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뚝배기 깨러 왔습니다-70화 (70/139)
  • 뚝배기 깨러 왔습니다 70화

    감사원 인사발령 명단 중 과장 신규보임에 백현의 이름이 떡하니 올라가 있다.

    더구나 그토록 원하던 충남도청의 공직기강감사실 과장 자리. 최용규가 죽기 전까지 있던 그 직위였다.

    [백현아! 고생했다.]

    홈페이지에 올라온 명단을 확인한 백현의 얼굴에는 만족스런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선배, 고마워요. 솔직히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선배 덕분이네요.”

    [웬일이냐? 네가 나한테 다 고마워하고.]

    “그러게요.”

    그리고 복도에서 핸드폰을 보며 만세삼창을 부르는 사람이 있었다.

    “형님! 저 국세청 들어가게 됐어요! 국세청 됐습니다.”

    “그래. 근데 그게 축하할 일인지는 모르겠다.”

    “왜요?”

    “너 곧 군대 가잖아. 그리고 국세청이 반드시 좋은 자리는 아니야. 지금 현안업무 중에 가장 중요한 게 사학하고 군인 연금 제도 개선이잖아.”

    “그래도 금융위나 기재부보단 괜찮을 걸요? 거기보단 빡세지 않다고 하던데.”

    “그렇긴 하지. 금융위는 바젤3 개편안은 물론이고, 새로 적용되는 신용평가기관 평가등급을 맞추려면 업무 부담이 상당할 것 같은데?”

    백현의 대답에 조성환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바젤3도 아세요?”

    “야! 나 바보 아니야. 리먼브라더스 사건 이후 바젤 2가 무력화된 적이 있어서 새로 개편된 협약이 바젤 3잖아. 자기자본비율 범위를 축소하고, 레버리지 비율을 규제하고, 완충자본을 확보해서 최종적으로는 경기순응성을 확대하자는 거 아니야?”

    “와! 전공자인 저보다 더 명확하게 알려주시는데요?”

    “그래? 맞았어?”

    “네.”

    백현이 씩 웃으며 최용규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내밀었다.

    사실 바젤 협약은 최용규가 가르쳐준 내용이었다.

    감사팀이라고 해도 세무 쪽을 아예 모르면 재경직 쪽에 무시당할 수 있다며 외우라고 다그친 바 있었다.

    “형님! 진짜 최고시네요.”

    사전에 공부했던 지식을 풀어 말했을 뿐인데도 조성환은 놀란 얼굴을 한다.

    물론 재경직 공무원이라면 모를 리 없는 부분이지만 그게 일반 행정직 지원자의 입에서 흘러나오니 당황스러운 것.

    주식 중 은행주에 관심이 있다면 기본적으로 알아야 하는 상식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그렇게 쉬운 내용은 아니었다.

    “이제 2주 남았지?”

    “네. 해외정책연수랑 직무연수만 다녀오면 수료죠.”

    “해외정책연수는 어디 신청할 건데? 홍콩이랑 캐나다, 프랑스, 미국 중 하나 골라야 하지?”

    “네. 전 아직 안 정했어요. 아무래도 미국이나 홍콩으로 신청하지 않을까 싶은데요? 런던이 금융의 도시다보니 영국으로 신청하고 싶기도 하지만 거긴 올해 브렉시트 탈퇴 국민투표가 통과되었잖아요. 물론 정말로 탈퇴하는 미친 짓은 안하겠지만, 그것 때문에 후보지에서 제외되었더라고요. 그래서 미국으로 신청해볼까 고민 중이에요. 형님은요?”

    성환의 질문에 백현이 잠시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난 프랑스로 지원할 예정이야. 아마 정원이 16명이었지?”

    “네. 그런데 프랑스 지원이라, 특이하시네요. 프랑스 쪽 연구주제가 뭐였죠?”

    “연구주제는 <복지정책, 사회연대>라더라. 방문 장소는 주 프랑스 대사관, 파리투자금융, 마르세유-리옹 개발 지역 네트워크, 프랑스 한국전 참전용사협회야. 전부 2박 3일 방문하는 일정이더라고.”

    백현의 대답에 조성환이 신기한 듯 중얼거렸다.

    “진짜 형님은 이해가 안 가요. 남들은 다 미국에 가려고 하는데 프랑스를 지원하신다니.”

    그 말을 들은 유령 최용규가 소리쳤다.

    [네가 좀 말려라. 이 새끼, 성현이 보러 가는 거다. 너 맞지? 야! 강백현! 너 성현이 보러 가는 거지?]

    강백현은 대답 대신 웃음을 지었다.

    “성환이 넌 나한테 너무 관심이 많은 것 같아. 나한테 관심 갖지 말고 애인부터 좀 만들어.”

    “에이~ 전 아직 젊잖아요. 애인은 형님이 만드셔야죠.”

    조성환은 씩 웃으며 핸드폰을 열었다. 그리고 빠르게 타이핑을 했다.

    [조성환] : 지혜 누님, 백현이 형 프랑스로 해외정책연수 신청했어요. 이번엔 골인하세요!

    [김지혜] : 응. 성환이 너 밖에 없다. 누나가 잘 되면 옷 하나 사줄게.

    [조성환] : ㅋㅋㅋㅋ. 잘 되기나 하세요. 백현이 형 의외로 여자한테 관심 없어요. 밤에 따로 연락하는 사람도 없고요. 누님 파이팅!

    그리고 그걸 본 최용규의 입가에는 미소가 걸렸다.

    [‘사랑의 큐피트가 여기 있었군.’]

    그러나 문제는….

    [‘잠깐! 프랑스 파리면 우리 성현이가 있는 곳이잖아?’]

    프랑스로 향하는 비행기.

    공무원의 해외정책연수는 국민에게 걷은 세금에서 나오는 것.

    백현은 그걸 잘 알기에 이번 정책연수기간을 알차게 보내겠다고 결심했다.

    물론 연수 중 야간에 개인시간이 주어진다면 김성현을 만나 깜짝 놀라게 해줄 생각은 충분히 있다.

    그러기 위해 프랑스에 지원한 것이니까.

    [야! 너, 성현이 만나려고 프랑스 정책연수 신청한 거 아니지?]

    “성현 씨 보려고 신청했는데요?”

    [야야야! 미쳤어? 국가의 세금이 들어가는 문제야. 너의 발전이 곧 국가의 발전이라고. 개인의 사사로운 감정 때문에 연수 국가를 정한다는 게 말이 돼? 신청한다고 다 보내주는 것도 아니잖아. 성적 좋은 인재들한테만 열리는 기회인데 그걸 사리사욕을 채우는 기회로 삼는 게 맞느냐고! 어?]

    최용규의 질책에 강백현이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신 선배님께서는 영국으로 지원하지 않으셨나요? 그때 성현 씨도 영국에 있었던 걸로 알고 있는데요?”

    [야, 그거하고 그건 다르지.]

    “도대체 뭐가 다른 걸까요? 아~ 그나저나 내가 프랑스에 나타나면 성현 씨, 깜짝 놀라겠죠?”

    [야야야야! 야야야!]

    * * *

    해외정책연수.

    그 준비는 해외 업체에 위탁으로 처리하게 되어 있다.

    이번에 위탁된 업체는 <글로벌비즈넷>이란 회사였다.

    이들은 현지의 랜드 여행사와 긴밀하게 연계하여 공항 입/출국 절차에서 현지에서의 숙소와 교통편, 식사, 더해서 관광까지 전부 진행해준다.

    “안녕하세요! 신임관리자 과정 사무관 여러분 반갑습니다. 저는 글로벌비즈넷에서 파견 나온 강미란이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출국날의 공항.

    세미정장을 입고 나온 40대 여성이 밝은 소리로 인사했다. 그러자 16명의 예비사무관과 인솔간부로 파견된 전문교수 한 명도 목소리를 높였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이제 막 초임된 공무원들.

    그들의 얼굴에는 국가가 지원하는 연수에 선발되었다는 자부심이 가득했다. 그런 이들을 향해 강미란 가이드가 설명을 시작했다.

    “많이 추우시죠? 벌써 초겨울이에요. 프랑스 날씨도 한국과 그리 다르지 않은데 다들 코트 하나씩은 챙기셨는지 모르겠네요. 예전에는 저희가 티켓팅을 전부 해드렸는데, 이젠 보안규정이 까다로워져서 개인이 티케팅을 하셔야 해요. 지금 전자항공권 드릴 테니까 바로 비즈니스석 발권하시고 짐 부치실 것은 부쳐주세요. 이후 이 자리로 12시 30분까지 모여주셔야 합니다.”

    강백현은 부쩍 높아진 신분을 체감하는 중이었다.

    주무관들은 보통 이코노미석으로 정책연수를 간다.

    하지만 사무관들은 달랐다.

    비즈니스석. 무려 300만원짜리 비행기 티켓이다.

    물론 단체항공권이라 가격 할인이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전자항공권에 적힌 가격은 무려 287만원이었다.

    “오빠, 전자항공권 줘.”

    “어?”

    “이거 무인좌석 신청할 수 있거든요. 여권 여기다 대요. 내가 좌석 선택해줄 테니까.”

    김지혜가 백현의 전자항공권을 들고 좌석을 선택하기 시작했다.

    비즈니스석은 왼쪽과 오른쪽 창가 자리, 그리고 중앙에 붙어 있는 2자리로 한 열에 4자리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런데 김지혜가 창가가 아닌 붙어 있는 2자리를 신청했다.

    “어? 지혜야. 나 창가 앉고 싶은데?”

    “오빠, 여기 자리가 대화도 할 수 있고 좋아요. 여기 앉아요.”

    지혜의 행동에 뒤에 있던 최용규가 환호성을 내질렀다.

    [잘한다! 적극적이네. 난 적극적인 사람이 좋더라.]

    최용규의 말에 강백현이 찌릿하고 째려보았다. 그런데 최용규는 신이 났는지 휘파람까지 분다.

    [저렇게 적극적으로 감정 표현하는데, 몰라줄 거야? 너랑 잘 어울리잖아. 응?]

    ‘제발 그만 좀 하세요. 선배님.’

    전자항공권을 발권한 후에는 수화물을 부치기 위해 줄을 선다.

    비즈니스석의 대기열은 따로 있었다.

    일반석에는 50-100명 정도 줄을 서 있었지만 비즈니스석 쪽에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수화물을 바로 부칠 수 있었다.

    “휴대물품 금지목록 다시 한번 확인해주시겠어요?”

    9.11 테러 이후 항공보안절차가 강화되었지만, 강백현이 거기에 해당하는 물품이 있을 리 없다.

    “배터리도 가져가면 안 돼요?”

    “휴대용 배터리는 개인 휴대하셔야 해요.”

    휴대용 배터리를 빼서 조그마한 휴대용 가방에 옮기는 김지혜.

    “마일리지 회원번호 있으세요?”

    “네. 여기 있습니다.”

    어플을 켜는 김지혜를 보며 강백현이 깜짝 놀라 제지했다.

    “아니요~ 아니요. 마일리지 적립 나중에 할게요. 지혜야. 너 적립하면 안 돼.”

    “왜요?”

    “너 공무원이잖아. 공무원 여비규정 제 12조인가 보면 사적으로 항공마일리지 쓰거나 적립하면 안 되거든. 이거 개발원 회계 담당하시는 분한테 물어봐서 단체계정에 마일리지 적립시켜야 돼. 안 그러면 큰일 나.”

    “어? 다른 동기들은 다 한 것 같던데. 아까 인솔하시던 분도 적립하셨어요.”

    “규정 위반인 거 몰랐겠지. 우리는 하지 말자.”

    “아~ 알았어요.”

    강백현과 김지혜는 마일리지 적립을 나중으로 미뤘다.

    김지혜는 찜찜했는지 동기들에게 해당사실을 알렸고, 동기들은 인솔자에게 이에 대해 물었다.

    “저기, 항공마일리지 개인이름으로 적립하면 안 되는 거 아닌가요?”

    “그거 검사 한 번도 안 하던데? 걱정 안 해도 돼요. 문제된 적 없었고요.”

    인솔자가 저렇게 말하니 동기들도 고개를 끄덕인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김지혜만 난감한 상황이었다.

    군중심리는 무섭다.

    설사 불법이라고 해도 다수가 저질렀다면 “상관없잖아? 남들도 다 하니까.”라는 생각이 된다.

    이렇게 되면 규정을 따지고 드는 사람이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는 것이다.

    * * *

    한편, 인사위원회가 열린 후 정직 3개월 처분을 받은 김태웅.

    그는 감사원 홈페이지에 게시된 강백현의 인사발령에 까무러칠 뻔 했다.

    ‘미쳤어? 강백현이 5급 사무관이 됐다고?’

    거기에 더 놀랄만한 것은 죽은 최용규 선배의 자리에 임명되었다는 것.

    그것은 즉, 자신의 직속상사라는 이야기였다.

    ‘씨발! 씨발! 씨발!’

    그래서 강백현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녀석은 자신의 전화를 이미 차단한 상태. 받질 않는다.

    그래서 발신자 표시제한으로 전화를 했다.

    헌데 전화기가 꺼져 있다고 한다.

    그럼 어떻게? 이제 2주 안에 발령이 나는데? 무슨 조치를 해야만 했던 김태웅이 인재개발원에 전화를 걸었다.

    - 인재개발원 기획부 교육지원과 김지영 주무관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안녕하십니까? 충남도청 공직기강감사팀 김태웅 주무관입니다. 이번에 신규 임용 되시는 강백현 사무관님 연결 좀 하고 싶어서 전화 드렸는데요.

    - 어? 아~ 프랑스 해외정책연수 오늘 출발하셨어요. 지금 비행기 출발했겠는데요?

    “네? 해외정책연수요? 성적 좋아야 하는 거 아닌가요?”

    - 네. 강백현 사무관님, 수석 합격하셨잖아요. 지금도 성적 굉장히 좋으셔서 정책연수 선발 되셨거든요. 어떻게, 오시면 연락드리라고 할까요?

    “아, 아닙니다. 네. 알겠습니다.”

    김태웅이 머리를 싸매고 생각했다.

    ‘정책연수? 비행기 마일리지! 마일리지 개인적립 했겠지?’

    비리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잘 아는 김태웅이다.

    그의 일이 이런 부정부패를 잡아내는 것이기에 그 누구보다 공무원 사회의 비리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그런 그가 웹사이트, 국민신문고의 공익제보게시판에 접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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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민신문고 공익제보게시판.

    제목 : [항공마일리지 무단 사용에 대한 제보]

    - 안녕하십니까? 신임사무관들 해외정책연수간 마일리지 개인 적립 관련 건으로 제보합니다. 인재개발원에서 프랑스로 출발한 오늘 비행기고요. 그 중 몇 명이 기관ID가 아닌 개인ID로 마일리지 적립한 게 확인되어 제보 드립니다.

    국가의 세금이 이렇게 낭비되는 것에 대해- 공무원 여비규정 제 12조를 보시면 사적으로 항공마일리지 쓰거나 적립하면 안 된다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빠른 확인 후 해당 인원에 대한 징계, 고발조치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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