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뚝배기 깨러 왔습니다-27화 (27/139)
  • 뚝배기 깨러 왔습니다 27화

    박창현의 질문에 강백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박창현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아… 미치겠다.”

    “왜 그러세요?”

    “너 첫날부터 돌았냐? 지금 이 상황이 어떻게 된 건지 몰라? 너 첫날부터 퇴사당할 수도 있다. 그걸 아가씨한테 왜 바로 말하냐! 실장님 통해서 건의하면 되는 거지. 그리고 말하기 전에 나한테 먼저 말 했어야지!”

    박창현의 말에 강백현이 고개를 저었다.

    “기본적인 생활은 돼야죠. 전 숙식 제공 조건으로 들어왔거든요. 그런데 그게 안 되니 바로 말해서 조치 받아야 하는 거 아닌가요?”

    “인마! 사회생활은 그렇게 하는 거 아니야. 너 오늘 그만두라고 하면 어떻게 하려고 그래?”

    “그럼 그만둬야죠. 미련 없습니다.”

    강백현의 대답에 박창현이 머리를 긁었다.

    ‘와, 아주 미친놈이잖아?!’

    “야! 너 여기 가만히 있어. 짐 풀던 거 그만 풀고, 가만히 있어. 알았어?”

    “……”

    박창현은 자기 할 말만 하고는 갑자기 전화기를 들며 밖으로 나갔다.

    박창현은 답답했다.

    생긴 건 멀쩡한데, 첫날부터 대판 사고를 친 강백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월급을 받는 직장.

    제 아무리 샤워시설이 없고 화장실이 없어도 상관없었다.

    자신에게는 이 직장이 필요했다.

    실수령액 월 420.

    인간적인 대우를 포기한 대가다.

    그 대가로 어려운 집안 살림에 한 몫 보탤 수 있다.

    욕하면 욕 들어먹고, 때리면 한 대 쳐 맞고, 그렇게 살면 기울어진 집안을 조금씩이나마 복원할 수 있었다.

    앞으로 조금만 더 참으면….

    5년? 10년? 그 정도만 참고 생활하면 지긋지긋한 빚쟁이로부터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자신까지 해방시킬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다.

    그런데 처음 온 녀석이 시작부터 사고를 치니 미칠 것만 같았다.

    그래서 밖으로 나오자마자 비서실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 아? 박 비서. 왜? 무슨 일 있나?

    이른 아침임에도 바로 전화를 받는 비서실장.

    그리고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고자질하는 박창현 수행비서.

    “실장님, 새로 들어온 녀석이 사고 쳤습니다.”

    일단은 결과부터 보고했다.

    - 뭐?! 첫날부터 사고 칠 게 뭐 있어? 회장님 집안으로 못 들어가게 입구에서 대기하라고 했잖아.

    “네. 대기했었죠. 쪽문으로 들어와서 집 안에 짐 놓고, 간단하게 교육하려고 했는데요.”

    - 그런데?

    문제의 결과를 야기한 원인, 그것부터 보고하는 게 비서실장에게 배운 일처리였다.

    “이 미친놈이 성현 아가씨한테 다이렉트로 전화해서 화장실 없다고 조치해달라고 하지 않습니까?”

    박창현의 말에 비서실장 윤정석이 깜짝 놀라며 당황한 목소리를 내뱉었다.

    - 진짜야? 걔가 그런 얘기를 했다고?!

    “지금 큰일 났습니다. 이걸 어떻게 해야 합니까?”

    - 일단 내가 아가씨한테 전화를 걸어볼게. 그놈 더 이상 사고 못 치게 일단 이쪽으로 데려와. 걔는 거기서 지내면 안 될 것 같다. 알았어?

    “네. 바로 하겠습니다.”

    박창현은 한숨을 내쉬며 다시 쪽문을 통해 집으로 들어갔다.

    헌데 박창현은 당황하고 말았다.

    여성의 아슬아슬한 S자 실루엣.

    이 집에서 그런 몸매를 가진 사람은 한 명 밖에 없었다.

    ‘아가씨가 여기까지 왜?’

    박창현은 당황했다.

    ‘아! X 됐다. 어떻게 해야 하지?’

    이건 절대 벌어져선 안 되는 일이었다.

    자신이 이곳에서 사는 3년 간, 회장님 내외가 누추한 쪽방을 기웃거린 기억은 없었다.

    그만큼 별도로 분리된 공간이다.

    홀아비 냄새가 가득하고 정리도 잘 되지 않은 그저 그런 공간이었다.

    아무도 오지 않아 청소도 잘 하지 않았는데.

    그런 누추한 곳에 아가씨가 왔다고?

    박창현이 경악을 뒤로 하고 일단 안으로 들어갔다.

    때마침 성현 아가씨는 강백현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여기가 숙소인가요?”

    부드럽고 너그러운 말투.

    항상 존경심이 생기는 김성현 아가씨의 성품.

    그런데 그걸 강백현이 못마땅하다는 투로 대답하고 있다.

    “네. 맞습니다. 두 명이 자는 숙소죠.”

    그러고 보니 천장과 벽의 벽지는 제대로 붙지 않아 울어버린 상태이고, 보일러실 바로 옆의 내벽은 결로 때문인지 곰팡이가 슬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잠만 겨우 간신히 잘 수 있을 정도로 너저분하고 냄새도 있다.

    그걸 보여드리는 것 자체가 성현 아가씨에게 민폐인 것 같아 차마 고개를 들 수 없었다.

    “……”

    때마침 강백현이 그 부분을 파고 들었다.

    “냄새 때문에 힘드시죠? 이곳에서 숙식을 제공한다니까 김성현 씨 의도가 뭔지 궁금하네요.”

    그의 말에 깜짝 놀란 박창현. 죄송하기도 하고 쪽팔리기까지 했다.

    왜 이런 지경이 되어버린 걸까?

    박창현은 아가씨를 바깥 방향으로 인도하며 변명을 늘어놓았다.

    “아… 아가씨, 일단 나가시죠. 죄송합니다. 제가 신입 교육을 잘못시킨 것 같습니다. 다음부터 아가씨가 이런 일에 신경 쓰실 일 없도록 단단히 교육하겠습니다.”

    그런데 눈치 없는 신입 녀석은 자신의 말을 무시하고 계속해서 말을 이어간다.

    “일단 숙소 리모델링 부탁드리고요. 그게 안 된다면 출퇴근 형식으로 바꿔주세요. 약속대로 숙소 지원도 부탁드리고요.”

    ‘저 새끼, 분위기 파악을 못하네. 미친 거 아니야?’

    다행히 아가씨는 성품이 좋은 분이셨다.

    “일단 제가 결정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회장님께 말씀드려 볼게요. 백현 씨, 미안해요.”

    예상과 크게 벗어나지 않는 범주의 대답이 튀어나왔다.

    김성현 아가씨의 말에 박창현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이걸로 일단락될 분위기라는 것.

    그런데 강백현이 분위기 파악을 못하고 화를 돋우었다.

    “네. 미안해하시는 감정이 느껴져서 다행이네요.”

    이번에는 김성현이 참지 않았다.

    “알았어요. 알았으니까 그만해요!”

    김성현 아가씨가 화를 내며 되돌아가고, 강백현은 뭐가 그리 당당한지 웃고 있었다.

    그런 백현에게 박창현이 물었다.

    “야, 너 미쳤냐?”

    “네?”

    “미친 거냐고? 일단 나 따라와! 밖으로 나와!”

    박창현은 일단 강백현을 공공 놀이터로 끌고 나왔다.

    회장님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 부자 동네의 어린이용 놀이터지만 놀이터에서 노는 아이들은 아무도 없다. 집 안에 정원이 잘 꾸며져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집안 어른들이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노는 것을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무도 없는 공공 놀이터에서 박창현이 강백현의 가슴을 툭툭 치며 말했다.

    “야! 너 제정신이냐?”

    “……”

    “미친 새끼, 제정신이냐고 물었잖아.”

    대답 없는 백현에게 다시 되묻는 박창현.

    그런데 강백현은 뭐가 그리 못마땅한지 꿍한 표정이었다.

    “정상적이진 않았죠. 분명 그랬죠.”

    평범치 않은 대답을 하는 강백현에게 박창현이 답답함을 토로했다.

    “우와, 진짜 내가 별의별 새끼 다 겪어봤는데, 너처럼 첫날부터 사고치는 새끼는 처음 봤다. 너 몇 살이야?”

    “서른둘인데요.”

    “생긴 건 멀쩡해가지고, 뭐 했어?”

    박창현의 발언에서 심각성을 느낀 강백현이 고개를 숙였다.

    “일단 오늘 일은 사과드리겠습니다.”

    “지금 사과 해봐야 뭐해? 사고 다 쳐 놓고! 어떻게 수습하라고? 어?!”

    다짜고짜 화를 내는 박창현이 이해되지 않는 바는 아니지만, 여전히 사람 취급도 못 받는 처우가 못마땅한 강백현이었다. 그가 생각을 정리해서 전달하려고 노력했다.

    “형님! 지금 21세기잖아요. 사람 살만한 곳에서 살아야죠. 형님은 안 억울하세요?”

    “야! 형님은 무슨 형님이야? 내가 언제부터 네 형님인데?!”

    “알겠습니다. 박 비서님은 이렇게 닭장우리 같은데서 살면서, 괜찮으세요? 버틸 만 하세요?”

    “씨발… 닭장우리? 네가 뭔 상관인데?”

    “이제 21세기입니다. 과거 신분제도가 있던 사회 아니고요. 식민지 시대 아니에요. 어르신들 무조건 공경해야 하는 유교문화도 많이 퇴색되었습니다. 민주사회잖아요. 한 사람의 인격체로 정당히 대우 받아야지요. 왜 부당한 대우 받고 사세요?”

    강백현의 말에 박창현이 억울한 듯 소리쳤다.

    “사람들이 네 요구대로 해줄 것 같아? 네가 사회생활을 얼마나 해봤는지 모르겠는데, 나는 소위 말하는 바닥에서 많이 날고 기었어. 강자 앞에서는 무릎 꿇고 기어야 하고, 약자들은 철저하게 짓밟아야 돼. 그게 사회야. 너 똥물 퍼 봤어? 노가다 해봤으면 알 거 아니야! 원박 투데이지! 딱 보면 모르냐?”

    “전 이해가 안 가요. 월급 많이 받아도 저런 곳에서는 못 살아요.”

    “그게 내가 살아가는 방식이야. 네 마음에 안 든다고 남까지 다 똑같다고 생각하지 마. 알았어?!”

    강백현이 그의 말에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이번 건은 제가 책임지고 문제가 생기면 그만두겠습니다. 말씀하신대로 저는 박 비서님하고 가치관이 정 반대인 것 같습니다.”

    “생각 없는 새끼!”

    “저 생각 없는 사람 아닙니다. 저는 세상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어요. 강자 앞에서는 더 강하게 나가야 하고, 약자들은 보호받을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제가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면, 그걸 참고 버티는 게 아니라 정당하게 요구하고 조치 받는 게 올바르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행동도 그래서 나온 거였고요.”

    “미친 새끼, 입은 살아가지고! 너 방금 말했지. 책임진다고?”

    “네.”

    “네가 오늘 일 다 벌인 거야. 나하고 관련 하나도 없는 거다. 네가 다 책임지는 거다. 알았냐?”

    “네! 책임집니다.”

    당장이라도 자르고 싶지만 그럴 권한이 없는 박창현.

    그가 한숨을 내쉬며 강백현을 데리고 숙소로 돌아갔다.

    “하아, 존나 짜증나네.”

    “……”

    강백현은 더 이상 박창현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았다.

    어차피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은 다 했다.

    솔직히 돈을 벌려고 올라오긴 했지만, 노예로 살려고 온 것은 아니었다.

    시작부터 푸대접.

    그만두면 그만.

    분명 박창현에게 미안한 감정은 있었다.

    하지만 그의 행동이 이해가진 않았다.

    왜 이런 꼴을 당하면서도 당연한 듯 사는 거지?

    왜 사람들은 항상 불의에 저항하지 못하고 당하면서 사는 걸까?

    돈 때문에? 왜 고개를 숙이고 평생 죄인처럼 살아야 하는 건데?

    방으로 들어왔는데 박창현에게 회장님의 호출이 이어졌다.

    “네 회장님.”

    - 박 비서, 오늘 성현이가 한 얘기가 뭔가?

    “아무것도 아닙니다. 신입이 사고를 친 것 같습니다. 제가 똑바로 교육하겠습니다.”

    - 일단 차량에서 대기하게. 곧 메리야트 호텔 천안점으로 갈 테니까. 차 안에서 이야기 하자고!

    “네. 알겠습니다.”

    전화가 끊기고 박창현이 한숨을 푹 쉬었다.

    그런 박 비서를 보며 강백현이 물었다.

    “전화내용 들었습니다. 저도 천안 가는 겁니까?”

    “짐이나 풀어 인마! 아 짜증나! 짜증나! 너 진짜 갔다 와서 제대로 교육해줄게. 너 진짜 뒤진다! 응?”

    * * *

    박창현이 옷매무새를 다시 하고 회장님을 수행하기 위해 대기했다.

    밖에는 어제 김동성 도련님에게 맞은 후 불평불만을 늘어놓던 김 기사가 단정한 양복을 입고 기다리고 있었다.

    헌데 그가 웃으며 박창현에게 물었다.

    “무슨 일 있었다며?”

    “네? 무슨 일이요?”

    “이번에 새로 들어온 녀석, 숙소 맘에 안 든다고 아가씨한테 직접 말했다던데?”

    “어떻게 아셨어요?”

    “어떻게 알긴, 실장 놈이 난리를 치니까 그렇지. 나보고 걔 면담 좀 하라더라.”

    “그런 놈이 어디서 굴러 들어왔는지 모르겠습니다.”

    박창현의 대답에 김 기사의 표정이 갑자기 굳어진다.

    그가 자신의 감정을 그대로 전했다.

    “너, 뭐래는 거야?”

    “네?”

    “넌 걔 무시하냐?”

    “무슨 말씀이신지….”

    “넌 그럴 용기도 없었으면서, 그 친구 무시하는 거냐고? 그게 얼마나 대단한 용기인지 넌 몰라?”

    “……”

    “그런 용기 있는 사람이 세상을 바꾸는 거야. 너도 살아보면 알 거야. 그런 거 하나하나가 모여서 세상이 점점 좋아진다는 거.”

    “이건 아니지 않습니까? 기사님도 같은 상황이면 그렇게 행동하시진 않을 거 아닙니까?”

    “그래. 분명 나도 그렇게는 못하지. 하지만 나도 그런 용기 좀 있었으면 좋겠다. 당장 때려 치더라도 하고 싶은 말은 하고 살고 싶네.”

    박창현은 50대 중반 김 기사의 말에 말문을 잃었다.

    ‘누군 아니겠습니까? 다만 일자리를 잃으니까 참고 사는 거지.’

    그때 회장님이 집 밖으로 나왔다.

    김 기사는 재빨리 뒷좌석 문을 열고 대기. 박창현은 조수석 위치에서 허리를 굽혀 인사를 건넸다.

    “좋은 아침입니다. 회장님.”

    “지금이 아침인가? 아점 아니었나?”

    “네! 맞습니다. 좋은 아점입니다. 회장님.”

    뒷좌석에 타는 회장.

    김 기사는 운전석에, 조수석에는 수행비서 박창현이 탑승했다.

    김 기사가 목적지를 확인하며 운전을 시작했다.

    “메리야트 호텔, 천안점으로 이동하겠습니다.”

    “그래. 김 기사는 잘 쉬었나?”

    “네. 잘 쉬었습니다.”

    김도한 회장은 김 기사의 안부를 물은 후, 곧바로 박창현 비서를 불렀다. 그런데 한숨이 먼저였다.

    “후-우, 박 비서!”

    “네. 회장님.”

    박창현은 당황했다.

    회장님은 뭐라고 하실까? 분명 오늘 일을 말씀하시겠지?

    안타깝게도 그의 예상은 적중했다.

    “숙소 관련해서 성현이가 말을 하던데.”

    “네. 죄송합니다. 오늘 신입 녀석이 사고를 친 것 같습니다. 단단히 교육하겠습니다.”

    “아니! 내가 말하고 싶은 건 그게 아니고.”

    “네?”

    “왜 그런데서 살면서 아무 말도 안 했어?”

    “……”

    “내가 항상 말했잖아. 자네는 내 사람이라고! 김 기사! 아니야?”

    “맞습니다. 회장님.”

    “우리는 평생 가야될 사람이야. 자네들을 책임지는 내가, 자네들을 돌보지 못하면 누가 자네들을 돌보나?”

    박창현은 처음으로 회장님의 말에 울컥했다.

    “……”

    “오늘 도배 싹 다시 하고 화장실 공사 견적 뽑으라고 했네. 그리고 수도시설 확보되면 자네들 별도 공간 마련해줄 터이니, 불편해도 조금만 참아. 알았지?”

    김도한 회장의 말에 박창현이 대답했다.

    그런데 평상시와 같은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으읍… 네.”

    울먹이는 목소리가 같이 나와 버린 것.

    “뭐야? 왜 울어?! 김 기사!”

    “네. 회장님.”

    “앞으로 자네도 어려운 일 있으면 말하게.”

    “……”

    “자네들은 나를 너무 몰라. 너무 어려워해! 그게 문제야. 그게 문제.”

    김 기사도, 박 비서도 얼굴에 묘한 표정 뿐.

    회장님을 변하게 한 것은 무엇 때문일까?

    왜 이런 결과가 나올 거라 예상하지 못했던 거지?

    강백현이 일하게 된 지 겨우 만 하루.

    메리야트 그룹 내부에서는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할 만큼 조그마한 변화의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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