뚝배기 깨러 왔습니다 68화
정치적 논리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대부분 양자택일을 강요한다.
내 편 아니면 네 편.
아군이 아니면 모두가 적군.
백현은 공직생활을 하며 그런 부류를 많이 보았다.
시의원이 그랬으며, 시장이 그랬고, 부시장, 허가과장, 국장이 그랬다.
업무수행능력은 물론 타인에 대한 배려심이 높은 사람이라도 정치적 논리에 사로잡히면 변해버린다.
논리가 맞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집단의 이익을 위해 사실을 왜곡하고 상대를 폄하하며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려 하는 것이다.
앞의 최현희 또한 예외는 아니다.
강백현은 허가과에서 있었던 축사허가 관련 건을 떠올렸다.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징계위원회에 회부하여 다시는 기어오르지 못하게 하려 들지 않았던가?
그게 다 시장과 관계된 일이었기 때문이다. 비이성적이기 짝이 없다.
백현은 한쪽에 치우친 집단이 최후에는 어떤 식으로 움직이는지 몸소 경험한 사람이었다. 때문에 지금 자신의 앞에서 진영 논리로 일관하는 최현희를 최대한 피하고 싶었다. 그렇기 때문에 내놓은 제안.
“너! 너! 너!”
하지만 그녀는 그렇지 않은 듯 했다.
자신보다 5살 이상 어려보이는 최현희의 삿대질에 강백현이 헛웃음을 터트렸다.
자신과 동기인 최현희지만 공무원 경력으로서는 한참 후배다.
나이도 어리고 실력도 인성도 부족한 후배가 막 나가는 모습을 보니 기가 막혔다.
“최현희! 네가 어떤 인생을 살았는진 모르겠는데, 미래가 결코 밝지는 않은 것 같아 걱정된다.”
“너나 걱정해. 너 우리 아빠가 누군지 알고 하는 소리야?”
강백현이 피식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응. 충분히 알지. 4선 국회의원이잖아. 근데 그거 아냐? 난 네 아버지 하나도 안 무서워.”
“안 무섭다고?”
“그래. 난 잃을 게 없거든. 고작해야 공무원 자리뿐이겠지. 그런데 너는?”
강백현이 핸드폰을 들어보였다. 녹음 파일. 지금 한 대화를 녹음하고 있었던 것.
그것을 본 최현희가 더욱 더 울화통을 터트렸다.
“녹음?! 뭐 이딴 새끼가 다 있어?”
최현희가 소리치자 강백현이 방긋 웃었다.
“미안하지만 버릇이 돼서 말이야. 난 하도 썩고 썩은 곳에서 일해서 그런지 평소에도 이런 녹음을 즐기는 편이거든.”
사실이었다.
같은 기숙사 출신 공무원이던 진한 선배의 의문의 죽음. 그 후 그가 따로 남겨준 자료가 백현에게 그런 강박관념을 심어주었다.
허가과장이 술자리에서 토로한 취중진담.
국장을 통해 시장에게 뇌물을 바쳐야 한다는 발언을 녹음할 수 있었던 것도 그런 꼼꼼함과 강박 관념 때문이었다.
‘나도 참~ 비틀려있지. 정상적인 범주는 절대 아냐.’
부패한 공직 사회. 비리가 만연한 선배 공무원들.
그리고 그들과 나열된 각종 업자들. 건축, 토목, 설비, 조경, 요식업 등까지. 하나하나 나열하려면 끝이 없다.
대한민국은 부패했다.
부패한 조직을 감독해야 할 공무원조차 썩어빠진 현실.
아직 새내기인 여기 최현희를 보라.
국가를 위해 헌신할 생각을 해도 모자랄 이 시기에 벌써부터 시험문제 유출에 성적 조작, 협박까지 한다.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어린 친구가 이렇게까지 편협한 시야를 가진 것은 어쩌면 국가의 잘못이 아닐까?
최현희의 협박을 그냥 웃고 넘길 수도 있었건만, 정색하고 대응하고 있는 것도 그래서 일지도 몰랐다.
‘그러니 더욱 더 감사원에 합격해야만 해.’
최현희가 최후통첩을 했다.
“너 어차피 합격 못해. 감사원에 가는 건 나야. 지금이라도 나한테 기는 게 좋을 걸?”
“넌 녹음파일이 무섭지 않니?”
“어차피 우리 아빠가 무마시켜줄 거고. 너도 나한테 한 협박이 있으니 같이 X 되잖아.”
하지만 강백현은 조금도 불안해하지 않았다.
“후후. 난 합격할거야. 네 말대로 내가 감사원에 불합격한다면 대한민국에 희망은 없겠지. 하지만 네 생각대로 되진 않을 거야. 오늘은 여기서 끝내자.”
“악연이네. 악연이야. 내 말만 잘 들으면 인생이 탄탄대로인데 왜 사서 고생을 하는지 모르겠다.”
“그건 평생 노예겠지. 왜 사서 노예가 되려고 할까? 난 풍족한 노예보다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몰락한 귀족이 되는 게 나아. 노예는 평생 위만 바라보고 살지만, 귀족은 전체를 바라볼 수 있는 식견과 감각을 가졌거든.”
“개소리 집어치우고 꺼져.”
최현희가 욕을 한 바가지 퍼붓고는 자리를 떠났다.
그리고 백현은 방금의 대화를 확실하게 저장해두었다.
솔직히 자신이 감사원에 무조건 합격한다고 확증할 수는 없다.
감사원조차 이미 썩어문드러진 조직일지도 모르니까.
그렇진 않으리라 생각하지만, 사람 사는 일이니까 모르는 거다.
기숙사, 자신의 방으로 돌아온 백현은 한숨을 내쉬며 침대에 누웠다. 그러자 책상에 앉아있던 조성환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형님, 왜 그러세요? 면접 별로였어요?”
“아니, 너무 잘 봐서 걱정이지.”
“잘 봤는데 왜요? TO가 없대요? 올해 감사원 안 뽑는데요?”
“아니, 한 명 뽑긴 하는데, 지원자가 두 명이었거든.”
백현의 말에 조성환이 피식 웃었다.
“그럼 무조건 형님이 합격하시겠네요.”
“그래. 그래야 되는데, 그게 아닐 수 있어서 걱정하는 거야.”
“떨어질 리가 없잖아요.”
“그렇지. 상식적으로는 절대 떨어질 리가 없는데, 떨어질까 봐.”
“그게 무슨 말이에요? 장난치지 마세요.”
조성환은 백현의 말을 엄살이나 장난으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백현은 심각했다.
감사원이 만약 부패한 조직이라면, 자신 대신 정치적으로 이용가치가 있는 최현희를 선발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자신이 꿈꿔왔던 비리척결, 부패추방이란 핵심가치가 물거품이 된다.
적어도 백현 자신의 그림에서 감사원만큼은 청렴해야만 하는 조직이었다. 하지만 아니라면?
‘고민해봤자 소용없겠지. 발표는 3일 뒤인가?’
* * *
같은 날.
과천 인재개발원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구)정부청사.
그 앞에 벤츠 차량 한 대가 멈춰 섰다.
“의원님, 정부청사 도착했습니다.”
운전기사의 말에도 반응이 없는 뒷좌석.
운전기사는 다시 한 번 뒤를 돌아보며 말을 꺼냈다.
“의원님, 목적지인 정부청사 도착했습니다.”
끙끙.
잠에서 깬 4선 국회의원 최장철이 주변을 살핀다.
“도착했나?”
“네. 과천정부청사입니다.”
“그런데 왜 안 깨웠나?”
“……”
김조석 운전 9급은 할 말을 잃었다.
“깨워야지! 응? 도착했으면 도착했다고 깨웠어야지! 이렇게 해서 내 밑에서 일할 수 있겠어? 어?”
“죄송합니다. 주의하겠습니다.”
“맘에 안 들어. 진짜 너 맘에 안 든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최장철은 잠에서 깬 후 한숨을 내쉬었다.
스스로 깬 게 아닌데 본인은 스스로 깼다고 생각한다.
“그래. 김 기사! 인사혁신처장은 어디래?”
“지금 밖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래?”
인사혁신처장.
대통령이 임명하는 차관급 공무원.
그는 소위 말하는 낙하산.
공직에서의 경험은 물론 그 흔한 군대 경력도 없는 사람이었다.
그는 사구체 신염으로 군대를 면제받은 후, 인사청문회에서 군대 관련 이슈로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킨 바 있었다.
웃긴 건 그의 아들도 똑같은 사구체 신염으로 면제를 받은 것.
여론은 병역기피라는 의견이었지만, 여당에서 추천한 후보와 야당에서 추천한 후보 양측 모두가 군면제인 상태였다.
때문에 무소속 국회의원을 제외하고는 여야 할 것 없이 이에 대해 함구, 국민들이 더욱 더 정치에 불신을 품는 계기가 되었다.
인사혁신처는 바로 그런 논란의 인물이 수장으로 되어 있는 조직.
그리고 그는 국회의원 최장철과 선거운동을 함께 하며 인연을 맺은 바가 있었다.
“의원님, 나오셨습니까?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하하, 재복이. 처장 달아서 그런지 신수가 훤하네.”
“아~ 다 의원님 덕분입니다. 의원님이 안 도와주셨으면 제가 이 자리까지 어떻게 왔겠습니까?”
“그래요. 옆에 친구는 누구지?”
최장철의 말에 인사혁신처장 남재복이 인재개발원장을 소개했다.
“이번에 따님이 계신 인재개발원에 원장으로 온 유성재 원장입니다. 성재 씨, 인사드려요. 최장철 의원님.”
유성재가 메마른 음성으로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올렸다.
“처음 뵙겠습니다. 유성재 원장입니다.”
“그래요. 식사를 하면서 이야기 좀 나누죠.”
“네. 의원님.”
의원들은 방음이 잘 되는 독립된 룸 구조의 음식점을 좋아한다.
그런 음식점은 보통 한정식집, 일식집, 그리고 주점 등이 있다.
유성재는 제발 주점은 가지 않았으면 했지만 인사혁신처장의 생각은 달랐다.
“잘하는 가라오케가 근처에 있습니다. 어떠십니까?”
“벌써부터 주점은 됐고, 일식집으로 가지. 회가 당기네.”
“네. 알겠습니다.”
다행이었다. 첫 만남부터 주점은 단연코 사양이었다.
더구나 악명 높기로 유명한 최장철 국회의원과의 친목이라니.
일식집.
자리에 앉은 세 명이 만담을 나누기 시작했다.
본론은 결국 딸의 거취.
“유성재라고 했지? 내 딸이 인재개발원 평가가 뭐 잘못 되었다고 하더라구. 좀 알아봐봐.”
“어떤 평가 말씀이신지요?”
“아니! 뭐 동기끼리 평가하는 뭔가 있다며, 그것 때문에 자기가 1등인데 순위가 밀렸다고 하더라구. 그거 없앨 수 있나?”
최장철의 말에 유성재가 속으로 쓴웃음을 지었다.
‘아니 어떻게 저런 말을 저렇게 쉽게 말할 수가 있지?’
그런데 인사혁신처장의 말이 더 가관이다.
“당연히 해드려야죠. 유성재 원장! 알아보고 내일까지 조치해. 어? 가능하지?”
“알아보겠습니다.”
“가능하냐고 물었잖아.”
“사무실 들어가서 가능한지 알아보겠습니다.”
유성재는 절대 책임지지 못할 말을 내뱉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러자 남재복 처장이 바로 인재개발 부원장에게 전화를 건다.
3분간 통화를 하더니 남재복이 결국 일을 저질렀다.
“내일모레가 다면평가 3차 최종 발표날인데, 이거 평가 점수를 좀 바꾸면 가능할 것 같긴 하다고 합니다. 3차 점수가 50%정도 가점이어서 따님을 1등으로 만들고, 상위권 인원을 하위권으로 배치를 바꾸면 다시 총점 1등으로 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부원장으로부터 방금 보고 받았습니다.”
남재복의 말에 최장철이 씩 웃었다.
“좋아. 역시 자네는 키워준 보람이 있어. 하하, 한 잔 하자고.”
“네. 의원님.”
유성재는 최대한 표정을 숨겼다. 하지만 전쟁터와 다름없는 정치싸움에서 십여 년 이상 버텨온 최장철, 그의 직감으로부터 벗어날 순 없었다.
“유성재 원장은 불만이 많은가봐?”
“아닙니다.”
“뭐~ 첫 만남이 불편할 순 있어. 하지만~ 세상은 다 이런 거야. 공정하게 살면 누가 밥 먹여주나? 대통령은 뭐 깨끗한 줄 알아? 세상 다 이렇다니까. 이용할 수 있는 건 최대한 이용해먹고, 뽑아먹을 수 있는 건 다 뽑아먹어서 실리를 챙기는 놈이 살아남는 거야. 내가 그렇게 해서 살아남았고. 자식이야 뭐~ 보험 같은 거지. 설상가상으로 내가 망했어도 자식이 성공하면 다시 일어날 수 있거든?”
“넵. 한잔 하시죠 의원님.”
“하하, 그래. 마시자구!”
사케가 술술 비어간다.
유성재는 정신을 똑바로 차렸다. 여기서 실수하면 모든 게 돌이킬 수 없게 된다.
그러나 최장철 국회의원의 목적은 이게 전부가 아니었다.
“맞다. 딸이 감사원 가고 싶어 한다는데 어떻게 하면 보낼 수 있나?”
의원의 질문에 남재복 처장이 대답했다.
“그것도 제가 알아보고 조치하겠습니다.”
“그래. 좋아. 오늘은 즐기지! 우리의 인생을 위해 치얼스!”
* * *
2일 뒤.
최현희는 콧바람을 부르며 게시판으로 향했다.
최종 성적이 발표되는 날, 아빠의 말대로라면 다면평가 점수에서 역전, 그리고 1등을 탈환하게 될 것이다.
“형님! 축하해요.”
“아~ 미안하다. 나 때문에 어떻게 하냐?”
“아니에요. 괜찮아요. 아니 안 괜찮지. 한 등수씩 밀렸는데, 형님이 오늘 술 쏴야할 것 같은데?”
조성환의 말에 백현의 동료들이 하하 하고 웃었다.
“그러네. 백현이 형이 쏴야겠네. 수석 합격에, 교육 성적도 1등이잖아요.”
최현희가 황당해하며 게시판으로 다가갔다.
성적 최종 결과는 이러했다.
강백현 1등.
조성환 2등.
김지혜 3등.
오현수 4등.
최현희는 저 밑까지 떨어진 126등.
강백현이 최종 성적을 확인하는 최현희를 보며 씩 웃었다.
‘최현희! 세상은 가끔 공정하기도 해. 마음먹은 대로 다 되는 건 아니거든?’
“형! 왜 대답 안해요? 술 쏘는 거죠?”
강백현이 동생들의 말에 고개를 돌리고 대답했다.
“그래. 사야지. 뭐 마시러 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