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뚝배기 깨러 왔습니다-40화 (40/139)
  • 뚝배기 깨러 왔습니다 40화

    강백현은 메리야트 그룹에 슬슬 적응하고 있었다.

    블루투스 이어폰을 끼면 사람들을 의식하지 않고도 최용규와 원활히 대화할 수 있다는 것도 알았다.

    “사람들이 진짜 빠릿빠릿해. 공무원하고 많이 달라요.”

    [그거야 못하면 잘리니까.]

    “성과 내면 성과 내는 대로 인정받는 것도 있잖아요. 선배도 공무원 해봐서 알겠지만, 열심히 한다고 해서 반드시 승진하는 건 아니잖습니까? 안 그래요?”

    [분석해서 좋댄다. 그것보다 지금 어디 가냐?]

    “어제 비와서 조사 실패했던 신촌 갑니다. 오늘은 날씨가 좋아서 젊은 사람들 많을 것 같으니까 현장 조사 가봐야죠.”

    [현장?]

    “넵.”

    2015년 8월.

    신촌, 젊음의 거리.

    여기는 중-고생은 물론, 대학생들의 모임장소로 유명하다.

    강백현이 한숨을 내쉬며 한탄했다.

    “아, 쉽지 않네요.”

    [뭐하려고?]

    “말씀 드렸잖아요. 현장 조사한다고요. 그런데… 용기를 내봐야 될 것 같습니다.”

    백현의 목표는 인형 뽑기를 하고 있는 두 명의 여중생이었다.

    굳게 마음을 먹은 백현이 얼굴에 철판을 깔고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저기 학생들, 혹시 옷은 어디서 사요?”

    “네?”

    “제가 패션 브랜드 런칭 담당자거든요. 설문조사차 현장 나왔어요. 중학생으로 보이시는데, 옷이 굉장히 캐주얼해서 시선이 갔어요. 옷은 보통 어디서 사나요?”

    “음… 그냥 마음에 드는 거 사는데요?”

    “마음에 드는 거? 보통 어떤 거요?”

    한 여중생이 대답했다.

    “음… 원색? 색깔 그냥 하나로 된 거 사는데요? 와, 대박 인터뷰!”

    그런데 옆의 친구가 대답한 여중생을 나무랐다.

    “지랄! 아저씨, 얘는 옷 볼 줄 몰라요.”

    “그래요?”

    “네. 미현이는 그냥 원색만 좋아하는데 요즘 친구들은 캐릭터 디자인 들어간 거 많이 입어요.”

    “캐릭터요?”

    “네. 동물 캐릭터나 아니면 귀여운 거. 관심 가질만한 거. 저는 지금 악어 티 입고 있잖아요?”

    “아… 그러네.”

    “네. 저는 악어나 귀여운 오리 캐릭터 이런 거 좋아하는데, 친구들도 이 브랜드 요즘 많이 입어요. 애니멀즈라는 브랜드인데, 요즘 엄청 핫해요.”

    애니멀즈. 홍콩에서 들어온 브랜드라고 한다.

    각 캐릭터를 개성 있게 그린 것이 젊은 친구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데 주요했던 것 같다.

    강백현이 스마트폰을 내놓으며 말했다.

    “요게 아저씨가 요즘에 런칭하는 브랜드거든요. 이거 보면 어때요?”

    스마트폰 화면.

    며칠 전, 푸드 셔츠를 찍어두었던 사진.

    “와! 극혐! 저걸 왜 입어요?”

    강백현은 여중생의 반응에 다시 질문했다.

    “먹음직스럽지 않아요? 익숙하기도 하고요.”

    “완전 싸 보이잖아요. 노땅 티 나고 완전 저렴해 보이는데~ 거지도 아니고 음식 그려져 있는 거를 왜 입어요?”

    어른들의 눈과 아이들의 눈은 확실히 다르다.

    영문으로 세계 주요 도시와 유명한 음식들을 디자인한 푸드 패션.

    나름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아이들의 시선은 역시 다르다.

    이번에는 남중, 남고생들에게 물어보았다.

    그런데 이녀석들 대부분은 솔직히 패션에 크게 관심이 없는 듯했다. 그래도 나름 꾸미는 녀석들을 만나보았는데, 그 친구들은 디자인보다는 가성비를 중요시했다.

    “가격이 너무 비싸요. 이런 건 안사죠. 저는 50% 세일 아니면 엄마가 사줄 때 말고는 안 사는데요?”

    “그래? 결국 마음에 안 드는구나?”

    “네. 형이라면 이거 이 가격에 사겠어요?”

    그리고 마지막 대학생 커플.

    “커플룩으로 이 디자인은 어때요?”

    “아… 괜찮은데요?”

    다행히 20대에는 어필. 그런데 역시 가격이 문제다.

    “이게 8만원이라고요? 미쳤어. 아무도 안 사 입을 것 같은데요?”

    “맞아. 8만원, 완전 웃겼다. 요즘 폴로도 직구로 사면 5만원인데, 완전 처음 보는 브랜드가 무슨 8만원이야? 아저씨 이거 안 팔려요.”

    이즈음 되면 브랜드의 성패가 보인다.

    백현은 현장 조사를 마치고 사무실에 돌아왔다.

    하필이면 회의시간이다.

    마르코가 당황한 얼굴로 말했다.

    “자기야~ 우리 큰일 났어.”

    “네?”

    “대현 쪽에서 우리 편집샵 런칭 일자를 두 달이나 앞당겨 달래.”

    마르코의 말에 김성현이 탄식했다.

    “두 달을 어떻게 당겨요? 대현 쪽에서 진짜 그랬어요?”

    “성한 쪽에서 런칭한 편집샵이 제대로 망했나봐. 3개월 할 거 1개월만 하고 접는대. 우리 성민이 정보니까 확실해.”

    “아… 빨리 접네요. 우리 아직 준비 덜 됐는데….”

    “그쪽 접는 건 접는 거고, 우리는 어떻게 할 거야? 한 달 내로 런칭할 수 있어?”

    “힘들지만 해야죠. 기회인데.”

    김성현의 말에 마르코가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자기야, 미안한데 되는 게 있고 안 되는 게 있어. 난 안 돼. 바빠서 그 일정 못 맞춰.”

    아무리 직장 상사여도 안 되는 건 안 된다고 확실하게 말하는 마르코.

    교포 출신이라 그런지 확실히 자기 주장이 강했다.

    “마르코 씨? 우리가 그 자리 못 받으면 언제 또 기회가 올 지 모르는데….”

    고연주도 옆에서 김성현의 말에 동의했다.

    “맞아요. 실장님. 편집샵 그 자리 못 받으면 내년으로 미뤄질지도 몰라요.”

    “백현 씨는 어떻게 생각해요?”

    김성현의 질문에 강백현이 대답했다.

    “지금 브랜드 명도, 디자인이나 컨셉도 안 나왔는데, 한 달 내로 추진할 일은 일단 아닌 것 같아요. 그러니까 일단은 좀 더 생각해보는 게 맞지 않을까 해요.”

    백현의 말에 마르코도, 진희 씨도 고개를 끄덕였다.

    2:3. 반대가 3표다.

    김성현이 모두의 의견을 들어본 후 입을 열었다.

    “알았어요. 미뤄볼게요. 패션쇼 3주 뒤에 있으니까 그것부터 올인하고 봅시다. 영패션은 아쉽지만 그 이후로 보자고요.”

    “네. 알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실장님.”

    패션은 유행을 잡지 못하면 도태되기 마련이다.

    그런데 기회를 못 잡아도 도태되는 건 마찬가지다.

    매장이 비었을 때, 그 시기를 적절히 맞춰서 들어가야 한다.

    백화점 매장이 없는 메리야트 그룹.

    이번 편집샵 런칭을 놓치면 언제 다시 그런 자리를 얻을 수 있을지 예상이 되질 않는다.

    그때, 강백현이 김성현에게 말했다.

    “저 실장님?”

    “네. 백현 씨, 왜요?”

    “저… 제가 한 번 알아봐도 될까요?”

    “뭘요?”

    “어차피 망한 브랜드라면, 그쪽 브랜드 인력을 인수해보는 방향도 좋지 않을까 해서요. 그쪽의 컨셉 같은 건 그대로 따오고, 런칭하면서 잘못된 점들을 이쪽에서 개선해서 재런칭 하는 거죠. 이미 망한 브랜드지만 그쪽도 인력을 해고하는 건 부담스러울 거고, 저희도 적은 비용으로 브랜드를 런칭할 수 있고, 이미 런칭을 해봤던 경험자들이니까 그쪽도 오케이 하지 않을까 싶은데요.”

    그런데 마르코가 부정적이다.

    “성한그룹에서 과연 그렇게 해줄까?”

    마르코의 말에 강백현이 김성현을 바라보았다.

    “일단 시도라도 해보는 게 손해는 아니겠죠?”

    “……”

    “여기, 사람이 하나 남기도 하고요.”

    강백현이 자신을 가리켰다. 그러자 김성현이 잠시 고민하더니, 대답을 보류했다.

    “일단 생각해볼게요.”

    * * *

    퇴근 길.

    김성현이 강백현에게 물었다.

    “백현 씨, 무슨 생각이었어요? 인수라니…. 그 의견 성급했어요. 다음부터는 주의해주세요.”

    “실장님! 하지만 기회를 잃어버릴 수는 없습니다. 급하시다면서요. 최대한 빨리 성공하는 게 실장님 목표 아닌가요?”

    “백현 씨는 알잖아요! 내가 고기웅 본부장, 굉장히 어려워하는 이유를 알면서도 절 곤란하게 만들 거예요?”

    “곤란하시겠죠. 하지만 그건 고기웅 본부장도 마찬가지입니다. 실장님께 잘 보이려고 간하고 쓸개라도 내어줄 기색이잖아요. 하지만 성공하려면 뭐든 이용해야 하잖아요. 그게 불법만 아니라면, 적이라도 이용해서 실장님이 성공하고 봐야죠.”

    “말이 쉽지. 성공은 말처럼 쉽게 되는 게 아니에요.”

    “압니다. 하지만 도전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안 돼요. 기회를 날리지 않았으면 합니다. 실장님이 첫날 말했죠? 영패션 브랜드에 희망이 있다고요. 거기에 가치가 있다고요. 남들이 따라하지 못할 거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잖아요.”

    “……”

    “실장님이 그냥 한 말씀은 아닐 거라고 생각해요. 어떻게 보면 이건 기회에요. 저희가 그 브랜드를 인수해서 그걸 발판으로 이쪽에서도 영패션 쪽으로 두각을 내보이는 거죠!”

    “자신 있어요? 나 솔직히 자신은 없어요. 그쪽은 잘 모르기도 하고요. 정말 자신 있어요?”

    “전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을 자신은 있습니다.”

    “네?”

    “성공은 만들어지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실패를 발판으로 도전하고 또 도전해서 만들어지는 결과물. 그게 성공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성공 뒤엔 또 다른 성공이 기다리고 있겠죠. 그래서 전 도전하고 싶어요. 실장님이 좀 더 적극적이었으면 좋겠고요.”

    “어디서 그런 확신을 가지게 되는 거죠? 난 이해가 안 가요.”

    김성현의 물음에 강백현이 대답했다.

    “확신은 없습니다. 하지만 상대가 두렵다고 해서, 피한 적은 없습니다. 그게 제가 살아온 방식일 뿐이죠.”

    결국 잠시 후, 김성현이 자신의 의지를 꺾었다.

    “알았어요. 일단 고기웅 본부장에게 제가 연락을 해볼게요.”

    “아니요. 실장님이 직접 나설 필요는 없습니다. 협상은 제가 해보겠습니다. 실장님은 결정만 해주세요.”

    “괜찮겠어요?”

    “고기웅 본부장하고는 이제 안면이 있거든요. 제가 추진하고 보고 드릴게요. 실장님은 그냥 보고 받고 결정만 하시는 걸로. 직접 마주치는 건 별로 안 좋아하시잖아요?”

    “알았어요. 그러면 인수조건이나 인수계획, 비용, 그런 거 대략적으로 알아오세요. 그럼 그 비용 보고 괜찮은 조건이다 싶으면 제가 결정할게요.”

    “네. 알겠습니다.”

    강백현의 말을 마치고 뒤돌아서자, 김성현의 입가에는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할 인정의 미소가 깃들어 있었다.

    * * *

    호텔 안.

    다행히 박창현 비서는 아직 퇴근하지 않았다.

    그래서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었다.

    강백현은 전화를 걸었다.

    대상은 당연히 고기웅 본부장이다.

    - 여보세요. 뭐야? 어?

    “아, 본부장님, 어제는 정말 죄송했습니다.”

    - 죄송? 야! 너 문자 달랑 보내놓고 핸드폰 껐더라?

    “아… 네. 아가씨가 주무셔서 핸드폰 벨소리가 날까봐 일부러 꺼놨습니다. 본부장님?”

    - 내가 언제부터 네 본부장인데?

    “김성현 실장님이 본부장님께 바라시는 게 있답니다.”

    - 너 자꾸 내 말 끊을래?

    “성현 아가씨한테 작업 다 쳐놨는데, 이렇게 말씀하실 건가요? 말씀하셨잖아요. 우연을 계기로 만나고 싶다고.”

    - 작업? 우연?

    “제가 다 설계해놨습니다. 저희 영패션 브랜드 런칭하려고 하는 거 아시죠? 제가 본부장님께서 관련 자료 제공해주신 걸 설명하는 미팅 기회를 잡아보려고 합니다. 그게 잘 되면 본부장님은 저희 실장님과 함께 있는 시간도 자연스레 많아질 테고, 그러다보면 친해질 수도 있을 테죠. 이거야말로 창조경제, 일석이조 아닙니까?”

    그러자 슬슬 반응이 오기 시작했다.

    고기웅의 태도가 변한 것이다.

    - 진짜야? 성현 씨가 뭐래?

    “본부장님이 그런 제안 주셔서 너무 감사하답니다. 안 그래도 요즘 패션쇼 런칭 때문에 엄청 바쁘시거든요. 그런데 본부장님께서 그렇게 신경 써주니까, 마음이 흔들린다고 하셨습니다.”

    강백현의 말에 옆에서 최용규가 킥킥 대며 웃었다.

    [완전 사기꾼이네!]

    고기웅의 의견도 최용규의 의견과 같았다.

    - 야! 너 아무리 봐도 거짓말 같은데? 그 빨간 옷은 뭐야? 나 그것 때문에 거기 남자새끼들한테 강제 뽀뽀당하고 난리도 아니었어! 그건 어떻게 설명할 거야? 어?

    “에이! 본부장님! 제가 그걸 몰라서 그랬겠어요?”

    - 뭐?

    “본부장님이 10분만 일찍 오셨어 봐요. 이 사람은 남자한테도 인기 있는 남자구나! 그거 어필 시켜드리려고 입고 오라고 한 거죠. 여자들은 원래 인기 있는 남자한테 호감이 가게 되어 있어요. 안 그래요?!”

    - 야! 말이 되냐?

    “여자들은 섬세합니다. 그래서 그 부분까지 캐치해드리고 복장 정해드렸는데, 그렇게 오해하시니 정말 실망입니다. 그래도 전 본부장님 믿습니다. 이번에 성현 아가씨가 영패션 런칭 준비하려고 마음먹었으니까, 그쪽 인력을 저희한테 제공해주시면 아마 아가씨 마음을 쉽게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싶은데…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 뭐? 인력을 제공해?!

    “네. 어차피 지금 매출도 안 나오고, 편집샵도 원래 3개월인 거 1개월로 줄인다고 하셨다면서요. 그래서 저희 런칭 시기가 원래 본부장님 다음이었는데 갑자기 2개월 당겨졌어요. 원래 겨울용 여성복 편집샵 마련하려고 했는데 본부장님 쪽 샵 때문에 완전 틀어졌다고요. 그래서 제가 수습하려고 이렇게 된 거 영패션 런칭하자고 꼬시는 중이고요. 모든 상황이 완벽하지 않습니까?”

    강백현의 말에 최용규가 뒤집어졌다.

    [크크, 저 새끼, 지금 가 봤는데, 여자랑 술 마시는 중이라 상황 파악 잘 못하고 있다.]

    - 야, 그럼 내가 어떻게 하면 돼?

    “우리 본부장님께서는 해당 편집샵 분들, 저희 쪽으로 인력 소개해주시고 노하우도 전해주시면 저희도 그쪽으로 투자를 해보는 쪽으로 말씀드려보겠습니다. 그럼 저희도 시간 절약되고, 본부장님도 어차피 정리할 인력, 저희가 인계해가니까 고용승계 문제도 해결되고 서로 이득이죠.

    - 야! 사업이 그렇게 쉽게쉽게 되는 게 아니야! 우리가 접으면 접었지. 그쪽에 왜 주냐? 들어간 돈만 거의 7억인데… 5억에 인수할 생각 있어?

    그러자 강백현이 미소를 띄우며 대답했다.

    “에이~ 본부장님! 아가씨 회사가 본부장님 거고, 본부장님 회사가 이제 곧 아가씨 건데, 뭘 그렇게 따지고 재고 그러세요? 네? 그러다가 나중에 평생 구박 받습니다. 결혼하기 전부터 점수 잘 따셔야 해요.”

    - 와~ 미치겠네. 사기꾼이 따로 없네.

    “본부장님께서 미적거리시니, 일단 이 건은 보류하겠습니다. 혹시나 마음 바뀌시면 비서 통해서 연락주십쇼. 그럼 제가 구체적인 문서 작성해서 아가씨한테 결재받도록 하겠습니다. 이번기회에 꼭 점수 따시고! 연애! 성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 미친 놈! 알았어. 생각해볼게.

    강백현의 뻔뻔한 말에 고기웅이 호탕하게 웃었다.

    전화가 끊기자 강백현이 천장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걸로 된 걸까?”

    [성공할 수도 있겠지. 일단 기다려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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