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뚝배기 깨러 왔습니다-35화 (35/139)
  • 뚝배기 깨러 왔습니다 35화

    고기웅은 자신의 수행비서에게 분노를 쏟아냈다.

    “너 때문에 헛걸음 했잖아. 왜 확인 안 했어? 김성현 위치 왜 확인 못했냐고?!”

    “죄송합니다.”

    “내 몸값 알지? 얼마나 손해 봤는지 알아?! 너 때문에 이런 쓸데없는 곳까지 오게 됐잖아!”

    고기웅의 수행비서, 박지훈은 뺨을 맞고도 저항하지 못했다.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사실 이곳으로 오자고 한 사람은 고기웅이었다.

    본인이 직접 마르코에게 연락해서 김성현이 대현백화점 판교점에 온다는 소릴 들었다. 오는 내내 신이 났는지 휘파람까지 불고 난리였다.

    그래서 확인을 못했다.

    자신이 직접 확인했다면 이런 실수는 없었을 텐데.

    하지만 불만을 말하는 순간 직장에서 잘린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후환이 두렵다.

    이미 벌여놓은 일이 너무 많았다.

    그가 벌인 불법적인 행동에 동조한 죄.

    그것만 걸려도 감방에서 몇 년은 살아야 할 처지라 빠져나갈 수도 없다.

    “너랑 나는 평생 같이 가는 거야. 박지훈! 알겠지?”

    “네. 도련님.”

    “그래 인마! 내가 찍은 여자 중에 안 자빠진 애 없다. 김성현도 그럴 거고.”

    “네. 그렇게 될 겁니다.”

    “빨리 운전해. 청담동 샤이네스 호텔, 거기서 패션쇼 하고 있단다.”

    “네. 바로 운전하겠습니다.”

    강백현은 같은 비서인 그가 너무나 불쌍해보였다.

    윗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대우가 달라지는 비서라는 자리.

    그래서일까?

    김성현의 성품이 다시 한 번 빛나는 상황이다.

    그런데 그런 생각을 멈추게 하는 사람이 나타났다.

    “어머! 자기야~ 오래 기다렸어?”

    “시크릿 가든… 잘 다녀오셨어요?”

    “부끄부끄. 그런 것 묻지 마!”

    “아… 넵. 회사로 가면 되죠?”

    “응!”

    회사로 돌아오니 벌써 퇴근시간이다.

    김성현은 오후 5시 30분이 되자 직원들에게 말했다.

    “다들 일찍 퇴근해요.”

    “아직 30분 남았는데요?”

    “실장 권한으로 오늘은 일찍 퇴근합시다. 연주 씨! 진희 씨, 마르코 씨도 퇴근하시고요.”

    “네.”

    그리고 강백현에게 따로 요구하는 김성현.

    “백현 씨는 나 집까지 좀 태워줘요.”

    “네.”

    차량 안.

    김성현은 계속해서 스케치를 하고 있었다.

    강백현은 그림을 잘 그리는 그녀가 신기했다.

    “잘 그리시네요?”

    “그럼요. 나 패션 전공인데?”

    “아… 오늘 패션쇼 가셨다면서요.”

    “맞아요. 마르코 씨가 그렇게 이야기했나요?”

    “네.”

    “오늘 좀 놀랐어요. 고작 5개월 정도 밖에 안 쉬었는데 트렌드가 완전 바뀌어서 어디부터 손을 대야 될지 감이 안 서네요.”

    “아….”

    그때 최용규가 끼어들었다.

    [위로 좀 해줘. 오늘 외국 업체랑 런칭 계약 접촉하다가 까였어. 재정상태 안 좋다고.]

    ‘그런 겁니까?’

    오늘의 패션쇼는 이탈리아에서 유명한 브랜드, ‘피렌체올’의 런칭 행사였다. 현대적이고도 독특한 드레스로 명성 높은 세계적인 브랜드다.

    이 브랜드를 국내에 런칭하고 싶어한 김성현이 해당 팀과 접촉을 시도한 것이다.

    하지만 결과는?

    저들은 무관심으로 대응했다.

    [재정상태 때문에 지속가능한 성장가능성에 의구심을 품었다. 거기에 대해 똑바로 답변을 못하기도 했고.]

    그룹 전체가 위기이다 보니, 순조롭게 흘러가는 게 없다.

    뉴스를 봐도 마찬가지다.

    [메리야트 그룹 채권등급 A-에서 BBB로 하향 조정.]

    [메리야트 그룹, 유동성 위기론 대두. 앞으로 2년 이내 위험할 수 있다.]

    모두가 아는 위험.

    그래서일까?

    상장된 주식도 52주째 최저가를 경신하고.

    초록창과 코코아 사이트의 주식 게시판에도 주주들의 원성이 자자하다.

    [막차입니다. 얼른 빠져나오세요] 찬성 51, 반대 3

    [지켜봐도 가능성 없습니다. 전 오늘 손절했음] 찬성 44, 반대 2

    [김도한 회장 찍어 죽여버리고 싶다. 그냥 물러나지. 진심 무능력자] 찬성 35, 반대 27

    김성현도 분명 알고 있을 것이다.

    자신이 그룹을 살릴 희망이란 것도 안다.

    자신의 어머니도 그렇게 했었으니까.

    강백현의 입에서 자신도 모르게 위로의 말이 튀어나왔다.

    “성현 씨.”

    “네?”

    “판교점 가 봤는데요.”

    “네.”

    “성한그룹 사람 만났어요. 그쪽은 편집샵 내일 오픈하더라구요. 패션업계에 대해서 제가 잘 모르지만, 그쪽에서는 직관적이고 개성적인 옷으로 밀어붙이는 것 같았어요.”

    “아… 컨셉이 음식이라고 했었죠?”

    “네. 정확히는 디저트죠. 아이스크림, 사탕, 그리고 케이크가 프린팅된 옷이요. 주제는 스위트, 달콤함이요.”

    “10~20대 여성층을 공략한 거네요?”

    “네. 아무래도 옷 같은 경우는 남성보다는 여성의 구매지수가 높다고 하니까요.”

    백현의 말에 김성현이 웃고 말았다.

    “왜 웃어요?”

    “아니, 백현 씨가 전문 용어 사용하니까 재밌어서…. 패션 업계 오래 일한 사람 같아서.”

    “그랬으면 좋겠네요. 제가 경력 좀 있고 실력도 있었으면 도움이 될 수 있을 텐데, 지금은 솔직히 아무 것도 모르는 상황이죠.”

    “아니에요. 패션 업계는 많이 배웠다고 꼭 성공하진 않아요. 트렌드는 자주 바뀌고, 유행은 순식간에 지나가고. 어쩔 때는 뜻밖에 유행이 지속되기도 하고요. 그러니까 제가 백현 씨보다 더 뛰어나지도 않고 백현 씨가 저보다 아래일 것도 없어요.”

    “네. 좋은 말씀 감사하네요. 앞으로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네. 잘해봐요.”

    그냥 일상적인 대화일 뿐인데….

    김성현은 마음 속의 울적함이 조금은 가라앉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 서두르지 말고 한걸음씩 천천히 나아가면 돼.’

    오늘의 협상 실패.

    나중에 더 큰 기회가 올 수도 있다.

    집 앞에 도착한 강백현이 김성현에게 말했다.

    “내일 7시 40분에 집 앞에서 대기하겠습니다.”

    “식사 맛있게 하시고요.”

    “네!

    “아~ 백현 씨!”

    “네?”

    “오늘 마르코 씨랑은 어땠어요? 괜찮았어요?”

    “네. 저보다 형님이신데, 젊게 사시는 것 같아서 배울 점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아… 그거 말고는?”

    “네?!”

    “아~ 아닙니다! 들어가요!”

    * * *

    호텔로 들어온 강백현이 지친 얼굴로 침대에 누웠다.

    순식간에 잠이 든 강백현.

    그만큼 오늘 일은 고됐다.

    운전하고, 짐 나르고, 모르는 패션에 대해 공부하고, 또 운전하고.

    모든 게 사람 상대하고 비위 맞추는 일.

    그때, 고기웅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는 고압적인 시선으로 강백현을 바라보고 있었다.

    “강 비서!”

    “네?”

    “내가 성현 씨 위치 보고하라고 했지?”

    “제가 보고해야 할 의무가 있나요?”

    “이 새끼야! 돈 받아쳐먹었으면 일을 똑바로 하란 말이야!”

    고기웅의 손바닥이 강백현의 뺨을 정확하게 후려친다.

    강백현이 놀라 꿈에서 깨며 자신의 뺨을 어루만졌다.

    “으아아아악!”

    다행히 꿈이었다.

    그런데 박창현이 자신의 뺨을 치고 있다.

    “인마, 잠 그만 자고, 1시간 뒤에 도련님 모시러 가.”

    “아… 깜짝 놀랐잖아요! 자는데 왜 뺨을 때리세요! 악몽 꿨잖아요!”

    백현의 말에 기가 막힌 박창현이 혀를 찼다.

    “악몽? 난 네가 악몽이다. 이 자식아! 오늘 진짜 힘들어 뒤지는 줄 알았네.”

    “왜요?”

    “왜긴 왜야. 네가 할 일, 내가 다 해서 그렇지.”

    내가 할 일?

    백현은 일단 박창현 비서의 말을 더 들어주기로 결심했다.

    “무슨 일 하셨는데요?”

    “뭐하긴! 식료품 사고, 청소하고, 심부름하고 뭐 그런 거지.”

    “별로 하신 거 없으신 것 같은데요?”

    “야! 이제 막 일 끝났는데, 도련님이 지금 술 먹었다고 한 시간 뒤에 대리운전 오라는데 짜증 안 나게 생겼냐? 도련님한테는 네가 가라. 어?”

    항상 대립각을 세우던 박창현.

    지금은 자신의 일까지 덮어씌우려는 걸 모를 리가 없다.

    결국 백현이 정공법을 택했다.

    “박 비서님~.”

    “응?”

    “비서 일, 참 고되네요.”

    “왜? 넌 며칠 일했다고 그 말이 나오냐? 너 설마 그만두려는 건 아니지? 너 지금 엄청 꿀 빨고 있는 건 아냐?”

    “꿀은 무슨 꿀이에요. 오늘 저도 쉽지는 않았어요.”

    “내가 더 쉽지 않았어 인마! 오늘 하루 종일 업자 아저씨랑 같이 보일러까지 뺐다고.”

    “보일러를 빼요?”

    “그래. 보일러실 개조해서 화장실 만든다고 해서 그거 같이 도와주고 있었다. 그것만 한 줄 아냐?”

    “음… 그러셨구나. 그렇다고 제가 힘들다는 건 아니고요.”

    “그럼? 뭐야? 도대체 뭐가 불만인데?”

    “오늘 성한 그룹 고기웅 본부장을 봤어요.”

    “뭐?”

    “네. 그 분 비서분도 봤는데, 상당히 고생하시더라구요.”

    “지훈이는 왜?”

    박창현의 말에 강백현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았다.

    “아는 사이십니까?”

    “박지훈. 종종 연락해. 나랑 사촌이야.”

    단순히 아는 사이도 아니고 사촌이라니. 서울은 인구가 많아도 좁다.

    “그 사람, 성현 아가씨 때문에 자주 연락 오죠?”

    “어? 어떻게 알았어?”

    “고기웅 본부장이 성현 아가씨 좋아하잖아요.”

    “그랬었지. 3년 전에도 최용규 그 사람 만나기 전까지 막 따라다녔었지. 최근에는 아주 집착을 해. 그것 때문에 나도 오늘만 2번인가 연락 받았어.”

    “아… 박 비서님도 받으셨어요?”

    “그래. 근데 넌 왜? 지훈이 걔가 너한테도 성현 아가씨 위치 알려달라고 그러냐?”

    “그건 아닌데요. 그냥 아닙니다.”

    강백현은 자신의 스마트폰에 저장된 동영상이 떠올랐다.

    그래서 고기웅에 대해 박창현이 어디까지 아는지 궁금했다.

    “그 본부장이라는 분은 왜 그런 걸까요? 혹시 여성 편력이 있으신 건가요?”

    박창현은 그런 백현의 질문에 알 것 없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

    “그것 말고도 말 못할 게 있어.”

    백현은 박창현의 대답을 듣고 되물었다.

    “말 못할 거라면 마약인가요?”

    “어?! 너 어디까지 알고 있어? 누구한테 들었어? 지훈이가 그랬어?”

    박창현의 반응에 강백현이 씩 웃으며 답했다.

    “저는 그분 알지도 못하는데요. 그럼 누가 말했을까요?”

    “장난치지 말고 말해! 누가 말했어? 그거 입 밖에 내지 마. 어? 누가 그렇게 말하고 다녀? 어?”

    박창현은 흥분한 듯 언성이 높아졌다.

    그걸 보며 강백현이 장난 식으로 위기를 넘겼다.

    “박 비서님이 저한테 말하셨잖아요.”

    “뭐?! 내가 언제?”

    “언제긴, 기억 안나요? 잠꼬대 하면서 다 말했잖아요. 고기웅 본부장, 마약하지 마, 그렇게 잠꼬대 엄청 하시던데요.”

    “나 잠꼬대 안 하는데? 장난치지 말고 누구한테 들었냐니까!”

    “아~ 제가 왜 박 비서님께 거짓말하겠습니까? 잠꼬대 하면서 혼잣말로 그렇게 하셨다니까요.”

    강백현은 슬기롭게 위기를 모면했다.

    그러자 박창현 스스로도 헷갈리기 시작했다.

    “야! 그거 함부로 내뱉지 마. 나도 죽고 지훈이도 죽는다. 어?”

    “그거야 박 비서님이 저한테 하기 나름이겠죠?”

    “뭐야?!”

    강백현의 어투는 가벼웠지만 박창현은 갑자기 진지해졌다.

    “장난치는 거지? 어?”

    “아뇨. 진심인데요.”

    이미 얼마나 사고뭉치인지 몸소 보여준 강백현.

    이 새끼의 입은 너무나 싸서, 헐값에도 안사는 수준일 것이다.

    박창현이 당황하기 시작했다.

    “백현아.”

    “네?”

    “내가 잘못했다. 그거 어디 가서 떠벌리고 다니면 안 돼! 어? 진짜 말하면 안 돼. 인마! 큰일 나. 여럿 죽어.”

    상황이 반전되었다.

    강백현이 장난스런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럼 도련님 대리운전은 박 비서님이 가주실래요?”

    “뭐?”

    “싫으신가요?”

    “아니…야! 이건 아니잖아. 엄연히 난 너보다 선배고 나이도 많은데, 지금 이 상황 뭐냐?”

    “싫으면 어쩔 수 없습니다. 그럼 제가 다녀오겠습니다. 다만, 제 입이 무겁지 못해서요.”

    “무겁지 못하면?”

    “고기웅 본부장, 마약하는 거 박창현 비서님이 말했다고 경찰한테 제보하면 뭔가 나오지 않겠습니까?”

    “야~! 농담이지?”

    “그럴 리가요. 저는 피곤해서 잠이나 자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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