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뚝배기 깨러 왔습니다-67화 (67/139)
  • 뚝배기 깨러 왔습니다 67화

    그런데 기다리는 동안 최현희가 어이없는 표정으로 물었다.

    “왜 감사원이죠?”

    “네?”

    “내가 먼저 물었어요. 아무도 지원 안하는 감사원을 왜 지원했냐고 물었잖아요. 대답해!”

    반말이 섞인 최현희의 질문에 강백현이 무표정한 얼굴로 대답했다.

    “저는 처음부터 감사원 생각했습니다. 목표가 감사원이었고요.”

    그런 백현의 말에 최현희가 정치적 논리를 들이대기 시작했다.

    “너 야당이지?”

    백현의 입에서는 결국 헛웃음이 터져나왔다.

    “비웃어?”

    “아니요. 정치 논리로만 접근하는 그런 태도가 결코 이로울 게 없어보여서요. 공무원은 자고로 중립을 지켜야 합니다. 전 누구의 편도 아니고, 누구의 편이 될 생각도 없어요.”

    “그런데 왜 일부러 감사원에 지원했지? 내 앞길을 막으려고 한 거 아니야? 아무도 지원하지 않는 감사원을 왜 지원했는데?”

    최현희의 얼토당토 않은 논리에 강백현은 씁쓸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현희 씨도 현재 신분이 공무원이라면 여당이니 야당이니 하는 소리 말고 공무원이 수행하는 업무의 특수성을 생각해봐요. 특정한 누군가에게 이익이 되는 정치가 아니라 국민을 위해 헌신하고 봉사하기 위해 이 자리에 온 거 아닌가요? 현희 씨는 아무리 봐도 본인 이익과 스펙을 관리하기 위해 온 것 같아요. 혼자 힘으로 온 것 같지도 않지만요.”

    강백현의 말에 최현희가 분노의 감정을 속으로 삭였다.

    ‘누가 할 소리를 하는 거야? 아무리 봐도 뒤에서 봐주는 세력이 있잖아. 그렇지 않고서 시험 1등에 다면평가 1등, 거기에 수석합격까지. 겨우 지방 국립대 따위가 어떻게 그런 성적이 나오냐고!’

    딴에는 합리적인 의심.

    모든 문제의 정답을 미리 알고 월등한 성적으로 상위권을 차지한 최현희, 그녀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결론이었다.

    하지만 뒷배경도 없고 빽도 없는 백현을 도와주는 유일한 존재는 유령 최용규.

    물론 그의 조력이 1등 하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적어도 최현희처럼 불법을 저지른 것은 아니었다.

    “면접 시간 됐습니다. 끝나고 따로 이야기하죠.”

    강백현은 그 말을 끝으로 화장실로 들어갔다. 맑은 정신을 유지하기 위해 세수를 하고 손을 닦았다.

    『면접 대상자, 강의실로 들어오세요.』

    백현이 마음을 안정시킨 후 강의실로 들어갔고, 방금 전까지 분노에 치를 떨던 최현희 또한 함께 들어왔다.

    책상 하나에 의자 셋.

    세 개의 의자에 앉은 면접관들이 면접자 둘을 맞이하고 있었다.

    “1순위로 저희 감사원을 지원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좋은 인재들이시네요.”

    면접관 중 한 명의 말에 백현이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했다. 그런데 백현의 표정이 굳어졌다.

    아는 얼굴이 있었던 것.

    ‘정호섭 과장?’

    자신의 과거를 아는 사람이었다.

    8급 공무원 시절, 좌천된 후 감사원에서 유성재가 찾아왔을 때 그를 수행하던 과장. 그 정호섭이 지금의 면접관인 것이다.

    정호섭 과장은 잠시 강백현을 보더니 고개를 돌려 최현희에게 말을 걸었다.

    “최현희 지원자부터 질문하겠습니다.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요?”

    정호섭은 질문을 던지면서도 강백현을 생각하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여기까지 올라올 줄은 몰랐네. 당돌해. 능력도 있고. 자기주장이 강한 게 조금 흠이긴 한데, 키워줄만한 인재긴 하지.’

    정호섭은 이미 강백현에 대해 유성재 원장에게 귀에 못이 박히게 들은 상태였다. 감사원의 미래를 위해서는 강백현처럼 바닥부터 구른 인재가 필요하다고 사석에서 몇 번을 말했는지 모른다.

    정호섭도 마찬가지였다.

    면접 결과를 떠나 정호섭에게 강백현은 처음부터 합격이었다.

    거기까지 알 리 없는 백현은 정호섭의 아주 작은 배려에 속으로 감사하고 있었다.

    ‘순서 늦춰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물론 이게 백현에게 정말로 도움 되는 행동은 아니었다. 최현희가 준비한 대답 여하에 따라 같은 질문에 두 번째로 대답하는 것이 오히려 독으로 작용할 수 있다.

    ‘어디, 어떤 대답을 하는지 들어볼까?’

    정호섭 과장은 최현희의 대답을 기다렸고, 그녀는 침을 잠깐 삼키며 잠시 뜸을 들이다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그녀가 뜸을 들인 이유는 자신이 면접관의 문제를 미리 알았다는 걸 눈치 채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사실 최현희의 불안요소는 크지 않았다.

    정호섭이 그랬듯 면접관 셋 중 하나가 이미 자신의 편이었으니까.

    그녀가 면접관 중 한 명을 바라보자, 해당 면접관이 고개를 끄덕이며 발표하라는 제스처를 취한다.

    일명 프락치.

    최장철 국회의원의 편인 심복 장대규가 이미 자신을 전폭적으로 지원하고 있는 것이다.

    “정치적 중립은 공무원에 있어서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헌법에서 요구하는 공무원의 의무는 공직선거법 제 9조, 공무원의 중립의무와 국가공무원법 제 65조 정치운동의 금지, 헌법 제 112조의 2항, 헌법 제 114조의 4항에 의거 헌법재판소 재판관이나 위원은 정당에 가입하거나 정치에 관여할 수 없다고 제한하고 있습니다. 다만…”

    헌법 조항을 열거하며 자신에게 시선을 집중시키고, 차근차근 논리를 펼쳐나가는 최현희.

    “이러한 제한사항에도 불구하고,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은 업무에 관련된 분야에 국한 되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죠?”

    “이러한 정치적 중립에 관한 제한들이 역설적이게도 개인의 정치적 기본권을 제한하기 때문입니다. 저희 아버지는 대통령을 모시는 여당의 4선 정치의원입니다. 당 대표도 이미 두 차례 맡으신 적이 있죠.”

    최현희의 말에 프락치 장대규가 고개를 끄덕이며 동감을 표했다.

    “계속 말해봐요.”

    “공무원의 정치활동을 금지한 국가공무원법은 너무 포괄적인 의미를 담고 있어요. 개개인의 정치적 기본권을 지나치게 침해하고 있죠. 이 조항들은 과거 정권들의 권위적인 사례에서 나온 것들이죠. 구시대적인 관점을 21세기인 현재까지 강요할 순 없습니다. 저는 공무원이라도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밝히는 건 문제 없다고 생각합니다.”

    “좋습니다. 잘 들었고 어느 정도는 저도 최현희 지원자의 생각에 동의합니다. 심사위원님들 다들 그렇게 생각하시지 않나요?”

    장대규가 다른 심사위원 2명의 호응을 끌어낸다.

    분명 부족하지 않은 대답이었다.

    장호섭이 다른 심사위원의 분위기를 파악하고 자신도 고개를 끄덕이려던 찰나였다.

    “지원자 강백현입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네?”

    “최현희 지원자와는 180도 다른 견해입니다. 헌법은 1948년 7월 17일 제정된 이후 1987년까지 총 9차례 개정되어 왔습니다. 우리나라는 자유민주주의 국가로서 헌법의 이념 아래 살아가고 있고요. 그 어떠한 경우에도 법 위에 사람 없습니다. 악법도 법이며 그 법을 고치기 전까지는 지켜야 대한민국의 질서가 유지됩니다.”

    강백현의 헌법수호 논리에 최현희가 이빨을 꽉 깨물었다.

    따가운 눈초리를 보내는 그녀를 무시한 강백현이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기 시작했다.

    “특히 현대국가에서 정부관료제의 말단 구성을 이루고 있는 공무원들은 그 누구보다도 헌법을 수호하고 준수해야만 하죠. 그런 헌법에 대한민국 공무원들은 정치적 중립을 지키라고 쓰여 있는 겁니다. 공무원이 법을 무시하고 개인의 기본권을 주장하면 헌법을 따르는 국민이 누가 있겠습니까? 물론 저희 공무원들은 현재 집권하고 있는 정부의 정치 철학과 정책 실현을 위해 움직여야 합니다. 그래야 나라가 발전하죠. 하지만 단순히 정권에 충성할 게 아니라 전문가적인 관점에서 독자적인 접근을 해야 하는 겁니다. 정치적 중립 의무는 바로 여기에서 시작됩니다. 집권정부와 상충하는 정책에 대한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집권정부를 전문가적 관점에서 독자적으로 분석해볼 필요가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정치적 중립을 항상 지켜야만 하는 거고요. 물론 최현희 지원자의 마음도 이해가 가지 않는 건 아닙니다. 본인께서 밝히셨잖아요. 아빠가 여당 대표도 했다고. 가족을 위하는 건 당연하죠. 그런데 가족과 국가를 택하라면 공무원으로서 누굴 택해야 하는 겁니까? 가족? 아니잖아요. 국가를 택하고 국민을 택해야 하는 거잖아요. 비난하는 건 아니지만 정치적 중립을 지키는 것은 곧 자신이 공무원임을 자각하는 것이고 그게 곧 국가를 위하는 길이 된다는 것을 최현희 지원자께서는 알아두셨으면 좋겠네요. 이상입니다.”

    강백현의 3분이나 되는 스피치는 모두를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그동안 배웠던 지식을 술술 풀어낼 수 있게 된 강백현. 그 스스로도 놀랐으니 앞에 있는 세 명의 면접관들이 놀라는 건 당연한 수순.

    최현희는 반박하고 싶었지만 반박할 논리가 떠오르지 않았다.

    이를 갈고 강백현을 노려보며 상황을 엎을 회심의 방책을 찾아보지만 도저히 그 틈이 보이지 않는다.

    “좋습니다. 면접 끝났습니다. 두 분 다 수고하셨습니다. 돌아가 보세요.”

    강의실을 나온 후, 강백현은 이제 대부분의 과정이 끝났다는 후련함에 기지개를 폈다.

    후련함 뒤에 밀려오는 것은 추잡함.

    그 시작을 알리는 최현희의 목소리가 강백현의 귀를 강타했다.

    “더럽네.”

    “네? 저보고 말씀하신 겁니까?”

    “그래. 문제 다 알고 있었던 거지? 그래서 내 대답에 대한 방책까지 다 짜왔다는 거, 내가 모를 줄 알아?”

    최현희의 말에 강백현이 대답했다.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진짜 생각이 한쪽으로 밖에 안 돌아가시네요. 물론 그게 세상 사는데 있어 참 편리할 수도 있겠어요? 자기 뜻대로 안 되면 다 더럽고 추잡한 걸로 생각하면 그만이니까. 안 그래요?”

    “야! 너! 야!”

    강백현이 씩 웃었다.

    “현희 씨가 물었죠? 나한테 왜 감사원 지원했냐고요. 현희 씨 말대로 나 더러워요. 더러운 거 많이 봤고, 더러운 것들 보면서 외면도 했어요. 그리고 그런 것들을 외면하고 외면하다 너무 커져버려 폭탄이 되어 저한테 돌아왔죠.”

    “이제 인정하는구나?”

    “그래요. 지금부터 더럽고 추잡한 것들은 다 잘라낼 거예요. 그래서 감사원 지원한거고요. 최현희 씨 지금부터 입 조심하는 게 좋을 겁니다. 당신의 커리어는 물론 당신 아버지까지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으니까. 알았어요?”

    강백현의 말에 최현희가 왼팔을 들어 백현의 뺨에 싸대기를 날렸다.

    순식간에 날아오는 손바닥.

    그러나 그녀의 손목이 백현의 팔목에 간단히 가로막힌다.

    “진상이다 진짜.”

    “뭐야?”

    “최현희! 알려줄게. 왜 네가 X 됐는지.”

    강백현이 씩 웃으며 남은 한 팔을 주머니에 넣는다.

    주머니에서 나오는 건 스마트폰. 그런데 녹음을 하고 있다.

    “아까부터 네가 시비걸 때부터 지금까지 35분간 하나도 빠짐없이 녹음했어. 네가 네 아버지 빽으로 면접 결과를 뒤집을 수도 있어서 내가 처음부터 준비한 거야. 물론 이건 법에 저촉되지 않아.”

    강백현의 말에 최현희가 반론했다.

    “유출하면 처벌 돼. 어디서 부족한 논리로 날 설득하고 있어? 공무원은 자신의 직무활동에 대한 비밀을 준수할 필요가 있지.”

    “그래. 맞아. 하지만 그건 유출했을 때의 처벌이지. 유출하지 않은 상태면 처벌 받지 않지. 그리고 이건 내가 직접 현장에 있었기에 불법증거 수집도 아니야. 즉 내가 유출하지 않는 한 누구도 처벌받지 않지만, 유출하게 되면 너도 협박성 발언으로 처벌받을 거고, 너희 아버지의 정치적 생명에도 돌이킬 수 없는 타격을 입게 되겠지. 우리 이만 관계 끝내지? 더 이상 악화시키는 건 서로 이득이 없을 것 같은데? 안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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