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뚝배기 깨러 왔습니다-60화 (60/139)
  • 뚝배기 깨러 왔습니다 60화

    달달한 분위기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최용규. 강백현이 그의 고함을 무시했다.

    솔직히 이렇게 해도 되나 싶을 정도의 문장.

    다시 한 번 자신이 전송한 문구를 바라본 강백현이 주먹을 꽉 쥐었다.

    ‘남자는 패기지!’

    반면 최용규는 둘 사이가 진전이라도 될까 전전긍긍하며 수천 킬로 떨어진 백현과 성현 사이를 오가기 시작했다.

    김성현은 회의를 하다 말고 강백현의 문자를 보고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김성현] : 백현 씨, 방금 진심? 고백한 건가요?

    [강백현] : 진심일까요? 아니면 장난일까요?

    달달한 분위기.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정에 김성현이 PC버전 톡이 띄워져 있는 컴퓨터 화면을 응시했다.

    최용규는 강백현의 문자에 김성현의 마음이 흔들릴까 노심초사했다.

    [성현아, 너 평생 솔로 해야지! 나 사랑 안 해? 내가 너 기다린다니까?]

    유령의 집착을 알 리 없는 김성현.

    잠시 턱을 괴고 고민하다 손가락을 노트북의 키보드로 향했다.

    따다다닥.

    키보드를 통해 입력되는 메시지에 최용규의 시선이 고정된다.

    [김성현] : 진심이면 프랑스 날아와요. ㅋㅋ. 그럼 사귀는 거 진지하게 생각해 볼게요.

    [껄렁한 강비서] : 교육중인데 프랑스를 어떻게 가요! ㅡㅡㅋ

    [김성현] : ㅋㅋㅋㅋ. 진심으로 좋아하면 와야죠! 그것도 못 와요?

    김성현은 강백현의 메시지를 받고 ㅋㅋㅋㅋ라는 답장을 보냈다. 그런데 강백현의 답장이 바로 들어왔다.

    [껄렁한 강비서] : 내 별명이 껄렁한 강비서에요?

    김성현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어떻게 알았지?’

    하지만 의문도 잠시, 자원봉사를 하려 내려갔다가 그가 연락처에 자신을 어떻게 저장했는지 기억나버렸다. 김성현의 반격이 이어졌다.

    [김성현] : 난 꽃뱀이라고 저장했었잖아요? 이 정도면 양호한 거 아닌가?

    [껄렁한 강비서] : ㅡㅡㅋ

    [김성현] : 그 표정은 뭐냐구요! 저 지금 바빠서 이따 답장할게요. 4시간 뒤에 연락해도 되죠?

    [껄렁한 강비서] : 4시간이면 한국시간 새벽 4시인데~ 제 시간에 맞춰주시는 게?

    [김성현] : ㅎㅎ. 진심 아니넹! 거절로 알게요^^ 담에는 프랑스 비행기 끊어놓고 연락해요. 알았죠?

    [껄렁한 강비서] : 아닛! ㅋㅋ

    같은 시각.

    대한민국에서는 유령 최용규가 강백현의 옆에 돌아가 방긋 웃었다.

    [이건 제대로 된 거절이다.]

    “조용히 좀 해. 아니거든?”

    [네 연락처가 껄렁한 강비서 맞잖아. 뭘 아니야?]

    “그만 좀!!!”

    강백현이 화를 내자, 최용규가 낄낄거리며 백현의 주변을 정신없이 날아다녔다.

    [이 새끼, 삐졌네. 삐졌어. 크크크]

    하지만 강백현은 오히려 고민에 빠졌다.

    ‘너무 오랜만에 연락한 걸까?’

    그러고 보니 김성현이 떠나고 약 50일.

    김성현이 프랑스로 같이 가자고 할 때 잡았어야 하는 건데, 라는 생각도 든다.

    ‘아니면 지금은 마음이 떠나버린 건가?’

    별의별 생각을 다 떠올리는 강백현이 이불 안으로 쏙 들어갔다.

    [이불에는 왜 들어가? 자려고?]

    강백현의 머릿속에는 스스로 전송한 메시지가 아른거린다.

    [강백현] : 그래도 실장님만큼 보고 싶었겠어요~♥?

    “으아아아악, 아! 내가 이걸 왜 보냈지?”

    순식간에 위로 솟구치는 이불.

    강백현의 이불킥을 보며 최용규가 씩 웃었다.

    [크크크, 흑역사냐?]

    “좀! 좀! 선배는 조용히 좀 하라고요!”

    * * *

    1차 시험 결과가 나온 그 주 주말.

    연수원 동기들끼리 모이게 되었다.

    “총 43분이시네요. 더 이상 오실 분 없으시죠?”

    “네. 희망자는 다 온 것 같아요.”

    “안녕하세요! 인재개발원 교육생 여러분 반갑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과천시복지관 복지센터팀을 맡고 있는 김현숙 팀장입니다. 이렇게 많은 분들이 자원봉사 희망해주셔서 정말 감사드려요. 오늘 여러분들이 해주실 건 복지관 청소하고, 어르신들 만족도 조사하고, 레크레이션 활동, 그리고 식당 일일 보조입니다. 혹시 땅콩 알레르기 있는 분 계신가요?”

    아무도 김현숙 팀장의 말에 반응하지 않았다.

    “다행이네요. 그럼 복지관으로 이동하시죠.”

    봉사활동 희망자 중 선착순으로 43명이 모인 지금 자리.

    45인승 버스에 탈 수 있는 최대 인원이 인솔자 제외 43명이다. 그래서 희망자 중에 43명으로 자른 것이다.

    인솔을 맡은 김현숙 팀장의 지시에 따라 모두가 이동했다.

    그렇게 복지관에 도착한 교육생들.

    “일단 복지관 개관시간이 10시부터거든요. 그 전에 청소부터 하실게요. 청소도구는 제 기준으로 오른쪽 청소도구함에 있고요. 바닥 청소 위주로 좀 해주셨으면 좋겠네요. 어르신들이 잘 넘어지시니까 미끄럽지 않게 부탁드려요.”

    “네. 알겠습니다.”

    강백현은 미소를 지었다.

    ‘매번 하던 거네.’

    익숙한 손길로 청소도구함을 열고, 뒤의 동기들에게 청소 도구를 나눠주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김현숙 팀장에게 의견을 물었다.

    “저희 인원이 많아서 2개조나 3개조로 나눠야 할 것 같은데,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안 그래도 그 생각 했었는데….’

    김현숙은 백현의 말에 방긋 웃었다.

    “지금 도구 받으신 분까지는 1층 청소 담당이고요. 제 뒷줄부터는 2층으로 올라가서 청소 해주세요. 먼지 제거, 바닥 청소 위주로 해주시고, 청소하기 전에 창문 열어서 환기 꼭 하시고요.”

    “네!”

    자원봉사자들의 청소가 시작되었다.

    백현은 걸레를 빨기 시작했다.

    ‘여긴 지원이 좋나보네. 부주시에서는 손걸레 위주로 썼었는데….’

    손으로 빨고 짜야 하는 자루걸레.

    그런데 여기는 다 밀대다.

    번거롭기 짝이 없는 손걸레에 비해 손에 물을 묻히지 않는 것만 해도 혁신이나 다름없었다.

    웃음을 지으며 청소를 시작하는 백현.

    겉으로도 보이는 파이팅에 룸메이트인 조성환이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형님, 기분 진짜 좋아 보여요.”

    “아, 이따가 방문하실 어르신들 생각하면 기분 좋죠.”

    한바탕 청소가 끝나고 음식 준비가 시작되었다.

    백현은 김현숙 팀장이 왜 땅콩 알레르기를 물어봤는지 알게 되었다.

    오늘 메뉴가 땅콩국수였던 것.

    물에 땅콩을 넣고 끓인 후, 땅콩 껍질을 제거한다.

    그 껍질 제거가 오늘 자원봉사를 온 교육생의 몫.

    백현이 웃으며 동기들에게 말했다.

    “다들 손 씻고 시작하죠. 비닐장갑 필요하신 분은 말씀하세요!”

    백현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고 있었다.

    한편 김현숙 팀장은 원래 자신이 설명하던 것을 강백현 교육생이 알아서 해주니 몸도 마음도 편하게 느껴졌다.

    땅콩 껍질을 까기 시작하는 봉사자들.

    남녀 할 것 없이 즐거운 분위기 속에서 땅콩을 깐다.

    보통 인재개발원에서 교육받는 공무원들은 이런 분위기에 익숙하지 않았다.

    다들 어색해하고, 불편해하기 짝이 없는 표정으로 지내곤 한다.

    특히 5급 신입관리자 과정은 더욱 더 그랬다.

    봉사활동에 참가하는 사람에게는 1000점 만점에 0.1점이란 가산점을 준다. 때문에 의무적으로 참가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오늘은 조금 달랐다.

    의무가 아닌 진심으로 참여하는 흐름이 엿보인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강백현이란 사내가 있다.

    “정환 씨! 믹서기로 땅콩 좀 갈아줄래요?”

    “네. 형님!”

    “아~ 형님이라고 부르지 말라고 했잖아요.”

    “넵! 형님.”

    그때, 어르신들이 하나 둘 복지관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백현이 다른 동기 한 명에게 물었다.

    “지혜 씨, 국수 좀 삶아봤어요?”

    “아, 집에서 해 먹은 적이 있긴 해요.”

    “그럼 부탁 좀 드릴게요. 60인분 삶아야 되거든요? 그런데 한 번에 삶으면 너무 불을 수 있으니까 10인분씩 삶을게요. 배식 시간 고려하면 소량씩 나눠 삶아야 좋거든요.”

    얼굴에 살색 반창고를 붙인 김지혜가 백현의 설명에 고개를 끄떡였다.

    “토마토 잘 자르시는 분! 한 분만 와서 여기 좀 도와주세요.”

    “저요! 저!”

    “네. 1/3 크기로 잘라주세요. 땅콩국수랑 토마토는 원래 환상궁합이죠! 도대체 오늘 메뉴 땅콩국수 누가 생각한 거지? 완전 칭찬합니다!”

    강백현은 엄마와 함께 봉사활동을 다니며 했던 대사를 그대로 사용했다.

    다른 사람들은 백현의 말투와 행동이 꽤나 오글거렸지만, 한편으론 또 재밌기도 했다. 결국 피식피식 거리며 웃음을 터트렸다.

    배식시간.

    강백현은 복지관에 오신 어르신들에게 웃음 지으며 말했다.

    “먹으면 한 살씩 젊어지는 마법의 콩국수입니다.”

    “진짜 젊어져?”

    “그럼요! 하루에 한 번만 웃어도 10년은 젊어지는데 한 살 젊어지는 게 어려운가요?”

    “후후, 젊은 친구가 농담도 잘 해~. 혹시 젊어지면 정력도 좋아지나?”

    “아니, 농담 아니에요. 진짜 드셔보시라니까욧! 할아버지, 집에 가서 한 살 젊어졌는지 바지 내리고 확인해보세요. 안 젊어졌으면 제가 제 손에 장을 지집니다.”

    할아버지의 성적 농담에 잘도 받아치는 백현. 할아버지가 씨익 웃었다.

    헌데 할아버지 뒤에서 배식을 받던 할머니가 따라서 웃음을 짓더니 농담조로 물었다.

    “할아범은 그렇다 치고, 나 같은 할망구는 뭐가 좋아질까나?”

    “네?”

    “할아범은 밤일을 잘한다는 거잖아. 자고로 음과 양이 있는 건데, 양이 좋아지는 게 있으면 음도 좋아지는 게 있어야징!”

    할머니의 말에 강백현이 씩 웃었다.

    “할머니, 너무 욕심이 과하세요.”

    “응?”

    “양이 좋아지면 그 혜택은 다 음이 보잖아용. 얼마나 더 세상을 쉽게 살려고 그러시는 거예요?”

    “키킥, 젊은이가 뭐라는 거여? 큭큭.”

    할머니가 강백현의 대답에 피식 웃었다. 그러자 강백현이 웃음을 머금으며 말했다.

    “알았어요. 인심 써서, 제가 마법의 콩국수에 마법 하나 걸어놓을게요.”

    “마법?”

    “네. 이거 드실 때마다 흰머리 하나씩 빠지고 검은 머리 생기는 마법이거든요. 대신 과식하시면 흰머리만 빠지고, 그 자리에서 안 나니까 딱 1인분만 드셔야 돼요.”

    “큭큭, 알았어. 1인분만 먹을게.”

    강백현의 입담에 다소 어색한 분위기였던 배식장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동기들도 마찬가지였다.

    평소에 조용하고, 공부에만 집중해서 인간미가 없을 것 같던 강백현.

    헌데 예상과는 달리 매우 활발하고 적극적이고 유머러스하기도 하다.

    김지혜는 강백현을 보며 생각했다.

    ‘저런 면도 있었어?’

    볼 때마다 백현의 새로운 면을 발견하는 김지혜.

    그리고 그런 김지혜의 모습에서 어느 정도 낌새를 알아챈 룸메이트 조성환.

    그리고 또 한 명. 백현에게서 시선을 못 떼는 사람이 있다.

    “백현이 형, 진짜 말씀 잘하신다. 나 형이랑 친해질래요.”

    1차 성적 결과 5등인 오현수의 말. 강백현이 고개를 돌렸다.

    “남자랑 친해지는 거 별론데?”

    “킥킥, 좀 친해져요! 친해질래요! 네?”

    “아, 미쳐. 밤에 따로 톡해요. 진짜 친한 게 뭔지 알려줄 테니까.”

    백현은 오현수의 말에 농담을 섞어 대답했다. 평소라면 이런 말까진 안 했겠지만 봉사활동에 나오니 경쟁의식보다 동료라는 마음이 앞선다.

    그런데 여기에 김지혜가 끼어들었다.

    “나도 톡방 들어갈래요.”

    “네?!”

    “나도 끼워줘요. 안 돼요? 남자는 거부한다면서요.”

    김지혜의 말에 옆에 있던 룸메이트 조성환이 끼어들었다.

    “지혜 누님은 제가 초대해드릴게요.”

    “응. 좋아!”

    갑자기 친해지는 분위기.

    그때 조성환이 어색한 표정을 지우고,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럼 밤에 따로 한 번 모일까요? 드레스 코드는 찐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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