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뚝배기 깨러 왔습니다-25화 (25/139)
  • 뚝배기 깨러 왔습니다 25화

    부주의료원.

    의사선생님이 아이의 상처를 보며 말을 꺼냈다.

    “별 다른 걱정은 안 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괜찮나요?”

    “네. 꿰맬 상처는 아니고, 이 정도면 연고 잘 바르면 흉터도 안 날 것 같습니다.”

    “다행이다. 윤수 뚝! 더 울면 고추 떨어진다.”

    “안 울어. 안 울 거야.”

    아버지의 말에 울음을 그치는 윤수.

    절로 웃음이 나왔다.

    윤수를 시설에 데려다주고 돌아오는데 아버지가 말했다.

    “윤수는 얼마나 힘들까?”

    “뭐가요?”

    “우리도 뭐 잘 사는 건 아니지만, 윤수 같은 경우는 엄마가 자살했다며. 지 아빠는 누군지도 모르고. 그 어린 것이 부모 없는 게 얼마나 마음이 아팠으면 너한테 전화를 다 했겠니?”

    “네. 그러게요. 들어가시죠.”

    “그래.”

    * * *

    같은 시각.

    집에 돌아온 김성현은 화가 나서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자기 자식 좀 똑바로 챙기지! 애기는 시설에 맡겨두고 도대체 뭐하고 다니는 거야?’

    그래서 전화를 걸었다.

    - 여보세요?

    “강백현 씨, 나에요. 김성현.”

    - 아, 네. 무슨 일이세요?

    솔직히 여기까지는 안 묻고 싶었는데, 사람이 너무 뻔뻔하니 애들 때문이라도 신경이 써진다.

    “강백현 씨 직업이 뭐에요?”

    - 저요? 백수인데요.

    “와~ 진짜 대책 없다. 어머님은 뭐하시는데요? 아버지는 뭐하시고요?”

    - 어머님은 식당일 하시고, 아버지는 경비일 하시는데요. 왜 물어보세요?

    “아니! 애기가 시설에서 사는데 잠이 와요? 어떻게든 일을 해서 애를 데려올 생각을 해야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사는 거예요?”

    이쯤 하면 알아듣고 잘 살았으면 좋겠는데, 이 남자는 대책이 없다.

    - 아니, 김성현 씨, 부자집 따님이라면서?

    “그 얘기가 왜 나와요? 그건 또 누구한테 들었어요?”

    - 이미 뭐 명품으로 치장하고 나 잘 살아요! 이렇게 소문내고 다니면서, 몰라주길 바랐어요?

    “이봐요! 나는 윤수가 걱정돼서 전화 건 거예요. 다른 의도 없었어요. 근데 내가 잘 살고 말고를 당신이 왜 신경 써요?”

    - 윤수 알아서 잘 클 거고 우리 가족이 잘 챙길 테니까 걱정 마요. 그리고 내가 백수이든 말든, 우리 엄마가 식당일 하고, 아빠가 경비 일을 하니까 쉬워 보여요? 무슨 생각으로 사냐고요?

    “아… 그 말이 아니잖아요! 상식적으로 접근하자는 건데….”

    - 됐습니다. 오늘 도움 준 건 감사한데, 돈 많다고 사람 함부로 판단하지 마세요. 그럼 이만 끊습니다.

    “아! 강백현 씨! 강백현 씨!”

    먼저 전화를 끊는 강백현.

    화가 난 김성현이 다시 전화를 걸었다.

    [상대방의 전원이 꺼져있어…]

    김성현은 너무 열 받았다.

    윤수를 보면 어린 시절의 자신을 보는 것만 같아 기분이 좋지 못했다.

    부자라서 다 좋다고?

    잘 알지도 못하면서!

    꼭두각시처럼 집안사람들이 시키는 일만 해야 하는 나에 대해 네가 얼마나 아는데?!

    그런데 그때 김성현의 휴대폰에 메시지가 도착했다.

    『누나, 나 윤수. 형아랑 같이 의료원 가서 연고 발랐어. 흉터 안 생길 것 같대. 오늘 누나가 와서 사실 너무 기뻤어. 고마워. 아, 이거 원장님 핸드폰이야. 저장해 둬.』

    아이의 귀여운 얼굴 때문이었을까?

    김성현은 해맑게 웃고 있는 아이의 사진을 계속 쳐다보았다.

    * * *

    한동안 보이지 않았던 최용규가 강백현 옆에 나타났다.

    “어디 갔다 와요? 일주일 동안 보이지도 않더니.”

    [신고하러 갔다 왔다.]

    “신고요?”

    [응. 너희 집안 성주신으로 정식 등록하고 오느라 오래 걸렸어.]

    “그런 것도 있어요? 정식 등록한다고요?”

    [성주신이라면 저승에 가서 1년에 한 번씩 신고해야 해. 그런데 저승사자 놈들이 꽤나 거칠게 굴더라고.]

    “선배가 사고 친 건 아니고요?”

    [응. 근데 너희 할아버지인가? 성주신으로 원래 등록되어 있었는데 지금 실종된 지 꽤 됐다더라.]

    “그건 무슨 소리입니까?”

    [내가 아냐? 강복팔 보면 바로 알려달라고 하더라. 저승사자들이 그 놈 잡으러 가야 한다고 그래. 아주 고얀 놈이라던데?]

    강백현에게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거의 없었다.

    4살 때 돌아가셨나? 자유분방하게 사셨던 걸로 기억한다.

    돈도 다 까먹으셔서 아버지가 정말 힘들게 사셨다고.

    그래서 집안 살림이 이 모양 이 꼴이 되었다고.

    “선배, 그것보다 나 뭐해야 할까요? 내년 4월 신규 관리자 교육 있을 때까지 시간이 붕 떴네요.”

    [9급 먼저 하고 가야지. 대전은 교육 언제 한다는데?]

    “시장 놈이 손써서 그것도 밀린 것 같은데요? 지금 7월이니까 9개월 동안 손만 빨고 지낼 수는 없고. 일 좀 알아봐야 할 것 같고요.”

    [모은 돈 가지고 여행이나 다녀. 여자 친구도 만들고. 공무원 3년이면 돈 좀 모았을 거 아니야.]

    “그러게요. 그럴 여유가 있었으면 좋겠네요.”

    강백현이 스마트폰으로 자신의 계좌 잔액을 쳐다보았다.

    38,567,234원.

    그것도 퇴직금 600만원이 들어온 상태라 저 정도 금액이 된 것이다.

    결혼자금으로 모았던 3000만원. 그리고 퇴직금 600만원. 그리고 기타 자투리 금액들.

    그러나 최용규에게는 한참 부족해 보였나보다.

    [그동안 뭐했냐?]

    “공무원 월급이 뭐 많이 받나요? 연금 바라보며 사는 거죠.”

    [그래도 나이 32에 3,800만원은 너무 심했다. 뭐하고 살았는데?]

    “뭐하긴, 미진이한테 올인했죠. 그래도 이 정도면 많이 모은 것 같긴 한데.”

    [됐다. 됐어! 일이나 알아 봐.]

    “그러려고요.”

    그런데 지방엔 일자리가 딱히 없다.

    공장 일을 알아봐도.

    “단기간만 일한다고요?”

    “네.”

    “그럼 안 되겠는데?”

    “아르바이트도 안 되겠습니까?”

    “네. 안 돼요. 저희는 가족 같은 사람들을 원하고 있어요. 그래서 안 될 것 같네요.”

    그냥 일반 아르바이트를 구해 봐도.

    “나이가 32이면 아르바이트 할 때는 아니신 것 같은데요?”

    “잘 할 수 있습니다. 몸 건강하고요. 뭐든지 다 잘 할 수 있어요.”

    “그래도 사람 상대하는 일이다보니까, 저희는 젊은 친구들 뽑으려고 하거든요. 죄송합니다.”

    “아… 네.”

    지방이라 그런지 단순한 아르바이트 자리도 구하기가 쉽지 않아보였다.

    요즘 최저임금이 올라서 그런지 자영업자 하시는 분들이 아르바이트 모집 공고를 많이 줄였다.

    뽑아도 단기로 뽑고, 아르바이트 자리가 나오면 지원자들도 넘쳐났다.

    최저임금의 역설.

    일자리가 줄어든 것.

    최저임금이 오른 것을 비판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시기가 너무 빨랐다는 것.

    그래서 나이 32에 진짜 백수가 되어버린 강백현.

    프로필 대화명에 자신의 처지를 반영해서 올렸다.

    [32살 백수지만, 힘내자!]

    그게 지금 강백현의 처지.

    그래서일까? 심적 여유가 없어지고 자신감이 사라졌다.

    기뻐야 하는데, 왜 패배자 같은 기분이 드는 걸까?

    한 달 만에 다시 온 자원봉사.

    오늘도 역시 사람들이 북적인다.

    그런데 아이들 몇몇이 보이질 않았다.

    “윤수야? 정현이랑 수종이는 어디 갔니?”

    “응.”

    “어디 갔는데?”

    “엄마, 아빠 새로 생겨서 정현이는 서울로 가고, 수종이는 대전으로 갔어.”

    괜히 물어본 것 같다.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면 마음이 아프다.

    그때 보이는 윤수의 이마에 보이는 흉터.

    윤수가 입양이 안 되는 게 진짜 저 흉터 때문인 것 같기도 하고.

    마음 같아서는 부모님에게 졸라서 윤수를 입양하자고 말하고도 싶었다.

    여유만 있다면 그랬을 텐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니 마음이 아프다.

    그래서 주제를 돌렸다.

    “풋살 할까?”

    “숫자 안 맞아서 안 돼. 형! 게임하자!”

    “게임?”

    “응. 컴퓨터 게임.”

    “그래.”

    낡은 컴퓨터 앞에서 고전 게임을 하는 아이.

    알고 보니 인터넷이 안 되는 컴퓨터.

    하지만 아이들은 뭐가 그리 신기한지 윤수가 게임을 시작하자 둘러 모여 시선을 모니터에 맞춘다.

    그 때 원장님이 지나가는 것을 보며 강백현이 일어났다.

    “원장님, 잠깐 시간 괜찮으세요?”

    “아… 그래. 들어와.”

    원장실 안.

    수북이 쌓여있는 서류들.

    그것들은 다 이곳을 지나간 아이들의 기록이다.

    거기에는 백현의 기록도 있었다.

    “원장님, 기억나세요? 저 여기 처음 왔을 때.”

    “기억하지. 엄마, 아빠 이름도 모르는 어린 아이. 자기 이름만 백현이 백현이, 하면서 불러대는 게 얼마나 귀여웠는데.”

    “다행히 3주 만에 부모님이 저 찾아내셨죠. 그때는 얼마나 기분 좋았는지 몰라요.”

    “기억이 나?”

    “네. 그럼요. 원장님 젊은 시절도 다 기억하죠. 엄청 예쁘셔서 인기 많으셨잖아요. 그때 원장님 어머님이 여기 원장하고 계셨고요.”

    “다 옛날 얘기야. 그건 그렇고 왜?”

    원장의 말에 강백현이 어려운 말을 꺼냈다.

    “윤수 말인데요. 입양이 어려운 건가요?”

    “아무래도 윤수는 나이도 있고.”

    “나이가 왜요?”

    백현의 질문에 원장이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10살이잖아. 입양하는 부부들이 보통 한 살부터 5살을 원해.”

    “그런 게 어디 있어요? 10살은 왜 안 되고요?”

    “상식적으로 너무 컸잖아. 상처도 많이 입었고. 그런 아이 입양하는 게 부담스러운 거지. 그리고 머리카락에 가려져 있지만, 윤수 이마에 흉터. 그거 보시고 절레절레 하시는 분들이 많아서 힘들지.”

    “……”

    강백현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럼 윤수는 어떻게 해요?”

    “뭘 어떻게 해? 18살까지 여기서 지내다가 독립하는 거지. 보통 절반은 다 그렇게 해.”

    “……”

    이게 대한민국의 현실이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그래도 10년 전보다는 훨씬 나아. 지원금도 많이 나오고. 다만 자원봉사하시는 분들이 많이 줄어서 일손이 부족하긴 한데, 그래도 괜찮아. 적자만 안나면 되지 뭐.”

    “많이 고생하시네요.”

    “그래. 백현아, 다 똑같은 걱정 하는 건데, 사람 사는 게 뭐 별 수 있나? 어쩔 수 없지.”

    “그러게요.”

    “그런데 저번에 그 아가씨는 안 와? 오늘 같이 오기로 한 거 아니었어?”

    “에이, 오겠어요? 그 사람, 이런 곳에 안 어울려요. 그리고 저랑 아무 사이도 아니고요.”

    “좀 잘 해보지. 윤수가 백현이 여자친구 진짜 예쁘다고 자랑 엄청 하던데….”

    “칫, 바보 같이! 오늘 점심은 수제비죠?”

    “응.”

    사람이 많다보니, 밀가루 음식을 할 때가 많다.

    수제비, 칼국수, 떡국 등등.

    그 이유는 간단하다.

    요리가 간단하고 빠른 시간에 많은 양을 할 수 있으니까.

    다행인 것은 아이들이 맛있게 먹어준다는 것.

    오늘은 윤수가 강백현 옆에 딱 붙어 앉았다.

    “형. 많이 먹어.”

    “응. 너도 많이 먹어.”

    “형! 사실 오늘 누나한테 연락 왔어.”

    “누나?”

    “응. 성현 누나, 백현이 형 이거!”

    윤수가 약지 손가락을 높게 올렸다.

    “박윤수, 이상한 것만 배워가지고!”

    “누나가 형아 왜 일 안하는지 물었어.”

    “그래? 뭐라고 대답했는데?”

    “모른다고 했지. 나는 그런 거 모르니까.”

    “그래. 그런데 왜 그런 걸 묻냐? 그 누나 좀 이상하지?”

    “나는 그런 거 몰라. 그냥 전화로 물어본 것만 형한테 알려준 거야.”

    한 달에 한 번, 타인을 도와주러 온다는 마음으로 시작한 봉사활동.

    그런데 왜 자신이 위로받는 기분일까?

    강백현은 잘 자라주는 윤수를 보며 행복했다.

    봉사활동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길.

    그런데 의문의 전화가 걸려왔다.

    김성현이었다.

    분명 저번에도 싸우고 헤어졌는데.

    전화를 받을까 말까 고민하던 강백현이 전화기를 들었다.

    “여보세요?”

    - 강백현 씨, 오늘 윤수 보러 갔어요?

    “네. 갔는데요? 왜요?”

    이런 걸 확인하나 싶어 빨리 끊으려는데 옆에 최용규가 말을 걸었다.

    [화내지 마. 너 탓 하려는 거 아니야. 너 도와주려고 전화 건 거야.]

    ‘도와준다고?’

    무슨 소리인지 알 수가 없는 백현이 일단 통화를 계속했다.

    - 아~ 진짜, 사람 진짜 까칠해. 까칠해. 일자리 주려고 하는데 전화 끊을까요?

    “일자리요? 어떤 일자리요?”

    - 운전 및 비서직이요. 돈은 섭섭하지 않게 드릴게요. 할거예요? 말거예요?

    “전 서울에 집이 없는데요?”

    - 그건 괜찮아요. 우리 집에서 다른 기사님들이랑 같이 지내면 되니까. 대신 이거 하나는 약속해요.

    “뭔데요?”

    - 돈 벌면 윤수 아빠로서 제 역할 하겠다고. 그거 약속하면 강백현 씨, 제가 고용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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