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뚝배기 깨러 왔습니다-46화 (46/139)
  • 뚝배기 깨러 왔습니다 46화

    김성현의 활약에 힘입어 블랑샤는 명실상부 최고의 잇템으로 거듭났다.

    재벌 3세가 직접 디자인한 드레스.

    재벌 3세가 직접 입고 나온 속옷.

    김성현 실장이 직접 입어보며 만드는 여성복, 블랑샤.

    그래서 그런지 여성에게 높은 신뢰감을 얻고 있었다.

    매장을 찾은 아줌마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나 이거 살래! 김성현이 직접 입을 정도면 허투루 만들진 않았을 거 아니야?”

    “맞아! 속옷도 직접 제작해 입는대. 레이스 달린 거 봤지? 이거 걔가 입고 나온 거라니까!”

    “대박! 여우같이 생겨 가지고 참 용감해! 어떻게 이렇게 대담한 란제리를 입고 무대에 설 생각을 했지?”

    “으이구! 미연이 넌 요즘 젊은 애들 얼마나 대담한지 몰라? 재벌이라고 뭐 다르겠니? 자기 몸매로 시선 끌어서 대박 냈잖아. 뒤를 봐!”

    블랑샤 매장 입구에선 직원이 줄을 세우고 있다.

    한번에 20명씩만 들어갈 수 있도록 통제했기 때문이다.

    뉴스에서도 하루 종일 김성현 이야기 밖에 없었다.

    메리야트 그룹의 자금사정을 꼬집는 뉴스도 많았지만, 전반적으로 김성현에 대한 칭찬과 그녀의 행적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었다.

    같은 시각, 사무실에서는 계속해서 좋은 소식이 들리고 있었다.

    “자기야! 다음 주에 샬롯 측 CEO가 한국에서 미팅을 하자는데?”

    “마르코 씨! 지금 알퐁스 씨가 온다는 건가요?”

    “응. 방금 전 그쪽 비서실장하고 통화했어. 자기야! 원래 패션은 한 방이야. 자기는 그 기회를 잡은 거고.”

    고연주도 마찬가지다.

    “실장님! 올리비아 측에서 저희와 만나보고 싶다고 합니다.”

    “올리비아?”

    “네. 이탈리아에서 여성복 Top10에 들어가는 핫한 브랜드에요. 거기 대표가 이태리 귀족 가문 출신이기도 하고요.”

    하루 종일 국내 바이어는 물론 해외 바이어들에게서 연락이 왔다.

    사무실에는 웃음꽃이 필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패션쇼에 런칭했던 드레스들을 긴급 발주하느라 바쁘게 하루를 보냈건만, 사람들의 얼굴에는 미소가 걷힐 기색이 없었다.

    저녁 10시, 드디어 사무실의 불이 꺼졌다.

    하루 종일 전화기를 붙들고 일에 시달렸지만 사람들은 웃으며 헤어졌다.

    김성현이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기다리던 강백현이 슥 하고 비타민 음료를 건넸다.

    “실장님! 드세요.”

    “고마워요.”

    “축하드립니다.”

    “운이 좋았던 거죠. 사실 집안에선 제가 패션쇼 여는 걸 그리 탐탁지 않게 여겼어요. 이번이 3번째였거든요.”

    “아….”

    “그 전까지의 반응은 그리 좋지 못했죠. 적자만 겨우 면하는 수준이었으니까.”

    김성현은 작은 한숨과 함께 말을 이었다.

    “사실 모르겠어요. 지금 이게 정말 잘 되고 있는 건지, 아니면 아빠 말대로 기업이미지를 망가트린 건 아닌지….”

    그녀의 강백현이 입을 열었다.

    “글쎄요.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요?”

    “네?”

    “실장님이 노력했기에 지금의 결과가 나오지 않았나 싶어요. 전부 직접 입어보면서 본인이 느낀 불편한 점을 개선하신 거잖아요. 제가 그걸 봤고요.”

    “봤죠. 그래요. 백현 씨는 다 봤죠.”

    그녀의 말에 강백현은 사무실에서 속옷을 착용하던 김성현의 모습을 떠올렸다.

    “네. 아름다우셨어요. 사무실에서 민망하긴 했는데… 진짜 너무 예쁘셔서 눈이 부셨습니다.”

    그런데 김성현이 갑자기 새침하게 말했다.

    “사무실에서 나 옷 갈아입는 이야기 한 건가요?”

    “네?!”

    “디자인 이야기 하는 거잖아요. 백현 씨가 첫날 말했던 거. 제가 디자인한 원피스 엉성하다고 했었잖아요.”

    “아! 그런 뜻으로 말한 게 아니라….”

    “아니에요. 덕분에 저도 반성했으니까. 『차르르 떨어지는 플리츠』란 말은 도대체 어디서 배웠어요? 슬림한 허리라인을 강조해야 한다고, 단추 디자인이 어설프면 없는 게 낫다고 말한 것도 다 도움이 됐으니까.”

    “네?”

    “백현 씨가 그 때 말한 내용을 반영한 상품, 엄청 잘 팔리고 있어요. 그 아이템이 반응이 제일 좋은 거 몰라요?”

    강백현은 얼떨떨했다.

    ‘미진이가 항상 입에 달고 다니던 불만사항을 말했을 뿐인데….’

    하긴 미진이는 패션감각이 좋았다.

    일단 쇼핑을 좋아했다.

    하루에 4시간씩 쇼핑을 하고 다녀도 지치질 않았다.

    그때 따라다니면서 맨날 들었던 이야기가 이렇게 큰 도움이 될 줄은 몰랐다.

    그러나 강백현은 겸손했다.

    “다 실장님이 잘 하셔서 그런 거죠.”

    “아니에요. 아이템 이야기 말고도 백현 씨가 해준 말들이 큰 도움이 된 게 많아요. 덕분에 새로운 인생을 맞이하게 된 거 같아요.”

    “그렇게 말씀해주시니까 감사합니다. 다 왔습니다. 들어가시죠.”

    “네! 내일 아침 7시 30분에 봐요.”

    “네. 알겠습니다. 조심히 들어가세요.”

    김성현을 집 앞까지 바래다준 강백현이 그녀의 뒷모습을 끝까지 바라보았다.

    그러자 최용규가 옆에서 말을 걸었다.

    [내가 왜 성현이 좋아했는지 알겠지?]

    “응. 이제 알 것 같네요. 사람이 선하네요. 사람이 됐어요.”

    [그래. 그러니까 함부로 넘보지 마. 어차피 너한테는 과분한 사람이야.]

    “알았어. 알았으니까 그 이야기 그만 좀 하세요.”

    [삐진 거냐? 너 삐졌지?! 어?!]

    “안 삐졌습니다. 지겨워서 그럽니다. 지겨워서.”

    * * *

    집에 들어간 김성현은 자신을 외면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았다.

    “아빠, 왔어요.”

    “그래! 늦었다. 들어가.”

    퉁명스럽게 말하며 시선을 피하는 김도한 회장.

    ‘치, 그냥 [내 예상이 틀렸구나. 잘 했다.] 이 한 마디면 되는데…’

    회장이란 자리가 그러서인지, 김도한 회장은 자신의 잘못을 잘 인정하지 않았다.

    떨어질 거라 예상한 회사 주식은 오히려 반등했고, 메리야트 그룹의 이미지는 긍정적으로 변했다.

    마이너스 프리미엄이 붙었던 채권 가격도 정상을 되찾았다.

    무려 2%나 올랐다.

    그렇기에 김성현은 생각했다.

    김도한 회장이 겉으론 저렇게 퉁명스러워도 사실은 칭찬하고 있을 거라고.

    이제 자신을 메리야트 그룹의 일원으로서 받아줄 거라고.

    어느새 침대에 누운 성현.

    그녀는 하늘나라에 간 옛 애인을 생각하며, 혼잣말을 내뱉었다.

    “용규 씨, 나 용규 씨 없어도 열심히 살게. 내 운명에 저항할 거야. 스스로 성공해서 메리야트 그룹의 예전 명성을 되찾을 거야. 자기가 말했지? 여자도 할 수 있다고. 맞아. 할 수 있어. 내가 그걸 증명해보일 테니까.”

    그리고 그 옆에서 눈물을 쏟으며 펑펑 우는 최용규.

    [그래! 성현아, 힘내! 내가 항상 곁에 있을게. 응?]

    서로 옆에 있어도 느낄 수 없는 두 사람의 마음.

    최용규는 새근새근 자고 있는 김성현의 곁을 밤새 지키고 있었다.

    * * *

    같은 시각.

    박창현의 얼굴엔 불만이 가득 떠올라 있었다.

    “지금 들어오냐?”

    “네. 박 비서님, 무슨 일 있으세요? 표정이 왜 그러세요?”

    “무슨 일은 너한테 있잖아.”

    뜬금없는 소리에 백현이 되물었다.

    “뭐가요? 저한테 무슨 일이 있는데요?”

    “성현 아가씨가 너한테 보너스 줘야 한다고 비서실장님께 요청했다는데?”

    “진짜요? 보너스요?”

    “그래. 통장 확인해 봐. 오늘 월급날이니까.”

    스마트폰 인터넷 뱅킹을 통해서 월급을 확인했다.

    무려 890만원.

    월 200남짓 받던 공무원 생활.

    그 금액과 비교하면 진짜 분에 넘치는 금액임이 틀림없었다.

    그걸 훔쳐본 박창현이 백현을 나무라기 시작했다.

    “우와~ 미쳤다. 누구는 오자마자 한 달에 890만원 받고, 누구는 그 절반도 못 받고.”

    그런데 강백현의 생각은 달랐다.

    “절반도 많은 거 아닌가요?”

    “뭐?! 야! 너 뭐라고 했어?”

    “아, 물론 제가 이번 달에 진짜 많이 받긴 했는데, 절반이면 괜찮잖아요.”

    “장난 하냐? 서울에서 그것 가지고 되냐?”

    “그럼 박 비서님도 도련님한테 보너스 달라고 하시면 되잖아요.”

    “뭐라고?”

    “매번 대리운전도 하시고 밤늦게 불려나가시는데, 도련님께 말씀드려보면 되잖아요. 박 비서님 요즘 도련님 전담으로 마크하시던데!”

    “너 그렇게 말한 거지? 성현 아가씨한테 월급 올려달라고 막 떼썼지? 어?”

    “아니요! 제가 그런 말을 왜 해요!”

    “그런데 왜 넌 나한테 그런 말을 해? 이거 했는데?”

    “아닙니다. 잘래요! 피곤해서 자야겠어요. 아! 다음 주에 보일러실 공사 끝나요. 아시죠?”

    “알아.”

    “그럼 먼저 씻고 잡니다.”

    “그래.”

    * * *

    다음날, 백현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여보세요?”

    - 아! 백현 씨! 저 대현 백화점 조민성이에요.

    “네! 민성 씨, 안녕하세요.”

    대현 백화점 판교점의 MD를 맡고 있는 조민성.

    그가 진심으로 축하해줬다.

    - 이번에 대박 치셨던데요. 축하드려요.

    “아! 네. 감사합니다. 조민성 기획자님은 요즘 어떠세요?”

    - 저희야 항상 밀어드릴 신규브랜드 런칭을 찾고 있죠. 제가 알아보니까 블랑샤 브랜드가 아직 백화점 아무데도 안 들어갔더군요?”

    “네. 그렇죠.”

    - 그래서 저희 쪽에 입점 해보시는 것은 어떨까 싶어서요.

    희소식이었다.

    백화점 런칭은 어느 브랜드나 꿈꾸는 것.

    그런데 먼저 연락이 왔다는 것은 제대로 밀어주겠다는 이야기.

    혹시나 몰라 다시 한 번 물었다.

    “백화점 입점이요? 편집샵?”

    - 아니요! 백현 씨! 편집샵을 왜 넣나요? 블량샤 정도면 당연히 정규 입점이죠!”

    “아~ 그럼 저희 실장님께 보고를 드려봐야 할 것 같습니다.”

    - 네. 안 그래도 마르코 형하고 김성현 실장님 전화가 계속 통화중이어서, 백현 씨한테 먼저 연락드린 겁니다. 좋은 소식 기다리고 있겠다고 꼭 말씀드려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모든 게 순전히 풀려갔다.

    백화점 입점 제의 소식을 듣고, 모두의 얼굴에 또 한 번 웃음꽃이 피었다.

    그런데…

    사무실에 원치 않는 얼굴이 나타났다.

    “자~자~자! 짐들 싸요!”

    고기웅의 등장.

    그는 이삿짐센터 직원들과 함께 사무실로 들이닥쳤다.

    김성현이 단단히 화가 나서 소리쳤다.

    “기웅 씨, 지금 뭐하세요?”

    “뭐하긴요? 저희 회사 이사하는 건데요.”

    “저희 회사라니요? 여기 우리 회사에요. 메리야트 패션이라고요!”

    그러나 고기웅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분명 어제까진 성현 씨 말이 맞았어요. 메리야트 패션이었죠.”

    “네?!”

    “어제까진 분명 메리야트 패션이었단 말입니다. 그러나 오늘부터는 저희 성한 패션입니다. 블랑샤 브랜드도 저희가 인수했고요.”

    “뭐라고요?!”

    “성현 씨, 팀원들하고 1주일만 쉬다가 우리 회사로 합류해요. 이제 블랑샤 브랜드를 비롯한 메리야트 패션은 제가 움직입니다.”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그 날 오후, 신문에 대서특필되었다.

    [화제의 브랜드 블랑샤를 만든 메리야트 패션, 성한 패션에 인수되다.]

    [메리야트 그룹, 메리야트 패션 주식을 시간외단일가로 성한 그룹에 넘겨.]

    [메리야트 유동성 문제 해결, 잠재력 높은 블랑샤 브랜드를 처분. 이제는 기존 호텔 서비스업 위주로 다시 사업구조 개편]

    황당했다.

    700억에 메리야트 패션 전부를 넘긴 김도한 회장.

    그걸 딸에게 한 마디 상의도 없이 처리해버린 그의 결정은 모두를 충격에 빠트렸다.

    빈 사무실을 둘러보는 사람들 중 슬퍼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김성현의 입장과는 상관없이 오히려 성한 그룹으로 가게 되었다며 기뻐하는 직원들이 많았다.

    중견기업이 대기업에 인수되면 중견기업의 직원들은 당연히 기뻐하는 것이다. 허나 김성현 본인에게는 너무나 가혹한 현실.

    그리고 그녀와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던 4명도 마찬가지.

    사무실은 곧 이삿짐센터 직원에 의해 아무 것도 남기지 않고 비워졌다.

    그 광경은 정말 처량하기 그지없었다.

    고연주가 김성현에게 위로의 말을 건넸다.

    “실장님, 괜찮을 거예요.”

    윤진희도 말했다.

    “실장님, 마음 굳게 가지세요.”

    그러나 김성현은 오히려 고연주와 윤진희를 걱정했다.

    “연주야, 진희야. 정말 미안해. 이렇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어.”

    마르코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럴 줄 알았으면 성공시키는 게 아닌데… 이렇게 될 줄 누가 알았겠어?”

    성공의 기쁨도 잠시, 모든 것을 빼앗겨 버린 메리야트 패션 기획1팀. 그들은 전부 그렇게 끝나는 줄 알았다.

    그러나 포기를 모르는 사내가 있었다.

    “실장님, 어떻게 하실 겁니까?”

    “네?”

    “우리 실업자 만들 거예요? 우리 성한 패션으로 출근해요?”

    “백현 씨, 당연히 그렇게 해야죠. 거기서 월급도 올려주고, 고용도 유지해줄 거예요.”

    “저는 저 이야기를 말한 게 아니에요. 김성현 아가씨! 본인이 어떻게 하겠냐고 물어본 거죠.”

    “……”

    “저번에 술집에서 저한테 말했죠? 운명에 저항하고 싶다고! 성공하고 싶다고!”

    “……”

    “그럼 지금부터 보여줘요. 난 성한 패션에서 일하고 싶은 게 아니라 성현 패션에서 일하고 싶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결정해요. 포기할지, 다시 시작할지 지금 결정해요. 난 당신 따라갈 테니까.”

    강백현의 말에 마르코도 윤진희도, 고연주도 말했다.

    “실장님! 우리도 실장님 뜻에 따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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