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뚝배기 깨러 왔습니다-48화 (48/139)

뚝배기 깨러 왔습니다 48화

고기웅은 강백현의 말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자신의 역린, 유일한 약점은 바로 할아버지.

현재 성한 그룹의 회장님이었다.

그의 이름이 나오자, 자신도 모르게 입이 다물어지고 말았던 것이다.

강백현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옥상을 떠나버렸다.

그 뒷모습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고기웅은 몇 분이 지나서야 이성을 되찾았다.

분노가 끓어올랐다. 하지만 고기웅은 할아버지의 존재 앞에서는 억압될 수밖에 없는 사람이었다.

이를 아직 극복하지 못한 고기웅이었기에 그 감정은 복잡해져가기만 했다.

그리고 그걸 뒤에서 지켜보는 최용규.

[아, 회장님 말만 나오면 벌벌 떤다는 소문이 사실이었나?]

* * *

같은 시각.

김성현은 자신의 아버지인 김도한과 회장직무실에서 대면하고 있었다.

“성현아, 아빠는 우리 성현이를 위해서 길을 열어주고 있는 거야.”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요! 그럴 거면 나랑 의논이라도 했어야죠. 어떻게 메리야트 패션 그룹을 단 하루 만에 매각해요? 네?”

이해를 바라는 아버지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딸의 격돌.

“블랑샤의 성공은 확실히 예상 밖이었지만, 메리야트 패션 전체 중 블랑샤의 매출은 고작 10% 미만이었잖니!”

“하지만 그 무엇보다 가능성 있는 브랜드였어요. 제가 메리야트 그룹에 입사할 때부터 제 사람들과 같이 만든 브랜드라고요! 그걸 성한 그룹에 넘겼다구요? 다른 데도 아니고 성한이요?”

김성현의 말에 김도한 회장의 주름이 짙어졌다.

“700억이란 금액이 결코 작은 금액이 아니야. 그만큼 성한 그룹에서는 블랑샤를 비롯한 메리야트 패션을 좋게 봐줬고, 난 그 기회를 잡기 위해 매각시기를 서둘렀을 뿐이야. 이건 회사를 위한 거야. 너도 알잖니?”

“알죠. 매일매일 회사, 회사, 회사! 아빠 입장도 이해 못하는 건 아니에요. 계열사 매각을 통해서 유동성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기사도 봤어요. 분명 그룹 회장으로서 올바른 결정을 한 것이겠죠. 주주들도 아빠를 지지해줄 거고요.”

“이해해줘서 고맙다.”

김도한 회장의 말에 김성현이 쓴웃음을 지었다.

“나도 사실 알고 있었어요. 회사 어려운 것, 그래서 결국엔 계열사들 하나하나 정리될 거 분명 알고 있었는데…. 적어도 나한테는 귀띔을 해줬어야죠. 처음부터 이렇게 될 거라는 거 알고 있었으면 미리 말해줬으면 좋았잖아요!”

“그러면? 그랬으면 결과가 바뀌었겠니?”

김도한의 말에 김성현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딸의 실망 섞인 표정에 김도한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세상에는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 일도 있는 거란다.”

하지만 김성현은 이 때 스마트폰에 적힌 문자를 확인했다.

그리고 소리를 내질렀다.

“그만!”

“성현아.”

“그만! 그만 좀 해요! 아빠! 내가 모를 줄 알아요? 방금 전까지 고기웅 본부장 있었잖아요.”

“그런 일 없었어.”

“없긴 뭐가 없어요! 이미 강 비서가 만났다고 문자 받았어요. 거기 회장님이 절 손부(손자며느리)로 원한다는 이야기 나눴다면서요!”

“……”

김도한의 얼굴에는 당황이 가득했다.

불과 10분 전에 나눴던 이야기였다.

서로 간에 비밀로 하기로 하고, 절대 새어나가지 않도록 신신당부한 것은 오히려 그쪽이었는데….

“그만해요. 아빠. 실망이에요.”

“성현아.”

“저, 마음 고쳐먹었어요. 고기웅이랑은 절대 결혼 안할 거예요. 목에 칼이 들어와도 안 하니까, 아빠는 성한 그룹에 손 내밀지 말고 다른 방법 찾아봐요.”

“김성현! 김성현!”

“아빠, 아니 회장님, 저 오늘부로 독립할 거예요. 이제 회장님이 원하는 삶을 살진 않을 거예요. 다시는 그런 일 없으니까 저한테 기대하지 마세요.”

“김성현! 김성현!”

김성현이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바깥에서는 최용규로부터 현재 상황을 전해들은 강백현이 무표정한 얼굴로 김성현의 지시를 기다리고 있었다.

“집으로 가요.”

“네. 실장님.”

* * *

집에서 짐을 싸는 김성현. 그 옆을 지키는 유령 최용규.

강백현은 차고에서 김성현을 기다리고 있었고 그 옆에는 룸메이트이자 상사인 박창현이 있었다.

“백현아, 너 오늘 고기웅 본부장하고 뭐 있었냐?”

“글쎄요?”

“내 동생 지훈이가 고기웅 본부장이 너 단단히 벼르고 있다고 하던데?”

“모르겠습니다. 관심도 없고요.”

강백현의 관심은 오로지 패션 브랜드 블랑샤 뿐이었다.

그곳에서 일한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패션쇼를 진행하며 애착이 생겨 있었다.

어차피 떠날 거라고 알면서도 팀의 멤버 중 한 사람으로 녹아들기 시작했는데 이렇게 강제로 무너져 내리니 마음이 씁쓸할 따름이었다.

그 때, 회장님이 탄 차가 차고에 들어왔다.

“김 기사, 대기하게.”

“네. 회장님.”

김도훈 회장은 모든 일을 제쳐두고 딸을 설득하기 위해 달려온 것이었다.

김도훈 회장이 집 안으로 들어가자, 안쪽에서 고성이 울려 퍼졌다.

『짐 가만히 안 둬?! 네 마음대로 할래?! 세상이 그렇게 호락호락한 줄 알아?』

회장님의 고성.

그리고 김성현의 분노가 이어졌다.

『내 인생 상관 말라고요. 아빠! 그만 좀 해요!』

『너 집 밖으로 나가는 순간, 끝이야. 알았어?』

『네. 끝이에요. 끝. 끝!』

김성현이 여행용 가방을 질질 끌며 나왔다. 그리고 김도훈 회장이 분노에 찬 눈으로 소리쳤다.

“김성현!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 나한테 용서 빌고, 집으로 들어와.”

“싫다고 했어요. 싫어요.”

“김성현! 김성현! 김성현!”

김성현은 김도한 회장의 말을 무시하고, 여행용 가방을 백현에게 넘겨주며 말했다.

“가요.”

“어디로 가십니까?”

“일단 가요!”

강백현은 김도한 회장의 얼굴을 바라보며 허리를 숙여 인사를 건넸다.

그러자 김도한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김성현! 하루만이야. 더 이상 방황하는 거 용납 못해. 알았어?”

그러나 김성현은 아버지의 말을 무시하고 백현을 재촉할 뿐이다.

“빨리 가요! 차량 출발시켜요.”

“네. 실장님.”

차량이 출발하고 강백현이 심각한 표정으로 김성현에게 물었다.

“어떻게 되신 겁니까?”

“새로 시작할 생각이에요. 걱정하지 마요.”

“그래도 이건 너무 급작스러워서 그렇습니다. 괜찮으십니까?”

“네. 잠시만요.”

김성현은 핸드폰으로 걸려오는 엄마, 노진희의 전화를 애써 외면했다.

‘엄마, 미안해. 나 독립할 거야.’

하지만 문제는….

“실장님, 어디로 갈까요?”

“네?”

“어디로 모시면 될까요?”

“일단 근처 호텔로 가주세요. 메리야트 호텔 말고요.”

“네. 알겠습니다.”

근처 5성급 호텔.

그런데….

“저, 고객님? 현금이나 다른 카드는 없으신가요? 카드 정지 상태인데요?”

“네?”

“정지된 카드라고 나오는데요.”

강백현은 민망한 표정을 짓는 김성현을 보며 말했다.

“실장님? 회장님이 카드 정지시킨 것 같습니다. 회사 카드신가요?”

“네. 그렇긴 한데, 이런 적이 없어서.”

“일단 오늘은 여기 묵으시죠. 돈은 제가 내겠습니다.”

“백현 씨, 괜찮아요.”

“아닙니다. 일단은 묵으시죠. 일단은 안정이 먼저인 것 같습니다.”

강백현은 자신의 신용카드를 건네며 호텔비를 계산했다.

1박에 33만원.

속으로는 피눈물이 나왔지만, 얼마 전 보너스를 받은 것에 대한 보답이라고 생각했다.

한편 짐을 들고 호텔방에 들어간 김성현은 망연자실한 상태가 되었다.

정지된 카드.

김도한 회장의 지시일 것이다.

김성현을 지켜보고 있는 최용규도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강백현 앞에서는 강한 척을 했지만, 실제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

물론 대출을 받고, 지인들에게 돈을 빌리면 된다지만….

김성현은 스마트폰을 켜고 부동산을 알아보았다.

하나같이 보증금을 요구하고 있었다.

서울에서 월세라도 얻으려면 최소 2,000만원의 보증금이 있어야 한다.

김성현은 자신의 계좌를 확인해보았다.

해외 유학시절 비자를 받기 위해 잔액증명서를 발급했던 계좌를 기억해낸 것이다.

그런데 계좌에 132,320원 밖에 없다.

김성현은 절망적이었다.

사실 그녀는 돈 관리를 직접 하지 않았다.

전부 카드로 긁고, 그게 안 되면 외상이거나 박창현 비서를 통해서 해결했다.

그도 그럴 것이, 비용 처리를 위해 회사 돈으로 전부 처리하라는 김도환 회장의 방침이 있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수중에 있는 금액은 겨우 10만원 남짓.

그녀의 돈을 관리하는 사람은 그녀의 엄마인 노진희.

그래서 전화를 걸었는데….

“엄마, 내 돈 엄마가 관리하는 중이지?”

- 성현아~ 어디야?

“엄마! 내 돈 좀 계좌로 송금해줘. 2,000만원만! 원룸이라도 구하게. 응?”

- 그러지 말고 들어와. 너희 아빠 지금 단단히 화났어.

“엄마, 엄마는 나 도와줘야지. 엄마마저 아빠한테 설득당하면 어떻게 해! 응?”

- 그러지 말고, 오늘 하룻밤 자고 내일 바로 들어와. 알았지? 아빠한테는 내가 잘 말해놓을 테니까.

“엄마! 엄마!”

- 돈은 못 부쳐줘. 비서들한테도 다 말해놨으니까, 곤란한 상황 만들지 말고. 알았지?

노진희도 결국 김도한 회장에게 설득당하고 말았다.

김성현은 좌절했다.

그런데 엄마의 전화가 끊기자마자 동생 김동성의 전화가 걸려온다.

- 누나, 돈 필요해?

“어? 동성아. 너 누구한테 들었어?”

- 크크, 누나, 딴 생각하지 말고 그냥 기웅이 형이랑 만나. 기웅이 형 뭐가 싫은데? 솔직히 기웅이 형이 아깝잖아. 누나는 뭐 믿고 지금 튕기는 거야? 형이 좋다고 할 때 빨리 잡아서 결혼하면 되잖아. 누나만 희생하면 회사도 살고, 누나도 행복하고, 기웅이 형도 행복한데 누나는 왜 그래?

“김동성! 너 진짜!”

- 누나 적당히 해. 아빠한테 말했어. 내일까지 안 들어오면 호적 파버리라고. 누나 후회하지 말고 집에 빨리 들어오는 게 좋을 거야.

상처를 후비는 김동성의 말에 김성현이 결국 통화종료 버튼을 누르고 말았다.

사실 김성현은 생각보다 비싼 집값에 화들짝 놀랐다.

보증금 2천에 월 60, 보증금 3천에 월 50, 전세는 보증금 7천.

방 하나 겨우 딸린 서울의 원룸 가격이다.

거기에 사무실도 얻어야 한다.

헌데 가지고 있는 돈은 겨우 13만원 남짓.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현실을 깨달은 김성현이 좌절했다.

그리고 그 옆을 지키던 최용규가 해법을 찾기 위해 자신과 말이 통하는 강백현을 찾는다.

강백현은 일단 차 안에서 대기 중이었다.

[백현아, 네가 돈 좀 빌려줘라. 너 3,000만원 있잖아. 그거면 방 어디 하나 구할 수 있지 않냐?]

강백현은 자초지종을 전해 듣고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선배, 그건 아니잖아요. 전 평생을 모은 돈이에요.”

그러나 최용규는 물러서지 않았다.

[인마! 그거 하나 못해줘?]

최용규의 말에 강백현이 한숨울 내쉬었다.

“집만 구하면 되는 겁니까?”

[어?]

“집만 구하면 되는 거냐고 물었습니다.”

[아니, 사무실도 구해야 하는데?]

“하하, 서울에서 사무실 구하려면 얼마 필요한지 아십니까?”

[그거야 나도 모르지. 내가 그쪽으로는 잘 모르잖아.]

“그러시겠죠. 공무원을 5급부터 시작했으니 바닥 쪽은 아무것도 모르겠죠. 알았어요. 한 번 구해볼게요. 집하고 사무실만 구하면 되는 거죠?”

[응.]

강백현은 잠시 고민하다 스마트폰을 켜서 국가지원사업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말단 공무원부터 시작했기에 아는 잡다한 지식들이 있다.

그리고 복지정책들은 항상 새로 생겨난다.

공무원이기에 빠삭하게 파악해둔 지식들로 지금의 해법을 찾을 수 있었다.

“독신 여성이면 바로 주거신청 할 수 있겠네요. 사무실은 심사를 봐야겠지만, 김성현 실장님 경력 정도면 충분히 지원사업 얻을 수 있을 것 같고요. 일단 가능한 걸로 알고 추진해보겠습니다. 단, 제 개인돈은 안 씁니다. 아시겠죠?”

강백현의 말에 최용규가 엄지손가락을 내밀었다.

[진짜 되는 거지?]

“당연하죠. 제가 누굽니까? 부주시 허가과 허가담당 8급, 강백현 주무관이었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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