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뚝배기 깨러 왔습니다-66화 (66/139)
  • 뚝배기 깨러 왔습니다 66화

    저승사자 이성복의 말에 최용규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다 방법이 있죠. 제가 성주신이니까.]

    [뭐라? 똑바로 말하지 못할까?]

    [고통 앞에선 장사 없죠. 제가 어떻게 돌아왔냐면요.]

    * * *

    30분 전, 최용규는 강백현에게 부탁을 했다.

    [백현아, 유언 하나 할게.]

    “갑자기 유언은 뭔데요? 귀신이 왜 죽어?”

    [내가 비행기 뜨는 걸 막아야 되거든? 고기웅이 프랑스로 김성현 데리러 가려 한단 말이야.]

    “갑자기 고기웅 본부장 이야기는 왜 나오는데요? 천천히 말해 봐요.”

    최용규가 현재 김성현이 처한 사정을 설명하자, 강백현이 한숨을 내쉬었다.

    “알겠어요. 자초지종에 따라 결국 고기웅이 성현 씨를 압송하려는 걸 멈춰야 한다는 거네요.”

    [압송까진 아니고. 무슨 말을 그렇게 해. 성현이가 무슨 범죄자냐?]

    “아무튼 제가 비행기를 멈출 수 있는 건 아니네요. 지금 당장 인천공항으로 간다고 해도 시간 내에 맞출 수 있는 것도 아니고요.”

    [네가 할 건 없어. 내가 해야 되는 거지.]

    “선배가 뭘 할 수 있는데요?”

    [빙의.]

    “네?”

    [빙의하면 막을 수 있어. 단, 빙의를 하려면 원귀가 되어야 한다, 그게 문제지.]

    강백현이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건 문제없네요. 원귀가 되어도 돌아오게 할 수 있어요.”

    [정말?]

    “제가 선배 성주단지에 모시면서 그랬잖아요. 이제 원귀가 되는 걸 막을 수 있다고. 기억 안나요?”

    [자세히 말해봐.]

    강백현이 씨익 웃었다.

    “저희 할아버지가 그쪽 관련 도사셨거든요. 그것보다 빙의를 하는 방법은 아는 거죠?”

    [그래. 배웠어. 배웠으니까! 원귀를 되돌릴 수 있다 이거지?]

    “네. 제가 손톱만 만지면 되요. 원귀도 자신의 신체, 아니 영혼에 가해지는 고통 앞에서는 평범한 귀신일 뿐이죠. 한 번 원귀 되어보세요. 제가 바로 본래 상태로 되돌려줄 테니까.”

    * * *

    모든 사연을 들은 이성복이 기가 막힌 듯 실소를 터트렸다.

    [그래서 그 인간 몸에 빙의해서 바지를 벗었다?]

    [네. 인천공항에서 바지를 벗고 활보 좀 해줬죠. 물론 제가 미처 몰랐던 게 있었어요. 그 놈이 제가 자기 몸에 들어온 걸 알아차렸더라구요.]

    [그렇지. 빙의가 무서운 게 그거야. 우리의 존재를 산 자가 느낄 수 있게 되거든. 그건 그렇고 자네 참 당돌해. 고작 저 여자 때문에 목숨을 걸었다는 거야?]

    [성현이는 제 영원한 짝이니까요. 그리고 결과적으로 아무 일도 없지 않았습니까?]

    최용규는 저승사자 앞에서 자신의 영웅담을 자랑스럽게 늘어놓았다.

    그런 둘의 대화를 알아차릴 리 없는 김성현은 미소를 지으며 백현에게 전화를 걸었다.

    “백현씨, 자요?”

    - 아뇨. 헤드라인 뉴스 보고 있었죠.

    김성현은 백현의 태평스러운 말투에 피식 하고 웃음이 터져 나왔다.

    “거기 새벽 2시 아니에요?”

    - 네. 맞습니다. 프랑스와 시차는 8시간이죠.

    “흐흐, 백현 씨 나 마음에 있죠?”

    - 글쎄요. 보이지 않아서 모르겠네요. 프랑스 비행기 티켓 보내주시면 확인해볼 수도?

    백현의 달달한 대꾸에 김성현이 결국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마음에 없네. 마음에 있으면 전 재산을 털어서라도 나 보러 와야징!”

    - 그렇게 말하는 성현 씨야 말로 나 보고 싶은 거 아니에요?

    “네?!”

    - 아니 뭐, 아까는 무슨 유령이라도 본 것 마냥 목소리가 풀이 죽어있어서 얼마나 걱정했다고요. 아~ 물론 동료로서 걱정한 겁니다.

    “아~ 진짜! 아무튼 문자 고마워요. 조금 우울했었는데 기분이 좀 풀렸네요.”

    - 크크크, 힘내요. 꿈 반드시 이루고 돌아와요. 중간에 돌아오기 없습니다.

    강백현의 응원에 김성현이 웃으며 대답했다.

    “백현 씨도 열심히 해서 용규 선배처럼 1등 해요. 알았죠?”

    김성현의 말에 강백현이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슬쩍 조건을 걸었다.

    - 1등 하면 소원 들어줍니까?

    “그럼 1등 못하면 제 소원 들어줄 거예요?”

    - 콜! 금전적인 소원 말고 뭐든 들어주기! 여자가 한 입으로 두 말 하는 거 없어요~! 알죠?

    “남자도 한 입으로 두 말하는 거 없어요! 콜! 콜! 콜!”

    김성현은 오늘 하루 천당과 지옥을 오갔다.

    동생 김동성의 계략에 빠져 모든 것을 잃어버릴 뻔했고, 강백현의 문자 한 통으로 모든 근심에서 해방이 되었다.

    김성현 입장에서 강백현이 특별히 한 건 없었다. 운이 좋았을 뿐.

    고기웅은 왜 공항에서 바지를 벗었을까?

    아직도 모든 게 의문이다. 하지만 의문을 가져봐야 자신이 해답을 알 수 있을 것 같진 않다.

    그러므로 현재 상황에 만족하고, 당장의 기쁨을 즐기는 게 최선의 선택이었다.

    “1등 꼭 해요. 내 소원, 들어주기 쉽지 않을 거예요.”

    - 내 소원도 성현 씨가 들어주기는 쉽지 않을 겁니다. 그럼 파이팅하세요!

    “네. 백현 씨, 늦은 시간인데 들어가요.”

    김성현은 전화를 끊고는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그걸 본 최용규가 실망스런 표정을 짓는다.

    [짝사랑이구만. 상대방은 알아주지 못하는 짝사랑.]

    이성복의 말에 최용규가 낙담하며 중얼거렸다.

    [아~ 성현아, 너 왜 그래! 나는 이제 기억도 못하는 거야?]

    [클클, 정말 기다리면 보답받을 거라고 생각하나?]

    김성현을 애틋하게 바라보는 최용규를 이성복이 나무랬다.

    허나 최용규가 확신에 차서 대답했다.

    [지금은 비록 바빠서 제 생각이 안 날지 몰라도, 나중에 저처럼 영혼만 남으면 절 이해해 줄 거예요. 제가 평생 곁에서 지켜줬다는 것을 알아주지 않겠어요?]

    [음~ 그것보다 자네 몸에 이상한 것 못 느끼나?]

    [잘 모르겠는데요.]

    [투명해졌잖아. 잘 봐.]

    이성복의 말에 최용규가 자신의 몸을 쳐다보았다. 확실히 평소보다 영력이

    줄어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평소에는 진하기가 80% 정도였다면 지금은 40% 정도. 그만큼 자신의 몸이 옅어 보이는 것이다.

    [어? 제 몸이 왜 이런 겁니까?]

    [왜 그러긴! 산 자의 몸에 들어가는 게 부담이 없는 줄 알았나? 생기가 가득 찬 인간의 몸에 빙의하는 건 본래 영체에겐 상당한 부담이지.]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클클, 질문 아주 잘했어. 시간 되지? 따라오게! 자네에게 보여줄 게 많아.]

    [어디 가시게요? 아~ 성현이 옆에 있어야 되는데.]

    [예끼 이놈아! 너 영력 안 높일 거야? 그냥 따라오라면 따라와! 그냥 콱!]

    이성복이 최용규에게 겁을 준 후 그를 알 수 없는 장소로 끌고 갔다.

    그리고 최용규가 떠난 그 자리.

    김성현이 침대에서 무릎을 굽히고 앉아 스마트폰의 연락처 목록을 열람하고 있었다.

    수많은 연락처 중 [껄렁한 강비서]라고 적힌 연락처를 수정하기 시작한다.

    수정된 연락처 이름은 [든든한 강비서].

    김성현은 여유 시간 동안 든든한 강비서와의 채팅 내역을 다시 훑어보며 그와의 추억을 꼼꼼하게 되새기고 있었다.

    * * *

    시간은 흘러 인재개발원 교육과정도 막바지에 이르렀다.

    그리고 오늘은 굉장히 중요한 날이다.

    “오늘은 본인이 원하는 처/부/원을 정하는 날입니다. 교육생 여러분들께서는 공무원교육체계에 접속하신 후 각자 1순위, 2순위, 3순위 순으로 기입하고 제출 버튼을 눌러주세요. 주의사항 다시 한 번 보시고요. 1, 2, 3순위를 같은 처/부/원으로 하면 안 됩니다. 인사혁신처 가고 싶다고 1, 2, 3순위 다 인사혁신처로 기입하시는 분 있는데 그렇게는 제출 안 됩니다. 다 다른 곳으로 기입하셔야 합니다. 아시겠죠?”

    차례대로 정보검색실에 앉아 자신의 진로를 결정한다.

    강백현은 고민 없이 자신이 원하는 1, 2, 3순위를 적어냈다.

    1순위 감사원, 2순위 인사혁신처, 3순위 국토교통부.

    솔직히 2, 3순위는 상관없었다.

    1순위만 보았으니까.

    ‘선배는 도대체 어딜 간 거야? 성현 씨 옆에 있는 건가? 최근 보이질 않네.’

    선배가 사라진지 벌써 한 달이 지났다.

    손톱을 만져봐도 나타나질 않고 성주단지를 흔들어도 반응이 없다.

    손톱을 만지면 고통스러워서 무조건 곁에 와야 한다. 분명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으로는 그렇게 되는 게 정상인데, 그래도 감감무소식이니 답답할 따름이다.

    하지만 선배가 나타나지 않는다고 해서 딱히 불편한 것도 아니고, 지금 굳이 선배가 필요한 것도 아니었다.

    경험을 기반으로 한 자신감에 3년간 축적된 지식. 개인시간을 전부 투자해서 얻은 학문적 지식이 합쳐져서 강백현의 성적은 탑 중 탑에 도달해 있었다.

    그러므로 감사원에서 떨어질 일은 없는 것이다.

    룸메이트 조성환이 신이 난 듯 환호성을 내질렀다.

    “오예!”

    “성환아, 왜?”

    “저 환경부 1순위 붙었어요. 내일 면접관들 온대요.”

    “오! 축하한다.”

    “형님은 진짜 감사원 쓰셨어요?”

    성환의 질문에 강백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깝다 진짜. 1등이 감사원 가는 경우가 어디 있어요. 그 성적 나 줘요!”

    “야! 종합 4등도 잘하는 거야.”

    “그건 그렇네요. 그것보다 전 군대가 걱정이에요. 군대 언제 다녀와요. 임관 후 3년이래요. 거기에 교육받는 기간은 3년에 포함도 안 되고요.”

    조성환의 말에 강백현이 실소를 터트렸다.

    “군대라~ 난 민방위인데!”

    “아! 형님 진짜 부러워요.”

    “난 네 나이가 부럽다. 면접 준비 잘 해라!”

    “네. 형님도 곧 합격 문자 오겠죠?”

    그때 백현의 스마트폰이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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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사원 1차 합격 안내]

    강백현 주무관의 감사원 1차 합격을 축하드립니다.

    내일 오후 2시에 과천 인재개발원 늘새롬관 제 2강의실에서 면접이 진행될 예정입니다.

    면접 복장은 단정한 정장이며, 준비물은 따로 없습니다.

    - 감사원 인사행정담당 조연숙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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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사원 1차 합격 문자.

    서류전형에 통과한 것이다.

    ‘합격이네. 당연한 건가?’

    감격의 순간이었다.

    “형님! 합격하셨죠? 합격한 거 맞죠?”

    “그래. 1차 합격했어. 면접 전형만 합격하면 감사원에서 근무할 수 있나봐.”

    “축하드려야 되는 거 맞죠? 후회 없으신 거죠?”

    “그래. 난 처음부터 감사원에 가고 싶었으니까.”

    “축하드려요! 형님은 꼭 잘 되실 거예요.”

    “그래 고마워. 성환이 너도 잘 될 거야.”

    “네. 그래야죠.”

    서로를 축하해주는 격려의 자리가 이어졌다.

    이제 보름만 더 있으면 인재개발원을 수료하게 된다.

    따분하기 짝이 없는 공부와 실습, 그리고 평가과정. 이 모든 게 끝나고 다시 실무에 뛰어들게 되는 것이다.

    사실 강백현은 행복하진 않았다.

    공직사회의 부당함과 나태함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으니까.

    물론 지방직 공무원과 중앙직 공무원은 다를지 모른다.

    아직 경험해보지 않은 세계.

    그러나 한 가지는 확실하게 말해줄 수 있다.

    지방직 공무원의 50% 이상은 썩어빠졌다.

    특히 부주시는 뇌물로 얼룩져 정화 불가능한 오물통들의 집합이었다.

    수십 년 동안 계속된 비리가 관행이 되고, 그걸 당연하게 생각하는 선배 공무원들의 썩은 정신. 그걸 정화하려면 정의의 철퇴가 필요했다.

    ‘그래. 이제 시작이야. 내 편을 모아서 공직사회를 바꿔버리겠어.’

    다음 날, 강백현은 어제의 굳은 의지를 떠올리며 면접장으로 이동했다.

    그런데 면접장인 2강의실 앞에 아는 얼굴이 있다.

    “현희 씨도 감사원이에요?”

    “악연이네요.”

    “악연이라뇨?”

    “네 덕분에 동기들 사이 내 이미지는 나락까지 떨어졌어.”

    얼마 전 있었던 2차 다면평가. 그 결과로 인해 최현희의 순위는 17등에서 55등까지 밀려났다.

    그만큼 다면평가 점수는 비중이 높았다.

    “왜 말을 놓으세요? 그리고 저 때문에 나락이라니, 너무 비약하는 거 아닌가요? 전 현희 씨 점수 공평하게 줬어요.”

    “공평? 너 나 F 줬잖아.”

    사실이었다. 강백현은 최현희의 평가에 최하점인 F를 주었다. 강백현 뿐만 아니라 그와 몰려다니는 동기들 역시 최현희에게 최하점인 F를 줬다.

    ‘어떻게 안 거지?’

    강백현은 최현희의 말에 말문이 막혔다. 그러자 최현희가 방긋 웃었다.

    “걱정하지 마. 나도 너 F 줬으니까.”

    강백현은 겸허히 그녀의 말을 수용했다.

    하지만 그녀가 자신에게 F를 줬다고 해서 바뀌는 건 없다.

    다면평가는 동기들의 점수 중 상위 10%와 하위 10%의 점수를 빼고 합산한다.

    즉 최고점과 최하점을 뺀 평균분포를 종합해 점수를 매기기 때문에 그녀가 준 F는 아예 없는 점수가 되는 것이다.

    반면, 백현 일행에게 F를 몰아 받은 그녀는? 받은 F 중 1~2개는 사라진다 해도 나머지 F가 그녀의 평균을 깎아먹었을 것이 분명했다.

    그만큼 공정한 다면평가.

    한 사람에게 잘 보이는 것은 소용없다. 모두에게 잘 보여야만 점수를 높게 받을 수 있고 이런 점수는 성실, 근면, 열정, 게으름, 개인주의 등을 다양하게 평가할 수 있는 지표가 된다.

    즉 최현희는 다면평가 점수 때문에 다른 평가에서 전부 1등을 하더라도 종합 1위는 물론 30위 안에도 들 수 없는 상태였다.

    그때, 면접관이 웃으며 강의실 앞에 섰다.

    “여기 두 분이 우리 감사원에 지원한 교육생들인가?”

    “네. 안녕하십니까?”

    “안녕하십니까?”

    백현과 최현희가 나란히 일어나서 인사를 건넸다.

    “그래요. 그런데 미안해서 어쩌나? 둘 중 한 명 밖에 못 뽑아. 10분 남았으니까 면접 준비 잘 하고 들어와요. 곧 시작할 테니까.”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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