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뚝배기 깨러 왔습니다-53화 (53/139)

뚝배기 깨러 왔습니다 53화

강백현은 다시 부주시의 집으로 돌아왔다.

과천 인재개발원으로 가기까지 앞으로 2주일이 남았다.

남은 2주일을 가족과 보내기 위해서였다.

“엄마, 저 왔어요.”

“오늘 금요일인데 휴가 내고 온 거니?”

“아니요. 그만 뒀어요.”

백현의 말에 등짝을 때리는 엄마.

“그 좋은 공무원도 때려 치더니, 회사까지 때려 치면 어떻게 해?”

“아니~ 엄마! 들어보세요.”

“들어보긴 뭘 들어봐! 사표 내고 온 거야? 빨리 취소해! 죄송하다고 싹싹 빌어. 응?”

“아니에요. 엄마, 나 5급 공무원 됐어요.”

백현의 말에 그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게 무슨 말이야?”

“5급 공채 합격했다고요. 예전에 합격한 거 있잖아요.”

“붙은 건 대전 9급 공무원이잖아. 무슨 소리야?”

“5급도 최종 합격했어요. 그런데 시장님이 임용 미룰까봐 엄마한테도 비밀로 했네요. 지금에서야 말해서 죄송해요.”

잠시 정적이 흐른 뒤, 그녀의 입에서 환한 미소가 흘러나왔다.

“아이고! 경사~났네. 경사 났어!”

“하하하하, 그동안 비밀로 해서 죄송해요.”

“아니야~ 역시 내가 아들 하나는 잘 낳았다니까~.”

엄마의 말에 소파 위에서 낮잠을 자고 있던 아빠가 말했다.

“그게 당신 혼자 낳은 거야? 반은 내 거야.”

“아이구~ 말이나 못하면!”

“저 여편네가 뭐라는 거야?”

백현의 아빠는 방긋 웃으며 아들에게 엄지손가락을 내밀었다.

“아들! 장하다! 역시 넌 성공할 줄 알았어.”

“감사합니다.”

공무원 사무관.

지방에서는 아들이 공무원이기만 해도 당당하고 떳떳하게 자랑하고 다닐 수 있다.

그런데 8급 주무관에서 5급 사무관이 됐으니 당연히 경사일 수밖에.

“아빠 용돈 좀 늘려 주냐?”

“네?”

“이번 명절 지나고 동남아 태국으로 친구들이 놀러가자고 하더라구. 30만원이면 간다는데, 한 번 가고 싶어서 그러지.”

아빠의 말에 엄마가 아빠의 등짝에 스매시를 날린다.

“망할 영감탱이! 돈이나 많이 벌어와! 동남아? 동남아라는 말이 입에서 나와? 지금 집안 어려운 게 누구 때문인데?”

“아이고~ 이놈의 여편네 봐라. 그러는 너는 돈 잘 버냐?”

강백현은 부모님의 부부싸움을 보며, 아무 말 없이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부부생활한 지 벌써 34년, 이런 모습이 익숙한 백현은 딱히 말리지도 않고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찾기 시작했다.

공무원 연수원 교육.

이미 3년 전 임용되어 받아본 적이 있으니 잘 알고 있다.

이번 교육도 대동소이할 것이다.

5급 신임관리자 과정.

교육기간은 약 5개월.

5급 공개채용 합격자들 350여명이 같이 학습하는 과정이다.

아직 시간이 남은 백현이 해야 할 일은 바로 사전학습을 이수하는 것.

이-러닝(E-러닝)이라고 해서 온라인으로 이수한다.

공직자세 28시간, 직무 전문성 18시간으로 통합 45시간.

약 2주의 시간이 남았으니 하루에 3~4시간씩은 꼬박 컴퓨터 앞에 앉아있어야 한다는 소리였다.

‘아, 지겹다. 기간은 또 왜 이렇게 긴 거야?’

강백현이 3년 전 임용되었을 때의 교육과정은 간단했다.

백현은 9급 지역인재 채용자 과정으로 들어왔고 임용교육은 단 3주였다. 헌데 지금은 무려 5개월이란 시간이니 팍팍 부담으로 다가왔다.

특히 내용이 많이 달랐다. 9급은 올바른 공직자세, 행정실무 이론, 사회․경제의 이해, 정책설명, 소통기법 등이었다.

헌데 5급은? 관리자로서의 국정철학, 국정과제 이해, 공직가치 내재화, 기초직무, 문제해결적 사고능력의 강화, 국제정서에 따른 국제실무역량 배양 등이었다.

제목만 봐도 변화가 느껴진다.

‘쉽게 말하면 9급은 병사고, 5급은 장교네.’

대한민국의 미래는 뛰어난 두뇌 1%에 의해 정해진다.

5급 공채로 선발된 신규임용자들은 그러한 1%에 선택된 자들.

그들은 그간 고위공무원 선배들이 구축해놓은 국정철학과 공직가치를 수호하고, 직무전문성과 공직 리더십을 갖춰 글로벌 역량을 갖춘 인재로 거듭나야 한다.

백현은 이-러닝 학습을 시작했다.

나라배움터 사이트에 접속해서 신규 아이디를 만들어야 하는데, 이미 공무원으로 지냈던 백현은 관리자에게 전화해서 소속을 바꾸기만 하면 되었다.

이-러닝 과정은 단순했다.

1시간동안 강의를 들으면 마지막에 문제풀이 과정이 나온다.

거기에서 80점 이상 맞추면 통과, 80점 미만이면 재평가다.

강백현이 문제를 보고 알쏭달쏭한 표정을 짓자, 유령인 최용규가 나타나서 답을 말해주었다.

[백현아, 3번이야.]

“아닌 것 같은데요? 2번 같은데요?”

강백현이 2번을 클릭하자, [정답]이라는 표시가 튀어나온다.

“선배, 나한테 불만 있어요? 갑자기 나타나서 이러기에요?”

[인마! 너 나한테 실수한 거야.]

“뭐가요?”

[내 여자친구한테 왜 그러냐 진짜! 어?]

“선배, 그동안 잊으신 게 있는 것 같네요.”

[뭐? 으으으으으. 으악!!]

갑자기 최용규가 고통스러운 비명을 내질렀다.

강백현의 손이 성주단지 안에 들어가 있었다. 성주단지 안에서 손톱을 살짝 긁는 것만으로도 최용규는 고통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건 최용규가 어디 있건 마찬가지였다.

“저, 집에 돌아왔어요. 선배 손톱도 여기 있고요. 그것보다 성현 씨는 어때요?”

[크, 뭘 어때? 프랑스로 떠났지.]

“잘 됐네요.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도전하는 것, 결코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텐데….”

강백현의 말에 최용규가 방긋 웃었다.

[그래서 내가 성현이를 사랑하지! 하하하하!]

“네. 죽어서도 주책이네요. 아~ 선배. 그것보다 고기웅은 어떻게 됐어요?”

[뭘 어떻게 돼? 망했지. 김성현 없는 블랑샤 브랜드가 오래가겠냐? 핵심인력이 전부 빠져나갔는데 신규 디자인이 나올 리가 없지. 700억 날렸다고 그쪽 회장님한테 엄청 혼나고 있던데?]

“그렇군요. 아무튼 선배는 선배 할 일을 하세요. 저 방해 마시고요.”

강백현은 기분 좋은 얼굴로 이-러닝 2번째 과제를 열람했다.

* * *

남은 시간은 금방 흘러갔다.

전 직장인 공무원 동료들을 만나 태웅이가 해임이 아니라 파면을 당했다는 소리를 들었다. 지금은 불복해 소송 중이라고.

전 여친인 미진이는 백현에 이어 태웅, 거기에 숱한 직장 동료들과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했다고 한다.

결국 남자를 갈아탄다는 소문이 퍼져 평이 안 좋다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아쉬운 건 시장과 국장, 과장들 관련 건은 증거가 없어 무마되었다는 것.

계좌를 추적해봤지만 출금 기록은 있는데, 입금, 송금 기록은 없어 증거불충분으로 유야무야 되었단다.

정황상 돈을 받았다는 게 분명해도 증거가 없으면 비리를 잡아낼 수 없다.

그들은 프로였고, 처음부터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놓았다. 결국 선관위의 조사에서도 증거를 잡히지 않고 위기를 벗어날 수 있었던 것.

그것 때문에 김태웅도 금전이 오간 부분에 대해서 소를 제기한 상황인 것 같았다.

한숨이 절로 나왔지만, 지금 당장 백현이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물론, 기분 좋은 일도 있었다. 봉사활동 중 윤수가 친근하게 대해준 것.

“형! 그 누나랑은 잘 됐지?”

“윤수야! 너무 앞서가지 마. 네가 연애에 대해 뭘 안다고 그래? 응?”

“형 바보! 나도 알 거 다 알아. 이것 봐!”

윤수가 김성현의 프로필 사진을 띄워놓는다.

사진 속 김성현의 옆에는 강백현이 어색한 미소를 짓고 서 있었다.

강백현 옆에는 마르코가.

김성현의 옆에는 진희 씨와 연주 씨가 웃으며 서 있다.

‘아, 영패션 런칭 준비할 때 찍었던 사진이구나.’

남들이 볼 때는 그냥 평범한 회사직원들끼리 찍은 사진이건만, 윤수의 눈에는 김성현과 강백현이 다정한 사이로 보이는 모양.

“후후, 쬐끄만 게! 풋살이나 하자!”

“응.”

* * *

2015년 9월 13일 오후 2시, 경기도 과천시의 공무원 인재개발원.

강백현은 그 앞에 도착해 있었다.

“신분증 좀 제시해주시겠어요?”

“네. 여기 있습니다.”

강백현은 접수처에서 신분증을 제출했다.

“네. 감사합니다. 2층 대강당으로 가시면 됩니다.”

“네.”

강백현은 접수를 마치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젊은 친구들이 많았다.

30대 초반에서 중반을 바라보는 자신의 또래도 있지만, 생각보다 어려보이는 친구들도 많이 보였다.

‘분명 똑똑한 애들이겠지?’

인 서울, 서울에서 내로라하는 대학에서 시험을 준비하던 친구들이 모인 곳이다.

그런데 그런 이들의 시선이 백현을 향했다.

왜일까? 그 이유는 접수 서류를 정리하던 공무원의 한 마디 때문이었다.

“와! 축하드려요. 강백현 씨, 1등 하셨었네요.”

강백현은 머리를 긁적이며 물었다.

“아, 성적은 비공개 아니었나요?”

“네. 비공개 맞는데요. 전통적으로 입소자 선서를 시험에서 1등 하신 분이 하시거든요. 강백현 씨가 선서 대표로 되어 있어서 1등이신 것을 알았네요.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아! 넵. 열심히 하겠습니다.”

강백현은 방긋 미소를 지었다.

생각해보니 9급 임용 당시에도 대표로 선서를 했던 것이 기억이 났다.

[감격했냐?]

‘또 언제 나타났대?’

[민법 때문에 1등 한 거 알지? 너 나 때문에 1등한 거야!]

‘아이고~ 말이나 못하면 좀!’

강백현이 대강당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엄청난 규모. 호텔과 비교해 절대 꿀리지 않을 수많은 좌석과 무대.

그 앞에는 사회자들이 분주하게 행사를 준비하는 중이었고 강백현은 선서 대표로서 맨 앞자리로 가야 했다.

“강백현 씨, 앞자리에 앉아요. 이쪽에서 사회자가 마이크 건네주면 대표로 나와서 여기 있는 선서문을 읽으시면 됩니다.”

“네. 알겠습니다.”

인재개발원 사회자의 말에 강백현이 머쓱한 웃음을 지었다.

감격 또 감격.

오후 1시 50분.

이제 대강당이 사람들로 가득하다.

총원 354명, 포기자 5명, 임용예정자 349명.

“야, 그거 들었냐? 조진행 선배, 사법고시 동시 합격했대.”

“대박! 머리 좋은 사람은 달라도 다르구나.”

“우리도 머리 좋거든?”

중도 포기자는 행정고시와 사법고시를 동시에 패스한 사람.

행정고시는 공무원 임용되고 퇴직하면 끝이지만, 사법고시는 한 번 통과하면 죽을 때까지 평생 할 수 있기에 백현은 그들의 선택을 존중했다.

‘부럽네. 아는 사람도 많고.’

학벌로 묶인 것도 있고 스터디 그룹 출신도 있는지 서로 아는 사람들끼리 앉아 소근대고 있다. 그런 게 백현에게는 부러울 따름.

그런데 그런 백현을 알아보고 누군가가 말을 걸었다.

“백현 씨, 이렇게 볼 줄은 몰랐는걸?”

“아, 오랜만입니다.”

“그래요. 인재개발원으로 발령난 건가? 반가운데요?”

“아닙니다. 행정고시 합격해서 관리자과정 교육 받으러 왔습니다.”

“그래?!”

감사원 지방행정감사국장 유성재. 예전에 김태웅을 고발하며 만난 3급 공무원이었다.

그때 뒤쪽에서 누군가가 말한다.

“원장님? 이제 곧 행사 시작합니다.”

“아, 그래요. 알았어요. 처음이라 떨리네요. 금방 갈게요.”

“네. 알겠습니다.”

유성재 국장이 백현에게 말했다.

“나, 여기 인재개발원장으로 어제부로 부임했어요. 강백현 씨, 이것도 인연이네요. 잘 해봐요.”

“네. 열심히 교육받겠습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