 반납한 사람이 3명밖에 없냐? 그러니까 표창 준 거지. 20명만 됐어봐. 표창 절대 안 나왔어.”

    “그만큼 우리가 깨끗하다는 거 아닙니까? 지혜 누님, 아니에요?”

    조성환의 익살스러운 말투에 김지혜가 오현수를 째려보며 말했다.

    “우리라는 말에 포함되지 않는 사람이 한 명 있네. 안 그래?”

    오현수가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변명했다.

    “아니, 나는 그냥 마일리지 적립하라고 해서 적립한 것뿐이야. 내가 뭘 알았냐? 진짜 너무한 거 아니야? 나 적어도 5등 안에는 드는 성적이었는데 벌점 하나로 15등까지 밀렸잖아.”

    “그러니까 하지 말아야 하는 건 하지 말았어야지.”

    김지혜가 오현수를 향해 핀잔을 늘어놓자, 강백현이 웃음을 터트렸다.

    자신도 몰랐으면서 이제 와서 떳떳한 척 하는 게 황당해서 웃음이 나온 것.

    하지만 김지혜는 평소와 같이 당당했다.

    “아, 우리 공표할 거 있어요. 백현 오빠도 잘 들어요.”

    “공표?”

    “저랑 현수랑 사귀기로 했어요.”

    강백현은 김지혜의 말에 깜짝 놀라 물었다.

    “장난하는 거 아니지? 너희 둘이 사귄다고? 물과 기름 같은 사이 아니었어?”

    “아~ 사람 일이란 게 모르는 거잖아요. 아무튼 나도 이게 잘 하는 짓일지는 모르겠는데, 그렇게 됐으니까 더 이상 묻지 말아요. 알았죠?”

    김지혜의 폭탄 발언에 조성환이 방긋 웃었다.

    “공식커플 1호 탄생이네요. 지혜 누님, 현수 형님 축하드립니다!”

    조성환의 칭찬에 오현수가 은근슬쩍 김지혜의 어깨에 팔을 얹으며 말했다.

    “하하하, 지혜랑 나랑 잘 어울리지 않냐?”

    “미쳤냐? 너 돌았어?”

    “아~ 어깨에 팔도 못 올리냐?”

    “허락 맡고 올려. 알았어?”

    “아- 알았어. 알았다고.”

    강백현은 둘이 관계를 보며 방긋 웃었다.

    “그래. 다들 고맙고, 이제 헤어지자. 각자 가서도 잘하고. 톡방 남아있으니까 교류하면서 살자.”

    “네. 형님,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백현이 형, 자주 연락드릴게요.”

    “오빠, 그 분이랑 잘 만나고, 가끔 봐요.”

    “어? 어. 그래. 나중에 성현 씨 한국 오면 같이 보자. 그땐 성환이도 여자친구 만들어서 커플 모임 하면 되겠다.”

    헤어짐이 있으면 만남도 있는 법.

    지난 3개월간의 인재개발원 연수가 드디어 막을 내렸다.

    다시 고향으로 내려가는 길.

    강백현은 과천에서 부주시로 내려가는 버스에 몸을 기대고 김성현에게 데이터 전화를 걸었다.

    - 아, 백현 씨? 수료 잘 했어요?

    “네. 성현 씨. 그나저나 어떻게 해요?”

    - 뭐가요? 또 뭔데? 백현 씨는 맨날 말하는데 주어가 없어.

    “하하하, 1등하면 소원 들어주기 했잖습니까?”

    - 설마 1등한 건 아니죠? 아니지. 백현 씨가 1등할 리가 없지. 내가 무슨 소원을 빌까요? 생각할 시간을 줄래요?

    강백현이 김성현의 말에 오늘 받은 표창장과 상장의 사진을 전송했다.

    - 뭐에요? 설마 진짜 1등? 포토샵으로 조작한 건 아니고?

    “포토샵으로 조작을 왜 합니까? 김성현 씨. 한국 오면 긴장해요.”

    - 네?

    “한국 돌아오면 소원 씨게 갈 거니까, 긴장하라고요.”

    강백현의 말에 김성현이 갑자기 웃음을 터트렸다.

    “왜 웃어요?”

    - 씨게 간다고요? 씨게 안 가기만 해봐. 나한테 죽어요. 나 성깔 장난 아닌 거 알죠? 그나저나 한국 돌아갔으면 윤수 좀 챙겨요. 윤수 외롭겠다.

    “알았어요. 들어가요. 뽀뽀! 쪽!”

    - 지금 뽀뽀 소리만 낸 거예요?

    “그런데요? 마음에 안 들어요?”

    - 소리만 내는 건 별로거든요? 일단 숙제로 남길 테니까, 나중에 보면 정답 제출해요.

    “넵. 실장님이 원하신다면!”

    강백현은 그 어느 때보다 행복했다.

    미진이와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활발하고 긍정적이고 프라이드가 강한 사람.

    그런 사람과 만난다는 사실이 좋았다.

    그런 표정을 본 최용규가 한숨을 내쉬며 물었다.

    [좋냐?]

    “네. 이제까지 32년을 살면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네요.”

    [ㅆㅅㄲ!]

    “네?”

    * * *

    오랜만에 집에 돌아온 백현을 부모님이 반갑게 맞이해주었다.

    “아이고, 장하네. 우리 아들. 사무관이 돼서 돌아왔네. 응?”

    “하하, 엄마 당분간 집에서 홍성으로 출퇴근하게 될 것 같아요.”

    “그래? 그래그래! 아빠 차 끌고 다녀. 어차피 타지도 않는데 뭘.”

    “네. 안 그래도 말씀드려야 할 것 같아서요.”

    아직 자동차가 없는 강백현은 아버지의 차를 가끔 끌고 다닌다.

    10년 동안 약 12만km를 운행한 출퇴근 전용차량.

    그러나 학교에서는 휴게시간을 길게 잡아 24시간 학교에 묶어놓는 방식으로 일을 시킨다.

    때문에 백현의 아버지는 아예 학교 창고 옆 휴게실에서 상주하다시피 하며 지내고 계신다.

    가끔 볼 일이 있을 때마다 집에 들어오시긴 하는데, 평소에는 교장 눈치가 보여서 대부분 학교에 계신다고.

    아버지에게 양해의 말씀을 드리고 출퇴근용으로 아버지의 차를 끌기로 했다.

    대신 용돈으로 한 달에 30만원을 드리기로 했는데, 백현의 아버지는 그 30만원의 용돈에 굉장히 흡족하신 듯했다.

    공직기강감사실은 충남도청의 1층, 도의원 사무실 바로 옆에 위치해 있었다.

    강백현이 이전에도 몇 번 와보았던 곳이다.

    최용규가 도청 공직기강감사실로 발령 났다고 연락왔을 때, 그리고 김태웅의 징계위원회 때문에 증언하러 왔을 때다.

    강백현은 도지사의 시간계획에 신고 일정이 잡혀있지 않은 탓에, 먼저 감사실 실장에게 인사를 하고자 발걸음을 옮겼다.

    오늘부터 감사실의 팀장으로 업무수행하게 된 강백현.

    그의 등장에 사무실 사람이 환호하기 시작한다.

    “우와! 굉장한 인재가 오셨네요. 신분 상승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새로 오신 팀장님, 앞으로 잘 모시겠습니다. 차우현 주무관입니다.”

    7급 차우현 주무관. 나름 베테랑인 그는 9급으로 임용되어 약 10년간 공직생활을 한 공무원 선배였다.

    강백현은 그를 보며 깍듯이 인사했다.

    “차우현 주무관님, 말씀 편하게 하세요. 강백현입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아니, 주무관이 어떻게 사무관님한테 말을 편하게 합니까? 제 직급상사신데 존댓말 해드려야죠. 지금 실장님이 출장 나가셔서 저밖에 없습니다. 팀장님 자리는 현재 공석이라 바로 저 자리 앉으시면 될 것 같습니다. 커피 한잔 드시겠습니까?”

    “아, 제가 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강백현은 최용규가 앉아있던 공직기강감사실 팀장 자리를 바라보았다. 자리가 깨끗하게 치워져 있었다.

    그의 흔적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

    강백현은 커피를 타며 차우현 주무관에게 말을 걸었다.

    “주무관님, 블랙? 아니면 밀크로 드십니까?”

    “아, 전 블랙이요. 제 것 타주시는 겁니까?”

    “아~ 둘이 있을 땐 편하게 하세요. 저 얼굴 아시잖아요. 작년에 한 번 뵈었는데 기억 안 나세요?”

    강백현은 최용규 선배가 내려왔을 때, 이곳에 방문해서 차우현 주무관과 명함을 교환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강백현은 명함수첩에서 그가 작년에 준 명함을 꺼내며 다시 한 번 인사했다.

    “이것 보세요. 저 부주시 공무원으로 일할 때, 선배님이 저한테 명함 주셨잖아요.”

    “아…. 새로 오신 팀장님? 이러시면 곤란한데요.”

    “둘이 있을 땐 편하게 하세요. 괜찮아요. 형님! 저도 잴 건 잴 줄 알고, 어떻게 지내야 되는지는 잘 압니다. 저도 공무원 짬밥 4년 먹었으니까, 우리 터울 없이 지내죠. 네?”

    강백현의 말에 차우현은 곤란한 표정이면서도 내심 마음이 놓였는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알았어. 우리 아우님, 힘든 것 있으면 말해. 내가 또 전에 안 봤으면 모르는데, 우리 사실 안면도 텄었고 모르는 사람도 아닌데, 그렇잖어? 응?”

    “네. 그렇죠. 공석에서만 대우 해주시고 사석에서는 편한 동생으로 대해주세요. 앞으로 저도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래~ 그래. 아~ 진짜, 긴장했네. 하하, 나 잠깐 은행 좀 다녀올게. 사무실 좀 지켜줘.”

    “네. 형님! 다녀오세요.”

    강백현이 방긋 웃으며 차우현을 배웅했다.

    그러자 어느새 나타난 최용규가 팔짱을 끼고 강백현을 째려보았다.

    [야, 부하직원들은 빡세게 굴려야 돼. 너처럼 능글능글 하는 게 능사가 아니야. 어?]

    “제 스타일이 있는 겁니다. 무조건 들이박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는데, 때론 유하게 친밀감을 쌓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되는 겁니다. 선배님.”

    [네 일은 네가 알아서 해라. 그나저나 이제 씨발, 사무관 진짜 됐네. 이제 내 도움 필요 없지?]

    “그럴 리가요. 저 대통령까지 만들어준다고 하셨잖아요.”

    [그걸 진짜로 믿냐?]

    “뭐, 못할 것도 없겠죠. 아무튼 전 여기 온 이상, 비리척결, 부패방지. 이 하나의 목표를 가지고 열심히 발로 뛸 겁니다.”

    강백현은 의지를 불태웠다.

    예전에 최용규가 말했듯이, 이제 힘이 있는 자리에 온 것이다.

    그런데 누군가가 시끄럽게 떠들며 사무실에 들어온다.

    “아~ 야야야! 소개팅 하나 해주는 게 그렇게 어렵냐? 7급 공무원이라고 인마! 응? 일등 신랑감이잖아. 한 번 해줘. 응? 어?”

    자신의 7급 공무원 직급을 어필하는 부하직원.

    너무나 잘 아는 그 직원이 사무실에 출근한 것이다.

    “김태웅 주무관? 잘 지냈어요?”

    “아… 강백현.”

    “응. 강백현 팀장입니다. 김태웅 주무관을 관리하고 책임지는 자리로 왔죠. 어떻게 자리는 유지하셨네요. 금방이라도 잘릴 거라며 호들갑 떨더니.”

    “야! 너 이러기냐? 너 나한테 원수졌냐?”

    김태웅의 말에 그의 직속상사인 강백현이 방긋 웃으며 대답했다.

    “말버릇이 좀 그러네요. 김태웅 주무관은 행동거지를 교정해야 될 필요가 있어 보여요. 어때요? 이참에 한 번 고쳐보는 게.”

    그리고 그런 강백현의 행동을 보며 기가 차서 말이 안 나오는 유령.

    [와~ 저 독한 새끼. 저 새끼는 진짜 똘기가 장난 아니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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