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뚝배기 깨러 왔습니다-57화 (57/139)
  • 뚝배기 깨러 왔습니다 57화

    수업이 끝나고, 백현이 강의실에서 나오는 도중이었다.

    “백현 씨, 시간 돼요?”

    “아, 네. 무슨 일이시죠?”

    “저녁 같이 할까요?”

    안 그래도 최현희의 근황이 궁금해던 참이었다.

    최용규 선배가 뒷조사는 했지만, 딱히 정보를 얻진 못한 상태.

    백현은 최현희와 함께 인재개발원 바깥으로 나왔다.

    인재개발원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선바위역 인근의 한 한정식집.

    다른 사람들과는 따로 분리된 별도의 방으로 들어갔다.

    백현은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앉았다.

    “현희 씨, 무슨 일로….”

    “여쭤보고 싶었던 게 있었어요. 일단 시킬까요? 불고기 정식 괜찮죠?”

    “네.”

    최현희는 호출 버튼을 눌러 직원을 불렀다.

    똑똑. 직원이 창호지로 된 문을 두드리고 손님이 대답할 때까지 기다린다.

    “들어오세요.”

    “네. 어떤 것으로 준비해드릴까요?”

    “불고기 정식 두 개 주시고요. 항상 마시던 일품소주로 부탁드려요.”

    “네. 오늘은 선생님은 같이 안 오셨나 봐요?”

    “네. 의정활동 때문에 지방에 내려가셔서요. 아, 저희 사석이라 그런데 옆방은 비워주실 수 있나요?”

    “아, 그럼요.”

    꽤 비쌀 텐데, 옆방까지 흔쾌히 비워준다는 직원.

    백현이 놀란 기색을 보이자 최현희가 설명했다.

    “저희 단골이에요. 여기 사장님께서 저희 아버지를 지지하시는 후원자분이시거든요.”

    “아, 그렇군요.”

    “아버지 성함이….”

    “최장철 국회의원이요.”

    “아, 네. 기억해두겠습니다.”

    백현은 애써 담담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잠깐 스마트폰으로 검색해 봐도 될까요?”

    “네.”

    ‘얼굴이 낯익네. TV에서 몇 번 본 적 있어. 저 분이 아버지라는 거지?’

    백현과 사는 환경이 너무나 다르니 어색하기 짝이 없었다.

    김성현은 재벌가의 자제.

    그리고 앞에 있는 최현희는 유수한 정치가문의 자제다.

    자신의 초라한 집안 환경이 둘 사이에 보이지 않는 벽을 만드는 느낌이었다.

    그때, 최용규가 손가락을 딱 하고 튕기며 말했다.

    [생각났어! 최장철 국회의원, 여당 4선! 저 사람이 사실 엄청난 실세거든.]

    실세. 사실 국회의원의 힘은 공무원에게 있어 절대적이다.

    반말조로 대하는 건 물론이고, 국회 요구자료라는 명목으로 수시로 원하는 자료를 요청하기도 한다.

    물론 입법 활동을 위해서는 공공기관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알아야 하는 게 정상이지만, 백현이 그들을 싫어하는 이유는 단 하나였다.

    ‘고압적인 태도가 문제란 말이지.’

    물론 최장철 국회의원이 그렇다는 건 아니다.

    대부분의 국회의원이 그렇다는 거지.

    그리고 그들이 직접 공무원들에게 따지고 나무라진 않는다. 밑에 있는 보좌관들이 지랄 맞을 뿐이지.

    시장, 부시장, 시의원 모두 다 똑같은 놈들이다. 그래서 백현에겐 최현희가 자신의 배경으로 국회의원을 언급하는 게 그리 탐탁지 않았다.

    “일단 먹으면서 이야기할까요?”

    “궁금하네요. 현희 씨처럼 부족함 없이 자라신 분이 저한테 관심이 있다는 게….”

    “큭큭, 이성적인 관심은 아니거든요?”

    “네?”

    “그런 거 아니라고요. 착각하지 마시라고 미리 말씀드리는 거예요.”

    최현희의 말에 강백현은 뭔가 모를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최용규가 아쉬운 표정을 짓는다.

    [아, 백현이한테 좋은 짝이 얼른 나타나야 할 텐데….]

    ‘됐거든요. 나 성현 씨랑 잘 되어가는 거 모르나? 우리 서로 기다리기로 했다고욧!’

    백현은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저도 관심 있는 분 있습니다. 현희 씨! 그러시진 않으셨겠지만, 오해하시지 않도록 미리 말씀드립니다.”

    “뭐래요! 아, 초면에 빵 터지네. 식사 온 것 같은데 드시면서 이야기하죠.”

    “네!”

    고급스러운 한정식. 한 끼에 무려 6만5천원짜리 프리미엄 한정식 코스가 상다리를 가득 메운다.

    이제껏 TV에서만 봤던 해물궁중만두, 참기름과 만나 맛깔스런 빛깔을 자랑하는 붉은 육회, 잘게 썰어놓은 배, 일본산 와규보다 고급지고 맛있는 강원도 횡성한우 등심.

    그리고 이와 곁들여 먹을 수 있는 24첩이 식탁 위에 놓였다.

    [맛있겠네. 후우~ 그립네.]

    ‘조용히 좀 해줄래요?’

    백현은 알짱거리는 최용규를 무시하고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그러자 최현희가 드디어 속내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백현 씨!”

    “네.”

    “여당, 야당 어디쪽인가요?”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백현이 떡갈비에 가져다댄 젓가락을 슬쩍 내려놓았다.

    갑자기 정치 이야기가 나오자 밥맛이 뚝 떨어졌기 때문.

    “백현 씨에 대해서는 들었어요. 올해 첫 응시에 단번에 수석. 물론 노력은 했겠지만 어디와 연이 이어지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결과죠.”

    강백현은 최현희의 확신에 굳은 표정이 되었다.

    “제가 커닝이라도 했다는 건가요?”

    “아뇨. 누가 커닝했다고 말했나요?”

    “현희 씨. 목적이 뭐죠?”

    백현은 앞에 있는 최현희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최현희는 눈썹 하나 흐트러지지 않은 채, 당연하다는 듯 백현에게 말했다.

    “백현 씨의 조력자가 누군지 알고 싶네요.”

    “그런 거 없습니다.”

    “아뇨. 백현 씨에 대한 조사는 모두 끝났어요. 3년 전 충남 부주시의 지역직공무원 9급으로 임용, 3년 만에 8급으로 승진했죠. 승진한 그 해, 부주시장 및 같은 부서의 과장, 부장들을 내부고발하다 찍혀 좌천되었고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사표를 내고 수리되었죠.”

    “최현희 씨, 그만하시죠. 그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습니다.”

    “아니요. 계속 들어요. 아직 내 차례에요.”

    최현희는 대화를 거부하는 백현의 의사를 무시하며 말을 이어나갔다.

    백현은 어이가 없었지만, 딱히 그녀가 자신에게 해를 가한 건 아니었으므로 일단 끝까지 들어주기로 했다.

    “저는 백현 씨를 두 가지 부류 중 하나로 판단했어요.”

    “네?”

    “뛰어난 천재, 아니면 배경이 든든한 인재. 둘 중 어디에요?”

    “뭐라는 건지 하나도 이해 못하겠네요. 최현희 씨, 싸이코세요?”

    선을 넘어도 한참 넘은 최현희에게 백현이 내뱉었다. 그러나 최현희는 이미 자신만의 결론을 갖고 있었다.

    “전 아무리 봐도 후자네요. 누구의 지원을 받고 있나요?”

    “그만하세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건가요?”

    백현은 이만 이 상황을 끝내고 싶었다. 지원은 무슨 지원이란 말인가?

    스스로의 공부로 쌓은 지식과 공무원으로 일하며 경험했던 양식이 결실을 맺어 지금의 자리까지 왔다. 물론 최용규의 도움이 있었다고는 하나….

    [틀린 말은 아닌데? 너 민법 잘 나와서 1등한 거잖아. 솔직히 내가 민법, 답 안 알려줬으면 네가 1등할 수 있었겠냐?]

    확실히 틀린 말은 아니다. 배경이 있다면 이미 사망 후 유령이 된 최용규라는 존재겠지.

    그러나 지금 눈앞의 최현희가 백현의 옆에 최용규가 있다는 걸 알고 있을 리 없다.

    그랬다면 지금 방 안을 정신없이 날아다니는 최용규에게 조금이라도 시선을 빼앗겼을 테니까.

    역시나, 그녀가 배후로 지목한 대상은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백현 씨가 공무원 사표를 낸 후 임용되기 전까지 메리야트 호텔 그룹의 비호를 받고 있었다는 거 확인했어요. 임용되기 2주 전에 거기에 사표를 냈더라고요.”

    “최현희 씨, 목적이 뭡니까?”

    “제가 첫 만남 때 말씀드리지 않았나요?”

    “무슨…?”

    “저에겐 아군이 필요하다구요. 하나만 묻죠. 백현 씨를 도와주는 정치인이 누구죠?”

    “아니! 최현희 씨!”

    “목소리 낮춰요. 저에게는 중요한 일이에요. 질문이 어려웠다면 다시 한 번 묻죠. 메리야트 그룹을 지배하는 김도한 회장은 어느 쪽이죠? 이니셜까진 말 안 해도 돼요. 여당, 야당, 둘 중 어느 쪽이죠?”

    정치에 대해서는 별반 관심이 없는 강백현이 한숨을 내쉬었다.

    알지도 못하는 걸 답하라고 요구하는 최현희의 표정에는 확신이 가득 차 있었다.

    ‘도대체 정치가 뭔데 저렇게까지 하는 거야? 내가 어디든 도대체 무슨 상관인 건데?’

    백현은 여당의 편도, 야당의 편도 아니었다.

    ‘어디 편이냐가 아니라, 누구냐, 어떤 정책이냐가 문제지.’

    확실히 고민했던 문제다.

    공무원을 하며 정치에 전혀 관심이 없다면 말이 안 된다.

    그러나 백현은 그 문제에 대해 이미 스스로 결론을 내렸다.

    ‘난 무언가를 만들어가려고 공무원에 들어온 게 아니야. 부정부패를 척결하기 위한 수단으로 힘이 있는 자리에 오르려는 거지.’

    “현희 씨, 여당과 야당 그게 중요한가요?”

    “중요하죠. 기름과 물이 섞일 수 있나요? 여당과 야당도 같아요. 의정활동을 수행하다보면 꼭 걸림돌이 되고 말지요. 백현 씨도 나하고 같은 부류잖아요. 아닌가요?”

    “왜 그렇게 생각하시죠?”

    백현은 그녀의 확고한 판단 밑바탕에 무엇이 깔려있는지 궁금해졌다.

    그리고 이 순간, 그녀의 기반이 되는 정치적 자세가 드러났다.

    “전 유성재 원장님의 발언이 끝나고, 백현 씨가 정치적 중립이란 말에 입술을 깨무는 걸 똑똑히 보았어요. 그건 내심 부정하는 게 아니었던가요? 자, 이제 말해줘요. 저와 같은 여당인가요? 아니면 저와 반대파인 야당인가요?”

    대통령이 소속된 여당 소속 4선 국회의원 최장철.

    그 딸의 날카로운 질문.

    이것으로 백현은 자신이 인생의 갈림길에 놓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백현아. 신중해라. 대답 잘못하면 한 번에 나락으로 떨어져.]

    ‘압니다.’

    최용규는 정치에 대해 너무나 잘 알았다. 공직사회는 정치에 휘둘릴 수밖에 없다. 말은 성현 때문에 감사원으로 옮겼다고 했지만, 실제 이유는 여당에 휘둘리는 상사들의 모습에 실망감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전 누구의 편도 아닙니다. 그리고 메리야트 그룹의 비호를 받고 있는 것도 아니고요.”

    “음…. 발뺌을 하시겠다? 알았어요. 좋아요. 사실 백현 씨가 여당이든, 야당이든, 배후에 누가 있든 그건 중요하지 않아요.”

    [이건 또 무슨 소리래? 최현희 얘, 도대체 목적이 뭐야?]

    ‘나도 궁금하거든요?’

    강백현은 결국 최현희에게 질문을 던졌다.

    “목적이 뭡니까?”

    “인재개발원 교육성적 1위.”

    “네?”

    “1위 자리 양보해요. 그렇게 하면 청년 비례대표 자리도 챙겨줄 수 있어요.”

    “청년 비례대표?”

    “네. 백현 씨는 그림이 좋잖아요. 가난한 집안, 공무원 내부고발로 인한 좌천, 거기에 5급 공채 수석 합격, 그런 스토리가 있다면 비례대표로 정치에 발을 들이는 것도 꿈은 아니죠. 물론 이건 제 꿈이기도 해요.”

    “무슨 허무맹랑한 이야기입니까?”

    백현이 쓴웃음을 짓자, 옆에 있던 최용규가 고개를 저었다.

    [허무맹랑한 이야기 아니야. 저 여자, 그럴 힘 있어.]

    ‘네?’

    최용규의 생각대로였다. 결국 최현희가 자신의 포부를 드러냈다.

    “나는 5급 공채를 내 인생의 스펙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3년 뒤 전 정치에 입문할 거예요. 그리고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되기 위해 최선을 다 할 거고요.”

    “……”

    “이제 본론을 말하죠. 백현 씨는 누구 편이 될 건가요? 내 편인가요? 아니면 적인가요? 결정해주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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