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뚝배기 깨러 왔습니다-63화 (63/139)

뚝배기 깨러 왔습니다 63화

최용규의 말에 강백현은 고개를 저었다.

-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만 하시고, 좀 주무세요.

[아, 진짜야! 내가 거짓말 하는 거 봤어?]

- 봤죠. 많이 봤죠. 아아아, 선배는 죽어서 잠 못 자죠? 저 내일 공부할 부분에서 이 핵심문제 좀 가르쳐줘요. 이왕 이렇게 된 거 확실하게 예습을 해가야겠네요.

메모장을 통한 대화. 룸메이트에게 피해가 없도록 배려하는 강백현이었지만, 키보드 소리에 깨어난 조성환이 이불을 뒤집었다.

“깼어? 미안!”

“아니에요. 형님, 너무 오래 공부하시는 거 아니에요? 내일 피곤하실 텐데.”

“응. 10분 안에 컴퓨터 끌게.”

강백현의 사과에 최용규가 끼어들었다.

[지혜한테 연락해 봐.]

그의 참견에 갑자기 화가 난 강백현이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아!”

“형님, 화나셨어요? 공부 더 하셔도 돼요. 저 신경 쓰지 말고 공부하세요. 저 진짜 괜찮아요.”

“아니야. 그것 때문에 소리 낸 거 아니야.”

강백현은 또 오해를 샀다.

자신의 평판에 영향을 끼치는 최용규의 참견.

강백현은 한동안 잠잠했던 성주단지 속 손톱을 어루만졌다.

* * *

최용규는 불만을 터트렸다.

이미 죽은 몸이라 고통이 없는데도, 온 몸이 타들어가는 것만 같았다.

‘이게 성주신의 운명인가?’

최용규는 고통에 사무쳐 쫓겨나듯 백현으로부터 멀어졌다.

멀리 떨어진다고 고통을 느끼지 않는 건 아니지만, 일단 눈에서 보이지 않으면 강백현이 손톱을 가지고 자신을 괴롭히진 않는 것이다.

과천 상공을 날아 판교방향 고속도도 위에 떠 있는 최용규.

그는 늦은 새벽 시간에도 쌩쌩 달리는 차량들을 바라보였다.

- 끼이익!

- 풀 브레이크 소리와 함께 쾅!

자동차와 자동차가 충돌하는 교통사고를 목격한 최용규의 눈살이 찌푸려진다.

최용규는 죽었는데도 이승에 남은 자신의 운명이 원망스러웠다.

성주단지라는 굴레에 사로잡혀 있는 상태.

그렇다고 나쁜 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일단 성현이 곁에 마음껏 머무를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죽은 후 영문도 모르고 저승사자에게 끌려가지 않았다는 점.

헌데 고속도로 상공에 떠 있는 최용규 옆에 누군가가 나타났다.

[어이쿠! 잘 지내고 있는 겐가?]

검은 상복을 입은 사내의 말에 최용규가 웃으며 대답했다.

[네. 어르신! 잘 지내고 있죠.]

[쯧쯧쯧쯧. 이승에 미련 버리고 얼른 승천해! 자네는 천계에서 살 수 있는데 뭐 그리 이승에 미련을 두나?]

사내의 말에 최용규가 머쓱하게 대답했다.

[운명의 짝을 기다려야죠. 어르신이 말씀하셨잖아요. 천계에 운명의 짝과 같이 올라가면 다음 생에서는 반드시 이루어진다고요.]

최용규의 말에 저승사자 이성복이 짐짓 소리쳤다.

[옛끼! 그거야 네 놈이 그때까지 원귀가 되지 않았을 때의 이야기지. 그게 쉬운 줄 알아?]

그 말에 최용규가 한숨을 내쉬었다.

[가능하죠. 가능하니까 제가 이렇게 이승에 머물고 있는 거지 않습니까?]

[클클, 잘 해봐. 그런데 쉽지 않을 거야.]

[왜요? 뭐가 쉽지 않은데요? 뭘 알고 계신데요?]

이성복의 말에 최용규가 곁에 착 붙어 저승사자가 가지고 있는 명부를 살짝 훔쳐보았다.

그런데 명부가 빈 칸이다.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은 것이다.

[운명은 우리 같은 차사들만 볼 수 있는 게지. 네놈 같은 잡것들한테는 이 명부가 보일 리가 없어. 암! 불가능하지.]

잡것이라는 말에 최용규가 씩 웃었다.

[잡것이 벌써 7개월 동안 버텼죠. 한 달만 버티면 용하다고 말씀하신 게 누구셨더라?]

[옛끼 이놈아! 네놈 3일 만에 원귀 될 뻔한 거 기억 안 나? 너 성주단지만 아니었어도 벌써 지옥행이야.]

분노의 감정에 휩싸이면 이성을 잃어버리게 된다.

영혼을 담을 몸이 없는 상태에서는 불안정한 영혼을 안정시키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 영혼들은 결국 미쳐서 원귀가 되어버린다.

원귀의 문제점이라면 생기가 담긴 몸을 끊임없이 찾는다는 것.

산 자의 몸에 들어가 인간의 이성을 마비시키고 생기를 흡수해서 스스로의 분노를 안정시킨다.

여기까지는 참 좋은데 생기를 흡수하면 그 쾌락을 잊을 수 없다는 게 문제다.

죽은 자가 원귀를 넘어 악귀가 되어서라도 이승에 남으려는 이유가 바로 저 쾌락 때문이다.

[조심해! 원귀 되는 순간 콱! 알지?]

[네. 알죠! 버틸 겁니다. 우리 성현이 나랑 같이 손잡고 갈 때까지 버티고 또 버틸 겁니다.]

[아쉬워! 정말 아쉬워. 자네 정도라면 내가 제자로 삼아줄 수도 있는데!]

저승사자의 임무를 수행 중인 이성복은 교통사고가 난 지점으로 내려갔다.

차량 사고 지점에서 영문을 모른 채, 울고 있는 남자. 그에게 이성복이 말했다.

[심장이 무너질 것 같지?]

[네?]

[그거 착각이야. 이미 죽은 자는 심장이 뛰지 않아. 자네의 그 슬픈 감정도 결국 착각이야.]

[저 죽은 건가요?]

교통사고 현장, 앰뷸런스에 실려가는 자신의 몸을 바라보는 남자에게 이성복이 말했다.

[잊어. 잊는 것도 축복이야.]

[살고 싶습니다! 살려주세요! 제발! 제발 살려주세요! 네? 제발요! 제발! 나 못 죽어. 못 죽는다고!]

남자의 영혼이 붉은색으로 변하고 있었다.

이성복은 끈질기게 그를 설득했다.

[더는 흥분하지 마. 돌이킬 수 없어. 마음을 안정시키고, 숨을 쉴 순 없겠지만, 숨을 쉬는 것처럼 크게 들이쉰다고 생각해.]

[하-하! 나 못 죽어. 나 안 죽어. 안 죽는다고!]

영혼이 결국 붉어진 상태를 넘어 검게 변하기 시작했다.

그걸 본 최용규가 쓴웃음을 지었다.

방금 전까지 아무렇지 않았던 영혼이 원귀가 되는 걸 목격한 것이다.

원귀가 되면 저승사자는 더 이상 그를 인도하지 않는다.

그저 없앨 뿐.

그렇게 되면 영혼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이성복이 주머니에서 호리병을 꺼냈다.

[원망은 하지 말게. 내 일이니까.]

호리병 뚜껑을 열자, 호리병이 진공청소기처럼 강력한 흡입력으로 남자를 빨아들였다.

영혼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든 것을 빨아낸 후 호리병의 뚜껑을 닫았다.

그리고 호리병을 푸른 불꽃으로 태우기 시작했다.

최용규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방금 전 죽은 남자의 영혼은 이제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소멸시키신 겁니까?]

[그래. 모든 원귀는 이렇게 되지. 내가 왜 저승사자인 줄 아나?]

[글쎄요. 왜 저승사자일까요?]

[지옥의 겁화를 다루거든. 천계의 인간이면서 지옥의 불을 다루지. 아이러니하지 않나?]

저승사자가 자신의 명부를 살펴본다.

그리고 최용규를 보며 작별의 인사를 건넸다.

[꽤 오래 버티긴 했다만, 자네도 언젠가는 저렇게 될지 모르네. 그러니 최대한 빨리 결심해. 나랑 같이 염라를 만나러 갈 것인지, 아니면 원귀가 되어 세상에서 소멸할지….]

의미심장한 말과 함께 떠나는 저승사자.

최용규의 표정이 복잡해진다.

자신과 같은 영혼이 불과 5초 만에 원귀가 되었다.

김성현과 함께 하고 싶은 자신.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점차 가능성이 희박해진다는 걸 모를 수가 없다.

그러면 그럴수록 마음은 조급해진다.

그런 최용규를 바라보는 저승사자가 눈살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성공률 0%. 애타는 사랑의 결말이 어떨지 기대되는군.]

* * *

강백현의 활약은 2차 성적 발표에서도 계속되었다.

고군분투하며 노력하는 동기들이 많았지만 백현의 노련한 경험과 피나는 노력 앞에서 결국 무너지고 말았다.

2차 성적발표.

여전히 백현이 1등인 가운데, 2등이 서지혜로 바뀌고 기존 4, 5등이었던 조성환과 오현수가 3, 4등으로 올라왔다.

기존 2등이던 최현희는 무슨 연유인지 무려 15계단이나 내려간 상태.

2등에서 17등.

마지막 종합성적 기준으로 4등까지 주어지는 대통령 표창, 국무총리 표창, 인사혁신처장 표장, 인재개발원장 표창과는 한참 멀어진 상태였다.

“말도 안 돼. 내가 왜 17등이야? 내가 왜! 왜!”

노발대발 하며 성적표를 사진으로 찍고 교육지원팀으로 향하는 최현희.

사실 시험 성적 때문에 순위가 밀린 것이 아니었다.

동기들이 주는 다면평가 때문에 총점이 떨어진 것이었다.

다면평가.

동기들하고 원만하게 지낸 사람만이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는 평가.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적극적으로 나선 백현, 그리고 백현과 친한 동기들은 높은 평가를 받았고, 과시적이고 남을 무시하는 최현희는 상대적으로 낮은 평가를 받았다.

최현희가 교육지원팀을 나와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통화음이 흐른지 겨우 15초가 지났을 뿐인데도 그녀는 참지를 못했다.

“아! 뭐하기에 왜 이렇게 안 받아!”

잠시 후,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 여보세요? 우리 딸! 무슨 일이야? 교육 잘 받고 있지?

“잘 받긴 뭘 잘 받아! 짜증나! 성적 완전 떨어졌어!”

- 성적이 왜 떨어져? 문제 다 알지, 교수들도 네가 내 딸인 거 다 아는데 누가 점수를 떨어뜨렸어? 아빠한테 말해! 당장 네 앞에 무릎 굽히게 만들 테니까!

“무릎 굽히는 게 문제가 아니잖아. 교수들 문제 아니야!”

최현희의 말에 최장철 4선 국회의원의 목소리가 살짝 떨리기 시작했다.

- 왜? 무슨 일인데? 말을 해야 아빠가 해결을 하지.

“아니! 나를 미친년으로 만들어 버리잖아. 무슨 다면 평가 같은 걸 해가지고 성적 2등이었는데 17등으로 밀려버린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성적이 아니라 무슨 동기끼리 평가한 걸 점수로 반영해?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되잖아!”

최현희가 아버지에게 속내를 드러냈다. 4선 국회의원의 힘.

그녀가 알기로 아빠는 자신의 말이라면 무엇이든 들어주려 한다.

왜냐고? 자기는 하나 밖에 없는 늦둥이 외동딸이니까.

인재개발원장도 인사혁신처장도 아빠 앞에서는 얼굴조차 들지 못하리라. 아빠가 한 번 인재개발원에 오기만 하면 모든 게 바뀔 것이다.

그녀가 원하는 결론이 건너편에서 들려왔다.

- 그래. 아빠가 해결해줄게. 아빠가 해결해주면 되는 거지?

“빨리 해! 응? 아빠! 나 완전 화나면 성격 어떤지 알지?”

- 그래. 부당한 건 고쳐야지. 우리 현희! 대신 꼭 1등해야 돼?

“당연하지. 내가 놓치는 거 봤어?”

두 부녀의 전화통화.

그리고 그것을 듣고 있는 최용규가 씩 웃었다.

‘한심한 집안이구만. 한심한 족속들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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