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뚝배기 깨러 왔습니다-26화 (26/139)
  • 뚝배기 깨러 왔습니다 26화

    김성현의 제안에 강백현이 자신의 사정부터 밝혔다.

    “저 곧 일자리가 잡힐 것 같아요. 오래 못 일해요.”

    - 괜찮아요. 저도 오래 고용할 생각은 없어요. 단지 직장을 구할 때까지만, 아빠 역할 할 때까지만 오라는 거예요. 언제까지 윤수, 시설에 맡길 거예요?

    “이봐요! 윤수 걱정을 당신이 왜 하는데요?”

    - 불쌍해서 그러죠. 그리고 강백현 씨도 저랑 모르는 사이는 아니잖아요. 조만간 우리 실장님 통해서 연락 갈 거니까, 잘 생각해봐요. 우리 서로 각 세울 거 없잖아요. 안 그래요?

    김성현은 그 말을 끝으로 전화를 끊었다.

    백현은 화가 단단히 치밀었다. 아~ 왜 멋대로 유부남이라고 생각하는 건데?

    그런데 최용규가 갑자기 나타나 입을 열었다.

    [백현아!]

    “왜요? 뭔데요?”

    [그거 무조건 일해라.]

    “그거야 내가 결정하는 거고, 선배는 왜 그렇게 신났는데요?”

    [그거야 네가 알 건 없고.]

    “알 거 없긴 뭘 없어요. 저번처럼 그 여자 인생에 끼어들게 해서, 내 인생 꼬이게 만들려고 하는 거잖아요.”

    [너는? 나 이용하는 건 뭔데? 네가 왜 5급 공채 2차 시험에서 1등 했는지 생각해 봐.]

    “이봐요. 선배님! 나머지 과목은 내 힘으로 붙었거든요?! 그것보다 어이없어 죽겠네요. 김성현 씨, 지금 내가 유부남이라고 착각하는 거잖아요. 불쌍하다고 생각해서 마치 기회 주듯 말하는데, 이 상황 진짜 열 받거든요?”

    강백현의 말에 최용규가 핀잔을 늘어놓았다.

    [강백현, 너도 참 웃긴다? 반대로 생각해보자. 너는? 성현이 꽃뱀이라고 치부했잖아. 그냥 해. 그래야 나도 성현이 안심하고 옆에서 지켜볼 수도 있고, 무슨 일 생기면 너한테 도움 요청하기도 쉽잖아.]

    “아, 됐고요. 설득하려 하지 마요. 안 할 겁니다. 서울까지 가서 식모살이 할 생각 없습니다. 어차피 곧 임용인데 제가 거길 왜 갑니까?”

    [그래? 금액 보면 이야기가 달라질 것 같은데?]

    5분도 지나지 않아 전화가 왔다.

    모르는 번호.

    “여보세요?”

    - 안녕하세요. 김성현 아가씨한테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메리야트 그룹 직속 비서실장 윤정석입니다. 강백현 씨 맞으신가요?

    “네. 맞습니다.”

    - 보니까, 결혼은 하셨다가 배우자 사별하셨다고 하시더라구요. 아이는 시설에서 생활하고요…….

    “……”

    - 일단 저희쪽 와서 면접 좀 보시죠. 삼시세끼 숙식 제공되고, 하루종일 일하는 만큼 봉급은 섭섭지 않게 대우해드릴 겁니다. 아가씨께서 특별히 말씀하신 부분도 있으셨구요.

    “섭섭지 않은 봉급이면 얼마정도…”

    - 일단 실수령 400정도 생각하시면 됩니다. 내일 10시까지 올라올 수 있으신가요?

    강백현이 고개를 저었다.

    ‘어라? 400?!’

    3년차 공무원, 자신의 실 수령액. 월 195만원.

    근데 400이나 받는다고? 거기에 숙식제공까지?

    더 이상의 고민은 필요 없었다.

    “네. 내일 10시까지 올라가겠습니다.”

    전화를 끊자, 최용규가 옆에서 킥킥대며 웃었다.

    [뭐냐? 돈 액수 들으니까 바로 오케이네?]

    “돈 때문에 그런 거 아닙니다.”

    [뭐가 아니야! 돈 물어볼 때부터 다 알았어.]

    사실 돈 때문이 맞았다.

    월 400씩 9개월이면 3,600만원이다.

    사실 공무원으로 발령이 나도 숙소 문제 때문에 골치 아프던 차였다.

    당장 타지로 발령나면 전세금도 마련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물론 공무원은 은행에서 대출이 잘 나온다.

    하지만, 대출은 결국 빚이다.

    일단은 돈을 버는 게 현재 당면과제.

    다음날, 첫차를 탄 강백현은 바로 메리야트 그룹으로 이동했다.

    깔끔한 정장, 거기에 반짝이는 구두.

    훤칠한 외모에 커다란 키.

    그를 보며 비서실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비서실장은 백현에게 편하게 반말을 했다. 아마도 소개로 들어온 거라 편해서 그랬을 것이다.

    “음… 역시 아가씨가 보는 눈이 있네.”

    “네?”

    “자네 무술 자격증은 있나?”

    “태권도 1단이랑 유도 2단 있습니다.”

    “음… 괜찮네. 지금까지는 뭐했지?”

    뭐하긴 공무원 했지.

    강백현이 대답하려는데, 최용규가 끼어들었다.

    [일용직 했다고 해.]

    “???”

    [공무원 했다고 하면 안 뽑아! 회장님이 나 때문에 공무원 엄청 싫어하신다.]

    “왜 말이 없어?”

    “그냥 이것저것 했습니다. 농사도 짓고 기계도 좀 다루고. 그냥 뭐 그런 것들 했습니다.”

    “그래? 뭐 몸 쓰는 사람들 일이 다 그렇지 뭐. 사실 우리 일이 똑똑한 놈보다는 시킨 거 잘 하는 놈이 인정받는 거야. 박 비서~!”

    비서실장은 흡족한 얼굴로 박창현 비서를 불렀다.

    “네. 실장님.”

    “이 친구 데리고 간단히 교육 좀 해.”

    “알겠습니다.”

    대기업이라면서 면접이 어이없을 정도로 짧았다.

    자신과 마찬가지로 커다란 체격을 가진 박 비서란 사람이 백현에게 당부했다.

    “백현 씨, 포기하지 마요.”

    “네?”

    “처음에는 다 힘드니까, 버텨보라고.”

    그 말을 하는 이유는?

    처음부터 암기강요다.

    그는 비서들과 기사들이 대기하는 방으로 강백현을 데려갔다.

    다행일까?

    지금은 아무도 없었다.

    “자! 이거 사진보고 얼굴하고 이름 익히세요. 한 시간이면 외울 수 있죠?”

    메리야트 그룹 회장의 가계도.

    김도한 회장님과 그의 아내.

    그리고 장녀인 김성현과 그의 남동생.

    그뿐만이 아니다.

    메리야트 건설 그룹은 회장님의 남동생 김도성이 맡고 있고, 메리야트 식품 그룹은 회장님의 여동생 김현희가 맡고 있다.

    복잡한 가계도.

    그룹의 회장이 김도한이라고는 하지만, 각 그룹을 남매들이 휘어잡고 있다보니 회장의 영향력이 결코 높아 보이지는 않았다.

    그때, 한 아저씨가 들어왔다.

    50대 남성이다.

    “오~ 신입인가?”

    “네. 기사님, 이번에 김성현 아가씨 추천으로 들어온 강백현이란 친구입니다.”

    “아가씨 추천? 그런 적이 있었나?”

    “한 번도 없었습니다.”

    50대 남성은 강백현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그리고 물었다.

    “자네 아가씨랑 무슨 사이는 아니지?”

    “네?”

    “요건 아니겠지?”

    50대 남성은 한쪽 손으로는 구멍을 만들고, 다른 손으로는 손가락을 집어넣으며 저속한 방식으로 표현했다.

    “아닙니다.”

    “근데 어떻게 추천을 받은 거지?”

    다행히 자신의 교육을 맡은 박 비서가 대신 설명했다.

    “이 친구 유부남이래요. 애도 있고. 아가씨가 최근에 봉사활동을 다니는 시설이 있다는데, 그 애가 불쌍해서 고용한 거라고 합니다.”

    “후후, 그래? 의외군. 아무튼 잘 해봐. 여기 개판이니까.”

    “김 기사님. 회장님이 들으시면 어떻게 하려고 그러세요?”

    “뭘 어떻게 해? 그만둬야지. 아! 짜증나. 오늘 새파란 젊은 새끼한테 두드려 맞으니까 기분 졸라 더럽다.”

    “도련님이 또 손찌검을 하신 건가요?”

    “씨발, 걔가 무슨 도련님이야! 나이 50먹고 어린애한테 맞고 다녀봐. 욕 안 나오게 생겼나….”

    얼마나 화가 났으면 회사에서 상사 욕을 할까 싶다.

    백현 또한 그랬었기에 일단 눈치를 보았다.

    다행히 공무원하고 여기도 별다를 건 없었다.

    박창현 비서가 운전직인 김 기사라는 분을 잘 타이른다.

    “김 기사님, 일단 자중하세요. 이제 막 신입 들어왔는데 왜 그러세요?”

    “왜 그러긴! 나 같은 꼴 안당하게 하려고 하는 거지. 자네도 조심해. 회장님 아들 김동성, 얘 진짜 질 나쁜 새끼야. 조심하는 게 좋아.”

    가계도에 김동성이란 이름이 보인다.

    김성현의 남동생 김동성.

    메리야트 호텔그룹 제 2 기획실장의 자리를 맡고 있는 인물.

    일단 관상부터 싸가지가 없어 보이긴 했다.

    그런데 박창현은 김 기사가 자리를 뜨자마자 백현에게 딴소리를 했다.

    “기사님 말 듣지 말고, 가계도나 외워. 그리고 백현이, 너 나보다 나이 어리고 경력도 없으니까 말 놓는다.”

    “네. 알겠습니다.”

    한 시간 후 박 비서가 백현에게 가계도 사진이 출력된 종이와 볼펜을 건네주었다.

    “이름 외운 거 적어 봐. 이거 통과하면 바로 합격이니까.”

    백현은 머리가 좋았다.

    9급 공무원도 합격했고, 조금의 도움을 받긴 했지만 5급도 거의 자력으로 합격했다.

    가계도 외우는 정도는 식은 죽 먹기.

    그래서 한 글자도 틀리지 않고 정답을 적어냈다.

    “일단 기본은 되네. 이거 인수인계서니까 내일까지 짐 챙겨서 여기 주소로 와. 그리고 내 이름은 박창현, 앞으로 너랑 매일 같이 지내며 생활할 거야. 잘 지내보자.”

    “네. 강백현입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조직도는 봐서 알겠지만 난 회장님 수행비서2를 맡고 있어.”

    “수행비서2요?”

    “응. 우린 3교대야. 넌 수행비서3이 될 거고. 아마 아가씨랑 도련님 위주로 맡게 될 것 같다.”

    “아가씨랑 도련님이요?”

    “그래. 김성현 아가씨랑 김동성 도련님. 김 기사님 말은 신경쓰지 마. 조금 까탈스럽긴 해도, 나쁜 사람들은 아니니까.”

    박창현의 말에 강백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메리야트 그룹 비서실은 생각보다 간단한 조직이었다.

    그룹 회장과 그의 가족들의 치부를 맡는 조직.

    그래서 조직원의 수가 더 적은지도 모른다.

    비서실장 아래 수행비서 1, 2, 3. 그리고 기사 1, 2.

    이걸로 총 6명.

    이 중 결혼을 하지 않은 박창현 수행비서는 회장의 자택과 붙어있는 단칸방에서 숙식을 하고 있다고 했다.

    백현은 건물 아래층으로 내려가며 생각했다.

    ‘남들 밑에서 일해보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세상 사람들의 90퍼센트는 남들 밑에서 일을 한다.

    비슷한 상하구조는 있지만 공무원은 거의 잘릴 일은 없다. 하지만 대부분은 그와는 다른 세상에서 살고 있다.

    고용주의 말이 절대적인 일반의 일상을 직접 겪으며 견문을 넓히려는 게 지금 강백현의 생각이었다.

    비서실장이 씩 웃으며 말했다.

    “합격이네. 내일부터 출근할 수 있나?”

    “네. 가능합니다.”

    “회장님 집으로 바로 출근해. 연락은 박 비서 통해서 하면 되고.”

    “알겠습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면접을 마치고, 부주시의 집으로 돌아온 백현은 곧장 짐을 쌌다.

    그리고 주소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

    서울 한남동의 고급 빌라.

    요즘에는 인터넷으로 주소를 치면 주변 건물도 다 나와서 찾기가 편하다.

    다음 날, 새벽버스를 탄 강백현이 김성현의 집으로 향했다.

    강남터미널에서 지하철을 타고 한남동에서 내려 언덕을 올라간다.

    부촌은 역시 틀리다.

    깨끗하고 도시 정비가 잘 되어 있다.

    숲도 우거지고, 공원도 넓고 깨끗하다.

    언덕 올라가는 길에는 외제차가 즐비했다.

    각 주택에는 전용 차고도 있었다.

    한 평에 3천만원 정도 한다고 했는데… 이 비싼 땅값에 차고라니.

    강백현은 김성현의 집으로 걸어가며 고민했다.

    초인종을 눌러야 하나 말아야 하나.

    아직 이른 시간.

    먼저 전화부터 해야 하나 고민하던 차. 박창현이 미리 집 앞에 나와 있었다.

    “신입! 여기!”

    “네.”

    그가 가리킨 곳은 쪽문.

    뒤편에 달린 보안문이다.

    “정문으로는 다니지 마. 거기는 회장님 일가만 지나가는 곳이니까.”

    “네.”

    보안문을 열고 들어가니 조그마한 방 하나가 보인다.

    보일러실 옆에 딸린 조그마한 방.

    그런데 들어가니 실망이다.

    원룸보다도 못한 시설.

    주방도구도 없고 화장실도 없다.

    “화장실은 어디에 있습니까?”

    “아, 집밖에 나가면 공원 옆에 화장실 있어. 거기 가면 돼.”

    “씻는 건 어떻게 합니까?”

    “보일러실에 호수 꼭지 있다. 그걸로 쓰면 된다.”

    백현은 알았다.

    여기 사는 사람들은 자기 회사 직원들을 사람 취급 안 한다는 것을.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박창현이 강백현에게 재촉했다.

    “짐부터 풀어. 곧바로 회사 나가야 하니까.”

    “저, 박 비서님?”

    “어. 왜?”

    “여기서 어떻게 생활합니까?”

    “익숙하면 편해. 난 벌써 3년째인데?”

    박창현의 말에 황당한 표정을 지은 강백현은 전화기부터 들었다.

    그리고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 여보세요?

    “김성현 씨?”

    - 네. 어떻게 됐어요? 일 하기로 했나요?

    “네. 김성현 씨 집 옆에 살기로 한 노예인데요. 여기 화장실이 없네요. 씻는 곳도 없고요. 처리 좀 부탁드려야 할 것 같은데요?”

    강백현의 노예란 말에 김성현이 화들짝 놀라며 대답했다.

    - 정말인가요?

    “같은 집에 사신다니까 직접 와보세요. 이게 사람 사는 곳입니까?! 노예 사는 곳입니까? 끊습니다.”

    전화를 끊고 나니 뭔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느껴져서 고개를 돌린 강백현.

    아니나 다를까? 단단히 화가 난 표정의 박창현이 강백현을 노려보고 있었다.

    “신입! 너 누구한테 전화했어?”

    “네?”

    “설마 지금 성현 아가씨한테 전화한 거야?”

    “네. 맞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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