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뚝배기 깨러 왔습니다-36화 (36/139)
  • 뚝배기 깨러 왔습니다 36화

    강백현의 말에 한숨을 내쉬며 도련님을 모시러 가는 박창현.

    “너! 오늘 한번만이야. 알았어? 내일부터는 네가 도련님 모시는 거야!”

    “눼이눼이. 다녀오십쇼!”

    “하아~ 뭐 저런 놈이 다 있냐?”

    “박 비서님이 보시기에 처음부터 그런 놈이지 않았습니까? 새삼스럽게 왜 그러십니까?”

    “말이라도 못하면… 야! 너 이렇게 나오면 끝난다. 어? 분명히 말해두는데 내가 서열 너보다 위야. 명심해!”

    “그럼요. 박 비서님이 서열 높죠. 전 이제 막 들어온 개념 없는 신입이고요.”

    “하아… 뒷골 아파.”

    박창현이 나갔다.

    그걸 보며 최용규가 고개를 저었다.

    [어디서 보던 패턴이다?]

    “선배가 나한테 가르쳐줬던 거잖아요. 정보의 우위로 사람을 조종하고 움직인다. 힘이 있으려면 정보가 있어야 한다. 그런 말 안 했어요?”

    [내가 언제 그런 말을 해!]

    “고기웅 정보 알려주면서 김성현 실장님 행동 조종하던 거 생각 안 나요? 수면제 운운하면서 그 자리에서 벗어나라고 전화시키고. 자살 시도할 때도 편지 남긴 거 있다고 알려주라고, 그거 봐야 한다고 하면서 나랑 김성현 조종했잖아요.”

    [그거야 성현이 살리려고 그런 거잖아.]

    “나도 지금 김성현 실장 위해서 고민하고 시간 벌어두는 거잖아요. 사실 선배를 위해서 이렇게 행동하는 거예요.”

    [네 평안과 안위를 위해서겠지. 말은 똑바로 하셔.]

    “네버네버, 그런 거 아닙니다. 전 이 직장 당장이라도 그만둘 수 있어요. 그런데 왜 여기 다니겠습니까? 다 선배 위해서 다니는 거잖아요. 심지어 저 유부남에 게이로 몰렸잖아요.”

    강백현의 말에 최용규가 씰룩거리며 생각했다.

    [‘이미 다 퍼졌어 인마.’]

    그러나 딱히 뭐라 대답하지 않는 최용규. 그를 보며 강백현이 자신의 생각을 다시 한 번 정리했다.

    “뭐, 나도 선배 이용했으니까 뭐라고 하진 않을게요. 선배의 행동 자체는 굉장히 논리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김성현 실장을 위기로부터 구한 것도 분명한 사실이고요.”

    [알면 됐어. 아무튼 고기웅하고는 앞으로 접촉하지 마. 너한테 좋은 일 없을 테니까.]

    최용규의 말에 강백현이 고개를 저었다.

    “그건 힘들 것 같네요. 저쪽에서 엄청 적극적으로 구애를 해오는 것 같거든요.”

    [뭐?!]

    때마침 강백현의 전화가 울리고 있었다.

    고기웅 본부장이었다.

    - 강 비서, 어디에요?

    “메리야트 호텔입니다.”

    - 어? 성현 씨가 호텔에 무슨 일이 있나보죠?

    “아뇨. 아가씨는 지금 주무시고 계십니다.”

    - 뭐라고요? 강 비서는 어딘데요?

    “호텔에서 누워있습니다.”

    - 뭐야?! 성현 씨랑 같이 자고 있다고!!

    갑자기 튀어나오는 반말에 고성.

    잠깐 오해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봤을 뿐인데, 역시 이 녀석은 김성현에 대한 집착이 위험한 수준이다.

    강백현이 바로 오해를 풀었다.

    “아니요, 본부장님, 오해는 마시고요. 아가씨는 집에서 주무시고 있고, 저는 15km 떨어진 호텔에서 자고 있습니다.”

    - 아… 이 사람 말하는 방법이 잘못 됐네. 앞으로 오해 살 발언하지 마요. 그리고 성현 씨한테 접근하는 사람은 바로바로 알려주고요.

    “네. 고기웅 본부장님?”

    - 강비서 말해요. 듣고 있어요.

    “오늘 런칭한 영패션 관련 정보가 있으면, 본부장님께서 아가씨한테 좋은 점수를 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가씨께서 때마침 편집샵 관련 시장분석 자료를 찾고 계셨거든요.”

    - 아, 그래요? 하지만 그건 곤란한데! 기업 기밀이라서 힘들지.

    “그럼 앞으로 저도 아가씨 정보는 개인정보라서 제공해드리기 곤란할 것 같습니다.”

    - 네? 강 비서! 지금 나랑 거래하자는 거야?

    “오는 게 있어야 가는 게 있지 않겠습니까? 제가 언제부터 본부장님 비서입니까? 전 성한 그룹이 아니라 메리야트 그룹의 비서입니다. 딜 받으시겠습니까?”

    거래를 시도하는 강백현. 그러자 거부감이 들었는지 고기웅의 신사적인 태도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 좋아. 그렇게 나온다 이거지? 강 비서! 이제부터 너한텐 반말로 할게. 솔직히 말해서 너 아니어도 정보 얻을 데는 많아! 내가 능력이 안 될 것 같아? 김성현이랑 내가 잘 되면 너부터 자른다. 알았어? 어디서 입을 함부로 놀려?

    웃긴 협박이었다.

    백현에겐 어차피 임용만 결정되면 바로 그만둘 직업이다.

    그전에 네가 날 어떻게 자를 건데? 아니, 자른다 해도 내가 조금이라도 겁낼 줄 알아?

    하지만 아직 딜은 끝나지 않았다.

    “잠깐만요. 본부장님?”

    - 후후, 왜 겁이 나나?

    “저는 어디까지나 이 기회를 잡고 싶어 말씀드린 겁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전 메리야트 그룹에 뼈를 묻고 싶습니다. 그래서 아가씨한테나 회장님께 잘 보이고 싶고요. 그럼 저한테도 주도권이 있어야 합니다.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어디까지나 거래입니다.”

    - 거래? 자세히 말해 봐.

    “이번에 런칭하는 푸드셔츠 브랜드 관련해서 준비 관련한 프로세스를 저희한테 제공해 주시면 제가 본부장님이 아가씨하고 잘 되도록 적극적으로 밀어드리겠습니다. 일단 저도 업무적으로 인정을 받아야 아가씨 곁에 있을 수 있고, 본부장님도 제가 아가씨 곁에 오래 있어야 좋은 정보를 지속적으로 얻는 게 아닙니까? 계속 오늘처럼 헛걸음만 하실 겁니까?”

    헛걸음이란 말에 고기웅이 잠시 생각하더니 답변을 내놓았다.

    - 알았어. 내가 김성현이랑 잘 되면 넌 무조건 챙겨준다. 대신, 남들한테 입 뻥긋도 하지 마. 김성현은 나랑 우연히 만난 걸로 해야 돼! 그래야 호감을 줄 수 있을 테니까. 알았어?

    “네. 알겠습니다.”

    사람을 조종한다는 것.

    그걸 배운 것은 공무원 일을 하면서였다.

    시장, 국장, 과장 놈들은 항상 밑의 사람들을 자신들의 입맛대로 길들이고 조종하길 원했다.

    하도 당하다보니 이제 관련한 심리를 너무나 잘 꿰뚫고 있는 강백현.

    그래서 자신이 원하는 대로 갑의 위치에 있는 이들을 유도할 수 있었다.

    ‘이러다 걸리면 어떻게 하지?’

    강백현이 잠시 고민했다. 결론은 간단했다.

    ‘뭐, 사표내면 되겠지.’

    어차피 임시 직업.

    그래도 김성현에게 도움은 되어 주고 싶었다.

    왜? 그냥. 착하니까. 선배의 전 여자 친구이기도 했고.

    새벽 3시.

    박창현이 한숨을 내쉬며 5시간 만에 방으로 들어왔다.

    “왔어요?”

    “이 쒸발!”

    “네?”

    “야 인마! 도련님 4차까지 가느라고 노래방까지 운전하고, 컨셉 살린 바에서 2시간 대기하고. 도련님하고 그 밑에 직원들 집까지 다 데려다주고. 벌써 새벽 3시가 넘었다. 내가 이런 거 할 군번이야?”

    “이거나 보십쇼.”

    강백현은 고기웅의 수행비서 박지훈으로부터 편집샵 런칭과정이 담긴 자료를 건네받았다. 그걸 보면서 공부하고 있는 것이다.

    “이게 뭐야?”

    “고기웅 본부장님으로부터 받은 자료입니다. 이걸로 아가씨께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네요.”

    “그걸 밤새 보고 있었냐?”

    “그럼요. 맡은 직무가 비서면, 비서역할을 해야죠. 먼저 주무세요. 저는 자료 마저 보고 잘게요.”

    백현은 밤동안 그 자료를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보고 또 보았다.

    그래도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은 스마트폰으로 검색하고, 그래도 안 되면 유튜브를 통해 영상자료를 참고해서 공부했다.

    하루 만에 노하우를 전부 습득하는 것은 불가능했지만, 대략적인 방법은 알 수 있었다.

    문제는 김성현과 고기웅을 만나지 못하게 하면서도 고기웅을 실망시키지 않는 방법.

    백현은 그 부분에서는 자신이 있었다.

    [너 왜 이렇게 열심히 하냐?]

    최용규의 질문에 백현이 답했다.

    “다 선배 때문이죠. 선배 마음 사로잡으려면 이렇게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으니까. 대신 선배도 저 잘 되도록 밀어주셔야 합니다.”

    백현의 말에 최용규가 씩 웃었다.

    [크크크크]

    그리고 동시에 반대편 침대에서 망할 욕이 튀어나왔다.

    “호모 자식! 내가 너한테 왜 사로 잡히냐고! 이 미친놈아!”

    * * *

    다음 날, 강백현은 피곤에 절어 있는 박창현에게 피로회복제 하나를 건넸다.

    “뭐냐?”

    “드시라고요. 많이 피곤해 보이시네요. 타우린 많이 들어서 각성제 역할 제대로 할 거예요.”

    “병 주고 약 주냐?”

    “병은 원래 박 비서님이 스스로 얻으신 거고, 전 약만 드린 거죠. 저 생각보다 좋은 놈입니다!”

    “미친 놈! 어휴! 넌 진짜… 진짜 어디부터 고쳐놔야 할지 모르겠네. 내 어디가 좋냐? 어디가 좋아서 그렇게 쥐었다 놨다 그러냐?”

    “저 비서님 안 좋아한다니까요! 도착했어요. 주차하시죠.”

    “어휴~ 지가 상전이야. 상전!”

    회장댁으로 출근하자마자 차에서 내린 강백현이 50대 중반의 기사님에게 깍듯이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고생 많으십니다.”

    “어~ 그래요. 우리 신입 비서 양반, 열심히 하는 모습이 보기 좋아.”

    “아~ 네. 올라오는 길에 기사님 드시라고 피로회복제 하나 샀어요. 드시고 오늘도 힘내세요.”

    “고맙네. 어려운 점은 없지? 적응은 잘한 것 같은데?”

    김 기사의 말에 백현이 빙그레 웃었다.

    “빨리 적응해야죠. 우리 김 기사님 일도 덜어드리고. 그래야 다 같이 편하죠. 열심히 하겠습니다.”

    강백현의 말에 박창현이 피로한 눈을 치켜세웠다.

    ‘저 새낀 뭐야?! 왜 기사님한테는 또 깍듯해?’

    강백현이 이렇게 예의를 갖추자 회장님의 출근 전용 기사인 김도규가 박창현을 불렀다.

    “야, 창현아.”

    “네. 기사님.”

    “후임 엄청 잘 들어왔네. 싹싹하고 잘할 것 같은데?”

    “무슨 소리를 하세요? 쟤 완전 진상이에요!”

    “뭐래는 거야? 너 처음 들어왔을 때보다 훨씬 좋구먼.”

    김도규의 말에 박창현이 갑자기 강백현을 불렀다.

    “야! 강백현.”

    “네. 박 비서님. 듣고 있습니다.”

    “네가 아무리 잘 해도 넌 이제 막 온 놈이고, 난 여기 들어온 지 3년이 다 됐어. 회장님이 얼마나 날 신임하는 지 아냐?”

    “그러십니까?”

    “어라? 이게 안 믿는 눈치네. 이따 보여준다. 어?”

    “알겠습니다.”

    오늘은 다행히 김성현보다 김도한 회장님이 먼저 나왔다.

    회장님은 박창현을 얼마나 신임하고 있을까?

    회장님을 바라보며 큰 소리로 인사하는 강백현.

    “회장님, 좋은 아침입니다.”

    “아~ 그래요. 우리 강백현 씨, 수행비서로 들어온 거 환영해요. 식사라도 한 번 했어야 하는데, 나중에 자리 한 번 마련할게요.”

    “네. 회장님, 앞으로 열심히 하겠습니다.”

    “봉사활동도 열심히 한다면서요? 우리 성현이랑은 알고 지냈다고 하던데, 나중에 따로 물어볼게요. 아무튼 성현이 수행비서로서 믿음직스럽다고 난 생각하니까, 앞으로도 열심히 해줘요.”

    “네. 알겠습니다.”

    회장님의 따뜻한 반응.

    강백현이 고개를 돌려 박창현에게 치아를 드러내며 미소를 지었다. 그러자 경쟁 의식에 불타는 박창현이 오늘 일정이 담긴 스케줄표를 건네며 말했다.

    “오늘 아침, 그룹 회의가 있으십니다. 어제 비서실장으로부터 건네받은 최종 일정표입니다.”

    “아, 그래. 우리 박 비서 고생이 많네.”

    “네. 뭐든 말씀만 하십쇼. 오늘 일정이 많이 빕니다. 일 주시면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래? 안 그래도 시킬 일이 있었는데 잘 됐네.”

    박창현은 미소를 지었다.

    자신을 믿고 일을 맡기는 회장.

    과연 그 일이 무엇일까?

    이걸로 후배 녀석은 자신이 이 집안에서 얼마나 인정받는지 알게 될 것이다.

    회장님이 입을 열었다.

    “박 비서, 오늘 뽀삐 데리고 샵 좀 다녀와.”

    “네? 뽀삐요?”

    “응. 우리 애완견 이름이 뽀삐잖아. 샵에서 전용샴푸로 목욕 좀 시키고 와요. 뭐 문제 있나?”

    “아닙니다. 회장님,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그래. 아~ 간 김에 샵에서 뽀삐 옷도 좀 사오고.”

    “아… 네.”

    회장이 떠나는 길. 두 수행비서가 90도로 허리를 꺾으며 인사를 올린다.

    그리고 차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강백현이 슬쩍 말했다.

    “박 비서님?”

    “뭐!”

    “애완견 목욕시키고 옷 사는 거, 엄청 신임 받고 있는 것 맞죠?”

    강백현의 말에 박창현이 빈정 상한 듯 소리를 질렀다.

    “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