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뚝배기 깨러 왔습니다-30화 (30/139)

뚝배기 깨러 왔습니다 30화

“갑자기 무슨 소리야?”

- 누나, 동생 사이에 밥 먹자는 말도 못해?

“안 돼. 오늘은 약속 있어서.”

- 누나, 이럴 거야? 하나뿐인 동생이 밥 먹자는데 안 나올 거야?

“미리 연락하지 그랬어.”

- 안 돼. 누나 꼭 나와. 오늘 나 생일인 거 알지? 누나랑 일부러 점심 먹으려고 시간 비워뒀단 말이야.

“알았어. 갈게. 어디로 가야 해?”

김성현이 전화를 끊고 미안한 목소리로 말했다.

“백현 씨, 어쩌죠?”

“어떤 것 말씀이세요?”

“동생이랑 같이 먹게 됐는데….”

“괜찮습니다. 어디로 모실까요?”

“종각에 있는 한정식집, 예원이요.”

한정식 집 예원.

서울 종로구 종각에 위치한 가장 유명한 한정식 집 중 하나다.

검색하니까 바로 그렇게 나왔다.

예약 없이는 갈 수 없을 정도로 인산인해인 곳.

수용인원이 500명이 넘는데도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는 것은 그만큼 지역사회에서 인정받는다는 뜻이다.

“예약하셨나요?”

“네. 김동성 이름으로 예약했는데요.”

“아… 잠시만요. 예약 확인되었습니다. 총 세 분 예약하신 것 맞으시죠?”

“세 명이요?”

“아, 이름은 김동성 씨가 맞고요?”

“네. 맞아요.”

“들어오시죠. 무궁화실로 모시겠습니다.”

들어가는 길.

강백현이 멈춰섰다.

“전 여기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아, 괜찮아요. 들어와요. 아마 엄마랑 같이 왔나 봐요. 그러고 보니 수행비서로 들어왔는데 엄마한테는 인사도 안 했죠?”

“세 분 예약이라고 해서 들어가기 좀 뭐합니다.”

“갑자기 존댓말?”

“아, 그래도 취업했는데, 격식 있게 가야죠.”

“내 앞에는 반말하고요?”

“그거야… 원래 아는 사람이었으니까.”

“됐어요. 들어가요. 배고파 죽겠어요.”

“네.”

중앙 복도를 사이로 수많은 꽃 이름이 붙은 방들이 보였다.

매화, 국화, 벚나무, 무화과, 그런 흔한 이름을 지나 마지막 방. 무궁화실.

김성현이 그 문을 열고 입장하고 백현이 따라 들어갔다.

그런데 가계도에서 보던 사모님이 아니라 다른 남자의 얼굴이 보인다.

백현은 알았다.

당황해하는 김성현과 반대로 동생 김동성이 웃음 짓고 있다는 것을.

“누나 왔어?”

“어… 동성아, 왜 기웅 씨가 여기 있어?”

고기웅의 등장에 순간 멈칫하는 김성현.

그도 그럴 것이 호텔 사건 이후 일부러 연락을 피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마주치니 당황할 수밖에.

그런데 고기웅은 환한 얼굴로 김성현에게 인사를 건넸다.

“왜 그래요? 못 본 사람 본 것처럼. 일단 앉아요.”

“……”

“사람 민망하게 만들지 말아요. 성현 씨, 거기 뒤에는 누구시죠?”

“아… 새로 일하게 된 수행비서 강백현입니다.”

강백현의 설명에 성현의 동생 김동성이 짜증을 냈다.

“아, 누나, 쟤는 왜 데려왔어?”

그러자 고기웅이 김동성을 나무라며 말했다.

“동성아, 누나가 그럴 수도 있지. 요즘 얼마나 위험한 세상인데, 안 그래요?”

[으아…미치겠다. 제일 위험한 새끼는 너잖아!]

최용규의 목소리에 머리가 아파왔다.

그런데 앞에서도 자신을 호명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강백현 씨?”

“네?”

“강 비서라고 불러도 되죠?”

“네. 괜찮습니다.”

“강 비서, 반갑습니다. 저는 성한그룹 미래기획실장 고기웅이라고 합니다. 앞으로 자주 연락하게 될 것 같은데 일단 명함 받으시고, 앉으시죠.”

강백현은 체격 좋고, 멀쩡해 보이는 그의 소개를 듣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고기웅?! 그 수면제?!’

“누나도 앉아. 내 생일인데….”

“응. 동성아, 너 주려고 안 그래도 양복 샀거든.”

“어. 집에 가서 입어볼게. 기웅이 형, 오늘 제 생일인데 술 한 잔 하실래요?”

“낮부터?”

“네. 저 형한테 잘 보여야 하잖아요.”

김동성의 말에 고기웅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네가 나한테 잘 보일게 뭐가 있어? 내가 성현 씨한테 잘 보여야지.”

“에이! 십 년 안에 성한그룹의 주인이 되실 분인데, 제가 잘 보여야죠.”

“아이구, 아우님! 메리야트 그룹을 물려받으실 분이 뭘 그렇게 예의를 갖추시나! 성현 씨! 우리 날도 좋은데 전통술로 가시죠.”

“낮부터 술은 별로라서.”

“성현 씨는 안 드셔도 되요. 저희끼리 먹겠습니다. 동성이 생일 많이 못 챙겨줘서 그동안 미안했는데, 오늘 이렇게 함께 하니까 기분이 너무 좋네요. 아~ 동성아.”

“네.”

“형이 네 선물도 샀다.”

“선물이요?”

“응.”

고기웅이 작은 선물박스 하나를 내밀었다.

“어? 형! 혹시 보석 아니에요? 남자가 주는 건 안 받는데.”

“일단 열어 봐.”

“네.”

선물박스를 풀어보는 김동성.

그 안에는 유명 외제 브랜드 차량의 스마트키가 들어있었다.

“형?”

“2015년 9월 출시 예정 차인데, 일단 키부터 받았어. 차량 인도되는데 보름 정도 기다려야 할 거야.”

“형, 이거 진짜 저 주시는 거예요?”

“너 5개월 전에 차 하나 해먹었잖아. 국산차 A7 타고 다니는 거 보면서 진짜 형이 얼마나 가슴 아팠는지 아냐?”

“아… 그랬죠. 그것만 생각하면 지금도 열 받네요.”

“됐어. 그래서 우리 아우님 잘 되라고 형이 차 사주잖아.”

아직 출시되지도 않은 외제차를 선물 받은 김동성의 얼굴에 함박 미소가 걸렸다.

강백현은 사실 좌불안석이었다.

어디서부터 끼어들어야 할지도, 무슨 말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저 침착하게 현 상황을 파악하고 있는 게 최선.

듣기만 했던 고기웅이란 남자의 옆자리에 앉은 강백현에게는 놀랄 일이 2가지가 있었다.

들은 것과 달리 젠틀한 점.

또 통이 일반 서민의 생각보다 굉장히 크다는 점.

그런데 고기웅이 준비한 선물은 그게 끝이 아니었나보다.

“성현 씨 온다고 해서, 사실 선물 하나 더 준비했어요.”

[아, 미친 놈! 아직도 포기 안 했어?! 이 새끼는 진짜!]

최용규가 발악하듯 옆에서 화를 냈다.

그러나 유령이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똑같은 선물박스.

저 안에 든 건 무엇일까?

궁금했다.

김성현은 열어보지 않았다.

아예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받기 싫은 눈치가 역력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김동성이 환한 웃음을 지으며 대신 선물박스를 열었다.

“누나, 왜 이렇게 쑥스러워 해? 내가 대신 연다? 어?”

손을 내밀어 선물박스를 열기 시작하는 김동성.

선물 박스 안에는 엄청나게 화려한 귀금속 목걸이가 들어있었다.

김동성은 자기 물건인 양 신이 나서 미소를 지었다.

“우와! 누나한테 진짜 잘 어울리겠다. 형 이거 다이아몬드 맞죠?”

“응. 맞아.”

“돈 좀 쓰셨는데요? 누나 진짜 좋겠다. 누나 다이아몬드 목걸이 하나도 없는데. 나 진짜 마음에 들어요.”

“에이, 네가 마음에 들면 뭐해? 성현 씨가 마음에 들어야지~.”

“누나! 얼른 목에 걸어 봐. 나는 차 키만 받아서 지금 타볼 수 없는데, 누나는 목걸이니까 지금 바로 착용해 볼 수 있잖아. 어?”

또 한 번 대비가 되었다.

강백현은 왜 지금 윤미진이 떠오르는지, 자신의 인생에 너무 깊이 들어왔던 그녀 때문에 혼란스러웠다.

미진이라면 지금 어떻게 했을까?

내가 사주던 20~30만원짜리 선물이 아니라 저런 선물을 받고 싶어 했겠지?

저걸 보며 바로 얘기했을 거야.

결혼하자고.

오빠는 역시 내 사랑이라고.

그래. 이건 당연한 거다.

미진이는 나를 보며 저 남자같이 행동해 주길 원한 거겠지.

다 줄 수 있는 사람.

차도 주고, 목걸이도 주고, 사랑도 줄 수 있는 남자.

그래도 전혀 부담 갖지 않을 재력을 가진 남자.

미진이 같은 여자에게는 분명 저런 남자가 1등 신랑감일 것이다.

그런데 김성현한테는?

최용규 선배가 사랑했던 김성현 선배는 어떤 결정을 내릴까?

그때 그녀가 입을 떼었다.

저음의 목소리. 그건 미진이와는 정반대의 목소리.

“미안해요.”

그 한 마디에 무궁화실의 공기가 얼음장처럼 차가워졌다.

“왜 그래 누나? 그냥 착용해 봐. 형이 누나 생각해서 선물까지 가져왔잖아.”

“동성아, 괜찮아. 내가 너무 무리했나보다. 미안해요. 성현 씨.”

“형이 왜 미안한데? 누나! 내 생일이잖아. 내가 생각해서 기웅이 형에게 누나 보여주려고 일부러 초대했단 말이야. 근데 누나가 이렇게 나오면 내가 뭐가 돼? 어?! 빨리 받아. 그리고 목걸이 착용해.”

김성현은 이 자리가 싫었다.

거기에 억지로 마련된 분위기.

김동성이 무슨 생각으로 자신을 불렀는지는 알 수 있었다.

[성현아, 잘 하고 있어. 일어나. 일어나서 얼른 돌아가.]

김성현은 최용규의 뜻대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입을 뗐다.

“강 비서. 나와요.”

“네. 아가씨.”

강백현도 김성현을 따라 일어났다.

그런데 앞에 앉은 김동성이 강백현에게 명령조로 말했다.

“강 비서, 앉아.”

“네?”

“네가 차 키 가지고 있지? 앉아!”

“동성아! 뭐하는 거야?”

“뭐하긴, 누나 안 보내려고 그러는 거지. 누나 이대로 가면 안 돼. 강 비서, 앉아! 뭐해? 앉으라니까?”

반말로, 명령조로 말하는 김동성.

강백현은 곤란했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는 게 이런 상황일까?

갑자기 선택의 기로에 놓인 강백현에게 최용규가 소리쳤다.

[뭐해?! 빨리 성현이 안 따라갈래?]

강백현도 이 상황을 모를 리가 없었다.

‘알아. 따라가야 되는 거. 하지만! 이렇게 가면 내가 김성현 씨 옆에 계속 있을 수가 없잖아.’

다행히 고기웅이 강백현을 풀어주었다.

“강 비서, 성현 씨랑 같이 가 봐요. 동성아, 오늘은 내가 실수한 거야. 그러니까 네가 그럴 필요 없어.”

“아니, 형이 뭘 잘못 했는데?! 누나! 도대체 기웅이 형이 왜 싫은 건데? 어?!”

“기웅 씨 미안해요. 오늘 사실 별로 안 좋은 일이 있었어요. 저번 만남 자리에서 제가 먼저 간 것도 있었고. 볼 면목이 없네요.”

“아닙니다. 제가 성급했나보네요.”

태연한 고기웅의 대답. 김성현은 더 이상 여기 있기를 포기했다.

“먼저 가볼게요. 동성이 넌 집에서 나랑 얘기 좀 해.”

“누나….”

강백현이 방을 나가는 김성현을 따라갔다.

탁탁탁탁.

그녀의 재빠른 발걸음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려왔다.

스마트키로 차 문을 열자, 그녀가 차 안으로 들어갔다.

강백현이 운전석에 앉자, 뒷좌석에서 쓸쓸한 표정을 짓고 있는 그녀가 보였다.

강백현이 담담하게 물었다.

“집으로 모실까요?”

“아뇨. 흑… 흑.”

그녀가 억울했는지 눈물을 흘렸다. 그래서 울음이 멈출 때까지 기다려주기로 했다.

“그럼 대기하겠습니다.”

“아니… 멀리 가주세요. 바닷가가 좋겠어요.”

그녀는 한참동안 울었고, 강백현은 목적지 없이 단순히 바닷가를 향해 운전대를 잡고 달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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