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뚝배기 깨러 왔습니다-61화 (61/139)
  • 뚝배기 깨러 왔습니다 61화

    오프라인 모임이 말 한 마디에 성사되었다.

    다들 서로에 대한 호감들이 있었기에 성사된 모임.

    남자 3, 여자 1. 인생 목표인 5급 공개채용에 합격한 젊은이들의 만남이었다.

    배식을 끝낸 후, 교육생들은 뒷정리에 들어갔다.

    아침 8시에 모였는데 벌써 오후가 됐다.

    오후 1시 반, 대망의 레크레이션 시간이다.

    어르신들이 복지관 앞에 둘러 앉아 사회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사회자는 경력 15년의 개그맨.

    “안녕하세요! 어르신들 저 아시죠? 빵구 김성만! 빵구 하면 다들 아시죠? 빵야! 빵야! 빵야!”

    2000년대 초반, 권총 개그로 한 획을 그었다고 주장하는 김성만.

    하지만 인터넷에 검색해도 나오지 않는 것으로 보아 그의 주장은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높았다.

    그러나 그런 건 상관없었다.

    이름이 알려져 있건 아니건, 복지관의 사회자로서 1시간 동안 어르신들을 재밌고 즐겁게 만들어주면 그만인 것이다.

    “자~ 그럼 오늘 행사를 진행하기 앞서서 저! 김성만이 어르신들에게 곡 하나 바치겠습니다. 오늘 시작을 알리는 메인행사 곡은 <세상은 못 말려!>”

    개그맨 김성만의 멘트가 끝나기 무섭게 반주가 시작된다.

    <세상은 못 말려>란 곡은 젊은 시절의 추억을 되새기는 내용이었다.

    『너희도 50대 되면 알 거야~ 허리 아파보면 알겠지』

    20~30대 청년들을 보며 과거의 추억을 상기하는 가사.

    그런 가사를 읖조리는 김성만의 감성 어린 목소리에 어르신들이 하나 둘 일어나 춤을 추기 시작했다.

    분위기가 고조되고 후렴구가 반복된다.

    『너희도 젊을 때 놀아둬. 곧 꼬부랑 된다. 세상은 못 말려. 세상은 못 말려.』

    어르신들은 공감 가는 가사를 중얼거리며 미소를 지었다.

    노래가 끝나고 김성만은 마술쇼를 이어갔다.

    대단한 마술은 아니었다.

    이벤트 마술도구를 사면 얻을 수 있는 도구들을 사용한 것이다.

    백지를 만원짜리로 변환할 수 있는 머니프린터.

    손가락이 작두에 잘리는 것처럼 속일 수 있는 손가락 길로틴.

    절대 풀리지 않는 다섯 개의 마법링 마술까지.

    모두 마술 도구에 의한 트릭이지만,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개그맨 김성만의 일거수일투족에 주의를 집중했다.

    헌데 마술쇼가 끝날 무렵 김성만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강백현은 김성만의 표정을 보며 뭔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왜 저러지?’

    최용규가 어느새 나타나서 중얼거렸다.

    [화장실 가고 싶어서 그런 거 아니야?]

    ‘맞네. 화장실이네.’

    어떠한 상황이 벌어져도 태연하게 행동해야 하는 사회자인데, 똥 씹은 표정을 하고 있으니 누가 봐도 이상한 상태.

    그때 김성만이 기지를 발휘했다.

    “자자자! 다음 쇼 준비를 위해서 제게 시간이 필요합니다. 나와서 노래 불러주실 희망자 있으십니까?”

    그러나 방금 전까지 좋았던 분위기가 갑자기 싸해졌다. 어르신들이 노래에 자신이 없었던 모양이었다.

    그때 김성만에게 구세주가 나타났다.

    강백현이 일어난 것이다.

    최용규는 벌떡 일어난 강백현에게 물었다.

    [뭐하려고?]

    ‘도와줘야죠.’

    [오지랖 아니야?]

    ‘맞죠. 하지만 누군가는 해야죠. 이 분위기를 망칠 순 없잖아요?’

    최용규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강백현은 꿋꿋이 손을 들었다.

    “저! 부산열차 선곡 부탁드립니다.”

    “네! 젊은 청년! 자원봉사자인가 보죠! 선곡번호 5542 부산행 열차 출발합니다! 출~발!”

    부산열차 선곡에 잠시 어색해하던 어르신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한 트로트 중 하나, 부산열차.

    강백현의 멋진 목소리가 복지관 전체를 감싼다.

    『어르신들, 다들 일어나시고! 어깨동무 부탁드립니다. 부산열차 경남선을 출발합니다.』

    강백현의 말에 자리에서 일어나는 어르신들.

    이를 본 룸메이트 조성환이 복지관 형광등을 껐다 켰다 했다.

    어려운 여건에서도 분위기를 띄우려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강백현의 멋진 목소리가 복지관에 울려 퍼졌다.

    『비 내리는 경남선! 부산열차에~』

    흥이 절로 나는 메들리.

    『들썩이는 차창 밖으로』

    『눈물 흘린 내 얼굴 보여.』

    곱씹어 보면 슬픈 내용이지만, 국민 트로트답게 흥이 넘친다.

    어르신들은 엉덩이를 들썩이며 춤을 추기 시작했다.

    노래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CJ. COC의 산행의 가요.

    『와! 가을이닷!』

    『지나간 가을, 산행길에서! 김밥 주던 아줌마 내게 말했어. 연락처 한번 교환하자고.』

    산행길에 중년 남성과 중년 여성이 만나서 김밥 먹고 첫눈에 반하는 이야기.

    『김밥이 정말 맛있어 연락처 줬지.』

    음식에 대한 예찬론과 외모지상주의의 현 실태를 비판하는 가사.

    이 노래가 무려 25년 전에 나왔다는 걸 생각하면 놀랍기만 하다.

    개그맨 김성만은 얼른 볼일을 보고 자리로 돌아왔다.

    3분 만에 끊고 나오려고 했지만 5분이나 걸려 걱정했는데 무슨 연유인지 한 곡이 끝나고 다음 곡이 이어진다.

    복지관 무대로 돌아온 김성만은 어르신들의 흥을 돋우는 청년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잘 하네. 실력 있어!’

    아무리 봐도 젊은 청년이었다.

    봉사활동 하러 온 것 같은데, 젊은이가 저렇게 능숙하게 어르신들을 리드하다니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생각하는 건 김성만 뿐이 아니었다.

    같이 봉사활동을 온 교육생 동기들도 마찬가지였다.

    “저 형 완전 인싸네.”

    “맞아. 와, 공부만 열심히 하는 줄 알았는데 장난 아니다.”

    “그러니까.”

    백현은 복지관 어르신들은 물론이고 아직 말 한 번 나눠본 적 없는 동기들에게도 깊은 인상을 남겼다.

    두 곡이 끝나고, 백현에게 들려진 마이크가 다시 김성만에게 돌아갔다.

    김성만이 자신의 자작곡을 부르는 것으로 행사는 마무리.

    오늘 복지관에서의 공식 일정도 끝났다.

    개그맨 김성만은 행사비 15만원을 받고는, 잠시 고민하다 백현에게 다가갔다.

    “젊은 친구, 이거 받아요.”

    5만원 짜리 심사임당 지폐를 건네는 김성만에게 강백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걸 왜 주세요? 넣으세요!”

    “고마워서 주는 거야. 오늘 행사의 반은 당신이 했구만.”

    “아! 저 이런 거 받으면 안 돼요. 김영란 법에 걸리거든요.”

    “응? 김영란? 공무원이야?”

    “네. 인재개발원 교육과정 받고 있어요.”

    김성만이 강백현을 보며 씩 웃었다.

    뭘 해도 싹이 보이는 청년.

    그런데 똑똑하기까지 하니 미소가 절로 나온다.

    “몇 살이지?”

    “32이요.”

    “여자친구는?”

    “없는데요.”

    김성만이 강백현의 목에 걸린 공무원증(명찰)을 뒤집어보며 씩 웃는다.

    “강백현, 공무원 강백현.”

    “네. 맞습니다.”

    “내 딸 소개시켜줄까?”

    “네?”

    “완전 이뻐. 남자친구도 없고.”

    “하하, 아닙니다. 아니에요.”

    “여기 명함 주고 갈 테니까, 필요한 일 있으면 연락해. 청년이 참 참하네!”

    “앗… 넵.”

    강백현은 명함까지 거절하는 건 실례인 것 같아서 마지못해 받았다.

    그리고 그 날 행사는 그렇게 끝이 났다.

    저녁 오프라인 모임.

    인재개발원 앞 호프집에서 4명이 한 잔하기로 했다.

    숙소에서 조성환이 백현에게 물었다.

    “형님, 드레스코드가 찐하게면 어떻게 입어야 해요?”

    “그거 검정색 입으면 돼요. 찐한 색깔 입고 오라는 농담이었는데 무슨 생각했는데요?”

    “아, 그런 거였구나. 지혜 누님이 물어봐서 야한 거 입으라고 답해줬거든요. 저 다시 톡 해서 전달할게요.”

    강백현은 그걸 야하게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 싶어서 웃음을 지었다.

    “누님한테는 문자 보내놨어요. 걸어갈까요?”

    “네. 근데 성환 씨.”

    “네. 형님.”

    “나, 이제는 말 편하게 해도 되죠?”

    강백현의 질문에 룸메이트 조성환이 방긋 웃었다.

    “당연하죠. 형님!”

    “그럼 나 편하게 할게요. 지금부터 말 놓습니다.”

    “넵! 환영합니다.”

    둘은 인재개발원에서 걸어가며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존칭어를 쓰면서 예의를 갖췄던 시절보다 반말을 하는 지금이 더 가깝게 느껴졌다.

    그리고 호프집.

    오현수가 검정 옷을 입고 들어온다.

    “형! 검정색 옷 입고 오는 것 맞죠?”

    “네. 맞아요. 역시 센스가 있네요.”

    조성환이 현수에게 되물었다.

    “현수 형님도 검은색이라고 생각했어요? 저만 야한 옷이라고 생각한 건가?”

    “당연히 찐한 거면 검정색이죠. 음란마귀 들렸어요?”

    “앗! 음란마귀라뇨!”

    남자들끼리의 농담.

    그런데 마지막 4번째 멤버가 호프집에 들어온다.

    “오오오오! 완전 대박!”

    검은 코트를 입고 들어오는 김지혜에게 동기들의 박수가 흘러나온다.

    “누님 일부러 검은 코트 입고 오신 거예요?”

    “당연하지. 근데 뭐야? 다들 복장이 왜 그래? 왜 그래요?”

    김지혜가 당황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네? 왜요? 찐한 거 검은색 맞잖아요. 문제 있어요?”

    그러자 김지혜가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아래로 내린다.

    “아! 짜증나! 뭐야! 찐한 거면 섹시한 복장 아니야?”

    “문자 보내드렸잖아요. 검은색이라고. 성환아 안 보냈어?”

    강백현이 민망한 표정을 짓는 김지혜를 보며 성환에게 물었다.

    그런데 조성환이 톡을 열어보더니 고개를 젓는다.

    “어? 1이 안 없어졌는데요.”

    “아! 짜증나. 전화로 했어야지!”

    검은 코트 안. 그녀가 입고 있는 레오퍼드 무늬가 살짝 보인다.

    강백현을 비롯한 동기들이 씩 웃었다.

    “자자자! 술이나 먹읍시다. 지금부터 지혜 씨 코트 안 관심주기 없기!”

    “네네네네!”

    * * *

    시간이 흘렀다.

    인재개발원에서는 동기들끼리 웬만하면 원만하게 지내려고 노력한다.

    예의를 잘 지킨다.

    고위 공직에 올라서도 계속 보게 된다는 이유도 있지만 의무적으로 잘 지내야 할 필요도 있다.

    그건 다면평가 때문.

    훌륭하고 모범적인 교육생, 또는 원만하지 못하고 남들에게 피해를 주는 교육생을 점수로 평가하기 때문이다.

    같은 동기 사이, 모두에게 같은 점수를 주고 싶겠지만 그럴 수가 없다.

    그 이유는 분포별로 할당 퍼센트가 있기 때문이다.

    최고 점수인 A등급은 상위 10%만 줄 수 있고. B등급 C등급 D등급 E등급은 각각 20%씩 할당된다.

    그리고 F등급은 A등급과 마찬가지로 10%를 선발한다.

    상위 10%에 오르게 되면 인재개발원에서 상위권으로 올라갈 가능성이 높아지고, 연속으로 하위 10%에 걸리면 강제 퇴소를 당할지도 모른다.

    보통의 교육과정에서는 문제가 되지 않지만, 신규관리자 임용과정인 5급 공채 합격자들에게 강제 퇴소란 임용이 취소된다는 뜻이었다.

    때문에 교육생들은 하위 10%에 선발되지 않으려고 최대한 노력했다.

    즉, 품행을 단정하게 하고 지낸다는 것.

    그리고 그 다면평가 결과가 개인에게 개별로 전달된 것이 오늘이었다.

    조성환은 다면평가 결과를 보며 아쉬움을 달랬다.

    “아~ 형님! 저 종합평가 B맞았어요. 아, 동기들한테 좀 더 노력했어야 하는데.”

    “그래? 아, 난 너 A줬다. 알지?”

    “그럼요. 의심 안 해요. 제가 형님을 왜 의심을 왜 해요? 형님은 A죠?”

    강백현은 씩 웃었다.

    “응. 운이 좋았나 봐. 다들 날 좋게 봐주시네.”

    1차 성적 발표까지는 조금 위태했지만 봉사활동을 계기로 강백현에 대한 편견이 많이 사라졌다.

    그리고 백현은 어떤 상황에서도 솔선해서 모범을 보이곤 했다. 지금의 점수는 그런 행동이 가져온 결과인 것.

    현재까지 종합 1등인 강백현을 보며 최용규가 생각했다.

    [‘잘 하네. 나보다 더 잘 하고 있는지도?’]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