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뚝배기 깨러 왔습니다-38화 (38/139)

뚝배기 깨러 왔습니다 38화

김성현의 속옷 차림을 본 강백현이 뒤돌아서서 얼굴을 붉혔다.

그걸 본 최용규는 난리를 쳤다.

[야이, 미친놈아! 말없이 사무실에 들어가면 어떻게 해? 어!]

‘내가 알았나? 유령인 선배가 먼저 말했어야지. 어?’

이미 엎질러진 물.

돌이킬 순 없는 일이다.

강백현은 뒤돌아서서 그녀에게 말했다.

“저 진짜 고의 아니었고요. 죄송해요. 정말 미안해요. 이럴 의도 없었어요.”

“……”

김성현이 대답하질 않았다.

그래서 강백현은 더 안절부절이다.

혹시나 성추행으로 잡혀가진 않을까, 아니면 직장에서 잘리진 않을까…

그래도 이만큼 월급 주는 데는 없는데…

잡다한 생각이 그의 머리를 휘저었다.

그런데 김성현의 반응이 의외다.

“백현 씨, 괜찮아요. 당황하실 필요 없어요.”

“네?!”

“백현 씨는 절 이성으로 안 보잖아요. 알고 있었어요. 그러니까 괜찮아요. 그것보다 저 어때요?”

진짜 뜬금없는 반응.

자신의 속옷 차림을 남자가 봤는데 괜찮다고?

이게 정상적인 여자의 반응이야?

“정말 괜찮으세요?”

“네. 이거 디자인 어떠냐니까요? 괜찮아 보여요? 잘 어울려요?”

지금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다.

그런데 옆에서 최용규가 어이 없는 표정으로 이 상황을 설명해주었다.

[강백현, 너 운 진짜 좋았다.]

말은 꺼낼 수 없으니 강백현이 ‘뭐’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그러자 최용규가 자신이 파악한 정보를 말해주었다.

[성현이는 네가 남자를 좋아하는 걸로 알아. 회장님도 그렇고.]

‘뭐?!’

강백현이 눈을 치켜올리자, 최용규가 활짝 웃었다.

[박창현인가? 네 선임수행비서가 회장님께 그렇게 보고했거든. 그것 때문에 김성현도 널 그렇다고 알고 있어.]

황당했다.

내가 게이라고? 호모라고? 그렇게 알고 있다고?

“성현 씨….”

“네?”

“회장님이 말씀하신 건가요?”

“네. 미안해요. 사실 비밀을 지켜주고 싶었는데 저도 모르게 말하고 말았네요. 이해해요. 비밀로 할 수 밖에 없었던 거잖아요. 아직 사회적 인식이 좀 그렇다 보니, 이해합니다.”

“아닙니다. 미안하실 건 없죠. 그나저나 잘 어울리시네요.”

“그래요?”

“브래지어. 뒤쪽에서 잘 잡아주는 것 같아요. 가슴도 모아주는 것 같고. 거기에 피부톤하고 비슷해서 이질감도 없고, 봉긋하게 만들어줘서 더 예뻐 보여요. 불편한 점은 없고요? 그게 제일 관건인 것 같은데요?”

“음. 아직까지는 크게 불편하진 않은 것 같아요. 그럼 다음 것도 봐줄래요?”

김성현이 갑자기 브래지어를 벗으려고 하자 강백현이 손을 배에 가져다 대며 말했다.

“아~ 왜 그러지? 좀 급하네요. 잠깐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그러자 김성현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그래요. 빨리 와요. 기왕 착용한 김에 다 확인해 볼게요.”

“네. 금방 오겠습니다.”

강백현이 후다닥 화장실로 뛰어갔다.

화장실 안에서 강백현이 최용규에게 따져물었다.

“아니, 이거 어떻게 할 거예요?”

[괜찮아. 원래 호텔업하고 패션업 하는 분들이 그쪽에 대해서는 관대해. 그러니까 걱정할 필요 없어.]

“그게 문제입니까? 난 생각 안 합니까? 내가 게이라고 생각해서 아무렇지도 않게 속옷 보여주고 저러고 있잖아요!”

[어쩌라고? 너만 성현이에게 이상한 맘 품지 않으면 돼. 알았어? 일단 잘 넘겨봐.]

백현은 최용규의 말에 절로 헛웃음이 나왔다.

“그냥 사실대로 말해야겠습니다. 저 게이 아니라고요.”

[그러다 성범죄자로 몰리면? 너 이미 성현이 가슴도 봤잖아.]

“가슴을 본 건 아니죠. 속옷 착용한 걸 본 거죠.”

[그게 그거야. 일단은 말하지 마! 그리고 지금 상황을 그냥 넘겨. 알았어?]

“선배가 원하는 게 뭡니까? 날 왜 여기 일하게 만든 겁니까?”

[그거야 네가 고기웅을 막을 수 있으니까 그렇지. 뭘 몰라서 묻냐?]

“막긴 개뿔. 됐거든요? 나 호모 만든 걸로 모자라서 목숨까지 위험하게 하려고? 그 자식 엄청 위험해보이던데요?”

[넌 그걸 알면서도 성현이가 그 자식 만나게 할 거야? 내 마음은 생각 안 해?]

“아~ 진짜!”

강백현은 세수를 한 후, 다시 사무실에 들어갔다.

다행히 김성현은 결정을 마쳤는지 겉옷을 모두 착용한 상태였다.

“다 착용해보셨어요?”

“아니요. 갑자기 마르코한테 연락이 와서요.”

“마르코?”

강백현이 묻자, 김성현이 부탁이 있다는 듯 밝은 목소리로 백현에게 물었다.

“백현 씨! 시간 돼요?”

“네?”

“우리 바(bar) 한 번 갈래요?”

“바요? 술집 바요? 둘이요?”

“아니, 셋! 마르코랑 같이. 마르코랑 자주 가는 술집이 있거든요.”

“실장님이 가자고 하면 가야죠. 전 수행비서고 월급 받는 입장인데!”

“에이! 사석이에요. 초과근무 수당 안 나옵니다. 그럼 오케이 한 걸로 하고 가요! 오늘 재미있을 거예요.”

* * *

김성현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헬리엇 호텔로 네비게이션을 찍었다.

보아하니 자주 방문했던 곳인 듯했다.

그래서 운전하는 강백현이 물었다.

“뭐가 그렇게 재밌어요?”

“음… 편해서?”

“편해요?”

“네. 강백현 씨가 그쪽인 거 알고 진짜 편해졌어요.”

“하아… 그래요?”

“응. 남자 이야기도 마음대로 말할 수 있을 거고 비밀 같은 것도 쉽게 털어놓을 수 있고.”

강백현은 어이가 없었다. 그래도 편하다니까 이 기회에 궁금한 것을 물어본다.

“하나만 물을 게요. 어제 점심에 만난 그 남자 있잖아요. 고기웅.”

“아… 네.”

“그 분은 어떻게 생각해요?”

강백현이 슬쩍 던진 질문에 최용규가 짜증을 부렸다.

[얘 왜 이래? 미쳤냐?]

그러나 강백현은 유령의 말을 간단히 무시했다. 중요한 건 김성현의 생각이었으니까.

“어려운 상대죠. 우리 집안의 부족한 것을 모두 해결해줄 수 있는 사람이니까.”

“그렇군요. 사실 소문을 들어 대충 알긴 했어요.”

“소문이요?”

“네. 성한 그룹과 메리야트 그룹과의 관계. 그리고 메리야트 그룹의 위기.”

“그렇군요. 알고 있었군요.”

“네. 비서들은 알고 있죠. 확실히… 알고 있죠.”

“다른 주제로 넘어갈까요? 백현 씨는 어떤 남자 좋아해요?”

강백현은 뜬금없는 어택에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네? 남자요?”

“응. 자상한 남자? 아니면 엄청 용감한 남자?! 마르코는 그러던데. 자기는 마초? 마초적인 남자 좋아한다고.”

강백현이 그녀의 말을 이해하지 못해서 고개를 저었다.

‘마초가 뭐야? 레슬러 같은 사람 말하는 건가?’

잠시 대답이 없는 강백현을 향해 김성현이 다시 물었다.

“어떤 스타일 좋아하냐니까요?”

“음… 저는 그냥 느낌 있는 사람 좋아하죠.”

“느낌? 어떤 느낌이요?”

“그냥 편한 사람? 말 잘 통하는 사람?”

“아…그래서 그 분 만났었구나. 확실히 편해 보이는 사람이긴 했죠?”

“네?”

“속초에서 헤어진 애인 만났었잖아요. 아니에요?”

“걔요?!”

완벽한 오해.

이제 보니, 지금까지 자신의 행동들이 그런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 연인과 송지호를 갔다 왔다고 했었지.’

거기에 군대 동기 놈이 송지호 같이 가자고 했던 것. 자고 가라고 했던 것.

남자들 사이에서는 그냥 예의상 할 수 있는 말인데, 김성현의 입장에 그게 그렇게 받아들일 수 있다고 생각하니 진짜 신기했다.

그때 김성현에게 마르코의 전화가 걸려왔다.

- 우리 자기. 지금 어디야? 오고 있어?

“아, 마르코 씨 나 지금 백현 씨랑 가고 있는데 조금만 기다려요.

- 응. 얼른 와. 먼저 도착해서 테이블 잡아놨는데, 여기 남자들이 계속 내 옆에 앉으려고 해서 거절하느라 곤란해. 빨리 데려와.

“빨리 갈게요.”

* * *

헬리엇 호텔 지하에는 유명한 바가 있다.

남녀 불문하고 모두 입장할 수 있지만, 거의 대부분의 남자들이 그쪽 성향인 곳이다.

그런데 의외로 여자들도 많이 온다.

그 이유는?

“자기는 여기 되게 좋아한다.”

“여긴 남자들이 추근대지 않으니까 편하잖아요. 아무도 나한테 관심 가지지 않으니까 좋죠.”

마르코의 말에 김성현이 씩 웃었다.

확실히 김성현의 얼굴, 패션, 몸매, 거기에 품성까지.

그녀를 보면 남자들이 뻑 갈만 했다.

하지만 이곳에서 걱정은 네버네버.

김성현에게 관심가지는 남자 따윈 한 명도 없다는 것.

왜? 여성에게 관심 없는 남자들뿐이니까.

사석이라 그런가 마르코가 찐한 목소리로 백현에게 물었다.

“우리 애기는 뭘로 마실래?”

“네?! 애기?”

“응. 우리 애기는 뭘로 마실 거냐고 내가 묻잖아~♡”

강백현이 당황한 채 대답했다.

“저는 운전 때문에 술은 안 될 것 같고 무알콜 음료로 마실게요.”

“아~ 아쉽네. 자기야. 우리 애기 술 마시면 안 돼?”

“안될 건 없죠? 백현 씨! 술 마셔도 되요. 난 택시 타고 들어가면 되니까. 그게 아니면 박 비서님 불러도 되고.”

김성현의 대답에 강백현이 정색하며 말했다.

“아니에요. 이것도 일인데 술은 아닌 것 같습니다. 무알콜 음료 마시겠습니다.”

그러자 마르코는 실망한 눈치였다.

“에이~ 좀 그렇다. 여기요!”

마르코가 테이블 위의 붉은 등을 들어올렸다. 그러자 대기하고 있던 직원이 와서 주문을 받았다.

클럽용의 음악이 흘러나오고 무대에서는 댄스 타임이 열린다.

즐거운 음악과 술. 그리고 잘생긴 남자들이 무대에 있으니, 남자들도 즐겁고 여자들도 즐겁다. 그런데 빨간 옷을 입은 사람이 의외로 많다.

그런데 그 의문이 풀렸다.

“우리 애기, 그거 알아?”

“뭐요?”

“여기서 빨간색 옷 입으면 『나 외로워요. 오늘 같이 밤 보내요.』라는 의미란 거.”

“진짜요? 마르코 씨도 빨간 옷이네요.”

“응. 나 성민 씨랑 헤어지고 벌써 6개월이야. 그래서 외롭거든.”

조성민. 오늘 속옷을 건네주었던 MD.

확실히 패션 업계는 그쪽 성향이 많다.

그 멀쩡해보이는 사람도 게이였다니.

강백현은 당황스러운 얼굴을 애써 숨겼다.

남직원이 가져온 도수 높은 보드카 한잔을 마신 김성현이 말했다.

“백현 씨.”

“네?”

“아까 말했죠? 기웅씨 어떻게 생각하냐고.”

“네.”

“솔직히 집에서는 그 사람하고 결혼하라고 해요. 내년까지 5000억 이상 투자받지 못하면, 성한 그룹에서 투자받는 조건으로 제가 가야 될 지도 모르죠.”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우습죠? 사실 용규 씨랑 결혼했으면 우리 그룹에게 미래는 없었을지도 몰라요. 어떻게 보면 기회죠. 그런데 이런 건 싫잖아요? 돈 때문에 결혼하는 거, 마치 운명이라는 거창한 단어로 저를 옭아매는 데, 누구나 저항하고 싶잖아요! 안 그래요?”

김성현의 속사정을 들은 강백현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사실 이해는 못하겠어요. 제가 성현 씨 입장은 아니라서요.”

“왜 몰라요~ 나한테 전화 건 게 백현 씨잖아. 나보고 고기웅한테서 벗어나라고 한 사람이 백현 씨잖아요!”

김성현의 투정에 강백현이 고개를 돌렸다.

“…….

아무 대답 없는 강백현. 김성현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혼잣말을 했다.

“아…모르겠어! 진짜… 나도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어.”

그래서일까? 강백현이 그녀를 위해 술잔을 들었다.

“술 한잔 하시죠. 저도 한잔 하겠습니다.”

“안 먹는다면서요.”

“성현 씨가 이렇게까지 진심을 말하는데, 안 먹어주면 예의가 아니죠. 운전은 박 비서 부르겠습니다.”

“그래요. 그렇게 해요. 짠!”

김성현이 도수 높은 보드카를 따라주었다.

강백현은 그 잔을 받은 후 같이 마시기 시작했다.

“박 비서에게 미리 전화해요. 대기하고 있으라고.”

“네. 아가씨.”

김성현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강백현이 박창현에게 전화를 걸었다.

- 어. 뭐냐?

“어디세요?

- 어디긴, 호텔이지. 왜? 얼른 들어와. 도련님이 또 대리운전 시킬 수도 있으니까. 이번엔 너야. 빠져나가려고 하지 마.

“아… 그것보다 오늘은 아가씨가 대리운전이 필요해서요.”

- 뭐? 네가 하면 되잖아.

“그게, 전 지금 아가씨랑 술을 먹거든요. 호텔 주소 불러드릴 테니까 이쪽으로 와주세요.”

- 야! 야! 야! 네가 술을 안 먹으면 되잖아.

“죄송합니다. 이미 먹었거든요.”

- 뭐?! 뭐?! 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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