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뚝배기 깨러 왔습니다-64화 (64/139)
  • 뚝배기 깨러 왔습니다 64화

    최용규는 최장철 국회의원과 최현희 사이에서 오간 대화를 알리고자 백현에게 달려갔다.

    [백현아! 알아낸 게 있는데!]

    “바빠요. 꼭 지금 이야기해야 돼요?”

    강백현은 식당에서 오답노트를 들여다보며 공부 삼매경이었다.

    그런 백현에게 최용규가 신이 난 얼굴로 말했다.

    [네가 알아봐달라고 했던 최현희 있잖아.]

    “아~ 선배 귀찮으면 알아보지 않아도 돼요. 별 거 없다고 하셨잖아요. 그것 가지고 괴롭히진 않을게요.”

    [야! 넌 선배가 말하는데, 무슨 말을 그렇게 하냐?]

    최용규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백현의 동기들이 하나 둘 백현의 옆자리에 앉기 시작했다.

    “형님! 또 공부하세요?”

    “응. 성환이 너도 잠 좀 줄이고 공부 좀 하자. 그래서 형 이기겠어?”

    룸메이트 성환에게 농담조로 말하는 백현. 최근 부쩍 친해진 두 사람이었다.

    “형님 이길 생각 없어요. 그렇게 공부하는 데 제가 어떻게 이겨요? 두 손 두 발 다 들었네요. 저 밟고 얼른 올라가세요.”

    “내가 1등인데 널 더 이상 어떻게 밟겠어?”

    “와! 이제 진짜 본색 드러내신다. 큭큭. 형님 솔직해지시니 사람 같고 좋네요.”

    성환의 익살스러운 말에 김지혜가 중얼거렸다.

    “진짜 누가 1등 아니랄까봐~ 잘난 척! 아직 끝난 게 아니거든요?”

    어느새 따라온 오현수, 그가 식판을 놓고 앉으며 김지혜의 말을 받았다.

    “지혜 말이 맞죠. 결과는 마지막에 까봐야 아는 거니까. 다들 밥 많이 먹고 공부 열심히 합시다!”

    백현은 친해진 동생들과 무리지어 다녔다.

    인재개발원 중간순위 1위부터 4위까지다.

    더구나 강백현은 압도적인 1위였다.

    “백현이~ 맛있게 먹어.”

    지나가는 교수가 백현에게 말을 건다.

    강백현은 깜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나서 90도로 인사를 건넸다.

    “감사합니다. 교수님, 교수님도 식사 맛있게 드세요.”

    3년간의 공무원 경험.

    거기에 수석 합격.

    그리고 인서울 출신 합격생들을 훨씬 웃도는 성적과 인품까지.

    교수들 사이에서 강백현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백현 씨, 의외야. 잘 하고 있다며! 수료할 때 또 봤으면 좋겠네.”

    인재개발원장 유성재가 식사를 마치고 백현에게 인사를 건넨다.

    “네. 원장님, 기대에 부응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하하하, 그래요. 열심히 해요. 다른 교육생들도 파이팅 하시고!”

    『네. 열심히 하겠습니다.』

    한편, 최용규는 백현의 무시에 한숨을 쉬며 인재개발원 식당 밖으로 빠져나왔다.

    그런데 하늘에서 누운 자세로 책을 보고 있는 저승사자가 있다.

    [뭐하나?]

    [네?]

    [네가 지키는 아이가 저기에 있는 건가?]

    저승사자 이성복의 질문에 최용규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런데 선생님은 여기서 뭐하십니까?]

    [뭘 뭐해! 원귀 놈 찾고 있지. 그 중에서 아주 고얀 놈.]

    [원귀가 주변에 있나요?]

    [기운을 아직 못 느끼나? 이 고얀 냄새가 느껴지지 않는 게야?]

    최용규는 고개를 돌리며 냄새를 맡아보려고 노력했지만, 전혀 느껴지지가 않았다.

    [잘 모르겠는데요.]

    [옛끼! 네 놈은 할 줄 아는 게 뭐야? 따라와! 냄새 맡는 법 가르쳐줄테니까.]

    이성복을 쫓아간 곳은 나무가 우거진 숲 안쪽이었다.

    스산한 기운이 사무칠 정도로 느껴지자 최용규는 몸을 덜덜 떨었다.

    [아, 너무 춥네요.]

    [크크, 이것 가지고 춥다고 엄살 떨면 어떻게 하자는 거야? 그러다 원귀 놈들한테 잡아먹힌다. 응?]

    [잡아먹혀요?]

    [그럼! 우리는 안 죽는 줄 알았냐? 영생이라도 살 줄 알았어?]

    최용규는 저승사자 이성복의 말에 처음으로 두려움을 느꼈다.

    [‘죽은 상태가 끝이 아니었나?’]

    숲 안쪽에는 한 눈에 봐도 수상해 보이는 빈집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성복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호리병을 꺼냈다.

    호리병 뚜껑이 열리자, 정면의 모든 것을 빨아들이기 시작한다.

    원귀가 하나, 둘, 셋, 넷.

    넷을 빨아들인 호리병 뚜껑을 닫은 이성복. 그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호리병을 태워버렸다.

    [미친 것들, 네 놈이나 모여서 도대체 뭘 하려던 거야?]

    [글쎄요. 저도 모르죠.]

    [예끼 이놈아! 네 놈 대답 얻으려고 물어본 거 아니야.]

    호리병이 불타 사라지자 최용규는 안심해서 중얼거렸다.

    [선생님은 꼭 도사 같네요. 도술도 부리시고.]

    [이건 도술이 아니라 도구야. 이 세상에 도술이 어디 있냐? 이놈! 세상 헛살았네. 헛살았어.]

    [아유~ 모르는 게 당연하죠. 죽은 지 얼마 됐다고. 이제 끝난 거죠?]

    모든 귀신이 사라지자 최용규는 드디어 한숨 돌릴 수 있었다. 사실 <영생이라도 살 줄 알았어?> 라는 말에 살짝 긴장한 상태였다.

    성현이를 이대로 두고 떠날 수는 없기에.

    자신의 목숨은 소중하기에.

    여기서 죽을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성복의 표정이 굳어진다.

    [선생님? 왜 그러세요?]

    [쉿! 넌 이게 안 느껴져?]

    이성복이 조심스럽게 빈집에 접근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빈집의 문이 열리고 한 남자가 밖으로 걸어나왔다.

    “아이고~ 저승사자님 오셨습니까?”

    [넌…….]

    “하하하, 저승사자께서 절 어떻게 하실 순 없으시잖아요. 어떻게 하시려고요?”

    한쪽 눈이 풀린 사내는 조소를 머금고 바깥으로 걸어나와 기지개를 폈다.

    그걸 본 최용규가 이성복의 뒤에 숨어서 물었다.

    [선생님, 왜 그러세요? 저 사람은 선생님이 보이는 건가요?]

    [이 놈아! 빙의잖아. 원귀가 되면 저렇게 산 자의 몸을 뺐는다니까.]

    [그럼 어떻게 해야 해요? 아까 그 호리병 같은 걸로 안 되는 건가요?]

    헌데 최용규의 질문에 답한 건 눈이 풀린 사내였다.

    “하하하, 아이고~ 저승사자 뒤에 있는 선생님은 어디서 오셨을까?”

    [내가 보여요?]

    “클클, 날 보고도 도망치지 않는 걸 보니 죽은 지 얼마 안 됐나보네. 거기 뒤쪽에 계신 선생님, 혹시 이승에 미련이 있으면 방법을 알려드리리다. 거기 있는 불길한 선생 없을 때 따로 찾아오슈!”

    원귀가 들린 사내의 말에 이성복이 쓴웃음을 지었다.

    [돌아가지.]

    [네?]

    [돌아가자고. 자네 지금 이 자리에서 소멸되고 싶나?]

    [아, 그럴 리가요.]

    스산한 기운이 감도는 빈집에서 벗어난 이성복. 그가 고개를 저으며 설명했다.

    [가장 골치 아플 때가 저렇게 원귀들이 산 자의 몸을 뺏었을 때야.]

    [산 자의 몸을 뺐어요?]

    [그래. 정신적으로 약해진 사람 몸에 기생해서 사는 거지. 저렇게 하면 아무리 나라도 도저히 방법이 없지. 골칫거리야. 뭐가 그리 이승에 미련이 많은 건지….]

    최용규는 쓴웃음을 지었다.

    원귀라면 다 제거 가능할 것 같았던 저승사자의 약점이 빙의였다니.

    그건 그렇고 빙의가 가능하다? 그건 생각도 못 해본 것.

    자연스럽게 빙의에 대한 질문이 나왔다.

    [빙의를 어떻게 하나요? 사람 몸은 그냥 통과되던데….]

    [그거야 원귀가 되면 된다니까. 아니! 이놈아! 그게 넌 왜 궁금하냐?]

    [아, 아닙니다.]

    [허튼 생각일랑 하지 말어. 생기가 많은 사람 몸에 오래 붙어 있다간 네 놈 영혼이 먼저 소멸한다. 방금 그 놈은 강력한 놈이라 그런 거지. 보통 놈은 5분도 못 버텨.]

    이성복의 말에 최용규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내심 생각했다.

    [‘위험할 때, 성현이를 지킬 수 있을지도.’]

    원귀가 되어야 한다는 단점이 있지만, 꼭 필요한 상황이 온다면 요긴하게 쓰일 터였다.

    최용규는 담담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네. 조심하겠습니다.]

    그런데 이성복은 이미 최용규의 생각을 눈치챈 상태다.

    [클클, 이놈아! 너 딴 생각 했지? 내가 모를 줄 알고?]

    [선생님, 아닙니다. 저 별 생각 안 했습니다.]

    [네놈 생각이 내 머릿속까지 울린다. 어디서 거짓말을 해?]

    이성복이 품 안에서 무언가를 꺼내더니 지체 없이 최용규에게 던졌다.

    그러자 검은 무언가가 최용규의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으아아아악. 죽이지 마세요! 빙의 안 할 테니까!]

    [죽이는 도구 아니니까 엄살 그만 피워.]

    최용규는 자신의 목에 걸린 물건을 바라보았다.

    손오공이 머리에 찬 긴고아처럼 최용규의 목에는 목걸이가 걸려 있었다. 목걸이 끝에는 두 개의 방울이 달려 있는 게 보였다.

    [쌍두령이야. 원귀가 주변에 나타나거나 자신이 원귀가 될 때면 방울소리가 커지지. 아까 만난 원귀 놈이 네놈을 찾아내면 바로 널 죽일 게다. 물론 난 널 죽게 놔두지 않을 게고.]

    [아, 감사합니다.]

    [네놈은 그냥 죽게 두기 아까워. 머리도 꽤 똑똑했던 것 같고, 몇 개월이 지났음에도 아직까지 원귀로 변하지 않은 것도 그렇고.]

    [그게 무슨 말입니까?]

    [아직 알 거 없어. 그럼 잘 지내고 있어. 난 잠깐 천계에 방금 전 일을 보고하고 와야 하니까.]

    이성복이 하늘로 승천하기 시작했다. 최용규는 그를 따라 올라가려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사서 고생할 필요는 없겠지.’]

    최용규는 다시 백현이 있는 인재개발원으로 향했다.

    숙소에서 샤워를 하고 있는 백현. 최용규가 방금 전의 일을 알려주려고 입을 열었다.

    [백현아, 아까 얘기하려던 건데.]

    “선배 목에 그 방울 뭐예요?”

    [어?]

    “고양이 방울은 어디서 달고 왔어요? 아~ 너무 웃기네! 저승사자라도 만나고 오셨어요?”

    비아냥거리는 백현의 말에 최용규가 불같이 화를 냈다.

    [야! 너 나 놀리냐?]

    “아니~ 웃기잖아요. 귀신 목에 방울이라뇨.”

    백현의 말에 최용규가 화가 난 표정으로 말했다.

    [인마! 난 너를 도와주려고!]

    그런데 그때 딸랑딸랑 방울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와~ 방울 소리도 나. 이거 원귀 되는 거 막는 거 맞죠? 선배 방금 전에 얼굴 빨개졌었는데?”

    [아! 됐어 인마! 너 나중에 후회해도 모른다?]

    “아이고~ 알겠습니다. 그만 할게요. 화 좀 풀어요. 그냥 웃겨서 그런 거예요.”

    [됐거든?]

    최용규는 자신을 놀리는 강백현을 뒤로 하고 다시 프랑스로 날아갔다.

    김성현을 보면서 흥분했던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서였다.

    [성현아~ 나 왔어.]

    김성현은 매일 같은 작업실에 상주하고 있다.

    그런데 오늘은 김성현이 작업실에 없었다.

    [성현아~ 어디 있어?]

    귀신같은 속도로 성현의 위치를 찾아내는 최용규.

    김성현은 1층 커피숍에 홀로 앉아 있었다.

    [성현아, 혼자 커피 마시고 있었구나. 많이 힘들지? 내가 옆에서 재미있는 얘기 해줄 수 있으면 정말 좋을 텐데! 너 행복하지? 지금 행복한 거 맞지?]

    꿈을 쫒아 프랑스 파리까지 날아온 김성현.

    많이 노력했고, 이제 곧 결실을 맺을 것이다.

    그런데 성현의 인상이 갑자기 찡그려졌다.

    [성현아, 왜 그래? 너 표정이 왜 그런 건데?]

    “누나, 진짜 행복해 보인다.”

    그때 한국말로 들려오는 인사말.

    최용규가 김성현에게 인사를 건네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김동성?’]

    김성현의 동생 김동성이 프랑스 파리까지 찾아온 것.

    “동성아, 여기까지 와서 할 말이 뭐야?”

    무뚝뚝한 표정으로 묻는 성현의 질문에 김동성이 자리에 앉으면서 말했다.

    “일단 커피부터 시킬게. 누나, 일단 자리 앉고 얘기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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