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뚝배기 깨러 왔습니다-33화 (33/139)
  • 뚝배기 깨러 왔습니다 33화

    메리야트 그룹의 패션사업 브랜드.

    메리야트 패션은 철저하게 여성 패션에 치중하는 기업이었다.

    그들이 관리하는 브랜드는 총 11개.

    패션 브랜드 블량샤는 그 중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루었다.

    그 브랜드를 관리하는 사람이 바로 김성현.

    그녀가 등장하자 자리에서 일어선 사람들이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실장님, 나오셨어요?”

    “실장님! 이제 괜찮으시죠? 없으신 동안 너무 허전했어요.”

    김성현 또한 미소를 지으며 답례했다.

    “모두 미안해요. 생각보다 복귀가 늦어졌네요. 저 없는 동안에도 블랑샤를 위해서 노력해줘서 고마워요.”

    “아니에요. 실장님 이제 괜찮으신 거죠?”

    “네. 그럼요. 남자친구가 떠났다고 저까지 무너져 버리면 안 되잖아요. 이제 저도 힘내야죠. 진희 씨랑 연주 씨 힘든 것은 없죠?”

    김성현의 질문에 윤진희가 대답했다.

    “실장님 없어서 힘든 것은 있었죠. 마음대로 회식도 못하고, 기획실에 구박당하고, 실적 안 나온다고 욕먹고.”

    그러자 옆에 있던 고연주가 윤진희를 나무랐다.

    “야! 진희야! 실장님 오시자마자 그런 말을 왜 해?”

    “왜?! 사실이잖아요. 우리 힘들었잖아요.”

    사실 김성현도 예상했었다.

    기획실에서 어떻게 나올지… 어차피 다 경쟁이니까.

    “괜찮아요. 우리끼리는 서로 편하게 얘기하기로 했잖아요. 연주 씨, 진희 씨가 하는 말 다 이해해요. 그거 막으려고 제가 왔잖아요?”

    “네! 실장님!”

    그런데 한 사람이 보이질 않는다.

    “마르코는 어디 있어요?”

    “마르코 씨는 지금 잠깐 외근 나갔는데, 금방 들어올 것 같아요.”

    김성현이 두 여성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렇구나.”

    그 때 강백현이 들어왔다.

    의상 샘플들을 내려놓고 멀뚱멀뚱 서 있는 백현.

    그러자 고연주가 백현에게 물었다.

    “누구세요? 찾으시는 분 있으세요?”

    “아니요. 전 성현 씨 따라왔는데요.”

    “네? 실장님이요?”

    김성현이 강백현의 대답에 미소를 머금었다.

    “이번에 제가 새로 뽑은 수행비서에요. 강백현 씨, 우리 진희 씨랑 연주 씨한테 인사해요.”

    “아… 수행비서 강백현입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아… 네. 우와.”

    양복 입은 맵시 때문이었을까? 땀을 흘리는 모습이 멋있어서였을까?

    저도 모르게 감탄사를 내뱉고 만 윤진희.

    고연주가 윤진희의 옆구리를 팍 찔렀다.

    ‘어휴, 진짜 얘는 남자 앞에서는 적당히란 것을 몰라. 잘 생기긴 했네.’

    “안녕하세요. 패션 디자인 담당 고연주에요. 잘 부탁해요.”

    “네. 잘 부탁드립니다. 그런데 성현 씨, 제가 뭘 해야 하는 건가요?”

    강백현의 물음에 성현이 씩 웃었다.

    “일단 패션 쪽을 공부해 봐요. 일해보다보면 평생 직장이 될 수도 있는 거니까.”

    “아… 수행비서도 하고, 패션 쪽도 하고?”

    “그렇죠? 왜요?”

    “아닙니다. 해야죠.”

    강백현은 좌절했다.

    비서 및 운전기사가 6명이나 있어서 여유로울 줄 알았는데, 숫자가 많은 이유가 있었던 것.

    하나하나가 직접적인 손발이 되어주어야 하니, 봉급을 많이 받는 것도 이해가 됐다.

    “저희는 소수에요. 여기에 마르코 씨까지 총 4명이 근무하고, 이번에 백현 씨까지 같이 일하게 되면 총 5명이 되겠죠?”

    “아… 그렇군요.”

    “일단 다음달 가을 신상 디자인부터 한 번 확인해볼까요?”

    “네!”

    세 여성이 이번 가을에 유행할 디자인을 논의하느라 분주했다.

    “실장님, 이번에는 긴팔 원피스가 유행할 것 같다고 해요. 이번 주에 이거 주문 넣을 거거든요.”

    “긴팔 원피스?”

    “네. 이것 보세요. 라운드 넥라인이 굉장히 단정하고 숄더 부분 디테일이 살아있어서 여성스러운 분위기를 내면서도 단아함까지 겸비해서 굉장히 인기 있을 것 같거든요.”

    “음, 그런가?”

    “네. 동양적인 미가 있으면서도 서구적인 패션감각을 추구하는 젊은 20-30대 여성들에게 크게 어필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강백현은 뭔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왜? 너 패션 좀 아냐?]

    강백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단조로워. 소매단하고 스커트 부분이 밋밋해.’

    미진이랑 같이 다녀봐서 여성들의 옷에 대해 기본적인 것은 알고 있다.

    그녀와 쇼핑하면 하루에 3시간은 기본.

    그러니 남자 옷보다는 여자 옷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된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백현 씨가 보기엔 어때요?”

    “괜찮은데요?”

    그렇다고 잘난 척할 생각은 없었다.

    “그래 보여요? 제가 볼 때는 뭔가 빠진 느낌이라서….”

    김성현의 말에 강백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윤진희가 실장에게 되물었다.

    “뭐가 빠진 것 같으신데요?”

    “글쎄, 뭐라고 해야 할까? 아직 모르겠어. 뭔가 부족해보여.”

    “아… 그럼 일단 다음 것 볼까요?”

    “응.”

    애매한 김성현의 말.

    다음 것도, 또 다음 것도. 별로 마음에 드는 것 같지 않다.

    강백현이 고민 끝에 입을 열었다.

    “앞에 건 소매단하고 스커트 부분에 플리츠를 더해주면 좋을 것 같아요.”

    “네?”

    “원피스 부분에 차르르 떨어지는 가벼운 플리츠를 넣으면 단조롭지 않고 과하지도 않아서 사랑스러운 느낌이 들 거 같은데요. 플리츠를 넣은 제품 자체가 많지 않은 편이라서 소장 가치도 있을 것 같고요.”

    강백현의 말에 윤진희가 또 혼잣말을 내뱉었다.

    “우와, 백현 씨 대박.”

    입이 딱 벌어진 윤진희의 옆구리를 찌르는 고연주.

    그녀가 상황을 정리했다.

    “확실히 주름을 넣어주면 단조로움은 없애주겠네요. 실장님, 한번 디자인 해볼까요?”

    “네. 그래요.”

    고연주가 그 자리에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강백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생각한 디자인이 그대로 나왔다.

    “어머, 진짜 괜찮다. 기장이 좀 길진 않을까? 백현 씨는 어때 보여요?”

    “무릎 위까지 올라왔으면 좋겠어요. 바디라인은 조절 가능하도록 원피스 말고 투피스로 갔으면 좋겠고요. 사람마다 허리라인 위치가 많이 다른데, 그 부분을 원피스로 맞추려고 하면 손이 많이 갈 것 같아요. 그래서 투피스로 갔으면 좋겠네요.”

    강백현의 말에 김성현이 웃음을 지었다.

    ‘굉장하네. 남자가 이런 거 알기 쉽지 않은데… 백현씨, 진짜 그쪽 맞구나?’

    “좋아요. 한번 이걸로 의뢰해보죠. 다음 디자인 볼까요?”

    “네!”

    진짜 오랜만에 열린 아이디어 회의.

    세 명의 여성과 강백현은 즐겁게 대화를 나누었다.

    강백현은 대화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속으로 생각했다.

    ‘미진이가 항상 말하던 불만사항이었는데… 이렇게 도움이 될 줄은 몰랐네.’

    미진이와의 백화점 쇼핑 당시.

    그녀는 항상 말했었다.

    『슬림한 허리라인을 강조해야 되는데 그게 없잖아. 안 그래?』

    『단추 디자인이 별로야. 이건 차라리 없는 게 나아.』

    『하나같이 다 이상해. 내가 디자이너였으면 진짜 이렇게는 안 했다.』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높아진 패션 감각.

    물론 그건 미진이의 불만 포인트가 예리해서였지만, 일단 도움은 됐다.

    2시간의 아이디어 회의가 끝나고 고연주가 웃으며 김성현에게 말을 건넸다.

    “실장님?”

    “네. 말씀하세요. 연주 씨.”

    “강백현 씨는 어디서 데려오셨어요?”

    “글쎄요. 어디부터 말해야 할까? 강백현 씨가 설명해보세요.”

    “아, 저는 충남 부주시에서 올라왔습니다. 백수였는데 실장님이 구제해주셨죠.”

    “아… 구제요? 혹시 사귀시는 사이?”

    고연주의 말에 김성현이 여성스러운 말투로 부정했다.

    “그런 거 아니야. 연주 씨 또 오해한다. 백현 씨는 그냥 봉사활동 다니시던 분이에요. 거기서 안면을 터서 섭외하게 된 거고.”

    “아… 그러셨구나. 그럼 백현 씨는 만나는 분은 없나요?”

    “헤어진 지 얼마 안 돼서요. 당분간은 혼자 있고 싶네요.”

    “아….”

    정말 아쉬운 듯한 목소리.

    “연주 씨 오늘 따라 왜 이래? 진희 씨도 그렇고, 다들 오랜만에 봐서 그런가?”

    “실장님~ 저희 맛있는 거 먹으러 가요.”

    “맛있는 거 뭐?”

    “파스타! 오늘 새로 오픈한다고 했거든요.”

    “어딘데?”

    “1층이요.”

    * * *

    1층에는 식당들이 몰려 있다.

    그룹 본사 직원이 모여 있다 보니, 제법 다양하게 구색이 갖추어져 있다.

    중식부터 일식, 한식. 피자 가게에 오늘 막 개업한 파스타 전문점까지.

    합리적인 가격으로 직장인들의 입맛을 공략하는 음식점들 때문에 사내식당보다 이쪽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었다.

    “사내식당은 왜 이용을 안 할까요? 가격도 4,000원으로 괜찮은데….”

    “아무래도 반찬이 똑같은 게 많으니까 물리는 것도 있고. 손님들 왔을 때 사내식당 대접하는 것보다는 이런 음식점에서 먹는 게 더 모양도 좋고 가격도 저렴한 편이니까요.”

    “그런가?”

    “네. 아무래도 그렇죠.”

    공무원과는 많이 달랐다.

    공무원들은 김영란 법 때문에 구설수에 오르지 않으려고 웬만하면 구내식당을 이용했는데. 여기는 오히려 반대의 분위기다.

    “백현 씨가 괜찮을지 모르겠다. 점심메뉴로 파스타는 별로인가?”

    “아니요. 좋아합니다. 버섯 크림소스에 미트볼 들어간 파스타를 가장 즐겨 먹기도 해요.”

    “그거 느끼하지 않아요?”

    “아뇨. 나름 맛있잖아요. 크리미한 맛으로 먹는 거 아닌가요? 느끼한 소스에 미트볼을 입에 넣으면 사르르 녹아내리는 게 아주 일품이죠.”

    “맞아. 맞아. 실장님! 백현 씨가 그렇게 말하니까 전 크림소스 미트볼 먹을게요.”

    “어? 연주 씨하고 백현 씨는 크림소스 미트볼? 진희 씨는 어떤 걸로 주문할래요?”

    “저도 같은 것으로 할게요.”

    “네. 알았어요. 그럼 크림소스 미트볼 3개, 그리고 전 치킨 올리브 파스타로 할게요.”

    기계를 눌러 주문하는 사람들.

    그런데 고연주가 카드를 낸다.

    “어? 연주 씨 왜요?”

    “오늘은 제가 사려고요.”

    “뭐야? 내가 사야죠. 그동안 고생 많이 했는데.”

    “아니에요. 실장님, 오랜만에 오셨잖아요. 새로 온 직원, 백현 씨도 있고.”

    “아직 정식으로 우리 팀에 들어온 건 아니에요.”

    “이미 들어와도 충분하겠던데요?! 남자도 한 명 밖에 없어서 좀 그랬는데, 백현 씨 와주니까 듬직하기도 하고요.”

    “으음?! 알았어요. 오늘은 연주 씨가 계산해요.”

    “네! 실장님.”

    대놓고 호감을 드러내는 여성 앞에서 강백현이 먼 산을 바라보듯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최용규가 신이 나서 떠들었다.

    [이야~ 너한테 호감 있나 보다. 보통 밥 먼저 안 사는데… 대쉬해 봐! 어?]

    ‘됐거든요? 저 이제 돈 모아야 합니다만?’

    자리에 앉은 네 사람.

    그때 울리는 전화, 모르는 번호다.

    강백현이 일단 전화를 끊었다.

    그러자 김성현이 물었다.

    “받아도 되요. 왜요?”

    “모르는 번호라서요.”

    “아….”

    그런데 또 전화가 온다. 같은 번호였다.

    “받아 봐요.”

    “네.”

    강백현이 일어나서 밖으로 나갔다.

    박창현으로부터 신신당부를 받았기 때문이다.

    아가씨 앞에서 전화 받지 말라고.

    예절에 어긋난다고.

    그래서 나가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 아, 강 비서님?

    “네?! 맞습니다. 누구시죠?”

    - 저 어제 뵈었던 고기웅입니다. 제 번호 아직 저장 안 하셨나봐요?

    “아… 네. 지금 저장하겠습니다. 무슨 일 때문에 연락주신 거죠?”

    - 지금 성현 씨 옆에 있나요?

    “아니요. 지금 식사하고 계십니다. 전 식당 밖에 나왔고요.”

    - 잘 됐네요. 제가 강 비서님한테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어서요.

    “어떤 건가요?”

    - 성현 씨 위치만 알려주시면 됩니다. 아시죠? 제가 성현 씨 마음에 두고 있다는 거.

    “그건 좀 곤란하겠는데요.”

    - 사례는 두둑하게 할게요. 저도 성현 씨하고 잘해보려고 그래요. 집안에서도 밀어주고 있고요. 나중에 우리 둘이 잘 되면, 강 비서도 한몫 챙겨줄 생각도 있어요. 그러니까 제가 나중에 연락하면 성현 씨 위치만 알려줘요. 그럼 우연을 가장해서 만남을 시도해 볼 테니까.

    자기 용건만 말하고 전화를 끊는 고기웅.

    강백현이 고개를 저었다.

    ‘이 사람은 부족한 것도 없으면서 왜 이렇게 김성현한테 집착을 하는 거야?’

    김성현이 못 났다는 건 아니다.

    충분히 매력적이다.

    하지만 고기웅도 그건 마찬가지였다.

    세상 어떤 여자도 그에게 한번쯤은 관심을 가져줄 터.

    미진이라면 아마 적극적으로 나섰을 텐데….

    다시 들어온 파스타집.

    그런데 아까보다 일행이 하나 늘었다.

    “아~ 저기 오네. 백현 씨! 처음 보죠? 인사해요. 아까 외근 나갔다던 마르코 씨.”

    팀에 한 명뿐인 남자.

    그런데 굉장히 개성 넘치는 남자였다.

    엄지와 검지로 하트를 만들며 강백현을 열렬히 환영하는 남자.

    “어머어머어머, 실장님~ 이 사람이 수행비서에요?”

    분명히 남자인데 목소리가 굉장히 깬다.

    “맞아요. 마르코 씨가 볼 땐 어때요?”

    “어머~ 이 남자 괜찮다? 자기! 어디서 구했어?”

    강백현은 마르코의 말투와 패션을 보고 한눈에 알았다.

    이 사람이 진짜 호모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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