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뚝배기 깨러 왔습니다-56화 (56/139)
  • 뚝배기 깨러 왔습니다 56화

    실망시킨 대가로 따끔한 맛을 본 최용규였다.

    [백현아~ 내가 잘못했다. 내가 잘못했어. 무슨 이유인지 몰라도 화 풀어.]

    “화난 거 아닙니다. 다만, 정의롭다고 생각했던 선배의 모습은 다 포장된 거였네요. 애초에 기대를 말았어야 했는데….”

    그러자 최용규가 핀잔을 늘어놓았다.

    [사람이 다 똑같지. 완벽한 사람이 어디 있어. 사랑 앞에서 너도 마찬가지 아니야? 너도 미진이 앞에서는 울고 짜고 장난 아니었잖아.]

    최용규의 반격에 강백현이 다시 한 번 최용규의 손톱 중앙을 만졌다.

    [야야야! 거기는 내 엉덩이야. 느낌 이상해. 만지지 마!]

    그러나 거부할 수 없는 갑을 관계.

    그리고 새로운 사실 하나.

    손톱 부위 하나하나가 최용규의 영혼 부위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

    잠시 후, 속옷 바람으로 테라스에 나간 백현은 바깥을 바라보았다.

    “선배, 성현 씨는 잘 지내죠?”

    [응. 엄청 열심히 일하고 있다. 타국에서 말도 잘 알아듣지 못할 텐데도 회사의 방침이나 규율을 익히고 그들이 추구하는 방식 같은 것도 전부 놓치지 않으려고 엄청 노력해.]

    “그릇이 다르네요. 역시 사람은 첫인상으로만 평가하면 안 되는 것 같아요.”

    [우리 성현이 첫인상이 어때서?! 성현이 무시하냐?]

    백현은 꼴값을 떠는 최용규의 반항에 말없이 손톱에 손을 댔다.

    [야야야! 이건 반칙이지.]

    “정정하세요. 반칙이 아니라 반감입니다. 죽은 선배가 성현 씨한테 집착하는 거 맘에 안 드네요.”

    백현이 인재개발원 밖의 풍경을 그동안의 감상을 털어놓았다.

    [야, 누가 뭐래도 성현이는 좋은 남자 만나야 해. 완벽하고, 성현이를 위해서 모든 것을 헌신할 수 있는 남자.]

    “그런 남자가 세상에 어디 있어요?”

    [여기 있지.]

    “어후, 또 괴롭혀드려요?”

    백현의 장난 섞인 협박에 최용규가 씩 웃었다.

    [네 말이 맞아. 그런 남자는 나 말고 세상에 없지. 그러니까 성현이는 평생 독신으로 행복하게 살다가 나랑 천국 가면 되는 거야.]

    “나 참~ 아주 지랄병이 나셨네요. 얼른 김성현 옆에나 가요. 내 옆에서 쫑알거리지 말고.”

    [지금 거기가 새벽 6시니까. 아! 바로 가야겠다. 그럼 나 찾지 마.]

    “눼-눼.”

    최용규가 떠난 후, 백현은 테라스에서 다시 안쪽으로 들어왔다.

    이제 막 씻고 이런저런 물품을 꺼내 정리하는 룸메이트의 모습이 보였다.

    헌데 그가 꺼낸 물건들이 심상치 않았다. 백현은 내심 놀랐다.

    “성환 씨.”

    “네. 형님.”

    “그게 뭐예요?”

    “아~ 제 소울메이트요.”

    백현은 입을 다물 수 없었다. 그의 여행용 가방에서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동물 인형이 계속 나오는 것이다.

    “성환 씨, 만화 좋아하세요?”

    “네. 보누보누랑 또라에몽 완전 좋아해요. 애들 하는 짓이 귀엽잖아요. 형님도 좋아하세요?”

    “네. 귀엽네요.”

    “그렇죠? 완전 귀엽죠?”

    백현은 당황스러운 얼굴을 애써 감추었다.

    ‘덕후시구나. 하긴, 공부 잘한다고 덕후가 아니란 법은 없잖아?’

    서울대 출신 조성환. 23살에 행정고시 합격. 아직 군대도 다녀오지 않았고, 나이로 볼 때 아직 대학도 졸업하지 않았을 거다.

    세간의 시선으로는 너무나 완벽해 보이는 사람이지만, 실제로는 서브 컬처를 좋아하는 덕후였다니.

    그렇다고 백현이 조성환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었다.

    사람은 각자 처한 환경에 따라 변화하는 법이었다.

    나이 32.

    공무원 경력 3년. 산전수전 다 겪으며 낮에는 공사판, 식당 등에서 돈을 벌고, 밤에는 눈에 파스를 발라가며 공부. 그렇게 겨우 29살에 9급 공무원에 붙은 백현이었다.

    그런 백현이 저런 어린 나이에 성공한 조성환을 부러워하지 않을 리가 없었다.

    다만, 백현의 마음가짐은 보통의 사람들과 달랐다.

    이기심, 질투보다는 선의의 경쟁.

    같이 경쟁하며 서로 이끌어 가는 동료라고 생각했다.

    ‘나이 많다고 티 내지 말자. 경력 많다고 티 낼 것도 없어. 동기라고 생각하고 처음부터 시작하는 거야.’

    “성환 씨.”

    “네. 형님.”

    “어디 부처 지원하실 생각이세요?”

    “아, 전 재경직이요.”

    조성환의 말에 강백현이 빙그레 웃었다.

    “국세청 가시는구나. 세종으로 가시겠네요. 저는 충남 부주시에 살거든요. 자주 뵐 수 있겠다.”

    “아~ 부주시 사세요? 세종시 바로 옆이잖아요.”

    “넵.”

    백현의 대답에 조성환이 이런저런 궁금한 점을 물었다.

    5급 공개채용에 합격하면 인재개발원 성적과 자기소개서, 필요에 따라서는 추가 면접까지 진행한 후에 ‘부’와 ‘처’의 배정이 결정된다.

    환경부, 인사혁신처, 국토교통부, 감사원 등등 정부에는 수많은 부, 처, 원이 있다.

    “형님은 어디 부처로 가세요?”

    “저는 일반 행정으로 지원해서, 이제 어디 갈지 결정해야죠.”

    백현의 말에 조성환이 무언가를 생각하고는 말했다.

    “인사혁신처나 국토교통부로 가시겠네요.”

    “네?”

    “그쪽이 제일 경쟁률이 치열하잖아요. 형님은 입교 성적 1위니까, 충분히 가실 수 있을 거예요.”

    조성환의 예상에 백현이 슬쩍 고개를 흔들었다.

    “저는 감사원으로 갈 생각이에요.”

    “네?!”

    “왜 놀라세요?”

    “솔직히 예상 못했어요. 형님께서 가려는 곳이 감사원일 줄은 아무도 예상 못할 걸요. 왜 1등이신 분이 감사원을 지원하세요? 말이 안 되잖아요.”

    조성환의 놀란 얼굴에 백현이 담담하게 대답했다.

    “성환 씨.”

    “네. 형님.”

    “저는 공무원 생활 하면서 한 가지 깨달은 게 있어요. 성환 씨가 생각하는 것처럼 공직자들은 깨끗하고 청렴하지 못해요.”

    “형님, 그건 말씀이 조금 지나치신 것 아닌가요? 저희는 오늘 막 임용 됐는데…. 다 아시는 것처럼 그러는 건 조금 기분이 나쁘네요.”

    조성환이 처음으로 탐탁지 않은 표정을 지었다. 결국 백현이 자신의 과거를 밝혔다.

    “성환 씨, 저는 3년 전 부주시에서 9급 공무원으로 임용된 적이 있어요. 그 3년 간 바닥에서 못 볼꼴을 다 보며 살았죠.”

    백현의 고백에 조성환이 말문이 막혔다. 백현이 그런 성환에게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공직생활을 하며 한 가지 느낀 건, 공무원들 태반이 초심을 잃고 국가나 국민을 위하기보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움직인다는 점이에요.”

    “형님, 모든 공무원이 그렇지는 않을 텐데요.”

    “그래요. 모든 공무원이 그렇지는 않죠. 하지만 그 비율이 너무 높아요. 열에 다섯은 그런 식이니까.”

    백현은 주먹을 꽉 쥐었다. 하지만 곧 감정을 절제하며 조성환에게 자신이 겪었던 바를 털어놓았다.

    “확실히, 성환 씨 말대로 제 주장이 너무 터무니없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제가 본 공무원들은 너무 나태하고, 하염없이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어요. 초심을 잃고, 귀찮은 업무를 미뤄두며, 그저 월급날만을 기다리고 시간을 죽이고 있죠. 그런 자들을 내쫓기 위해 전 반드시 감사원에 들어갈 겁니다.”

    백현의 설명에 조성환의 표정이 굳어졌다.

    단순히 신분상승을 위해, 부모님의 희망사항이었기에, 그리고 남들이 보기에도 괜찮은 직업이니까 재경직에 지원한 자신이었다.

    “형님.”

    “네. 말씀하세요. 성환 씨.”

    “감명 깊었습니다.”

    “네?”

    강백현은 조성환의 얼굴을 보니 진심으로 감동한 표정이 역력했다.

    백현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쳐다보지 말아요. 내가 뭐라고, 설마 이걸로 감동했다는 건 아니겠죠?”

    “아니메… 주인공 같았습니다. 너무 멋있었습니다.”

    “아니메?”

    “아, 애니메이션의 일본어가 아니메인데요. 하여튼 아, 정말 감동입니다.”

    백현의 낯간지러운 말을 그대로 받아주는 조성환.

    그런 성환의 대답에 백현은 부끄러운 기색을 지우고 아무렇지 않은 듯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런 후배들을 관찰하던 유령 최용규가 그만 실소를 터트렸다.

    [꼴깝들 떤다. 정말.]

    최용규의 웃음에 강백현이 눈썹을 치켜올렸다.

    “아직 안 갔네.”

    백현의 말에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는 조성환.

    “네? 형님, 뭐라고 하셨어요?”

    백현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성주단지에 손을 넣었다.

    “성환 씨, 제가 조금 다른 종교를 믿어서 가끔 혼잣말을 하거든요. 이해해주세요. 아, 여기 있는 단지도 제사용품이라서 따로 만지시면 안 되고요.”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백현이 성주단지 내의 손톱을 꽉 눌렀고.

    방금 전까지 조소를 머금고 있던 최용규의 표정이 급격히 일그러졌다.

    * * *

    다음날부터 시작된 인재개발원의 생활.

    여기에서의 교육은 7급, 9급 임용시의 교육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제 막 임용된 새내기 공무원들의 반짝반짝한 눈이 전문교수를 향했다.

    노량진에서, 각 대학이 부설한 행시 준비반에서 분투하던 선, 후배와 동기들이 지금은 2015년 신규관리자 임용교육에 함께 하고 있었다.

    현재 교육과목은 사회적 경제(사례편), 그 마지막 시간이었다.

    전문교수 윤성호가 강의를 마무리하기 전에 교육생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오늘 배운 내용을 정리해볼까요? 우리는 사회적 경제를 위해 많은 기업들을 지원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 구체적인 사례는 어떠한 것들이 있을까요?”

    강백현은 손을 드는 한 교육생을 쳐다보았다.

    ‘어? 쟤 이름이 뭐였더라? 임용성적 2등이라고 했었지?’

    국회의원 최장철의 딸이라고 주장하던 여성이 일어나서 질문에 답했다.

    “사회적 기업의 좋은 예로 의료재단을 들 수 있습니다. 현행의 의료서비스가 돈벌이로 전락한 지금, 이들은 시민들의 질병 치료와 건강관리를 위해 무료건강 상담과 노인복지센터 운영, 건강 소모임 활동은 물론, 예방접종을 비롯, 기존 의료기관에서 제공하지 않는 기본보편적인 서비스를 무료로 지원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네. 그럼 공무원들은 무엇을 하죠?”

    “각 지자체에서는 이런 사회적 기업을 돕기 위해 자발적으로 지원 사업을 펼치고 있습니다.”

    전문교수 윤성호는 기분이 좋은 듯했다.

    “최현희 교육생은 아버지를 닮아서 그런지 똑똑하네요. 아버지도 행정고시 출신이시죠?”

    “1987년, 31회 행정고시 출신입니다.”

    “알겠습니다. 최현희 교육생 말고 사회적 기업의 사례에 대한 의견을 한 명만 더 들어볼까요?”

    윤성호 교수의 말에 조성환이 손을 높게 들었다. 그러나 윤성호 교수는 조성환이 아닌 그의 룸메이트 강백현에게 기회를 주었다.

    “네. 거기! 대답해보세요.”

    강백현이 일어나서 먼저 이름을 밝히고 자신의 생각을 문장으로 정리했다.

    “강백현입니다. 사회적 기업은 건강복지, 건설지원, 기초교육지원, 금융, 문화여가, 생활편의, 유통 등 다양한 분야가 있습니다.”

    사회적 기업에 대해 정리하는 백현에게 모두의 시선이 모였다.

    교육생들의 시선이 한 몸에 닿자 백현이라도 살짝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최용규가 씩 웃으며 제안했다.

    [도와줘?]

    강백현은 반응을 보이지 않고 담담하게 설명을 이어갔다.

    “제가 경험한 바로, 사회적 기업을 설명하기 전에 제 주변 사람들을 이야기 해볼까 합니다.”

    내용이 길어질까 우려하는 표정을 짓는 윤성호.

    그리고 질문을 제대로 캐치하지 못했다며 실망한 얼굴인 성적 2위 최현희.

    ‘사회적 기업의 사례를 물어봤잖아. 저렇게 대답하면 안 되지.’

    다른 교육생들 역시 표정이 좋지 않다. 논지를 파악하지 못한 듯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백현은 타인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았다.

    “저는 봉사활동을 다니며 많은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어려운 사람을 돕기 위해 직접 옷을 만들어주고, 직접 재배한 농산물을 기부하고, 움직이기 힘든 장애인들의 재활을 돕기 위해 활동보조인을 자처하는 자원봉사자들을 말입니다. 이렇게 각자 자신의 위치에서 사회에서 소외될 수 있는 계층을 돕고자 사람들이 뭉치면 그게 사회적 기업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차분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사회적 기업이란 즉, 다른 사람을 돕고 싶어 하는 이타주의적 성향을 가진 봉사자들이 모인 기업을 뜻합니다. 앞서 말한 건강복지, 건설지원, 기초교육지원, 금융, 문화여가, 생활편의, 유통뿐만 아니라 해당하는 사람들이 다니는 모든 기업이 여기에 속합니다.”

    백현의 말에 전문교수 윤성호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신기한 접근방식이네요. 좋아요! 개인적으로 강백현 교육생의 말대로 사회적 기업은 자원봉사자들의 모임이라고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공공의 이익에 부합되는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기업이 사회적 기업이니까요. 오늘 강의는 여기까지. 모두 고생했습니다.”

    윤성호의 칭찬에 이어 교육생들의 박수가 흘러나왔다.

    교육이 끝나자 교육생들이 강의실을 빠져나간다.

    백현이 짐을 싸고 일어나려 하는데, 교탁에 있는 윤성호의 메모를 확인한 최용규가 강백현에게 알려주었다.

    [백현아, 윤성호 교수가 너 A 줬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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