뚝배기 깨러 왔습니다 65화
최용규는 김동성의 등장에 살짝 긴장했다.
동생과 그리 친하진 않은 성현이다. 그런 누나를 보러 프랑스까지 왔다는 것은 분명 무슨 목적이 있다는 것.
그런데 녀석은 자신이 여기 온 이유를 밝히지 않는다.
“누나, 프랑스 커피라 그런지 진짜 맛있네.”
최용규는 김동성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답답하네. 뭔데?]
그러나 김성현은 무언가 알고 있는 눈치.
[설마, 아니지? 고기웅 때문에 온 건 아니지?]
최용규가 마음에 걸리는 건 그것 하나뿐이었다. 하지만 머리에 생각이라는 게 있으면 누나에게 그 말을 하려고 프랑스까지 날아올 리가 없었다.
뭔가 더 중요한 일이 있을 거라는 게 최용규의 판단이었다.
“본론부터 말해. 너 여기 왜 왔어?”
김성현도 자신처럼 동생의 생각이 궁금했나보다.
그런데 김동성은 생각보다 단순했다.
“알잖아. 누나가 기웅이 형이랑 결혼해야 모두가 편한 거.”
최용규는 김동성의 황당한 발언에 흥분하며 욕을 해댔다.
[이 미친놈이! 동생 맞아? 아니 어떻게 자기 입으로 그딴 헛소리를 지껄이지? 성현이가 네 물건이냐? 물건이냐고!]
하지만 자신의 욕을 듣고도 아무렇지 않은 듯한 김동성.
생각해보니 녀석은 자신의 모습을 볼 수도, 목소리를 들을 수도 없다.
“그럴 일 없을 거야. 고기웅하고 나랑 잘 될 거라 생각하면 크나큰 착각이고, 오판이야.”
“……”
김성현의 똑부러지는 말에 김동성이 할 말을 잃었다. 최용규는 당당하게 소신을 밝히는 성현을 응원했다.
[그래. 성현아! 네가 왜 쟤 말을 들어야 하냐? 그리고 고기웅하고 결혼하라고? 저게 제 정신이야?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이런 자리 피해버려!]
최용규의 말을 듣기라도 한 듯 김성현이 자리에서 일어나려 한다. 그러자 김동성이 떠나려는 김성현의 팔을 잡아챘다.
“누나 앉아.”
“싫어.”
“앉으라면 앉아. 내 말 좀 들어.”
김성현이 동생의 팔을 뿌리치려 했지만, 그가 쉽사리 놓아주질 않는다.
“놓고 이야기 해. 프랑스까지 와서 뭐하는 짓이야?”
“더한 짓도 할 수 있어. 그러니까 앉아.”
협박조로 나오는 김동성의 어투에 최용규가 난리가 났다.
[저게 자기 누나한테 무슨 짓이야. 미쳤냐? 야! 김동성! 너 나한테 죽어볼래?]
닿지도 않는 주먹으로 녀석의 얼굴을 치고, 발길질을 하고, 몸을 통과하며 난리를 쳤다.
한편, 김성현은 결국 올게 왔다는 듯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그래. 오늘 다 얘기해보자. 뭐가 그렇게 불만인데?”
“누나는 지금 이럴 때야? 회사가 무너지고 있는데, 혼자 프랑스 와서 의미 없는 짓을 왜 하고 있냐고! 응?”
“의미가 없다니 너 누나한테 말이 심한 거 아니야?”
김성현의 화난 얼굴에 김동성의 다음 말이 찬물을 끼얹었다.
“누나 걔지?”
“뭐?”
“누나 그 남자 좋아하는 거지? 그 비서, 그 비서 좋아하는 거잖아.”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김성현이 당황한 얼굴로 동생에게 되물었다. 그러자 김동성은 씩 웃으며 스마트폰을 꺼내들었다.
그의 스마트폰에는 김성현이 그동안 강백현과 주고받았던 대화기록이 저장되어 있었다.
거기에 아직 전송하지 않았던 메시지, 지웠던 메시지까지 기록되어 있다.
[디지털 포렌식 복구 방식인가?]
최용규는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김동성이 씩 웃으며 진실을 말했다.
“누나 이게 뭔지 알아? 누나가 쓰는 핸드폰 번호랑 똑같은 복제폰이야. 누나가 받는 메시지, 나도 똑같이 받을 수 있어.”
“김동성!”
“왜? 이 정도는 해야지. 우리 메리야트 그룹의 미래가 누나한테 달렸는데! 기웅이 형이 나한테 이제 적이래. 철저하게 짓밟아버릴 거래. 메리야트 그룹을 대한민국에서 지워준대. 나보고 어쩌라고? 아빠는? 엄마는?”
김동성이 호소하듯 말했다. 그러자 김성현이 이빨을 꽉 깨물며 말했다.
“김동성! 너 나한테 협박하는 거야?”
“그래. 누나만 희생하면 돼. 모른 척 그냥 기웅이 형이랑 하룻밤만 자면 되잖아. 기웅이 형은 다른 거 원하지도 않아. 그냥 누나가 곁에만 있어주면 되는 건데, 왜 그걸 못해?”
김성현은 동생의 입에서 나온 말에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최용규도 마찬가지였다. 성현이가 그냥 자리를 박차고 나갔으면 좋겠는데, 곧이곧대로 동생의 말을 다 듣고 있으니 마음이 아프다.
다행히 김성현도 더 이상은 못 참았나보다. 자리에서 일어서버린다.
그런 그녀를 보며 김동성이 낄낄 대며 웃었다.
“상황 파악 안 되는 년! 진짜 끝까지 제멋대로구나?”
동생의 폭언에 놀란 김성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런데 김동성이 테이블 위에 수면제를 꺼내놓으며 말했다.
“이거 수면제야. 한꺼번에 다 먹으면 나 죽겠지? 그렇게 되면 누나는 더 이상 프랑스에 머무를 수 없게 될 거야.”
“동성아, 너 왜 이렇게 망가진 거야?”
“망가진 게 아니라 가족을 살리려고 그러는 거야. 우리 집안 무너지지 않으려면 이 방법 밖에 없어서 그러는 거라고. 왜 누나는 끝까지 자기 생각만 하는 건데?”
남동생과 누나의 설전.
누나를 다른 집안에 보내버리려는 남동생과 자신의 꿈을 실현하려는 누나 사이에 벌어지는 싸움.
그때 김동성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이내 환한 얼굴로 말했다.
“기웅이 형! 잘 지냈어요?”
- 전화하지 말라고 했잖아. 너 이제 나랑 친한 척 하지 말라고 했지?
“형~ 그렇게 말하지 말고요. 형 나 좋아했잖아요. 왜 그래요?”
- 몰라서 묻는 거야? 정말 몰라서 묻는 거야?
고기웅의 목소리에 치가 떨리는 김성현. 하지만 수면제를 앞에 놓고 죽겠다는 동생을 지금 당장 외면할 수가 없다.
“형, 누나가 할 말 있대요. 누나 지금 바로 옆에 있어요. 바꿔줄게요.”
- 뭐? 성현이가 옆에 있다고? 아니, 성현 씨가 옆에 있다고?
“네. 형이 좋아하는 우리 누나요. 지금 바로 바꿔줄게요.”
김동성이 심각한 얼굴로 소리차단 버튼을 누르고 김성현에게 말했다.
“받아.”
“김동성! 너 진짜.”
“받으라고. 받아서 말해. 다시 생각해보겠다고. 진지하게 만나보고 싶다고 기웅이 형한테 지금 당장 말해!”
김성현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하지만 목숨까지 걸며 결정을 강요하는 동생의 협박에 지금은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여보세요?”
- 아, 김성현 씨? 성현 씨 오랜만이네요.
수화기 건너편에서 들려오는 그 놈 목소리.
“기웅 씨는 잘 지냈어요?”
- 네. 아주 바빴습니다. 700억 써서 메리야트 패션 인수했더니 핵심 인재들은 다 샬롯으로 도망쳐서 뒷수습하느라 골머리 썩었죠. 그러는 성현 씨는 프랑스 생활 어때요?
“뭐, 나쁘지 않게 지내고는 있는 것 같아요.”
- 네. 그렇겠죠. 하지만 이걸 어쩌죠? 전 돌려받아야겠는데….
“뭘요?”
- 우리 회사가 쓴 700억, 그리고 김성현 당신. 어떻게 할래요? 지금 당장 샬롯 그만두고 한국으로 올래요? 아니면 내가 김성현 씨 모시러 프랑스로 날아갈까요? 물론 샬롯과의 관계는 오늘부로 끝내고 다시 성한 그룹으로 출근한다는 조건입니다.
고기웅의 반 협박성 발언과 동생 김동성의 수면제를 이용한 강요.
김성현은 지친 듯 쓴웃음을 짓고 말았다.
[성현아! 성현아! 안 돼. 지면 안 돼.]
하지만 마음 약한 김성현은 결국 가혹한 현실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정리할 시간이 필요해요. 3일만 시간을 주세요.”
- 이틀입니다. 제가 오늘 바로 프랑스로 날아가죠. 김성현 씨는 내일 저랑 같이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는 겁니다. 딜은 끝난 겁니다. 아시겠습니까?
“네. 미안해요. 정말 미안해요. 기웅 씨.”
김성현이 원치 않는 대답을 한 후 눈물을 흘렸다.
그런 눈물 앞에 방금 전까지 죽겠다고 협박하던 김동성이 방긋 웃었다.
“결국 이렇게 될 거였잖아. 뭘 잘했다고 울어?”
“그만해.”
“누나가 원인제공 했잖아. 뭘 그만해? 처음부터 이렇게 했으면 좋았잖아. 안 그래? 나 간다! 놀러가야징~! 나 찾지 마. 찾아도 없을 거야. 그리고 기웅이 형 오면 잘하고~ 누나 남편인데, 알아서 잘할 거지?”
김동성이 히히덕거리며 카페를 떠났다.
김성현은 홀로 남아 눈물을 펑펑 쏟았다.
꿈과 희망을 가지고 여기까지 왔는데 한순간에 무너진 것.
그걸 옆에서 지켜 본 최용규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선생님, 죄송합니다. 약속 오래 못 지킬 것 같아요.]
이대로라면 김성현이 극단적인 행동을 할지도 모른다.
슬픔에 젖어 불행한 인생을 살고, 종국에는 잘못된 결정을 내려 지옥에 떨어질지도 모른다.
김성현이 눈물을 닦고 일어나 숙소로 향했다. 그리고 침대에 누워 하염없이 베개를 적시고 있었다.
최용규는 더 이상 망설이지 않았다.
프랑스에 머물 이유가 사라진 지금, 그가 있어야 할 곳은 대한민국이었다.
그날 오후 5시, 침대에서 울고 있는 김성현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그녀가 아주 잘 아는 사람. 그녀의 담당비서 역할을 하던 남자 강백현이었다.
“여보세요? 백현 씨?”
- 네. 성현 씨! 목소리가 왜 그래요? 힘 내셔야죠! 많이 힘들죠?
자신의 운명을 아는지 모르는지, 밝은 목소리로 인사하는 강백현.
김성현은 그런 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작은 소리로 대답했다.
“제가 통화할 기운이 없어서 그런데, 나중에 전화해도 될까요?”
- 에이~ 그것보다 뉴스부터 보세요. 성현 씨가 가장 반길 뉴스가 지금 막 보도되고 있거든요. 주소, 대화방에 올려드릴게요. 확인해주세요.
강백현이 그 말을 끝으로 통화를 끊었다.
그리고 둘만의 대화방에 뉴스 주소가 공유되었다.
[모기업 재벌 3세, 인천공항에서 나체로 활보.]
헤드라인 제목이 무척 자극적이다.
그런데 그 동영상의 실루엣이 익숙한 사람이었다.
그때 강백현의 톡이 다시 전달되었다.
[껄렁한 강비서] 고기웅 본부장, 인천공항에서 나체로 돌아다녔대요. 공항에서 바지 벗고 날뛰는 거 YTX24시 뉴스 헤드라인이네요.
강백현이 보내준 인터넷 뉴스 동영상.
영상 속에서는 모자이크 처리되어 있지만, 고기웅 본부장이 하의를 벗은 채 공항에서 뛰어다니고 있었다 한다.
[껄렁한 강비서] 고기웅 본부장, 완전 미친놈이죠? 곧 감방 갈 것 같아요^^ 성현 씨 이제 고기웅과의 악연은 끝이겠네요. 힘내요! 시간 되면 가끔 연락하시고~! 내 마음 알죠? ~♥
강백현의 메시지에 방금 전까지 펑펑 울던 김성현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그리고 어느새 다시 프랑스에 돌아와 활짝 웃는 최용규.
[성현아, 내가 다 해결했어. 잘했지?]
그런 최용규의 옆에 저승사자 이성복이 나타났다.
단단히 화가 난 저승사자의 얼굴. 그런데 최용규의 영혼의 색을 확인한 그가 갑자기 실소를 터트렸다.
[뭐지? 원귀 상태가 아니잖아.]
이성복의 등장에 최용규가 웃었다.
[선생님, 오셨습니까?]
넉살 좋은 최용규를 본 이성복.
그가 막대기를 꺼내더니 최용규에게 매질을 하며 소리쳤다.
[이놈아! 방울 소리 다 들렸다! 어? 너 빙의 했지? 너 원귀 됐다가 다시 어떻게 돌아왔어? 어?! 예끼 이놈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