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뚝배기 깨러 왔습니다-39화 (39/139)
  • 뚝배기 깨러 왔습니다 39화

    김성현이 속을 토로하자 마르코가 안타까운 듯 탄식했다.

    “자기는 항상 긍정적이면서도 술 앞에선 약해지더라.”

    “마르코는 날 그렇게 생각해요?”

    “응. 자긴 강한 사람이잖아. 난 자기가 다시 회사에 출근한 것만 해도 용감하다고 생각해. 성공할 생각으로 온 거잖아. 자기가 직접 디자인한 브래지어도 그렇고. 다 잘 만들었던데 뭐.”

    “마르코가 그렇게 얘기해주니까 기분이 좋네요. 우리 짠!”

    김성현이 술잔을 들었다.

    강백현도 술잔을 들었다.

    “많이 드셨어요. 실장님.”

    “괜찮아. 오늘은 취하고 싶으니까 괜찮아!”

    분위기에 취한 김성현과 그걸 보며 한숨을 내쉬는 강백현.

    그런 백현을 향해 마르코가 물었다.

    “자기야~ 나랑 춤출래?”

    “네?”

    “나가자~ 응?”

    “아, 다음에요. 전 여기 적응이 안 되네요.”

    백현의 거절에 스테이지로 나가 상대를 찾는 마르코.

    그러자 마르코 주위에서 기웃거리는 남성들.

    그걸 보며 강백현이 웃었다.

    단 둘이 남은 김성현과 강백현.

    어색한 분위기를 깨기 위해 강백현이 먼저 입을 열었다.

    “저, 실장님.”

    “실장이라고 부를 거예요?”

    “네. 업무적인 이야기라서요.”

    “업무요?”

    “제가 오늘 나가면서 생각해봤는데, 이번 영패션 런칭 브랜드 있잖아요. 판교에서 런칭한 푸드셔츠요.”

    “아… 그게 지금 중요해요?”

    “그거 성한 그룹이잖아요. 나름 열심히 한 것 같지만 그 디자인은 실패했어요. 실패원인은 다양한 것 같은데, 제대로 분석보고서를 작성하려면 시간이 걸릴 것 같습니다.”

    강백현의 말에 김성현이 잠시 고민하다 말을 이어갔다.

    “백현 씨! 난 사실 백현 씨한테 큰 거 바라지는 않아요. 부담 가지지 않아도 되요. 내가 왜 백현 씨를 유부남이라고 생각했었는지 모르겠어.”

    “그거야 뭐… 윤수가 아빠라고 불렀으니까 그렇겠죠.”

    “아무튼 내 실수였고 사과할게요. 그리고 오늘 일은 잊고, 백현 씨는 그냥 가끔 내 하소연 좀 들어줘요. 난 그거면 되니까. 업무에 대해 부담 갖지 말고요.”

    “그렇게 얘기해주셔도, 최선을 다 해볼 생각입니다. 일단 월급을 받는 입장에서 대충대충할 순 없죠.”

    “그 말 들으니까, 강백현 씨가 어떤 사람인지 조금은 알 것 같네.”

    김성현이 고개를 흔들었다. 그리고 클럽 분위기가 물씬 나는 음악에 머리를 흔들며 그 자리를 즐겼다.

    참 재미있는 사람이었다.

    강백현은 김성현에 대한 생각을 정리했다.

    재벌집 아가씨.

    그러나 평범한 사람하고 똑같다.

    미래를 고민하고, 성공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책임감 있는 발언을 하는 당당한 그녀. 왜인지 멋져 보였다.

    한 잔, 또 한 잔.

    술과 음악.

    너무나 완벽한 분위기.

    남자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운 일이 드믄 성현에게 이곳만큼 편한 곳은 없다.

    집보다 편한 곳. 그래서 그녀가 이곳을 자주 찾는 것일지도 몰랐다.

    잠시 후, 음악을 듣다 정신을 차려보니 소파에 기대어 잠이 든 김성현의 모습이 보였다.

    아마도 피곤했겠지.

    강백현이 그녀에게 겉옷을 벗어서 걸쳐주었다.

    혹시라도 감기에 들까봐.

    에어컨이 빵빵한 스테이지 때문에 추웠으니까.

    여름에 감기 들면 안 되니까.

    그녀는 오늘 아침 일찍 출근해서 퇴근할 때까지 일에만 매진했다.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텐데 어떻게 보면 불쌍하다.

    집 안에서 한 명이라도 그녀의 편이 있을까?

    원치 않는 결혼을 밀어붙이는 가족들.

    그래서 더욱 외로울 수밖에 김성현.

    그때, 강백현의 전화가 울렸다.

    받고 싶지 않은 상대지만, 어제 받아놓은 자료가 있었다.

    강백현은 고개를 저으면서 테이블에서 빠져나와 전화를 받았다.

    - 어디야? 왜 이렇게 시끄러워?

    “고기웅 본부장님, 어떤 일로 전화하셨나요?

    - 백현 씨, 나랑 약속했잖아. 전화하면 언제든 성현 씨 위치 알려주기로.

    “분명 그랬습니다.”

    - 그러니까 어디야?

    “아, 지금 아가씨 취하셔서요. 다음에 오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 취했다고? 김성현이 취했다고? 술 잘 안 먹잖아.

    “그런데 오늘은 좀 드셨네요? 집에서 쉬시는 게 낫지 않으십니까?”

    - 야! 그럼 더 잘 됐잖아. 빨리 가야겠네. 어디로 가야 돼? 어디로 가면 성현 씨 만날 수 있어?

    그의 말에 강백현의 표정이 싹 바뀌었다.

    ‘와… 고기웅 완전 미친놈이구나.’

    김성현에게 푹 빠진 남자.

    뭐가 그렇게 좋기에 집착을 하는 걸까?

    그래서 말했다.

    “헬리엇 호텔 지하에 있는 바에 있습니다.”

    - 그래? 30분 내로 갈게.

    “네. 혹시 다른 데로 이동하게 되면 연락드리겠습니다.”

    - 거기 가만히 있어. 알았어? 김성현 만나면 그 후부터는 내가 알아서 할게.

    “네. 알겠습니다. 본부장님?”

    - 왜?

    “오실 때, 빨간 옷 입고 오실래요?”

    - 빨간 옷은 왜?

    “아가씨가 빨간 옷 입은 남자를 좋아하신다고 하셔서요. 패션 센스가 좋아보인다고.”

    - 진짜야?

    “네.”

    - 알았어. 그거 입고 갈 테니까. 기다려.

    30분의 여유시간이 생겼다.

    강백현이 김성현을 깨웠다.

    “저기요. 실장님?”

    “응?”

    “일어나요. 집에 가요.”

    “지금 몇 시인데요?”

    “밤 9시. 늦었어요.”

    “박 비서 온다면서요.”

    “그냥 택시 타고 가요. 박 비서 너무 늦을 것 같아요.”

    “그럴까요?”

    “네.”

    강백현이 물 한잔을 건네며 말했다.

    “일단 이거 드시면서 정신 차리고 계세요. 전 마르코 씨한테 간다고 말하고 올게요.”

    “응.”

    마르코가 테이블에 앉아 남성들과 재밌게 수다를 떨고 있었다.

    “마르코 씨, 저 먼저 가보겠습니다.”

    “어? 어! 잘 들어가.”

    “네. 내일 봬요.”

    그런데 남자들이 강백현을 붙잡았다.

    “잠깐 앉아서 얘기 좀 하다가요.”

    “네?!”

    “제 스타일이신데, 조금만 앉아요. 술값은 제가 낼게요.”

    “아… 다음에요. 다음에.”

    “아… 연락처라도….”

    “다음에… 네 다음에….”

    강백현은 남자들의 적극적인 대쉬를 뿌리치고, 김성현을 부축하며 택시를 탔다.

    택시 기사에게 목적지를 말하자 아직 취기가 덜 깬 김성현이 중얼거렸다.

    “백현 씨, 우리 어디가요?”

    “아가씨 집으로 가는 거죠. 집 앞까지 모셔드리고 갈게요.”

    “고마워요.”

    * * *

    한편, 박창현은 호텔에 도착했다.

    호텔 지하 주차장. 김성현 아가씨의 차가 보인다.

    그런데 아는 얼굴이 나타났다.

    “어? 형이 여기 왜 있어?”

    고기웅 본부장과 함께 그 비서인 사촌동생인 박지훈이 있었다.

    “아… 메리야트 그룹의 박 비서라고 했지?”

    “네. 도련님, 저희 사촌 형입니다.”

    사촌 형이라는 말에 고기웅은 반가운 얼굴로 웃었다.

    “그래? 반가와요. 성한그룹 본부장을 맡고 있는 고기웅입니다.”

    반면, 박창현의 얼굴에는 곤란한 표정이 배어 나왔다.

    “안녕하십니까?”

    “여기는 웬일이에요?”

    “아가씨가 계셔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 그렇구나. 잘 됐네. 박 비서.”

    고기웅이 자신의 비서인 박지훈을 불렀다.

    “네. 도련님.”

    “사촌 형 명함 받아놔. 난 지금 바로 성현 씨 만나러 갈 테니까.”

    “알겠습니다. 도련님.”

    고기웅이 올라가고 박창현이 박지훈에게 물었다.

    “내가 얘기도 안 했는데 우리 아가씨가 여기 있는 거 어떻게 알았어?”

    “뭘 어떻게 알아? 거기 강백현 비서가 우리 본부장님한테 정보 줬으니까 알고 온 거지.”

    “뭐?!”

    놀라는 박창현에게 사촌 동생 박지훈이 웃어보였다.

    “그 친구도 줄 잘 서는 거지 뭐. 형도 알잖아. 이제 김성현이 성한그룹의 며느리가 될 거라는 거.”

    “이 자식, 미쳤네. 내 허락도 없이 아가씨 위치정보를 팔아?”

    “됐어. 형 놔둬. 그런 애가 있으니까 내가 요즘 완전 편하잖아. 나 그 친구 아니었으면 지금도 형한테 울고불고 난리치면서 김성현 위치 알려달라고 했을 거야. 얼마나 편해? 어?”

    “넌 내 입장은 생각 안 하니?”

    “형이야말로 내 입장 생각해봐. 도련님 잘 되는 게 내가 성공하는 거고, 형이 성공하는 거야. 몇 번을 말해야 돼?”

    사촌 박지훈은 왜 저렇게까지 고기웅의 편을 드는 걸까?

    걸핏하면 맞고 다니면서.

    답답함이 밀려왔다.

    한편, 고기웅은 지하 1층에 있는 술집으로 들어갔다.

    무지개 색깔로 치장한 인테리어와 화려한 무대가 있는 스테이지.

    술집이라기보다는 클럽에 가까워 보인다.

    ‘어라? 여자가 왜 이렇게 없어?’

    남성 90%, 여성 10%.

    김성현이 이런 데를 다닌다고?

    거기에 무언가 뿌연 조명과 신나는 디스코 음악.

    김성현이 이런 곳에서 술을 마셨다는 게 오히려 그의 흥미를 돋우었다.

    고기웅은 씩 웃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런데 자신이 쳐다보는 곳마다 사내들이 눈웃음을 쳤다.

    ‘뭐야? 미친놈들, 날 왜 쳐다봐?’

    오늘 김성현에게 좋게 보이고자 붉은 색으로 차려 입고 왔다.

    구두도 붉고 셔츠도 붉다.

    헌데 발끝부터 머리까지 싹싹 훑고 지나가는 시선. 그것도 하나 둘이 아니다.

    ‘뭐지? 이 분위기 뭐야?’

    테이블을 지나며 걸어가는데 사람들이 자신의 손을 붙잡기까지 한다.

    “앉아요.”

    “네?”

    “내 옆 자리 앉아요. 우리 이야기해요.”

    “이야기?”

    “웅. 어디서 왔어요? 몇 살?”

    “도대체 뭐라는 거야? 미친놈!”

    뿌리치고 계속 김성현을 찾는 고기웅.

    그런데 거기서는 한 남자가 갑자기 고기웅의 허리를 붙잡았다.

    “오늘 외로우면 같이 있을래요?”

    “뭐라고?”

    “같이 있자고. 그래서 온 거 아니에요? 새삼스럽게 왜 그래? 다 알고 왔으면서! 내숭 안 떨어도 돼요.”

    “미쳤냐?”

    고기웅은 자신에게 추파를 던지는 남자를 세게 밀었다.

    그러자 그 남자가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고기웅에게 소리쳤다.

    “아니! 저기요! 빨간 옷, 입었잖아요. 싫으면 말로 하시면 되지 왜 밀치고 그러세요!”

    그리고 15분 후, 고기웅은 테이블을 샅샅이 훑고 나서야 이 이상한 분위기의 이유를 알았다.

    마르코의 한 마디.

    “어머! 본부장님도 우리 쪽이셨구나.”

    “뭐라고요?”

    “에이~ 뭘 모른 척 해! 괜찮아. 비밀 지켜줄게. 여기 단골이야?”

    * * *

    잠시 후, 고기웅이 비명을 지르며 바깥으로 달려나왔다.

    “아… 아아아아아아! 소름 끼쳐.”

    “도련님? 왜 그러십니까?”

    “여기 미친놈들이 나보고 오빠라잖아. 사귀자고 하잖아.”

    “네?”

    “얘네들 다 호모새끼들이야. 나만 보면 『오빠, 나랑 사귀자!』 『오빠, 위야? 아래야?』 이러고 막 들러붙어서 껴안고, 뽀뽀하고 완전 미친놈들이라고!”

    그러자 박지훈의 옆에서 박창현이 대답했다.

    “그럴 수밖에요. 여기는 게이 전용 바고, 빨간 옷을 입은 건 오늘 외롭다고 같이 있어달라는 뜻이니까요.”

    “그런 거였어?!”

    고기웅이 고압적인 시선으로 박창현을 쳐다보았다.

    “그것보다 김성현 어디 있어? 여기로 안 왔어? 술집엔 없던데?”

    그때, 박창현과 고기웅의 핸드폰에 한통의 문자가 동시에 도착했다.

    [수행비서 강백현입니다. 아가씨께서 취하셔서 택시타고 집에 들어가셨습니다. 추우신데 고생 많으셨습니다. 다음에 또 연락드리겠습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